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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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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0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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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새로운 제3계급(2)

DUMMY

우선 나온 것은 소고기 스튜였다. 토마토가 잘 녹아 우려진 불그스름한 색이 군데군데 떠 있는 소고기의 짙은 회색빛 육질을 휘감았고, 좋은 향신료를 쓴 덕에 스푼을 입안에 들였을 때 코끝으로 전해지는 부드러운 고소함이 침샘을 자극했다. 이어지는 것은 보기 좋게 조리된 생선과 닭을 통째로 구운 바베큐였고, 노릇하게 구워서 껍질을 붉게 물들인 채 김을 모락모락 올리는 커다란 게였다. 어느 것 하나 상급품이 아닌 것이 없었다. 한 마디로 요약해서, 훌륭한 저녁이었다.


“그런데, 두 분은 어디로 가시는 길인지?”


카린이 게 다리 껍질을 가위로 솜씨 좋게 잘라내고 있을 때, 상석에 앉은 젊은 청년이 온화한 미소와 더불어 물었다. 둘을, 정확히는 카린을 이 저녁에 초대한 사람이 그였다. 이름은 ‘한칼 하베디온’이라고 했다. 준수한 인상의 호청년이다. 카린이 답하기에 앞서, 엘이 와인을 한 모금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아루스 공화국의 수도 트리타스로 가는 길입니다.”


엘의 말이 조금 날카롭다. 식사 시작부터 카린을 보고 아름다우니 뭐니 하며 여러모로 시끄럽던 녀석인 만큼 엘로서는 좋게 보기 어려웠다.


“관광이신가 보지요?”


“뭐... 그 비슷한 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엘은 가볍게 답했다. 진짜 목적은 특무기관과 접촉함으로서 그들의 정보력을 좀 빌려볼까 하는 것이지만, 관광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중 하나가 있다. 카린이 기분 좋게 발라진 게 다리 속살을 즐거운 얼굴로 먹으면서, 하베디온에게 물었다.


“하베디온 씨는 무슨 일로 아루스 공화국에 가시나요?”


“아, 저는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제 슬슬 아버지 사업을 도와드리려고요.”


“유학요?”


카린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 물었다. 독특한 억양의 리온 어라 했더니 세키리아의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데, 아루스에서 굳이 세키리아 쪽으로 유학이라니? 카린은 그 점이 의아했다. 그녀가 알기에 대부분의 학문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은 아루스 공화국이었고, 다른 국가들은 그들의 성과를 수입하기에 급급했다. 그녀의 의아함을 이해한다는 듯, 다시 웃어보이며 말했다.


“예. 로시테아님께 검을 배우기 위해 세키리아에 있었지요. 아시겠지만 아루스에는 뛰어난 검사가 많지 않으니까요. 사자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분 밑에서 이것저것 배웠습니다. 올해 운이 좋아서 왕실 주최의 기사 시합에서 우승할 수 있었기에, 이제 그 분 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잔잔한 말이었지만 이면에는 자랑스러움으로 그득했다.


“헤에- 우승하셨군요!”


카린은 감탄한 듯 말했다. 하베디온이 기대하던 반응이다.


“하하, 정말로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결승에서 저의 상대였던 아크라는 기사의 실력도 굉장한 것이었으니까요.”


카린이 놀라워하는 모습을 가슴 뿌듯하게 즐기며, 하베디온은 애써 겸양을 차렸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엘이 참여했다.


“그렇군. 혹시나 했는데, 아루스의 기사, 순백의 하베디온이셨군요.”


“예. 부족한 제게 사람들이 과분한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하베디온이 쑥스럽게 웃으며 엘의 말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순백의 기사’라는 이명을 지닌 한칼 하베디온이라면 겸양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젊은 다섯 기사 가운데 한 명이라 이야기 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실력이 출중해서, 그가 사자 기사단에 소속되지 않은 것은 로시테아 밑에서 그가 너무 많은 것을 배울지도 모른다는 세키리아 측의 우려로 인한 타협안이었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결승 상대가 아크라고 하셨는데, 혹시 그 사람의 이름이 류디스였나요?”


