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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님의 서재입니다.

로키산맥에서 온 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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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21
그림/삽화
E-soul
작품등록일 :
2024.08.26 11:19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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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4
추천수 :
4,568
글자수 :
131,674

작성
24.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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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글자
12쪽

021. 절반!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 인물, 지명, 사회 등은 현실과 무관하며 '로키산맥에서 온 폭군'을 위한 세계관 설정, 창작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DUMMY

021. 절반!











진과 블랙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교감을 나누던 제임스는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임스를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선 에일리는 적잖게 놀라는 표정이 됐다. 제임스가 벽면을 건드리자, 덜컹하는 소리가 나며 조명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긴···. 뭐죠?”


산맥 깊은 곳 돌산 동굴 내부에 전기가 들어올 줄은 전혀 상상치 못했다.


“창고.”


“동굴을 창고로 쓴다고요?”


에일리는 동굴 내부를 둘러봤다.


나무 박스, 플라스틱 박스, 외관이 알루미늄으로 된 상당한 크기의 박스까지. 여기가 박스 전시장인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재질, 크기의 박스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제임스는 그 중 하나를 열더니 안에서 두툼한 가방 몇 개를 꺼내 입구 쪽으로 갔다.


에일리가 따라나서려 하자,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더니 산양길 초입 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한 참 있다가 다시 돌아온 제임스는 다른 박스를 열어, 또 뭔가를 꺼내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몇 차례 오가길 반복하는데 하는 것 없이 보고만 있는 게 눈치가 보였다.


“뭐라도 도울 게 있으면···.”


“없다.”


“네···.”


제임스는 블랙의 안장에서 위성 전화기를 꺼내 다시 밖으로 나가더니 한 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에일리는 기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도시를 떠나 외지에 나오니 진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손톱만큼도 찾을 수가 없다.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자신이 제임스였다면, 이런 자신을 어떻게 했을까. 딱히 인연도 없고 서로 지켜야 할 의리도 없으니 진즉에 버리고 홀로 떠나지 않았을까.


회사 동료들과 함께 왔다고 해도 목숨이 걸린 상황이라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더 잔인하게 움직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겉으론 고고한 척 해도 그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우선 시 하는지 충분히 봐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제임스는 거칠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오히려 신사적이고 자신이 뱉은 말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진짜 남자였다.


밖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제임스는 적당한 박스를 가져와 에일리 앞에 앉았다.


“왜 그런 표정이지?”


“.....”


“대답을 안 할 건가?”


“그게···.”


에일리는 한숨을 푹 쏟더니, 자신의 심정을 늘어놨다.


“나 자신이···. 싸구려 비디오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 같아서요. 왜 저러냐, 바보 같다. 멍청하게 민폐나 끼치고 주인공을 힘들게 하고. 개연성 떨어지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제작비가 아깝다. 이런 소리나 듣는 민폐 등장인물이요.”


제임스는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민폐라.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역시···. 그렇죠.”


“생각을 바꿔서 해 보라고 싶군.”


“....?”


“쓸모는 상대적이다. 자신의 환경을 벗어나 익숙지 않은 곳에 들어서면 최소한의 지식이라도 갖춘 자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주변인으로 전락하기 마련이지.”


제임스는 안장에서 물병을 가져와 목을 축였다. 그리고 에일리에게 병을 내밀었다.


“마시면서 들어.”


“네.”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스스로 비관하고 우울해하다 결국 목숨을 끊는 자들도 있겠지.”


“.....”


“지금 네가 처한 상황과는 반대지만, 나는 그런 경우를 많이 봐 왔다.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반대 상황이요?”


에일리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지 눈을 껌뻑였다.


“피 냄새, 화약 냄새, 웃고 떠들던 동료가 다음 날 시체 구덩이에 파묻히고 새롭게 충원된 동료가 채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곳에선.”


“.....”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한다. 여길 떠나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살고 싶다.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 어머니, 아버지! 여보! 아들아! 내 딸아!”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이 거칠어졌던 제임스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런 지옥을 벗어나 본래 세상에 돌아가면 어떨 것 같나?”


“조···. 좋지 않을까요? 다시 가족을 만나고···.”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그걸 누가 싫어하겠나. 하지만, 때론. 평화가 더 지옥 같은 이들도 있다. 자동차 클랙슨 소리에도 심장이 멎을 것 같고. 아이들이 들고 놀던 풍선이 터져도 바닥에 엎드리게 되고. 세상의 모든 소음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지옥.”


“.....”


“그래서 다시 돌아간다. 가족을 뒤로하고, 형제를 뒤로하고. 아내와 자식을 뒤로하고···. 결국엔 사람이 아닌 게 되어 망령처럼 세상을 떠돈다. 화약 냄새만 맡을 수 있다면 그게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달려가서 피를 뿌리고 싶어 하거든.”


“꿀꺽.”


“지금 네가 겪는 고통이, 괴로움이, 무기력함이. 죽을 자리를 찾아 떠도는 악몽에 비할 수 있다면 계속 징징거려도 된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지옥은 각자의 몫이니.”


“....”


“그걸 원하나?”


“아···. 아니요!”


에일리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너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네 덕분에 변태 존을 쉽게 잡았고, 하이힐을 신고 캐리어를 끈 덕분에 후속 팀도 날려버렸지.”


“그. 그건.”


“뉴욕에선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쓸모는 네가 결정할 게 아니라는 거다. 나는 필요한 만큼 너를 썼고. 네게 약속한 대로 안전을 제공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


"원망을 해야 한다면, 일을 이렇게 만든 내 아버지와 널 이곳에 보낸 로펌에 해야겠지. 너는 민폐니 뭐니 하면서 좌절 섞인 말을 하고 있지만, 애초에 넌 병사도 아니고 싸우기 위해 여기에 온 것도 아니다."


