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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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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비
작품등록일 :
2024.05.26 22:09
최근연재일 :
2024.06.23 23:04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557
추천수 :
62
글자수 :
132,779

작성
24.06.1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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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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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화. 멸망의 단서(10)

DUMMY

열려가는 문을 바라보는 바스다와 그라몬손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표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뱃사의 주교들에게는 대대로 두 가지 비밀이 내려온다.

첫째는 바로 신들이 남긴 유산의 존재.

신들이 피조물들의 번영을 위해 우주 곳곳에 숨겨놓았다는 무언가였다.

두 번째는 그것을 획득하는 방법이었다.

신전이라 불리는 구조물 안에 들어가려면 신들의 언어를 알고 있어야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누락되고 변형되긴 했으나 주교들은 여전히 알고 있었다.

바로 신전을 여는 단어들을.

그것은 어떻게 보면 대주교의 정체보다도 기밀로 취급되는 비밀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5분도 채 안 되어 알아낸 것이다.

호율이.

라일라 역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녀는 금방 표정을 바로잡았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움직여야 했다.


“토마스, 올라가서 노동자들 내려오라 해. 살고 싶으면 서두르라 하고.”

“아, 알겠소.”


토마스가 재빨리 온 길을 되돌아갔다.


-스릉.


라일라가 두 주교 중 하나에게 칼을 겨눴다.

바스다였다.


“허튼짓하면 바로 목을 날려버릴 줄 알아. 내 허락 없이는 손 하나 까딱하지 마.”


라일라가 턱짓을 했다.


“따라와.”


곧 문이 완전히 열렸고 넷은 문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안에 고여있는 공기는 의외로 무겁지 않았다.

한 호흡을 들이마시자마자 라일라는 입구에서 느낀 기묘한 느낌의 정체를 눈치챘다.


‘저 위에 뭔가 있다.’


내부 구조는 간단했다.

돔 구조의 천장.

그 천장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 셋.

그리고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는 계단과 그 위에 놓여진 커다란 그릇.

라일라 뿐만 아니라 호율과 나머지 둘 역시 느끼고 있었다.


‘위험한 느낌이 드네.’

‘저것이 신들의 유산인가.’

‘과연, 어마어마한 힘이 느껴지는군.’


“리, 가서 보고 와.”


호율은 고개를 끄덕이곤 신전을 가로질러 갔다.

얼굴엔 꽤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런 건 기록에 없었는데.’


재질, 형태, 건축양식.

그 어떤 것도 호율이 본 문명과는 달랐다.

결정적으로 문에 새겨져 있는 문자들.

그 원형을 깨달은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언어야말로 모든 언어의 원형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심지어 인류까지 포함해서.


‘그런 문명이 꽁꽁 숨겨둔 무언가라.’


계단에 도달한 호율은 조심조심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발을 멈춘 호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


-찰랑...


그릇 안쪽으로부터 울려 퍼진 소리 때문이었다.

혹시 발걸음으로 생긴 진동 때문에 그릇이 흔들린 건 아닐까.

물끄러미 바라보던 호율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촤아아아아악!!!


멀리서 바라보던 라일라와 두 주교들이 눈을 치켜떴다.

갑자기 그릇에서 높이 솟구친 액체.

피처럼 붉은 색을 띈 액체였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촤아아아악!

-촤아아아악!

-촤아아아악!


붉은 액체는 연신 솟구쳤다 낙하하길 반복했다.

마치 스스로 의지를 지난 생명체처럼.


“리, 일단 멈춰. 접촉하지 말고.”


스릉,

라일라가 검 끝을 바스다의 등에 갖다 댔다.


“이 신전이 뭔지 알고 있었으니 저게 뭔지도 알고 있겠지. 설명해 봐.”

“아닙니다. 전혀 모릅니다.”

“웃기지 마. 대주교씩이나 되면서 저게 뭔지도 모르고 여길 왔다는 게 말이 돼?”

“내가 알았던 건 이 신전의 존재까지입니다.”


라일라가 미간을 좁혔다.


“못 죽일 거라 생각하나 본데 천만에. 내 입장에서는 네가 연방에 넘어가는 게 더 골칫거리야. 널 죽여도 대답할 입은 하나 더 남았고 말이지.”

“신들의 이름을 걸고 맹세드리지요.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라일라가 입을 다물었다.

신을 거론한 순간 그 다음 말은 뱃사에게 목숨보다 무거운 것이 된다.

라일라는 슬그머니 액체를 돌아보았다.

멀리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액체가 솟구친 순간부터였다.

피부가 저릿저릿할 정도의 엄청난 엔트로피 파동.


‘노동자들이 봐선 안 돼. 군터에게 넘어가면 더더욱 안 되고.’


시간으로 따지면 겨우 3초 남짓.

라일라가 고민을 한 건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

동시에 바스다에 대한 경계가 미세하게 느슨해진 시간이기도 했다.

다음 일어난 일에 라일라가 즉각 대응 못한 것도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다므 주교님.”


바스다가 그라몬손을 돌아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부터 당신을 대주교로 임명합니다.”