카린이 다시 놀란 얼굴로 물었다. 하베디온은 그녀가 자신의 정체나 실력에 놀라기보다 다른 부분에서 놀라는데 실망감을 느꼈다.


“맞습니다. 혹시 그를 아십니까?”


“아, 아니요. 이름만.”


하베디온의 되물음에 카린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류디스와 둘의 인연은 깊은 것이지만 드러내놓을 만한 것은 아니다. 엘이 조날을 회생 불가능한 수준의 병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 속으로 그의 소식에 반가워할 밖에.


“새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강한 기사니 이름 정도는 들어 보셨을지도 모르겠군요. 로시테아님의 정식 제자라는 소문도 있었을 정도니. 그 덕분에 다섯 사자가 여섯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지요.”


하베디온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기 앞에 높인 와인을 들이킨 다음, 씁쓰름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소문은 헛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준우승 이후에 사자기사단에 배속됐지만 곧장 데시크리아라고 하는 변방 영지로 떠났으니까요. 그가 정말 로시테아님의 제자였다면 그렇게 좌천될리는 없겠지요. 뛰어난 실력이었는데, 아쉬운 일입니다. 이야기되기로는 그의 출신이 문제였다고 하더군요.”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지요.”


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베디온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식사 시작부터 어딘가 깐깐하게 자기 말에 대응하는 저 남자가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옷차람에서 부터 심한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 식사 예절에 대한 무지와, 무시할 수 없게 안정된 몸놀림을 보아하니 잘 훈련된 호위 정도로 보이는데, 너무 자기와 그녀의 사귐에 방해를 한다고 느꼈다. 자기가 순백의 기사 하베디온이라는 것이 알려진 지금에도 그건 변함이 없었다. 충성심의 발로라면 이해 못할 것은 없지만 나설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해 주었으면 했다.


“확실히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하베디온은 일단 참기로 했다. 카린 양 앞에서 좋지 않은 꼴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오전 갑판에 서 있는 그녀를 보고, 하베디온은 한 눈에 반했다. 솔직하게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다. 카린은 세키리온의 귀족으로 보였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방명록을 살짝 조사해 봤지만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는 듯,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녀가 귀족이라 확신 한 것은 몸가짐의 조신함에서 기품이 흘러나오는 듯 했기 때문이다. 명가의 엄격한 교육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모습이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항구에 도착하면 저희 집에서 두 분을 모시고 싶은데...”


갑작스럽게 하베디온이 제안했다.


“에-”


곤란한 얼굴로 카린이 엘을 바라봤다. 하베디온을 다급함을 느꼈다. 가능한 카린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 그녀의 호의를 사 두고 싶은데, 만일 여기서 그녀가 거절하게 되면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하베디온은 급히 말했다.


“곧 데브로에서 갤리선 여섯 대의 진수식이 거행됩니다. 이게 제 5함대의 발족이기도 하기 때문에 국가적인 행사지요. 심지어 황녀께서도 직접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실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동안 데브로는 사실상 축제에 돌입하게 됩니다. 꽤 즐거우실 겁니다. 관광이 여행의 목적에 포함되어 있다면 반드시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도시 대표이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서 배견의 기회도 가지실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카린이 아니라 엘이었다.


“-황녀라면, 어느 분?”


“물론 제일 황녀 위니아님이시지요.”


하베디온이 간결하게 답했다. 그의 말은 경건함이 담겨 있었다. 입헌군주국으로서 황족에게 실권이 없는 그들은 어렵지 않게 존경과 경의의 대상이 된다. 국가 그 자체와 등치되기 때문이다. 엘은 턱에 손을 가져다 대고 구미가 당긴 듯 쓸었다. 그녀는 초기에 엘의 여행 목표 중 하나였다.


“황녀 위니아...라.”