"....."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서류 한 장 때문에 지구를 한 바퀴 돌아왔고 그 때문에 목숨까지 위협을 받았을 뿐. 따지고 보면 멀쩡하게 길을 가다 벼락을 맞은 꼴이지. 내 입장에선 그런 너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일리는 제임스의 말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저 자신의 맨탈을 잡아 주기 위해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자신을 미끼로 쓰고 있어서 만족하고 있다는 건지. 그도 아니면.....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이 남자.


매번 말을 짧고 굵게 단답형으로 해서 답답한 성격이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길게 이야기 할 줄도 아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베풀 수 있는 여유는 여기까지다.”


“네?”


“선택의 시간이다.”


“.....”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네 뜻을 존중할 것이고 방향을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선택이라면···.”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게 왔다만, 이곳을 탈출해 뉴욕까지 가는 길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험난할 거다. 화약 냄새에 환장하고 피 냄새에 열광하는 인간이 아닌 것들이 산 아래 잔뜩 몰려왔다. 대화도 통하지 않고 보이는 족족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피를 마실 놈들이지.”


“.....”


“놈들을 죽일 수 있겠나?”


“...!”


충분히 상황도 이해가 되고, 이곳을 살아 나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사람을 죽일 수 있겠냐는 질문엔 선뜻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훈련 받은 병사도 막상 전장에 서면 사람을 조준 하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 그런데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네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에일리는 평범한 인생이란 말에 속에서 울컥 뭔가 치밀어 올랐다.


캔자스를 떠나 뉴욕으로 도망을 치기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자신의 인생도 결코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평범함이 보통의 세상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알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


“못하겠다면. 이곳에 있어라. 최소 한 달은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이니까.”


“나···. 날 두고 혼자 가겠다는 건가요?”


“지금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자책감만 가득한 너는. 이곳을 내려가는 순간 반드시 죽는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 역시 위험해지겠지. 여기까지는 네 입장을 고려해 데려왔지만, 더는 바라지 말라는 뜻이다.”


에일리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머뭇거려봤자 달라질 것도 없고 제임스의 결정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 할 수 있다면요.”


“진심인가?”


“어차피 여기 혼자 있는다고 끝까지 안전한 건 아니잖아요.”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놈들이 인간 이하라고 해도 사람을 죽인다는 건 변함이 없다. 네 손에 피가 묻고 살인자가 되고. 밤마다 놈들이 피를 흘리며 너를 찾아오겠지. 이 선택이 평생을 괴롭히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


에일리는 자신도 모르게 방금 들은 말을 상상해 버렸다.


“구. 굳이 그런 말을 지금 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럴까. 용기를 줘야 할 상황에 꼭 겁부터 준다.


“앞으로 너에게 일어날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선택도 결과도 온전히 네 것이어야 나도 도울 수 있다.”


제임스는 냉정한 눈빛으로 책임에 대한 ‘선’을 그었다.


“......”


물병을 든 에일리 손이 하얗게 변했다. 긴장감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손에 힘이 과하게 들어간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전혀 쓸모가 없는 존재인가요?”


“쓸모가 없진 않겠지. TS 투자를 되찾는데 법적 증인이 되거나, 관련해서 최소한의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나를 배신한 자들을 찾아 응징하는데, 법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상속 과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손발이 되어 대신 뛰어다닐 수도 있겠지.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시키는 것보단 목숨 빚이 있는 누군가가 뛰어다니는 게 더 믿음직스러울 수도 있고.”


“그···. 그걸 대가로 나를···.”


“미안하지만, 그렇게 쓸 수도 있다는 거지. 대체 불가품이라는 말은 아니다. 괜한 기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새내기 변호사에 의지하는 것보단 능력 넘치는 로펌을 움직이는 게 더 효과적이니까.”


‘아니! 그런 소리를 할 거면, 애초에 쓸모 이야기를 꺼내지를 말던가!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에일리는 불쑥 화가 치솟았지만, 제임스 말이 틀린 것도 아니라 반론을 낼 수도 없었다.


“시간이 없다.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거냐?”


“하. 하겠어요. 내 목숨! 내가 지킬 테니까! 벌레도 밟으면 꿈틀거리는데,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총 맞아 죽고 싶지는 않다고요!”


에일리는 분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제임스는 이제야 대화가 좀 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이제 거래를 하지.”


“에?”


거래? 갑자기 무슨 거래? 에일리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은 표정으로 제임스를 바라봤다.


“총 쏘는 법, 몸을 숨기는 법, 도망치는 법. 위기의 순간에 구사일생하는 법까지. 모든 걸 속성으로 알려주지. 대신 교육비를···.”


“교육비요? 돈을 내라는 말인가요?”


“대가 없는 호의는 삼겹살까지라는 말이 있다.”


“삼···. 뭐요?”


“소고기를 먹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내놔야 한다는 뜻이지.”


“그게 무슨 말인지···.”


“네가 가진 재산의 절반. 그리고 2년간 전담 변호사로 일을 해라. 딱 그것만 받겠다. 두 번의 목숨 값, 살아서 뉴욕까지 가는데 필수적인 생존법까지 한데 묶어서 계산하지.”


에일리는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다는 듯 제임스를 빤히 바라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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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020. 활짝 웃는 얼굴 +17 24.09.13 6,330 17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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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11. 반문하지 말라고! +13 24.09.04 8,063 17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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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09. 왜···. 왜요! +7 24.09.03 8,895 18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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