‘?!’


라일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가운데 바스다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신들의 유산을 갖고 우리 종족에게 돌아가십시오.”


그라몬손이 입을 앙다물었다.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훙!!!


순간 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라일라는 재빨리 바스다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반대쪽 손은 검을 그 목에 바짝 갖다 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라몬손은 이번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바스다와 라일라를 향해 돌진해올 뿐이었다.

라일라는 바스다의 목을 긋는 대신 그라몬손을 상대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려고 했다.


-우득.


라일라의 손목을 움켜쥔 바스다가 고함을 내지르며 엔트로피를 끌어올렸다.

라일라의 대응은 신속하고도 정확했다.

칼손잡이로 그 관자놀이를 가격하며 손목을 놓게 했던 것이다.

관자놀이 뼈가 단숨에 으스러질 정도의 강한 일격이었다.

그러는 사이 그라몬손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공격.

수비.

회피.

라일라는 가능한 경우의 수 중 최선의 수를 골라내어 최적의 자세를 취했다.

문제는 이어지는 그라몬손의 공격이 너무나 의외의 곳으로 향했다는 것이었다.


-푸욱.


라일라는 놀란 눈으로 바스다의 등을 뚫고 나온 그라몬손의 손을 바라보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바스다와 그라몬손이 발음했다.


“신의 이름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깨달은 라일라가 재빨리 검을 내려그었다.

그라몬손은 팔째로 바스다의 몸을 들어올려 그것을 막아냈다.


-쯔걱.


몸이 두 동강 나기 직전의 상황에도 바스다는 여전히 숨이 붙어있었다.

그는 자신의 엔트로피를 바스다에게 넘기기 시작했다.

모조리.


-우우우웅!!!


막 다시 검을 바로잡던 라일라가 갑자기 검을 떨어트렸다.

어느새 손목이 진한 보랏빛으로 물들어있었다.


-꾸드드득!


"큭!"


독 기운은 팔을 타고 올라오며 순식간에 어깨 부근까지 도달했다.


“없애!”


라일라가 호율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어쨌든 엔트로피를 뿜어내는 물체.

뱃사의 독마저 무로 돌릴 수 있는 호율의 기질이라면 파괴가 가능하리란 계산에서였다.

라일라의 오산은 호율이 라일라의 말뜻을 정확히 이해 못했다는 것.

그리고 바스다의 엔트로피를 흡수한 그라몬손의 신체 능력 향상 폭이었다.


-훙!


그라몬손의 신형이 일순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릇에 도달했다.


-촤악!


그라몬손은 팔을 뻗어 붉은 액체에 깊이 담갔다.

곧바로 붉은 액체가 솟구침을 멈췄다.

이어 액체는 그라몬손의 손을 따라 그 몸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라몬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끄,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뱃사는 자신들의 신앙에 반하는 모든 존재들을 증오했다.

그들에게 고통을 선사하는 것이 신들의 뜻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어떻게 하면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는가.

그것을 알려면 먼저 고통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살이 저며지고, 뼈를 갉아내고, 근육을 끊어내고, 내장이 뒤틀리는,

그 모든 고통을 하나하나 몸으로 익혔다.

하지만 지금 그라몬손이 느끼는 고통은 차원이 달랐다.


-까드득! 까드드득!

-까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끄으으으으윽...!”


조립(組立)이었다.

피부, 근육, 뼈, 내장 정도가 아니다.

그야말로 세포 하나하나가.

모든 세포들이 새롭게 조립되고 있었다.

보다 더 정교한 형태로.

보다 더 강인한 형태로.


‘젠장, 저건 또 뭐야?’


걸음을 멈춘 호율은 재빨리 다시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저 액체가 뭐고 또 그라몬손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한가지만은 분명했다.

그라몬손을 죽여야 한다는 것.


“손 이리 주세요!”


라일라는 힘겹게 오른손을 들어올려 호율에게 내밀었다.

독 기운은 이미 그녀의 오른쪽 가슴팍을 먹어들어가는 중이었다.


-꾸드드드드드득!


라일라의 손목을 움켜쥔 호율은 독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벌써 세번째.

이제는 꽤 익숙해져 있었다.

라일라의 몸에서 빠르게 사라져 가는 독 기운을 보곤 호율은 다시 그라몬손 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러기 힘들었다.


-콰아아아아아!!!


신전 안에 휘몰아치기 시작한 엔트로피의 폭풍 때문이었다.

독 기운이 모두 사라진 것을 느낀 라일라는 재빨리 호율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한쪽 기둥 뒤로 몸을 날렸다.


“괜찮아요?”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도 용케 챙겼는지 손에는 다시 장검이 들려 있었다.

라일라는 한켠에 누워있는 바스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몰랐다. 설마 자살까지 하며 저것을 얻으려 할 줄은.

하지만 바스다가 그랬다는 사실이야말로 저 액체가 어떤 가치를 지닌 물건인지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바스다가 넘겨준 엔트로피에 저 액체까지 흡수하면 그야말로 괴물로 거듭나겠지. 어떡해야 할까.’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불가능하다. 아까처럼 호율이 엔트로피를 넘겨줘도 절대로 불가능하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이기는 게 아니라 버텨내는 것.

