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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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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탄탄비
작품등록일 :
2024.05.26 22:09
최근연재일 :
2024.06.23 23:04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561
추천수 :
62
글자수 :
132,779

작성
24.06.13 23:39
조회
98
추천
4
글자
11쪽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1)

DUMMY

이어 그 입에서 서늘한 음성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성하를 살펴라. 아직 숨이 붙어 계신다면 고통없이 죽여주겠다.”

“뭐라는 거야?”


라일라가 코웃음을 쳤다.


“나야말로 저 지경이 되고도 살아있으면 고통없이 죽여줄게.”


그라몬손이 고개를 돌려 바스다를 바라보았다.

라일라의 말대로였다.

몸통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 겨우 피부 가죽 하나로 붙어있는 허리.

바스다는 그야말로 넝마주이였다.

그라몬손이 위를 올려다보곤 눈을 감았다.


“염려치 마시옵소서. 이제 뱃사는 제가 이끌겠나이다.”

“온다. 준비해.”


-훙!


라일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라몬손이 돌진해왔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빠르기.

라일라가 재빨리 검을 들어 올리며 반격을 준비했다.

그런데 정작 그라몬손이 멈춰 선 곳은 호율과 라일라의 앞이 아니었다.


“미흡하나마 모시겠습니다.”


바스다의 시체 앞이었다.


-우득.


호율과 라일라가 바라보는 가운데 그라몬손이 바스다의 몸을 정중하게 안아올리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간신히 붙어있던 바스다의 허리 아래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지만 그라몬손은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콰직!


“!”

“!”


호율과 라일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가운데 바스다의 머리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콰직! 콰직! 콰직! 콰직!


호율과 라일라는 그라몬손이 단순히 젊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너무나 크게 벌어진 턱 때문이었다.

뱃사의 신체 구조가 인간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상적인 범주를 한참 넘어서고 있었다.

덕분에 바스다의 머리가 사라지는 데에는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아아, 느껴진다. 성하와 하나가 된 것이.”


그라몬손이 몸통만 남은 바스다의 시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고통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하겠지. 틀렸다. 너희는 절대로 모른다.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를.”


그라몬손이 씩 이빨을 드러냈다.

이빨인 살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내가 알려주마. 하나도 빠짐없이.”

“너나 실컷 알아.”


-우우우웅!!!


라일라가 순식간에 검에 붉은 기운을 머금는가 싶더니 그라몬손에게 휘둘렀다.

정작 그라몬손의 대응은 그녀의 예상을 조금 벗어나 있었다.


-퍼어어어어어어어엉!!!


직격.

붉은 기운은 정확히 그라몬손에게 꽂혀 들며 거대한 불꽃을 피워올렸다.

반응하지 못한 걸까.

라일라는 눈을 가늘게 뜨곤 사그라드는 불꽃 속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 그라몬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보니 들어본 적이 있다.”


그라몬손이 비틀비틀 불길 속에서 걸어나오며 말했다.

모습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전신이 완전히 숯검정이 된 것도 모자라 기다란 베인 자국이 몸통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잠시 뿐이었다.


-우드드드드드드드득!


지글지글 익어가던 살들이 순식간에 다시 보랏빛으로 돌아왔다.

몸 한가운데에 생겨났던 상처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다.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기까지 5초 남짓.

그라몬손이 말을 이었다.


“인간 측 하급 장교 중에 대단한 인물이 있다고 했었지. 그게 네 년이었구나.”


라일라는 대답 대신 호율을 돌아보았다.

호율은 그라몬손의 전신을 훑어보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회복(回復)이 아닌 수복(修復).

죽은 피부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게 그 증거였다.


“재생 능력이 생겼나 본데요.”

“나도 눈 있어. 그래서 떠오르는 공략법은.”

“어차피 둘 중 하나겠죠? 수복할 틈도 안 주거나, 수복이 못 따라가도록 대미지를 주거나.”

“둘 다 같은 거 아냐?”

“거의 그렇죠?”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엔트로피 발산해 봐.”


탕!

호율이 재빨리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

그리곤 엔트로피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효과가 있을까.

있었다.


“?”


그라몬손이 눈을 치켜뜨는가 싶더니 무릎을 휘청였다.


‘뭐냐 이건.’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일순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한 느낌.

한낱 생명체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를 마주한 듯한.


-탕!!!


