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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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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비
작품등록일 :
2024.05.26 22:09
최근연재일 :
2024.06.23 23:04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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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글자수 :
132,779

작성
24.06.22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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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6)

DUMMY

“저기, 그게 그러니까.”


뭔가 곤란한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엘리스가 우물쭈물 호율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 엘리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구해주신 분께 말씀드리긴 죄송한데... 자꾸 입대하라고 해서요.”

“입대?”

“네, 사실 저희 집안이 군인 가문이거든요.”


‘오호라, 얼핏 퍼즐이 맞춰지는데.’


만약 호율이 없었다면 미래가 어떻게 흘러갔을까.

엘리스의 말대로라면 어떤 경위로든 엘리스는 살아남아 기어이 군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훗날 특수보병단이라는 부대의 대장급이 된다.


‘뱃사가 인질을 그냥 풀어줄 리는 없고, 그렇다고 헤세르가 뱃사와 협상했을 리는 없겠지. 결국 중위님이 구해냈을 거란 얘긴가.’


그리고 어쩌면 라일라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호율의 표정을 본 엘리스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꼬, 꼭 군인이 싫다는 건 아니고요. 오히려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주시는 분들이잖아요.”

“됐고, 하던 얘기나 계속해 봐. 신분을 속인 건 그렇다치고 왜 하필이면 그런 광산에 있었는지.”

“왜라뇨. 당연히 돈을 많이 주니까 그렇죠. 거기서 주는 월급이랑 모아놓은 용돈 합치면 시민증 금방 딸 수 있었거든요.”

“너희 집안 군인 가문이라며. 아무리 외곽이어도 그렇지 왜 너 하나를 못 찾아서.”

“그게 조금 사정이 있는데요. 아마 안 찾았을 거예요.”


라일라가 손을 들어올려 약지를 굽혔다 폈다.


“저는 가문 안에서 소위 말하는 아픈 손가락이거든요. 솔직히 사라져서 잘 됐다 생각했을 걸요.”

“야, 암만 군인 가문이어도 그렇지 자식한테 그렇게까지 하는 부모가 어딨어?”

“부모님 없어요. 어릴 때 두분 다 돌아가셨는데.”


호율은 무어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엘리스가 말을 이었다.


“두분 다 전사하셨어요.”


엘리스가 살짝 고개를 떨궜다.


“사실 그래서 군인 되기 싫은 것도 있어요. 친척들은 그러니 오히려 군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호율은 고민을 시작했다.

라일라는 말했다.

엘리스를 루카스 가문으로 데려가면 호율의 앞날에 도움이 될 거라고.

라일라가 진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

그 점을 감안하면 엘리스가 군인이 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이 녀석이 군인이 되는 게 트리거가 될 수도 있어.’


원래 미래대로라면 인류는 곧 멸망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가지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라도,

그 가능성의 가지에 엘리스가 군인이 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호율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먼 미래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어.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맞아.’


“도착까지 이틀 정도 걸릴 테니까 뒤에 가서 좀 자줘. 며칠 제대로 자지도 못했을 텐데.”

“네...”


엘리스가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어 부조종석을 벗어난 엘리스는 터덜터덜 비행선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


-알렉산더계 진입 10분 전.


“진짜 가기 싫다.”


엘리스가 궁시렁거리며 말했다.

이틀 사이 호율의 대하는 태도는 꽤 편해져 있었다.


“저 그냥 다른 곳에 내려 주시면 안 돼요? 이제까지 모은 돈 다 드릴 테니까.”

“뭐하러? 너 가문에 데려다주는 게 더 많이 받을 텐데?”

“저 완전 가문에서 없는 취급이라니까요? 기껏해야 1000만 크레딧 정도밖에 못 받을 걸요?”

“상관없어. 어차피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서.”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혹시 알아요? 제가 나중에 엄청 부자 돼서 은혜 갚을 날이 올 지?”

“그런 날이 안 올 가능성도 생각해봐야겠지? 그리고 당장 너 데려다주면 1000만이나 받는데 뭐하러?”

“아 진짜! 사람이 왜 이렇게 매몰차요. 나 같으면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하겠다.”


무어라 말하려던 호율이 계기판 아래를 바라보았다.

통신 버튼에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호율이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딱딱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진입 중인 비행선에 알린다.

-즉각 진입을 중단하고 신원과 소속을 밝히도록.

-다시 알린다.

-즉각 진입을 중단하고 신원과 소속을 밝히도록.


“거 봐요. 환영도 못 받는다 했죠?”


호율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몸을 숙였다.


“방위군 소속 장교 이호율입니다.”


