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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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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비
작품등록일 :
2024.05.26 22:09
최근연재일 :
2024.06.23 23:04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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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3
추천수 :
62
글자수 :
132,779

작성
24.06.05 07:39
조회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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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2화. 멸망의 단서(4)

DUMMY

라일라는 그런 헤세르를 빤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얼핏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하는 저 남자가 사실은 어떤 인물인지.

얼마나 잔혹하고 어두운 인물인지.


“리.”

“네.”

“멈춰.”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율은 탁자에서 손을 뗐다.

그러길 무섭게 군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길게 숨을 토해냈다.

라일라는 그 사이로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제 간절함이 충분히 전달 됐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크으! 아쉽구만. 나한테 꼭 필요한 친구인데 말이야.”


헤세르가 만면의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포기할 수밖에. 아, 잠깐.”


막 함께 몸을 일으키는 호율을 보며 헤세르가 말을 이었다.


“자네 앞으로 거취가 어떻게 되나.”

“무슨 말씀이신지...”

“당분간은 중위랑 함께 다닐 생각인 것 같은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거냔 말일세.”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진 딱히 생각 안 해봤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중위가 전역하거나 군을 나가게 되면 그땐 나와 함께 일해보는 걸로.”

“리는 정치 쪽에 전혀 욕심이 없어서요.”


라일라가 재빨리 끼어들며 말했다.

헤세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딱히 정치를 하라는 말은 아냐. 기왕이면 능력을 살려보는 게 어떨까 하는 거지.”

“리의 능력이라면 제가 알아서 잘 살려볼 테니 걱정 마시죠.”

“어쨌든 그럴 마음은 있다는 뜻인가? 그럼 아예 제대로 살려볼 수 있게 해야겠구만.”


또 무슨 속셈일까.

라일라가 이어지는 헤세르의 말에 살짝 눈을 치켜떴다.


“현 시간부로 리 자네를 연방의 외교 특사로 임명하지.”


‘!’


“앞으로 외교적 교섭이 이루어지는 자리에선 자네의 말은 연방을 대표하게 되며 나를 대행하게 돼. 기왕이면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줬으면 좋겠구만.”

“지금 뭐하시는 거죠.”


라일라가 잔뜩 미간을 좁혔다.


“뜬금없이 외교 특사라뇨?”

“음? 자네로선 오히려 반가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애인이 출세하는데.”

“말씀드린 대로 저희는 정치에 전혀 관심도 없고 그런 자리를 맡고 싶어 하지도 않아서요. 게다가 이런 자리에서 선심 쓰듯 한 발언이 효력을 발휘할지도 의문이고요.”

“발휘하고 말고. 여기 있는 장교들이 몇 명인가. 전부 다 증인이야.”

“리는 미등록자인데요.”

“그것도 포함해서 한 말일세. 복귀하는 대로 자네 애인에게 상급 시민 번호를 부여하지. 축하하네 중위. 자네 애인은 이제 귀족이야.”


라일라가 입을 앙다물었다.

물론 라일라로선 호율이 귀족이 된다 해도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호율을 지배 계급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자신이 우두머리로 있는 그 세계로.

그 다음 과정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의장이 이런 녀석까지 옆에 두게 만들면 안 돼.’


한편 호율은 뒤에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중이었다.


‘대박이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힘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게다가 외교 특사라니.

일단 엘리스 실버만 구하고 난 뒤 이 헤세르를 다시 찾아가면 된다.


“감!”


막 호율이 감사하다고 외치려던 그때였다.


“죄송한데 어떡하죠?”


라일라가 특유의 눈웃음을 머금는가 싶더니 슬그머니 호율의 뒤로 다가섰다.


“역시나 말씀은 감사하지만 거절해야 할 것 같네요.”

“자네한테 한 말 아니네.”

“리한테 한 말은 곧 저한테 한 말이기도 하니까요.”


-탁!


‘???’


호율은 놀란 눈으로 라일라를 돌아보았다.

라일라가 갑자기 호율을 뒤에서 감싸 안았던 것이다.


“자기.”


라일라가 호율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 지난번에 한 얘기 기억나지?”

“네, 네? 지난번에요?”

“에이, 이젠 의장님도 다 알았겠다 그렇게 딱딱하게 안 굴어도 돼.”


라일라가 호율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딱딱하게 구는 건 침대에서면 족하니까.”


‘이 여자 뭐라는 거야... 잠깐.’


정확한 사정은 몰라도 라일라가 헤세르를 싫어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때문에 지금 라일라는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호율이 헤세르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하지만 호율로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일단 알았으니까 이것 좀 놓고 얘기를...”


무어라 말을 이으려던 호율이 몸을 움찔거렸다.


-우드드드득!


‘컥!’


몸을 옥죄여오기 시작한 라일라의 팔들 때문이었다.

라일라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호율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기 안색이 왜 그래? 의장님 앞이라고 긴장 많이 했어? 얼른 들어가서 쉴까?”

“그... 어...”

“응? 그러자고?”


-우드드드드드드드드득!


‘커억!’


그야말로 강철로 된 죔쇠.

