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배금산 님의 서재입니다.

귀신잡아먹고 저승정벌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배금산
작품등록일 :
2023.10.15 08:53
최근연재일 :
2023.11.29 08:00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8,191
추천수 :
108
글자수 :
188,959

작성
23.11.07 07:00
조회
137
추천
1
글자
10쪽

# 12. 돌아온 악령(2)

DUMMY

# 12. 돌아온 악령(2)


다음 날, 아침 7시가 다 된 시각.

약 한 달 전, 나필수의 신내림굿 이후 처음 맞이하는 굿으로 아침 일찍 열린 상태에서도 동네 어르신들이 많이 참석해서 수십 명의 구경꾼이 모였다.


저번 신내림굿이 여렸던 숲속의 작은 공터. 까종 음식물과 과일 등을 층층이 쌓아올린 고사상에 쌍날작두까지 등장해서 흥취를 돋우었다.


작은 천막에 각서선녀와 보살들이 들어가 의관과 복장을 맞추는데 분주했고, 구경꾼 들은 고사상 주변을 활시위처럼 빙 둘러 싸고 있었다.


아직 신들린 환자는 오지 않고 입방아를 찧는 호사꾼들의 입담만 커지고 있었다.


“이번 굿은 축귀라며?”

“몸을 차지한 게 아주 못된 악성귀신인 모양이더라고.”

“악성귀신이라고?”“어, 몸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간혹 발작하는 놈도 있잖아. 근데 이번 귀신은 아예 그 사람의 심령을 지배한다는 거야. 정신분열에다 착란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을 폭행하고 죽이려 덤벼들고, 아주 못살게 군다는 거야.”

“어유, 그거 진짜 미친놈이네. 지가 차지한 몸이 살아야 자기도 편할 텐 데 말이지.”


“들어봤어? 이거 1억 짜리 굿이래.”

“뭐? 와, 엄청 큰 굿이네. 제주가 부자인 모양이지?”

“응. 제주가 서울에서 큰 빌딩을 가진 사체업자인데 신들린 환자가 그 사람 아들이라던데.”

“축귀라는 게 얼마나 어려워. 잘못하면 무당도 큰일 날 수 있어.”

“그래서 얘긴데, 사실 이번 굿은 각시선녀가 자신이 건재하다는 걸 보이려고 마련한 거래.”

“그게 뭔 소리야?”

“사실 요즘 사람들이 대부분 각시선녀 보다는 나박수를 찾잖아. 신어머니가 신딸한테 밀리고 있는 거지. 그 때문에 자존심도 상하고 옛날 명성도 회복하고, 겸사겸사지 뭐.”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지면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을 때, 드디어 귀신들린 환자가 도착했다.

몇 사람의 건장한 청년들이 에워싼 귀신들린 환자는 얼굴을 온통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어 용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수행원들이 다 반팔인데 혼자만 긴팔을 입고 있고, 손에는 검은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뭐지? 얼굴은 왜 가린 거야.”

“그건 햇빛을 받으면 피부가 곪아서 고름이 생기고 눈이 멀기도 한다는 거야. 선글라스는 그래서 쓴 거 같은 데.”

어디나 아는 척하는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오늘따라 유별난 건 미리 정보를 흘린 것 같다. 그만큼 각시선녀에게 오늘 축귀 굿은 절박하다는 뜻일까.


남대기는 그런 생각으로 무료한 시간을 때우고 있었지만, 나필수는 자기가 직접 굿을 하는 것처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신이 났다.


그러는 새, 화려한 무당옷을 걸친 각시선녀가 보살들을 시녀처럼 거느리고 앞으로 나왔다. 구경꾼들의 눈이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에 집중된 건 당연했다.


장한들이 호위무사처럼 귀신들린 환자의 주위를 막아선 덕분에 정작 환자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없어.’

굿을 의뢰한 털복숭이 남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별 상관은 없다. 이미 돈은 선불로 받았으니까.


그녀의 눈이 이번엔 재비 악사들의 옆에 앉아 졸고 있는 남대기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굿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태도다. 하기야, 남대기는 굿 보다는 점사를 주로 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섭섭하긴 하다.


눈을 거의 감다시피 해서 그녀의 찌르는 듯한 눈길을 못 느꼈다면 그건 아니지.

남대기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귀신들린 환자를 슬쩍 슬쩍 살피고 있었다.


아무리 붕대로 얼굴을 칭칭 동여매다시피 해봤자 보통 사람 눈이나 피하지 내 눈을 피할 수 있나.


남자의 눈과 얼굴윤곽을 더듬던 남대기의 눈이 예리해졌다.

바로 그 새끼야!

저 악령이 뭣 때문에 하필 각서신녀에게 축귀굿을 받는 건지는 두고 보면 알 거야.


‘새끼가 졸고 있어.’

남대기만 붕대환자를 살피는 게 아니다. 가운데 악사들을 사이에 두고 붕대는 눈을 반쯤 가린 붕대 사이로 남대기를 살피는 걸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따다당, 끼잉.

장구와 꽹과리가 어울려 귀전을 에이는 불협화음을 냈다. 각시선녀가 한눈을 파는 걸 보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거다. 이제 굿을 시작해야 할 때다.


