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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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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비
작품등록일 :
2024.05.26 22:09
최근연재일 :
2024.06.23 23:04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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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글자수 :
132,779

작성
24.06.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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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4)

DUMMY

“일단은 라일라 중위의 진급입니다.”

“아아, 그거야 걱정할 거 없네. 원래 임무 도중 순직한 군인들은 2계급 특진이니까.”

“아뇨, 4계급 특진을 바랍니다.”

“4계급이라.”


헤세르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렇게 하지. 다음.”

“당분간 이곳 kl-99에 병력을 주둔시켜 주십시오.”

“규모는.”

“라일라 중위 부대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 부대를 그런 외곽에 머무르게 하긴 너무 아까운데. 좋아, 마지막. 세 가지 이상은 나도 거절일세.”


호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노동자들 전원의 정규 시민등록입니다.”

“흠.”


이번엔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 헤세르가 빙긋 미소를 머금었다.


“중위의 눈이 틀리지 않았군. 나로서는 그 조건이 가장 뼈 아프구만.”


헤세르가 호율의 속셈을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정규 시민이 희생되는 순간 바로 전쟁이 시작된다.

다른 종족들끼리가 아닌 인류와 다른 종족 사이에.

즉, 두 번 다시 퀴클롭스를 이용해 이런 수작을 벌이게 놔두지 않겠다는 뜻.

하지만 헤세르의 얼굴에는 왠지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럼 이제 내 조건을 말해도 되겠나?”

“조건을 제시하실 입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제안이라고 해 두지. 걱정 말게. 자네는 받기만 하는 입장이 될 테니까.”


헤세르가 말을 이었다.


“외교 특사 직위는 계속 유지하겠네. 동시에 장교로 정식 등록하지. 이게 내가 자네에게 하는 제안일세.”

“알겠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지금 자신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

바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라몬손은 반드시 인류를 침공해 올 것이다. 바스다의 복수를 해야 하니까.

그때가 언제가 될진 알 수 없지만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동시에 그라몬손을 마주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 있어야 했다.

헤세르가 말을 이었다.


“이래저래 수고했구만. 마지막으로 중위의 명복을 비네. 이건 진심이야.”


삑,

통신이 종료되기 무섭게 호율은 몸을 돌려 안톤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


설명을 듣고 난 노동자들 사이엔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정말입니까?”

“우리가 정규 시민이 된다고요?”

“맙소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노동자들은 기쁨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평균적으로 채굴 광산에서 일을 해서 시민증을 구입하려면 20년 정도가 걸린다.

그에 비하면 호율이 내건 조건 정도는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럼 앞으로 2년 동안만 이곳에서 일을 하면 되는 거군요.”

“2년이 지나면 어느 행성으로 떠나든 상관 없고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모쪼록 용서해주십시오.”


호율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노동자들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이 알 리 없었다.

그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윽고 노동자들이 흩어지자 안톤이 다가왔다.


“저희를 주둔시킨 건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만약 군터가 이곳을 노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군터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보다 아래 신전의 존재가 다른 노동자들에게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뱃사가 노리면요.”

“뱃사도 포함입니다. 어차피 둘 다 같은 일이 될 겁니다.”


안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율이 안톤을 돌아보았다.


“제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착각하지 마십쇼. 중위님을 믿는 겁니다. 중위님이 그쪽을 믿었으니까.”


안톤이 멀리 휴식을 취하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포함 저희 부대 인원들 중 중위님이 목숨을 구해주지 않은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당연히 중위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 중위님이 그쪽을 믿었으니 저희도 믿을 수밖에요.”


호율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아까 안톤이 왜 그리 화를 냈고 또 집요하게 덤벼들었는가.

그리고 라일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리자마자 살기를 피워올리던 부대원들의 모습도.

호율이 몸을 일으켰다.


“다녀오겠습니다.”

“몸 조십하십시오.”


호율은 안톤을 뒤로한 채 광산을 가로질러가기 시작했다.


******


전함 내 분위기는 살벌했다.

대전함만 무려 여덟 척.

이 많은 병력을 워프시켰는데도 결국 뱃사의 대주교는 잡지 못했다.

실패 정도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대실패.

특히 황자의 복수가 걸려 있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했다.


“사실이었군. 우리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인간이 있다더니.”


한쪽 팔과 다리를 의수로 교체한 군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호율은 순간 많은 것을 깨달았다.

먼저 오르드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

아마 자신들의 언어를 아는 인간과 접촉했다더라 정도로 퍼져나가 있으리라.

다른 하나는 이곳에 뱃사의 대주교가 있다는 정보의 출처를 모른다는 것.


