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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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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2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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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고룡 델시테리아(2)

DUMMY

고룡 델시테리아는 가란노프 산에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제일의 높이를 자랑하는 산이다. 세키리아 왕국의 국경을 지나 한참 서쪽으로 가면 있는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미개척지에 있으며, 산허리 위로는 한 번도 눈이 녹은 적이 없다고 하는 높디높은 산이다. 그래서 인간은 물론, 모든 종류의 현존재에게 경외와 두려움의 대지이며, 가디언이 아니고는 아무도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설령 개방되어 있다고 한들, 그 험지를 타고 고룡 델시테리아의 레어에 도착할 수 있는 이들은 세계를 모두 뒤진다 해도 몇이나 있을지 의문스럽다.


엘과 카린은 그 몇 안 되는 이들의 두 사람으로서, 가란노프 산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마법에 지켜지고 있는 이곳의 산허리 부분은 강렬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콧물을 흘리면 콧물이 얼고, 오줌을 누면 오줌이 얼어버리는 지역에서, 바람까지 더해져 눈발과 더불어 강렬한 추위가 두 사람을 엄습했다. 두 사람이 상식을 벗어난 힘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열을 세기 전에 차갑게 굳은 시신이 되었을 것이다.


"엘, 정말로 갈 꺼야?"


강렬한 눈바람도 방해하지 못하는 힘을 담은 카린의 말이었지만, 내용과 어조 자체는 나약했다. 그녀의 앞에서 발자국도 만들지 않고 눈위를 밟으며 걸어가던 엘은 지겹다는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답했다.


"어비스의 대공 건도 보고해야 하고, 수정에 관해서도 물어봐야 하니 당연하잖아. 네가 할아버지 만나기 어려워 하는 건 알고 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런걸 물으면 안 돼지."


"편지에 사정을 써서 수정과 함께 보내도 좋았잖아. 굳이 여기까지 안 와도..."


"더구나 어차피 올거였건만,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


카린의 말을 자르며 엘이 물었다. 그의 말 처럼 고룡을 방문하는 것은 여행 여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였다. 물론 계획대로렸다면 종반부에나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니 좀 심하게 앞당겨진 방문이기는 했다. 카린은 고개를 설레설래 내저으며 말했다.


"나, 나는 걸리는게 없지만, 엘이 걱정이잖아."


"음. 솔직히 나도 그건 걱정이야. 아직 검도 못 뽑는데 너랑 같이 너희 할아버지 만나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싶긴 했으니까. 그래도 상황이 이러니 안해 볼 수는 없잖아."


엘이 다소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델시테리아는 인간도, 삼좌도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 강대한 존재는 천년 전에는 인간의 양녀도 들였으면서 실버 라이트에게 깨진데 분을 품고 삼좌를 싫어한다고 한다. 만년이나 산 존재 답지 않다고 하면 그렇지만 동시에 만년간 그걸 제하고 깨진 적이 없는 존재라는걸 생각하면 그것도 그럴법한 이야기라고, 엘은 생각했다. 하여간 엘의 말에 카린이 얼굴을 확 밝혔다.


"그래. 그러니까-"


하지만 이 카린에게 다가와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며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자정가를 불러주듯 정다운 리듬으로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언제 검이 뽑힐지 알 수도 없으니 여행 시작하면서 사실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생각해 두고, 각오도 다지고 있었거든. 카린을 위해선걸."


"음..."


카린은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의 말에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느긋하게 손을 잡고 계속해서 산을 올라갔다. 산소도 희박하고 온도도 낮고, 발밑도 불안정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아무런 장애도 될 수 없었다. 산책하듯 다정하게 두 사람은 걸음을 이었다. 그리고 곧 둘은 갑자기 바람이 진정되고, 눈부신 백색 세계로 들어설 수 있었다. 표면의 눈밭이 햇빛을 반사하며 번쩍번쩍 빛나던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하얀 세상 위에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 모습의 그림자가 있었다.


"흠. 마중나온 하인들인가?"


엘이 팔자좋은 소리를 했다. 이어 그들 가운데 중간에 서 있던 자가 성큼성큼 걸어 둘 앞으로 나왔다.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었다. 백색의 머리에 눈은 푸른 빛을 머금고 있었고, 이 장소에 걸맞지 않게 얇은 옷을 입고 있는 준수한 남자였다. 그는 찌푸린 눈길로 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 따위가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저는 블랙 둠의 후계자입니다만."