1초라도 시간을 벌어 노동자들이 탈출할 시간을 버는 것이다.

군터가 이 소혹성 째로 저 괴물을 날려버릴 때까지.

혹시라도 저 괴물이 살아나가면, 인류와 전쟁을 벌이게 되면 저 괴물이 가장 큰 위협이 될 테니까.


“리.”

“네.”

“넌 이제 가.”

“네?”

“빠져나가라고. 그리고 기왕이면 입대해 봐.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싫은데요.”

“이게 진짜. 최소한 생각은 해봐.”

“그게 아니라 빠져나가기 싫다고요.”


호율은 고개를 내밀어 그라몬손을 바라보았다.

그라몬손은 여전히 몸을 잔뜩 뒤틀며 비명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호율은 다시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이 좁아터진 소행성에서 도망쳐봤자죠. 차라리 여기서 끝장내는 게 살 확률이 1퍼센트라도 올라가지.”

“곧 군터가 들이닥칠 거야. 저 괴물을 보고서도 우리 노동자들을 공격할 생각은 못해.”

“저 괴물이 군터도 전멸시키면요?”

“그건.”

“됐고, 이렇게 된 거 한번 해보자고요.”


호율이 길게 숨을 들이켰다.


“죽기는 죽기보다 싫거든요.”

“킥킥, 진짜 어지간히 죽기 싫은가 보네?”


라일라가 씩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 임무 끝나면 나 따라오는 거 한번 생각해 봐.”

“군인이요. 싫다니까요.”

“꼭 군인이 아니어도 상관없어. 함께 걸어가자는 거야.”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는데요. 고백하는 줄 알고.”

“비슷한데?”

“네?”


호율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라일라가 말을 이었다.


“나쁘지 않거든. 능력 있는 남자. 특히 그 능력으로 날 빛나게 해 줄 남자라면 더더욱.”

“...그건 그냥 이용해 먹기 좋은 남자 아닌가요.”

“그게 나빠? 너도 날 이용해. 한번 사는 인생 기왕이면 화려하게 살아봐야지. 남들은 쳐다도 못 볼 정도로 눈부시게.”


호율이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라일라가 미간을 좁혔다.


“비웃냐? 죽을래?”

“아니, 그게 아니라 뭐가 좀 생각나서요.”

“이 상황에 뭐 그리 재밌는 게 떠올라서.”

“이전의 저는 말이죠.”


호율이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외롭고 어두웠어요. 장담하는데 온 우주를 통틀어서 제일 외롭고 어두웠을 걸요. 근데 눈부시게 살아보라니 좀 안 어울리는 거 같아서요.”

“뭐라는 거야? 그래서 대답은.”


호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한번 생각해 보죠 뭐. 중위님 정도 되는 분이 주는 도움은 분명 보통 도움은 아닐 테니까.”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 제대로 나누려면 일단 저것부터 처리해야겠네.”


라일라가 몸을 일으켰고 호율은 따라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막 둘이 기둥 뒤를 돌아 나온 그때였다.


-우웅...


신전 안에 휘몰아치던 엔트로피의 폭풍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멀리 그라몬손을 바라보던 둘은 동시에 눈을 치켜떴다.


‘응?’

‘젊어졌다?’


그라몬손이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라몬손이었던 누군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 젊은 뱃사는 이내 둘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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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안녕하세요 휴재공지입니다 24.06.25 9 0 -
23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7) 24.06.23 32 2 12쪽
22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6) 24.06.22 52 0 12쪽
21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5) 24.06.20 56 2 11쪽
20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4) 24.06.19 69 1 13쪽
19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3) +1 24.06.17 79 2 13쪽
18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2) 24.06.15 86 1 14쪽
17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1) 24.06.13 98 4 11쪽
» 2화. 멸망의 단서(10) 24.06.12 110 0 12쪽
15 2화. 멸망의 단서(9) 24.06.11 98 3 15쪽
14 2화. 멸망의 단서(8) +1 24.06.11 114 0 11쪽
13 2화. 멸망의 단서(7) 24.06.09 126 3 15쪽
12 2화. 멸망의 단서(6) +1 24.06.08 129 2 16쪽
11 2화. 멸망의 단서(5) 24.06.06 149 1 14쪽
10 2화. 멸망의 단서(4) 24.06.05 171 2 12쪽
9 2화. 멸망의 단서(3) +1 24.06.03 192 1 16쪽
8 2화. 멸망의 단서(2) 24.06.02 207 1 10쪽
7 2화. 멸망의 단서(1) 24.06.01 254 1 11쪽
6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5) 24.05.30 334 3 19쪽
5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4) +1 24.05.28 349 5 14쪽
4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3) 24.05.27 401 4 14쪽
3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2) +3 24.05.26 458 5 13쪽
2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1) +1 24.05.26 491 8 14쪽
1 프롤로그. 구멍이 되었다. 24.05.26 503 1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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