-군에서 전달받은 바 없다.

-즉각 항로를 이탈하라.


“연방 의장 직속 외교 특사의 권한으로 요청드리면 되겠습니까?”

“??????”


엘리스가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방 의장 직속.

외교 특사.

귀족 가문에서 자란 그녀가 그 두 가지 단어의 조합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오빠 외교 특사였어요??? 아니, 이틀 동안 왜 말 안 하고???”


호율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뭔가 얘기라도 나누는 것일까.

대답이 오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일단 지정한 행성에 착륙하도록.

-신원 확인부터 하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이 떠오르며 멀리 한 행성 옆에 화살표가 떠올랐다.

호율은 천천히 조종간을 틀기 시작했다.


******


비투비 행성은 알렉산더계에서도 젊은 행성으로 엄밀히 따지면 아직 미개발지구에 속했다.

착륙장이 위치한 고원은 숲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지대였지만 기온이 높거나 하진 않았다.

5분 전 착륙한 호율은 엘리스와 함께 상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외교 특사면 월급 얼마 받아요? 1000만은 넘죠?”

“나도 몰라. 된 지 얼마 안 돼서.”

“진짜요? 어떻게 하다 된 거예요? 그거 근데 의장님이 직접 임명해 줘야 하는 거 아니예요?”

“알아서 뭐하게. 어차피 군인 할 것도 아니라면서.”

“그러지 말고요. 어차피 지금 이대로면 강제로 입대할 가능성이 높단 말이에요.”


무어라 말하려던 호율이 멀리 앞을 바라보았다.

스무 명 정도.

한 무리의 병력이 고원을 가로질러 오는 중이었다.

엘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집사 아저씨 중 한 명이네요. 또 잔소리 실컷 듣겠다.”

“집사라고?”


호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병력들의 허리춤에 채워진 검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군인은 아닌 게 분명했다.

군복을 입고 있지 않았으니까.


‘사병 조직인가.’


의미하는 바는 꽤 많았다.

방위군이라는 군 조직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병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게다가 성계 전체의 진입 권한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해 보면 루카스 가문이 가진 힘과 권위가 대강 짐작이 갔다.


‘내 앞길에 도움이 될 거란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병력들은 곧 호율과 엘리스 앞에 도달했다.


“반갑습니다.”


유일하게 검을 착용하지 않은 중년 남자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루카스 가문에서 집사를 맡고 있는 쿠엔틴 예코프라고 합니다.”

“이호율입니다.”

“동양식이로군요. 요즘 시대에 그렇게 완벽한 동양식 이름을 쓰는 경우는 잘 없는데 말입니다.”


표정과 말투는 나긋나긋했지만 정작 호율은 쿠엔틴에게서 단 한점의 호의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상대를 한껏 깔보는 듯한 거만함만 느껴질 뿐이었다.

쿠엔틴이 호율 뒤에 쭈뼛쭈뼛 서 있는 엘리스를 보며 슬쩍 고개를 숙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아가씨.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안녕하세요.”

“들어가시면 일단 어르신들께 사과부터 드리십시오. 다들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쿠엔틴이 호율을 돌아보았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복귀하시면 됩니다.”


호율이 고개를 저었다.


“이 아이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동행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아시겠지만 이곳 알렉산더계는 저희 가문 소유지가 대부분이라서 말입니다.”

“그렇다는 건 모든 행성이 루카스 가문 소유는 아니란 뜻일 텐데요.”


쿠엔틴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는 듯이.

실제로도 그랬다.

이제껏 그 어떤 장교도 루카스 가문의 이름만 대면 꼬리를 말았으니까.


“저택까지 가려면 저희 가문 사유지를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부디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외교 특사의 권한으로 특별히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실은 그에 대해 조금 알아봤는데 말입니다.”


쿠엔틴이 턱을 매만졌다.


“저도 웬만한 정부 고위 관료들은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만 처음 뵙는 얼굴이로군요. 특히 이렇게 젊은 분이 외교 특사라니 조금 이상하기도 하고.”

“최근에 임명됐습니다. 의장님께 직접 확인해보십시오.”

“집사인 제가 어떻게 의장님께 연락이 닿겠습니까. 행여 닿는다 해도 가문에 누를 끼칠지 모를 큰 무례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씀입니까. 저는 이 아이가 들어가는 걸 확인해야 하는데.”

“이렇게 나오시니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군요.”


쿠엔틴이 턱짓으로 엘리스를 가리켰다.


“아가씨를 모셔라.”

“네.”


척척척 다가오는 사병 둘을 보며 엘리스가 고개를 떨궜다.