각시선녀가 악사들을 보고 살짝 고개를 까딱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각시선녀가 고사상 앞에서 손을 싹싹 비비는 걸 시작으로 굿은 시작되었다.


“원수 백천만 귀신은 욕사지귀(欲死之鬼)야아~ 불욕사지귀야아~ 욕사지귀는 당아(當我)하고 불욕사지귀는 피아(避我)하야...”


축귀경을 노래하는 각시선녀의 목소리는 맑고 청아했다. 거기에 따라오는 신명나는 반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허공으로 붕 띄우기에 족했다.


쨍그라쨍 쨍, 다다당.

시끄럽게 고막을 울리는 꽹과리와 징소리의 옥타브가 올라가고 숲이 흔들리는 시야속에 부채와 방울을 들고 춤추는 각시선녀의 동작이 격렬해졌다.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는 맑은 쇳소리가 높아지고 각시선녀가 부채를 칼로 바꾸면서 좌중의 공기는 금방 터질 것처럼 압축되었다.


으아, 으아아.

보살들이 합창처럼 비명소리를 지른 직후, 각시선녀가 칼로 수탉의 목을 잘라 피가 허공에 흩뿌렸다. 마침 세찬 바람이 불면서 핏방울을 흩날렸다.


후두둑. 으아앗!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람에 날리는 핏방울을 피해 분분히 뒤로, 옆으로 물러서고, 돌발사태가 발생한 것은 그때였다.


동행인들 속에 묻혀 보이지 않던 신들린 환자가 흐으, 흐으흐...기묘한 신음을 흘리면서 비슬비슬 걸어 나온 것이다. 꼭 좀비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생경하고 기이한 느낌이었다.


환자가 움직이면서 사람들의 이목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그가 고사상 앞으로 다가갈 때, 각시선녀는 쌍 작두 앞에 서서 주문을 외우며 어지럽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젠 각시선녀가 쌍 작두를 타고 오르면 굿은 절정에 오를 것이다.


그녀가 껑충 뛰어 쌍 작두에 올랐을 때, 크아아, 괴이한 소리를 지르며 붕대가 각시선녀를 덮쳤다.

각시선녀가 쌍 작두날에 양발을 크게 베이면서 떨어질 때, 놈은 어느새 각시선녀가 든 칼을 빼앗아 들고 있었다.


“아앗!” “저, 저런, 빨리 칼을 빼앗아!”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귓구멍을 째는 것 같았다. 순간, 사람들은 눈을 부릅떴다.

쓰러진 각시선녀의 가녀린 목에 시퍼런 칼날이 베고 지나간 것이었다. 마치 환상처럼 선명한 핏물이 허공으로 왈칵 치솟았다.


으아악. 안 돼!

사람들의 악다구니가 합창처럼 퍼질 때, 사람들은 깨달았다. 핏물 대신 반쯤 쪼개진 칼날이 치솟았다는 걸.


사람들의 눈이 허공에서 아래로 내려왔을 때, 용두파파가 가장 먼저 각시선녀에게 달려가고, 환자의 수행원들이 만화경을 든 남대기를 막아선 것이 보였다. 남대기의 손에는 찢어진 붕대의 한 자락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발 앞에는 깨진 선글라스 안경알이 떨어져 있었다.


“씨벌, 비켜! 비키라고!”

까악!

얼굴 붕대가 일부 찢어진 환자가 단검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위협하면서 달려나갔다.


따다당!

지옥만화경이 불을 토했다. 각자 나이프와 쇠파이프, 망치 등을 든 5명이 손아귀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물러나거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남대기가 놈들을 무시하고 환자의 종적을 찾을 때,

“헤헹, 박수 놈이 한 수 있었다 이거지?”

바닥에서 뒹굴던 놈들이 다시 남대기의 발을 막아서면서 포위했다.

“씨발, 어디가? 네가 갈 길은 저승길이야.”

그 중 눈 밑에 긴 칼자국이 있는 놈이 큰소리로 이죽거리자 놈들이 소리 높여 웃어댔다.

“비켜! 날 막는 놈은 전부 병신 만들어 준다.”

“새끼, 병신은 너야!”

한 놈이 소리치자 놈들이 일제히 남대기의 사방에서 흉기를 내질렀다.

전문적으로 칼 다루는 법을 익힌 건지 놈들의 베고, 찌르고, 휘두르는 수법은 무척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의 치명적인 곳을 노렸다. 하지만 수없는 귀신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온 남대기에게는 하루살이 같은 놈들일 뿐이다.


따다당.

여러 개의 흉기가 만화경과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좀 전과 결과는 같았다. 아니, 이번엔 남대기가 놈들을 응징했다. 잔인하게. 다신 덤비지 못하도록.

크아악! 으악, 살려 줘.

“새끼들, 죽이지는 않고 병신 만들어 준다니까.”

도망치는 놈들을 족족 잡아서 팔을 부러뜨리고 다리를 부러뜨렸다. 척추나 갈비뼈는 양념이었고.

끄으으...

놈들이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대며 몸만 꿈틀거릴 뿐 입도 뻥긋 못했다.