이대론 죽는다.

판단을 내린 호율은 황급히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의, 의장님한텐 실례지만 그렇게 할까 그럼?”

“보셨죠? 리가 이렇게나 욕심이 없다니까요.”


라일라가 슬그머니 한 손을 풀어주며 말했다.

하지만 나머지 손은 여전히 호율의 가슴팍을 조이는 중이었다.


‘블랙홀, 아니, 사람 살려.’


라일라가 말을 이었다.


“실은 저번에 둘이서 약속했거든요. 귀족이니, 계급이니 그런 것들에 연연하면서 살아가지 말자고. 그렇지 자기?”


호율은 엄청난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지. 완전 그랬지.”

“해서 아쉽지만 거절 드릴게요.”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헤세르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약속을 했나? 이것 참 연인끼리 한 약속이니 내가 뭐라 할 수도 없고 말이야.”


헤세르가 짝 손뼉을 쳤다.


“좋아, 그럼 일단은 한발 물러설 수밖에. 대신 둘 중 하나는 받아두라고.”

“어떤 것 말씀이시죠?”

“외교 특사 말이야. 이건 앞으로 임무 수행에도 도움이 될 거거든. 규정문제라면 걱정 말게. 내가 규정을 바꿔서라도 임명할 테니.”


헤세르가 몸을 일으켰다.

얼굴엔 웬일인지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럼 또 보자고. 임무 성공 기대하겠네 중위. 그리고 자네도.”


******


다시 함선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라일라는 호율을 브리핑실로 끌고 갔다.

가는 내내 표정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애애애애이이인?”

“저, 저기 진정하시고 이것 좀 놓고 얘기하시죠. 그리고 중위님도 같이 동참했잖아요?”


-웅.

-소대장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라일라가 고개를 돌려 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떠오른 홀로그램은 두개였다.

하나는 퉁퉁 부은 누군가의 얼굴, 하나는 둥둥 떠다니는 기암괴석들이었다.

안톤이 말을 이었다.


-일단 현재 세력도는 이렇습니다.


“군터들은?”


라일라가 호율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병력을 빼고 있고?”


-철수 중이긴 합니다만 본대는 아직 움직일 기미가 없습니다.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 전부 전투 태세 갖춰놔. 작전 시작되면 언제든 투입될 수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안톤의 홀로그램이 사라지기 무섭게 라일라는 옆의 홀로그램을 끌어당겼다.

호율은 목 주변을 어루만지며 그 옆으로 다가섰다.


‘이게 퀴클롭스구만.’


빼곡히 떠다니는 수천 개의 소혹성들.

그 소혹성들 위론 각기 색이 다른 화살표들이 떠올라 있었다.


‘군터가 회색, 뱃사는 보라색인가? 인류는 흰색일 거고.’


현재 어떤 종족이 어디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세력도였다.

유심히 바라보던 호율이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이 중 어딘가에 엘리스 실버가.’


호율이 느끼는 감정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수만 번.

그렇게나 돌려보던 영상 속 인물을 드디어 만나게 되는 셈이니까.

라일라가 쯧 혀를 찼다.


“상황이 많이 심각한데.”

“네? 뭐가요?”

“뱃사놈들이 며칠 사이에 세력을 많이 넓혀놨네. 원래는 이쪽이 군터들 영역이었는데 말이지.”


라일라가 홀로그램 한쪽을 죽 짚으며 말했다.

호율의 라일라의 말뜻을 이해했다.

회색 점들이 이루고 있는 타원의 한쪽 귀퉁이를 보라색 점들이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원래는 셋 다 비슷한 크기의 영역을 갖고 있었으리라.


“임무에 지장이 있는 건가요?”

“크게. 우리 목적지가 여기거든.”


웅,

라일라가 세 가지 색이 만나는 지점 부근을 짚었다.


“원래는 잽싸게 노동자들만 데리고 나오려고 했는데 지금은 아예 뱃사가 둘러싸 버린 형국이 되어버렸네.”

“뱃사 측에 얘기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저희 목적을 얘기하면서.”

“그랬다간 바로 노동자들을 진짜 인질로 잡아버리겠지. 그 다음 그들을 빌미로 우리한테 발을 빼라고 할 거고.”

“그럼 그때 잠깐 빼는 건 안 되나요? 어차피 병력이래 봤자 이 함선에 탄 병력들이 전부인 것 같은데.”

“의장 놈이 허락할 리가 없어.”

“왜요?”

“오히려 충돌하길 바라고 있으니까.”


라일라가 턱 부근을 만지작거렸다.


“아예 이번 일을 계기로 뱃사한테 전쟁을 선포할 계획일 껄?”

“군터들 쪽은요? 신경 안 쓰는 건가요?”

“지금 상황으론 군터들이 뱃사한테 싸움을 걸면 걸었지 우리한테 걸진 않아. 그렇게 구도가 2대 1이 되면 군터와 함께 뱃사를 쓸어버릴 생각인 거지.”

“그래서 제가 필요했던 거군요. 군터들과 거래를 하기 위해... 헉.”


호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럼 억류 중인 노동자들은요?”