바닥을 박차며 뛰어나간 라일라는 그대로 그라몬손에게 검을 내리그었다.


-쯔걱!


검은 세찬 소리와 함께 그대로 그라몬손의 목을 그으며 지나갔다.

라일라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며 몸통을 내리그었다.

이번엔 연속이었다.


-쯔걱!

-쯔걱!

-쯔걱!


그라몬손의 몸이 속절없이 흔들리다 멈춰섰다.

라일라가 뒤로 물러나며 손가락을 튕겼다.


“펑.”


-퍼어어어어어어어어엉!!!


이번에 발생한 불꽃은 아까완 달리 그라몬손의 내부를 살라 먹어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그라몬손의 몸 곳곳이 터져나가며 그곳으로 녹아내린 내장들이 흘러내렸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바라보던 라일라가 저도 모르게 쯧 소리를 냈다.


-뿌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언제 그랬냐는 듯 그라몬손의 육체가 순식간에 다시 복구됐다.

그라몬손이 몸을 바로 세웠다.


“마음이 바뀌었다. 거기 인간 남자 놈은 모성으로 데려가겠다.”


호율은 다시 엔트로피를 발산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막 호율의 기운이 그라몬손에게 닿으려던 그 순간,


-파앙!!!


‘두 번은 안 먹히나. 하긴, 중위도 두 번째부터는 버텨냈지.’


파열음과 함께 호율의 엔트로피가 거꾸로 튕겨 나왔다.

그라몬손이 천천히 호율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라일라는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몸을 날린 그녀는 다시 그라몬손을 향해 돌진했다.

그런데 막 두 걸음째를 내디디려던 라일라가 갑자기 검을 들어올렸다.


-쩌어어어어엉!!!


멀리 튕겨 나간 라일라의 몸이 바닥을 따라 죽 미끄러졌다.

얼굴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뭐야 저건 또.’


“이런 것도 할 수 있게 됐군.”


그라몬손이 자신의 손을, 손바닥에서 돋아난 촉수를 바라보았다.


“아름답지 않느냐. 신들의 유산은 참으로 경이롭구나.”


라일라가 대답 대신 몸을 바로 세웠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속으론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촉수가 나와서만은 아니었다.

문제는 강도(剛度)였다.

분명 검에 엔트로피를 머금고 있었음에도 촉수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이쪽의 검이 이가 나가 버렸다.

수많은 전장을 다녀보고 수백 번의 전투를 치러봤지만 처음이었다.

검의 이가 나간 것은.


“너, 계속 놀고만 있을 거야?”

“나름 분석 중이거든요? 아마 물질 구현도 가능한가 본데요.”


호율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라몬손의 손으로부터 돋아나 있는 촉수, 그 색깔이 낯이 익어서였다.


“저거 엘렉사르예요.”

“그게 뭔데.”

“우주에서 제일 단단한 금속이요. 저런 게 가능할 줄이야.”


호율이 몸을 바로 세웠다.


“촉수는 무시하세요. 어차피 안 부서질 테니까.”

“무시한다고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문제지.”

“제가 없앨게요.”

“뭐?”

“저건 부수는 게 아니라 분해를 해야 되거든요.”


라일라가 무어라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호율은 계속 보여주고 또 증명했다.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존재임을.


“그럼 촉수는 네가 맡아. 난 몸통을 토막내고 있을 테니까.”


라일라가 길게 숨을 들이켰다.

멀리서 바라보던 그라몬손이 반대쪽 손을 들어올렸다.


-촤아아아아악!


튀어나온 새로운 촉수가 이리저리 몸을 틀기 시작했다.

라일라의 표정이 더욱 굳는 가운데 그라몬손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뭘 하려는지 알겠군.’


분명 처음 접해보는 기괴한 기질이었지만 한번 접촉해 봄으로써 대강은 파악했다.

아마도 상대의 엔트로피를 일시적으로 흐트러트리는 기질이리라.

접촉하자마자 의식이 날아갈 뻔했다. 그런데 정작 주변 사물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즉, 저 기질은 오로지 엔트로피에만, 그것을 사용하는 각성자에게만 통한다는 뜻.

하지만 마찬가지로 엔트로피인 만큼 아까처럼 튕겨내는 것도 가능했다.

게다가 무생물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으니 그걸 이용하면 그뿐이었다.


-뿌드드드득.