남대기가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사람들의 경악한 눈초리가 조금 마음이 걸렸지만 그 뿐. 그 정도는 무시하면 그만이고.

아니?

남대기의 핏발 선 눈이 멀리 각시선녀신당으로 향했다.


- 신당이 불타! 어유, 저걸 어떻게 해.

허공 높이 둥둥 뜬 나필수가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타다닥!


남대기는 뛰었다. 틀림없다. 악령이 불 지른 거다.

후욱, 훅.

폐가 타버릴 것 같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전력을 다해 달려본 적이 있었을까. 벌린 입에서 화염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놈은 자취도 보이지 않고 뼈대만 남은 신당이 앙상하게 서있었다.

- 으아, 다 타버렸어.

나필수가 탄식했다. 나필수에게는 태어난 직후부터 28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으니까. 그런데 난 왜 이래. 눈물이 하염없이 나오네.


참, 진짜 남김없이 타버렸다. 잿더미가 바람에 날려 불티가 타닥거리며 남대기의 눈으로 뛰어들었다. 막 눈을 비비던 남대기가 눈을 크게 떴다. 등신불처럼 바짝 쪼그라든 각시선녀족자가 둘둘 말린 채 잿더미 속에 파묻혀 있었다.


남대기가 얼른 위에 쌓인 재를 쓸어버리고 선녀족자를 들어올렸다.

어...뭐야? 이건 죽은 닭이잖아.

족자 밑에 온통 피를 빨린 것처럼 허옇게 탈색한 닭 몇 마리가 한 데 뭉쳐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귀신잡아먹고 저승정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변경 공지 23.10.23 196 0 -
43 # 18. 지옥경의 비밀(2) 23.11.29 36 0 11쪽
42 # 18. 지옥경의 비밀(1) 23.11.28 35 0 9쪽
41 # 17. 함정(4) 23.11.27 39 0 10쪽
40 # 17. 함정(3) 23.11.24 61 0 11쪽
39 # 17. 함정(2) +1 23.11.23 53 0 12쪽
38 # 17. 함정(1) 23.11.22 59 0 9쪽
37 # 16. 악령을 달고 사는 여자(3) 23.11.21 61 0 11쪽
36 # 16. 악령을 달고 사는 여자(2) 23.11.20 75 1 13쪽
35 # 16. 악령을 달고 사는 여자(1) 23.11.17 84 0 12쪽
34 # 15. 흉사는 꼬리를 물고(3) 23.11.16 89 1 8쪽
33 # 15. 흉사는 꼬리를 물고(2) 23.11.15 101 1 9쪽
32 # 15. 흉사는 꼬리를 물고(1) 23.11.14 99 0 9쪽
31 # 14. 시작에 불과해(2) 23.11.13 99 0 9쪽
30 # 14. 시작에 불과해(1) 23.11.10 117 0 10쪽
29 # 13. 단서(2) 23.11.09 116 0 10쪽
28 # 13. 단서(1) 23.11.08 121 1 10쪽
» # 12. 돌아온 악령(2) 23.11.07 138 1 10쪽
26 # 12. 돌아온 악령(1) 23.11.06 156 1 10쪽
25 # 11. 악령(2) 23.11.03 165 1 10쪽
24 # 11. 악령(1) 23.11.02 165 2 9쪽
23 # 10. 잡귀 소굴(2) 23.11.01 183 2 9쪽
22 # 10. 잡귀 소굴(1) 23.10.31 189 2 10쪽
21 # 9. 네트워크(2) 23.10.30 196 2 9쪽
20 # 9. 네트워크(1) 23.10.29 207 2 9쪽
19 # 8. 까불다 다쳐(2) 23.10.28 203 1 9쪽
18 # 8. 까불다 다쳐(1) 23.10.27 208 2 9쪽
17 # 7. 일타 쌍피(3) 23.10.26 213 3 9쪽
16 # 7. 일타 쌍피(2) 23.10.26 202 4 8쪽
15 # 7. 일타 쌍피(1) 23.10.25 217 3 9쪽
14 # 6. 도피자금이야(2) 23.10.24 227 5 9쪽
13 # 6. 도피자금이야(1) 23.10.23 244 6 9쪽
12 # 5.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2) 23.10.22 256 5 8쪽
11 # 5.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1) 23.10.21 270 7 9쪽
10 # 4. 귀신 놀음(2) 23.10.21 277 2 8쪽
9 # 4. 귀신 놀음(1) 23.10.20 275 4 10쪽
8 # 3. 귀신사냥(3) 23.10.19 284 4 11쪽
7 # 3. 귀신사냥(2) 23.10.18 290 4 11쪽
6 # 3. 귀신사냥(1) 23.10.17 303 7 10쪽
5 # 2. 과거가 증발했어(2) 23.10.16 331 7 10쪽
4 # 2. 과거가 증발했어(1) 23.10.16 351 6 11쪽
3 # 1. 첫 손님(2) 23.10.15 377 6 11쪽
2 # 1. 첫 손님(1) 23.10.15 450 7 12쪽
1 # 프롤로그 +2 23.10.15 552 8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