“의장 놈이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평화의 반석이 되겠지.”

“죽는다는 거죠?”

“인질로서 가치도 없는데 뭐하러 살려두겠어. 놈들 성향을 봤을 때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일 걸?”


‘미치겠네 진짜.’


호율은 다시 세력도를 바라보았다.

역사가 원래대로 흘러갈 수도 있다.

라일라는 임무를 성공시키고 인질들을 무사히 데려오며 거기엔 엘리스 실버도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흘러갈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 때문에 군터가 발을 빼버린 거잖아.’


만약 호율 자신이 없었다면 어떻게 흘러갔을까.

군터들은 이 부대를 전멸시키고 윤활유를 가져갔을 것이다.

혹은 라일라 말대로 군터들을 전멸시켰을 수도 있다.

후자처럼 흘러갔을 경우 전쟁이 일어났을 확률이 높다. 그 과정에서 오르드가 죽었을 테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엘리스 실버는 어찌저찌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군인이 되고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기록을 남긴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설마 그 전쟁으로 멸망했나?’


과정은 달라졌지만 결과는 같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으로서는.


“그럼 어떡하실 건가요? 상황이 바뀌어버렸는데.”

“어떡하긴 뭘 어떡해. 강행해야지.”

“네??? 그러다 죽으면요?”

“천년만년 살 거야? 어차피 사람은 죽어.”

“그런 문제가 아니라 뭔가 대책은 있어야 하지 않냐는 거죠.”

“이 상황에 대책이고 뭐고가 어딨어? 빠지려면 빠져. 다른 녀석 데려가면 그만이니까.”


‘아잇, 못 빠지니까 내가 지금 이러지.’


고민, 고민, 고민.

호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군터가 아직 병력을 빼지 않았으니 둘을 싸우게 하는 건 어떨까요? 그 틈에 우리는 노동자들을 빼 오고.”

“어떻게?”

“오르드한테 부탁하는 거죠.”

“네가 아무리 은혜를 입혀놨어도 그런 부탁까지 들어주진 않아. 특히 오르드는 아직 황제에 오르지도 않았으니까.”

“전쟁까지는 아니어도 전투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냥 잠깐 눈만 돌리게 하는 수준으로.”

“그런 게 가능했으면 진즉 했겠지. 안 됐으니까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 거고.”

“그럼 군터 쪽에서 뱃사를 도발하게 하는 방법은요. 오르드 일 때문에 지금 군터 쪽에서도 벼르고 있을 거 아니예요.”

“뱃사들도 바보는 아냐. 지금 군터랑 싸우게 되면 우리가 치고 들어온다는 걸 모를 리가 없지. 자기네 대주교가 군터한테 암살이라도 당하면 모를까.”


‘오자마자 일이 왜 이렇게 꼬이냐.’


대주교.

뱃사인들이 믿는 종교의 우두머리이자 실질적인 뱃사의 수장.

그 대주교를 건드리게 된다면 당연히 물불 안 가리고 보복을 가할 것이다.

문제는 그러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뱃사의 주교는 총 36명.

그들은 선대 대주교가 죽을 때마다 새로운 대주교를 선출한다.

철저한 비밀리에.

그리고 대주교는 죽을 때까지 정체를 숨긴다.

라일라가 말한 불가능하다는 뜻은 바로 그런 뜻이었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호율이 다시 라일라를 돌아보았다.


“혹시 뱃사 주교들 명단 있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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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블랙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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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안녕하세요 휴재공지입니다 24.06.25 9 0 -
23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7) 24.06.23 32 2 12쪽
22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6) 24.06.22 52 0 12쪽
21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5) 24.06.20 56 2 11쪽
20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4) 24.06.19 69 1 13쪽
19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3) +1 24.06.17 79 2 13쪽
18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2) 24.06.15 86 1 14쪽
17 3화. 공녀는 왜 집을 나갔는가(1) 24.06.13 98 4 11쪽
16 2화. 멸망의 단서(10) 24.06.12 109 0 12쪽
15 2화. 멸망의 단서(9) 24.06.11 97 3 15쪽
14 2화. 멸망의 단서(8) +1 24.06.11 114 0 11쪽
13 2화. 멸망의 단서(7) 24.06.09 126 3 15쪽
12 2화. 멸망의 단서(6) +1 24.06.08 129 2 16쪽
11 2화. 멸망의 단서(5) 24.06.06 149 1 14쪽
» 2화. 멸망의 단서(4) 24.06.05 171 2 12쪽
9 2화. 멸망의 단서(3) +1 24.06.03 192 1 16쪽
8 2화. 멸망의 단서(2) 24.06.02 207 1 10쪽
7 2화. 멸망의 단서(1) 24.06.01 254 1 11쪽
6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5) 24.05.30 334 3 19쪽
5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4) +1 24.05.28 349 5 14쪽
4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3) 24.05.27 400 4 14쪽
3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2) +3 24.05.26 457 5 13쪽
2 1화. 블랙홀이 된다는 것 (1) +1 24.05.26 491 8 14쪽
1 프롤로그. 구멍이 되었다. 24.05.26 503 1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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