‘오르드에게 바로 전달된 건가. 오르드는 황제에게 알린 거고.’


즉, 이들은 아직 이 모든 일들이 호율이 벌인 일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총사령관 파르드다. 얘기해 봐라 인간.”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무엇을 원하십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 뱃사의 대주교를 원한다.”

“죄송하지만 대주교는 몸을 피했습니다.”

“첩보에 의하면 너희의 점유지로 들어갔다.”

“주교 둘이 투항해 오긴 했습니다. 그라몬손 다므와 바스다 레비였습니다.”

“도망친 쪽은.”


대주교가 누군지 묻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호율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그라몬손 다므입니다.”

“!”

“!”

“!”

“!”

“!”

“!”

“!”


군터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정보.

이 정보 하나만으로도 뱃사를 노리는 다른 종족들에게 수많은 것들을 요구할 수 있다.

파르드는 모른 척 물었다.


“그라몬손 다므가 대주교란 뜻인가.”

“바스다가 죽기 직전 그라몬손에게 대주교직을 넘겼습니다. 자신의 엔트로피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나 보군.”

“그렇습니다.”

“자결인가.”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전우가 바스다를 처치했습니다.”


-웅성, 웅성, 웅성.


군터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전우들이 아닌 전우라고 했다.

그건 곧 단신으로 뱃사의 대주교를 처치했다는 뜻.

군터들은 전쟁을 숭배했다.

당연히 강함도 숭배했다.


“그자는 지금 소혹성에서 대기 중인가.”

“아닙니다.”

“그럼.”

“죽었습니다. 전투 중에.”

“바스다 레비가 본래 대주교였고, 죽으면서 그라몬손 다므에게 대주교직을 넘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네의 전우가 사망했다. 내가 이해한 게 맞나.”

“그렇습니다.”

“뱃사의 대주교를 단신으로 처치한 그 인간에게 예를 표한다. 단, 결과적으로 뱃사의 대주교를 살려 보낸 것도 사실이군.”

“그렇습니다.”

“때문에 우리로선 자네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가 없는 셈이다. 지금 당장 저 소혹성을 침공해도 너희가 할 말은 없다는 뜻이다.”

“압니다. 그래서 이 대화를 요청드린 겁니다.”

“이끌고 온 병력을 봤으니 알았을 텐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방금 다음 대주교가 누군지 알려드렸습니다. 충분히 가치있는 정보 아닙니까.”

“물론, 그라몬손 다므가 또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대주교직을 물려주지 않는다면.”

“...대주교가 교체되면 이 정보도 가치가 없어진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 네 말대로면 대주교직은 생전에 물려주는게 가능하다는 뜻이니까.”


호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어떻습니까. 대주교를 식별할 수 있는 방법.”


파르드가 미간을 좁혔다.


“거절한다. 네가 거짓말을 한다 한들 우리로선 진위를 가려낼 방법이 없다.”

“증거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증인이.”

“같은 인간이 내세우는 증인이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하나.”

“인간이 아닙니다. 오르드님입니다.”

“오르드님이라니.”

“오르드님이 어떤 과정으로 중독이 됐었는지 알아보십시오. 적과 접촉한 순간 중독이 된 거라면 제가 가진 정보는 의미가 있습니다.”


파르드가 손을 들어올려 뒤에 서 있던 인원을 다가오게 했다.

이어 소리를 죽여 몇 마디를 나누던 그는 다시 호율을 바라보았다.


“사실이라는군. 그래서.”

“그것이 뱃사 대주교에게만 내려오는 능력입니다. 제 전우 역시 그 능력에 당했습니다.”

“마찬가지다. 우리로선 그 말 역시 믿을 수 없다.”


‘역시 쉽지 않군.’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뱃사 독의 해독법.”

“!”


파르드의 표정에 확연한 변화가 생겨났다.


“수백 년 동안 그 어떤 종족도 해독하지 못한 독이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르드님께 확인해 보십시오. 완전한 해독에는 실패했지만 그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그건 결국 실패했다는 뜻일 텐데.”

“방금 말했다시피 오르드님이 당한 독은 대주교만이 쓸 수 있는 일종의 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뱃사들이 사용하는 독은 다릅니다. 해독이 가능합니다.”


파르드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자신의 왼팔 대신 달려 있는 의수를 매만졌다.

젊은 시절 뱃사의 독에 당해 팔과 다리를 잘라냈던 기억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막상 지금 모성에서도 얼마나 많은 젊은 군터들이 그 독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가.

어찌보면 대주교의 정체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정보였다.


“요구사항을 듣기 전에 먼저 한 가지 물어도 되나.”

“대답 드릴 수 있는 질문이라면 얼마든지요.”