이어 사병들이 꽤 거칠게 엘리스의 양팔을 움켜쥐었다.


“아얏!”


엘리스가 고개를 들며 눈살을 찌푸렸다.


“좀 살살해 주실래요?”

“조용히 따라오십쇼.”

“가문 어르신들께서 화가 많이 났습니다.”

“뭐래, 저도 가문 사람 중 하나인데...”


-탁!


“?”


막 걸음을 옮기려던 엘리스가 호율을 돌아보았다.

호율이 팔을 뻗어 앞을 막아서는 중이었다.

호율이 쿠엔틴을 돌아보았다.


“데려가라고 허락한 적 없습니다만.”

“장교님.”


쿠엔틴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일을 어렵게 만드실 필요 있습니까. 보아하니 군에서 아가씨를 찾아내어 보낸 모양인데 상부에는 이렇게만 보고하시면 됩니다. 아가씨는 저희에게 인계했다고. 그것으로 충분할 겁니다.”

“제게 지시를 내린 사람이 지금 보고를 들을 처지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들어가는 걸 제 눈으로 봐야겠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택 출입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럼 하는 수 없군요. 그 어르신들인지 하는 사람들이 데려가는 걸 기다릴 수밖에.”


당연히 호율의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라일라가 말했던 엘리스를 데려다줌으로써 얻을 수 있는 무언가.

하지만 지금처럼 흘러갔다간 완전히 흐지부지되고 만다.

적어도 전생에서 겪어본 바로는 인간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함부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었다.

쿠엔틴의 목소리에 노기가 섞여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가씨를 인계하시고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거부하면요.”

“이곳 비투비 역시 저희 가문의 사유지입니다.”

“강제로라도 데려가겠다 이 말입니까?”

“저희로선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신원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는 분을 어떻게 저택까지 모시겠습니까.”


호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짐작이 갔다.


‘애초에 이런 여자애 하나 데려가는데 왜 병력을 끌고 왔나 했다.’


힘 있는 군인 가문이니 같은 군인에겐 조금이라도 접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을 터.

반면 이렇게 강압적으로 돌려보내면 또다시 증명하게 된다. 가문의 위상을.

특히 호율이 진짜 외교 특사라면 더더욱.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으리라.

그 가문 어르신들이라는 인간의 지시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장교님.”

“군인 가문에서 일하시니 잘 아실 것 아닙니까.”


호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는 게 가장 빠른지.”

“그럼 미리 사과드리겠습니다. 조금 거칠어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쿠엔틴이 호율을 가리켰다.


“제압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병들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들에게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살기를 느끼며 호율은 서서히 엔트로피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하여간 변하질 않는다니까.’


한가지만은 분명했다.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상대가 고개를 숙여야만 성이 차는 인간들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는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알려주는 것이다.

자신들의 방식이 먹히지 않는 상대도 있다는 것을.

때로는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하는 상대도 있다는 것을.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

“!”

“!”

“!”

“!”

“!”

“!”


사병들은 입을 쩍 벌리며 하늘 높이 피어오른 흙먼지를 바라보았다.

호율은 이미 그들을 향해 돌진하는 중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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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7) 24.06.23 35 2 12쪽
»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6) 24.06.22 54 0 12쪽
21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5) 24.06.20 57 2 11쪽
20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4) 24.06.19 70 1 13쪽
19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3) +1 24.06.17 80 2 13쪽
18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2) 24.06.15 87 1 14쪽
17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1) 24.06.13 100 4 11쪽
16 2화. 멸망의 단서(10) 24.06.12 111 0 12쪽
15 2화. 멸망의 단서(9) 24.06.11 100 3 15쪽
14 2화. 멸망의 단서(8) +1 24.06.11 115 0 11쪽
13 2화. 멸망의 단서(7) 24.06.09 128 3 15쪽
12 2화. 멸망의 단서(6) +1 24.06.08 131 2 16쪽
11 2화. 멸망의 단서(5) 24.06.06 150 1 14쪽
10 2화. 멸망의 단서(4) 24.06.05 172 2 12쪽
9 2화. 멸망의 단서(3) +1 24.06.03 194 1 16쪽
8 2화. 멸망의 단서(2) 24.06.02 208 1 10쪽
7 2화. 멸망의 단서(1) 24.06.01 256 1 11쪽
6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5) 24.05.30 337 3 19쪽
5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4) +1 24.05.28 351 5 14쪽
4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3) 24.05.27 404 4 14쪽
3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2) +3 24.05.26 462 5 13쪽
2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1) +1 24.05.26 494 8 14쪽
1 프롤로그. 구멍이 되었다. 24.05.26 506 1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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