"이 곳에서는 삼좌 따위가 잘난 척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 말, 삼좌를 모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겠습니까?"


"하, 모멸? 그런 것은 대등한 관계에서나 성립하는 말이다. 되다만 삼좌 따위가 지껄일 수 있는 말이 아냐."


그리고 남자는 엘의 옆에 서 있는 카린을 바라보며 정중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아가씨, 이쪽으로 와 주십시오. 로드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에..."


카린은 당황한 얼굴을 했지만 결국 그에게로 가지 않고 엘 뒤에 몸을 숨기고는 그의 어깨 위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요컨데, 그 남자 곁으로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남자는 곤혹스런 얼굴로 몸을 일으키곤 시선을 엘에게로 돌렸다. 엘은 방금 지나온 눈폭풍 보다도 차가운 표정으로 그의 푸른 눈을 직시하고 있었다. 청년은 그 눈길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받아넘기며 말했다.


"어쩔 수 없군. 너를 처리하고 아가씨를 로드께 데려가야겠다."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엘은 검을 꺼내 들었다. 소리도 없이, 디 세리온의 검날이 차가운 대기 가운데 그보다 섬연한 예리함을 품고 드러났다. 남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다른 것들이 엘을 향해 덤벼들기 시작했다. 인간 사이즈의 아이스 고렘 넷이었다. 고렘은 기본적으로 그것을 운용하기 위한 내부구조가 복잡하고 출력이 많이 필요해서 인간 사이즈의 고렘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드물게 있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따질 것 없이 모두 소드 마스터를 가볍게 상대하는 강대한 존재다. 전신이 흉기인 그것들은 공격부위를 마나로 돌출시켜 한층 자신의 흉험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흥."


엘은 그런 강대한 것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옴에도 간단히 비웃고는 앞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이어, 아이스 고렘과 자신 사이의 간격을 재고는 손을 움직였다. 짧은 순간, 빛이 번뜩였고, 엘을 향해 달려들던 고렘은 모두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제법.'


바라보던 은발 청년의 눈으로 이채가 스쳤다. 그는 엘이 극히 짧은 동안 얼마나 정교하고 완벽한 검식을 펼쳤는가를 읽었다. 마찬가지로 엘은 그가 자신의 검을 읽어냈다는 것을 알고, 피식 웃으며 그에게 검극을 내밀고는 차갑게 말했다.


"알아 둬. 현존재의 살아있는 의지, 그것의 도약이 결여된 마나 덩어리 따위에게 어려움을 겪을만큼 블랙 둠이 적에게 부여하는 절망은 옅거나 좁지 않다."


"그런 것 같군. 과연 주제파악을 못하게 될 정도의 실력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청년은 엘 앞에 성큼 섰다. 그리고 이 일대의 분위기가 삼엄하게 번했다. 마치 그가 이 공간 자체를 지배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래봐야 어차피 시시한 인간의 종자."


"엘..."


엘의 뒤에서 카린이 걱정스럽게 그에게 말했다. 엘은 차갑던 얼굴을 풀고 카린을 바라보고는 안심하라는 뜻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고는 말했다.


"와라."


"건방진. 후회하게 해 주지!"


엘이 오만하게 하수를 맞이하듯 가슴을 펴고 말하자, 청년은 한 순간 노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엘을 향해 달렸다. 쿠앙! 그의 뒤로 거대한 눈 폭발이 일어났다. 거의 동시에, 엘이 서 있던 곳으로도 눈폭발이 일어났다. 엘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청년의 공격을 디 세리온으로 막아낸 충격 때문이었다. 이 곳이 마법으로 보호되지 않았다면 무시무시한 눈사태가 일어났을 것이다.


디 세리온의 예리한 날과 청년의 수도 표면으로 머물고 있는 은빛 에너지의 집결 사이의, 얼마 되지 않는 투명한 공간에서 양자의 마나는 폭풍우치듯 충돌하며 주변으로 스파크를 튀겼다. 그 에너지의 충돌 사이로 서로의 공격을 읽기 위한 예리한 눈길이 교환됐다. 한 순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튕겨져 나갔고, 다음 순간, 충돌했다. 그들이 충돌하고, 착지하고, 출발하는 순간마다, 대지는 폭발하듯 흰 눈발을 휘날리며 그들이 다루는 에너지의 거대함을 증거했다. 카린은 그 대결의 관람자로서 초초한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거대한 에너지의 충돌이 일어나며 새하얀 눈기둥이 높이 치솟았다.