“그 반지.”


파르드가 호율의 왼손을 가리켰다.


“만약 그것을 앞세워 대화를 시작했다면 무슨 요구를 하든 나로선 수락했을 수밖에 없다. 너 역시 그것을 모르진 않았을 테고. 그런데도 왜 그러지 않았지.”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호율이 왼손을 들어올렸다.


“저는 제가 가진 정보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굳이 반지를 사용할 필요를 못 느낀 겁니다. 기회를 주는 물건이라면 그 기회를 굳이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5초 정도.

파르드가 이빨을 드러냈다.


“방금 전 그 말로 인해 네가 한 모든 말을 믿기로 했다. 다만, 무척 아쉽군.”

“무엇 말입니까.”

“나는 네가 처음부터 그 반지를 앞세우길 바랬다. 그랬더라면 네 요구를 들어주는 대가로 그것을 회수할 수 있었을 테니.”


파르드가 조금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 요구사항을 말해라 인간.”

“저희 인류 측 점유지를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해주십시오.”

“대주교가 없다는 게 확인됐으니 우리로선 굳이 너희 점유지를 빼앗을 이유는 없다. 다만 이유를 듣고 싶군.”

“제 전우의 휴식을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으면 해서입니다.”

“좋다. 약속하겠다. 지금 이 시간부터 너희 점유지는 오로지 너희 인류 만의 것이다. 그 어떤 군터도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계속해라.”

“그뿐입니다.”

“?”


파르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인류는 욕심 많은 종족인 줄 알았는데.”

“제 말을 오해하신 모양입니다. 저는 분명 ‘누구도’라고 요청드렸습니다만.”


파르드가 웃음을 멈추는 가운데 호율이 말을 이었다.


“어떤 종족이 노리더라도 지켜달라는 뜻이었습니다. 군터가.”

“이런 외곽에 소중한 병력을 계속 주둔시킬 수는 없다. 기한을 정해라.”

“2년은 어떻습니까.”

“2년으로 하지. 대신 조항을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야겠군.”


파르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를테면 그 누구도라는 것에 너희 인류 역시 포함되는지라거나.”


호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귀관은 인류를 지키고자 하는 게 아니군.”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류를 지킬 겁니다. 다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말해봐라.”

“이곳에선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파르드가 주변 병사들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자리를 물러라.”

“하지만 각하.”

“황자께서 직접 반지를 물려준 인간이다. 의심되는 자는 남아라. 어떻게 되는지 내가 직접 보여주겠다.”


서로를 돌아보던 군인들이 빠르게 회의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지막 인원이 문을 나서기 무섭게 파르드가 다시 입을 열어라.


“말하고 싶지 않으면 그리 해도 좋다. 단, 나로서는 너를 반드시 도울 의무가 있다는 걸 알아둬라. 네가 황자께 그 반지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반드시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했나.”


‘군터의 총사령관 정도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호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 연방 의장 헤세르 오토마이어의 암살입니다.”

“!”


잠시 정적.

파르도가 말을 이었다.


"그 다음은?"

"자리가 비면 당연히 누군가가 대신 앉아야 하는 법 아닙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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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블랙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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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7) 24.06.23 35 2 12쪽
22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6) 24.06.22 54 0 12쪽
21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5) 24.06.20 57 2 11쪽
»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4) 24.06.19 71 1 13쪽
19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3) +1 24.06.17 80 2 13쪽
18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2) 24.06.15 87 1 14쪽
17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1) 24.06.13 100 4 11쪽
16 2화. 멸망의 단서(10) 24.06.12 111 0 12쪽
15 2화. 멸망의 단서(9) 24.06.11 100 3 15쪽
14 2화. 멸망의 단서(8) +1 24.06.11 115 0 11쪽
13 2화. 멸망의 단서(7) 24.06.09 128 3 15쪽
12 2화. 멸망의 단서(6) +1 24.06.08 131 2 16쪽
11 2화. 멸망의 단서(5) 24.06.06 150 1 14쪽
10 2화. 멸망의 단서(4) 24.06.05 172 2 12쪽
9 2화. 멸망의 단서(3) +1 24.06.03 194 1 16쪽
8 2화. 멸망의 단서(2) 24.06.02 208 1 10쪽
7 2화. 멸망의 단서(1) 24.06.01 256 1 11쪽
6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5) 24.05.30 337 3 19쪽
5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4) +1 24.05.28 351 5 14쪽
4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3) 24.05.27 404 4 14쪽
3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2) +3 24.05.26 462 5 13쪽
2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1) +1 24.05.26 494 8 14쪽
1 프롤로그. 구멍이 되었다. 24.05.26 506 1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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