생각해 보면 지금 당장 급히 해결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선명하게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델시테리아의 조언을 따라 불신의 군주를 만나 보는 것이지만 그런 것은 성급하게 군다고 어떻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바르디 백작 가에 관련해 필요한 조치는 로시테아에게 연락했으니 그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류디스가 데시크리아로 갔다는 것이 선명한 증거였다.


아루스 공화국의 정보기관에서 협력을 얻어내는 것은, 어차피 크게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지 않는 일이기도 했고, 좀 더 나중이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굳이 일의 순위를 따지자면 요즈음 얻은 검의를 정리해 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엘은 카린을 바라봤다. 그녀는 계속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엘과 눈을 마주치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않겠냐는 뜻이다.


“그럼, 호의를 받아들여 한 동안 묵도록 하겠습니다.”


엘은 싱긋이 웃으며 답했다. 하베디온은 속이 뻔히 읽히긴 해도 악당인 것 같지는 않으니 받아들여서 나쁠 것은 없으리라 싶었다. 특히 황녀 위니아를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말은 매력적이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베디온은 마치 여행의 주도권이 카린이 아닌 엘에게 있는 것 같아 보인다는 데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반갑게 그 대답을 받아들였다. 도무지 대등한 관계로는 보이지 않던데, 설마 두 사람은 주인과 호위의 관계가 아니었던 걸까? 하베디온은 고개를 저었다. 어쨌거나 상관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되도록 카린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 그녀가 자신의 호의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과 그녀를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는데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호작 베스트 10에 들어갔습니다. 성원해 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앞으로도 격려와 질타 바랍니다. 꾸벅~


*서브라임의 타이틀이 생겼습니다. 만들어 주신 다에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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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새로운 제3계급(1) +50 07.02.26 9,502 11 10쪽
56 고룡 델시테리아(5) +59 07.02.25 8,576 13 11쪽
55 고룡 델시테리아(4) +39 07.02.22 8,587 8 11쪽
54 고룡 델시테리아(3) +50 07.02.21 8,548 11 11쪽
53 고룡 델시테리아(2) +45 07.02.20 8,986 7 13쪽
52 고룡 델시테리아(1) +50 07.02.16 9,458 10 10쪽
51 안바르디 백작가문(11) +41 07.02.13 8,777 9 17쪽
50 안바르디 백작가문(10) +51 07.02.11 8,809 9 12쪽
49 안바르디 백작가문(9) +41 07.02.10 8,815 8 12쪽
48 안바르디 백작가문(8) +63 07.02.07 8,778 11 10쪽
47 안바르디 백작가문(7) +22 07.02.06 9,014 9 11쪽
46 안바르디 백작가문(6) +36 07.02.03 9,725 8 12쪽
45 안바르디 백작가문(5) +35 07.02.02 10,002 10 10쪽
44 안바르디 백작가문(4) +35 07.01.30 11,188 14 13쪽
43 안바르디 백작가문(3) +49 07.01.29 11,708 13 10쪽
42 안바르디 백작가문(2) +60 07.01.25 12,227 12 13쪽
41 안바르디 백작가문(1) +52 07.01.19 13,154 27 11쪽
40 승계전(10) +49 07.01.17 11,648 37 11쪽
39 승계전(9) +41 07.01.13 11,469 9 12쪽
38 승계전(8) +63 07.01.11 11,312 20 11쪽
37 승계전(7) +93 07.01.08 11,409 12 10쪽
36 승계전(6) +53 07.01.06 11,859 13 13쪽
35 승계전(5) +64 07.01.04 11,527 15 13쪽
34 승계전(4) +44 07.01.01 11,773 12 12쪽
33 승계전(3) +45 06.12.29 11,882 19 11쪽
32 승계전(2) +151 06.12.26 11,855 20 10쪽
31 승계전(1) +35 06.12.23 13,014 15 10쪽
30 데시크리아 남작가문(6) +53 06.12.20 12,508 11 11쪽
29 데시크리아 남작가문(5) +43 06.12.17 12,684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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