'이제 잡았다.'


그 눈발을 헤치고 대지에 착지하면서, 엘은 기분좋게 웃을 수 있었다. 상대의 막강한 마나에 대처하기 위해 다소 수세적인 입장에서 전투를 계속했지만 그 과정 가운데서 여러가지 약점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마나의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대는 늘상 그러하듯 기술적 정밀함을 일정 수준 이상 길러내지 못하는데 이 시건방진 놈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마나를 수도라는 방법으로 다루는 방식은 꽤 쓸만한 것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압도적인 힘을 어떻게 상대에게 빨리 퍼부을 것인가 하는 부분에 집중된 단선적인 공격이었다. 그런 것으로는 블랙 둠의 검을 상대할 수 없다.


그때, 청년이 날아서, 엘을 향해 공격했다. 그의 공격은 엘을 두동강으로 내려는 듯 강력하게 내리 긋는 공격이었다. 수도에 담긴 에너지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엘은 비릿하게 웃으며 그 공격에 도리어 돌진했다. 청년은 엘을 보고 조금 놀란 눈빛을 보였지만 이내 오만하게 웃으며-인간 따위가 기책을 써 보아야 무의미하다는 판단 아래-수도의 에너지를 지금까지의 배 이상으로 증폭시키며 강하게 내리그었다.


'좋아.'


엘은 내심 웃으며 디 세리온을 들어 교묘한 각도로 그 힘을 받아내며 걸음을 옆으로 움직였다. 그는 한줄기 환상같은 움직임을 보여주며 청년의 공세에서 완전히 몸을 빼냈다. 그에 디 세리온을 부러뜨릴 생각으로 수도를 휘두르던 청년은 그 교묘한 동작에 일순간, 정말로 일 순간 힘의 균형을 잃었고, 한쪽으로 몰려 있던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탓에 몸 전체의 동작과 마나의 운용이 부자유스러워졌다. 엘은 오만하게 웃으며 걸음을 뒤로 이어며 왼쪽 상완부를 디 세리온으로 관통시켰다. 푸욱- 어떤 명검도 상처입히지 못하던 그의 팔을 디 세리온은 간단히 파고들었다.


"으아아악!!"


청년이 비명을 질렀다. 붉은 피가 상처를 따라 주르륵 흘렀다. 엘은 팔에 다리를 대고 검을 쑥 빼냈다. 차가운 대기 위로 청년의 피가 붉은 결정이 되어 날았다. 청년은 고통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상처를 성한 오른쪽 팔로 부여잡고 엘에게서 멀어졌다.


"이천살도 먹지 못한 주제에 감히 설치는게 아냐. 천년전 세상을 구한 것은 너희들 오만한 용이 아니라 인간인 삼좌였다. 나를 상대하고 싶다면 적어도 이천년은 살았어야지."


"감히...! 감히...! 인간 따위가 감히...!"


그러나 청년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두 눈을 새하얗게 빛내며 엘에게 증오어린 외침을 토했다. 동시에, 주변으로 강렬하고도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엘은 주변의 변화를 살피며 조소하듯 중얼거렸다.


"역시 실버였나. 하기야, 이곳의 수문장으로는 최적이었겠군."


그리고 엘은 다시 시선을 청년에게 돌리며 새파랗게 선언했다.


"-또 다시 덤빈다면 값은 네 목으로 치르도록 하지."


-너 따위 인간이 감히 할 수 있다...


증오로 충만한 새하얀 빛을 발하며 청년이 엘을 향해 외치던 순간이다.


-그만둬라.


위엄으로 가득찬, 압도적인 존재의 소리가 그곳에 서 있던 모든 이들의 뇌리로 직접 전달됐다. 청년은 얼빠진 표정으로 변신을 그만두었고 가만히 침묵했고, 지금까지도 초조한 표정이던 카린은 이제 아주 울상을 지었다. 이어, 엘은 검을 수납하며 고고한 산봉우리 쪽을 바라봤다. 위대한 가란노프 산에 어울리는 위대한 존재의 목소리였다. 위대한 고룡, 드래곤 중의 드래곤, 드래곤 로드 델시테리아였다.




*즐거운 명절 보내셨는지? 저도 이제 열심히 적어야 되겠죠. 뭐 그럭저럭 해 보겠습니다. 아웅.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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