이리저리 몸을 꼬는 촉수들을 보며 그라몬손은 다시 한번 유산이 가진 권능에 감탄했다.

액체가 그라몬손에게 불러일으킨 변화는 단순히 육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두뇌 쪽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엘렉사르라는 광물인가.'


시시각각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대량의 정보가, 지식들이.

이 우주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아마 촉수를 통해 직접 내게 기질을 흘려 넣으려는 거겠지. 하지만 소용없다.’


촉수는 완전히 엘렉사르로 뒤덮여 있다.

즉, 호율의 자질은 통하지 않는다.

라일라의 공격 역시 마찬가지고.

남은 건 라일라를 정리하고 호율을 모성으로 데려가 해부하는 것 뿐.


“시작하지.”


-촤아아아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개의 촉수가 몸을 틀며 호율과 라일라를 향해 날아들었다.

호율은 재빨리 세계를 멈춰세웠다.


-키 이 이 이 이 이 잉 !


느릿느릿 흘러가는 세계 속 호율은 날아오는 촉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후 우 우 우 우 우 웅 !


호율의 손이 닿기 직전 촉수는 방향을 틀며 멀어져갔다.


‘하기사 채찍 비슷한 거니까 빠르겠지.’


-후 우 우 우 우 우 웅 !


다시 날아드는 촉수를 보며 호율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아까 안톤과 싸울 때도 경험했지만 이 능력은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다.


-꽈아아앙!!!


호율은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냈지만 바닥은 아니었었다.

촉수에 맞은 곳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금이 가 있었다.

라일라가 미간을 좁혔다.


‘내 검격에 흠집도 안 나던 재질이.’


라일라는 재빨리 자세를 낮췄다.

그리곤 날아오는 촉수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어지러이 울려퍼지는 금속음 속 라일라의 시선은 호율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꽝!!!

-꽝!!!

-꽝!!!


촉수가 연신 호율을 노렸지만 호율은 그럴 때마다 종이 한장 차이로 그것들을 피해내는 중이었다.

그라몬손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군터들이 오기 전에 끝내는 게 좋겠지.’


그라몬손을 일부러 촉수의 속도를 슬쩍 늦췄다.


-우득!


기다렸다는 듯 호율의 손이 촉수를 움켜쥐었다.

그라몬손이 슬며시 이빨을 드러냈다.


‘걸렸다.’


-촤아아아악!


촉수는 순식간에 호율을 완전히 휘감아 버렸다.


'젠장!'


-캉!


힘껏 촉수를 쳐낸 라일라가 호율을 향해 돌진하려다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자식아.”


호율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말.

그리고 이어 벌어지기 시작한 일들 때문이었다.


“행성도 갈아 마셔본 놈이야아아아!!!”


-콰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작!!!


‘!!!!!!!!!’


그라몬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절대 부서질 리 없는 그의 촉수가 산산조각으로 깨져나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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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7) 24.06.23 32 2 12쪽
22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6) 24.06.22 52 0 12쪽
21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5) 24.06.20 56 2 11쪽
20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4) 24.06.19 69 1 13쪽
19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3) +1 24.06.17 79 2 13쪽
18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2) 24.06.15 86 1 14쪽
»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1) 24.06.13 99 4 11쪽
16 2화. 멸망의 단서(10) 24.06.12 110 0 12쪽
15 2화. 멸망의 단서(9) 24.06.11 98 3 15쪽
14 2화. 멸망의 단서(8) +1 24.06.11 114 0 11쪽
13 2화. 멸망의 단서(7) 24.06.09 126 3 15쪽
12 2화. 멸망의 단서(6) +1 24.06.08 130 2 16쪽
11 2화. 멸망의 단서(5) 24.06.06 149 1 14쪽
10 2화. 멸망의 단서(4) 24.06.05 171 2 12쪽
9 2화. 멸망의 단서(3) +1 24.06.03 193 1 16쪽
8 2화. 멸망의 단서(2) 24.06.02 207 1 10쪽
7 2화. 멸망의 단서(1) 24.06.01 254 1 11쪽
6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5) 24.05.30 335 3 19쪽
5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4) +1 24.05.28 349 5 14쪽
4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3) 24.05.27 401 4 14쪽
3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2) +3 24.05.26 458 5 13쪽
2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1) +1 24.05.26 491 8 14쪽
1 프롤로그. 구멍이 되었다. 24.05.26 503 1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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