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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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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1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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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계전(10)

DUMMY

행정관의 선언에 모두 황당한 얼굴이 됐다. 특히 당황한 것은 피리아였다. 다른 이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들은 내심 위세등등한 안바르디 에서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거라 예감하고 있었다. 툴과 자즌의 경우에는 희색이 만연했다. 안바르디 행정관은 천천히 일어나 설명을 시작했다.


"좋은 승부였지만 유감스럽게도 남작측의 대표로 나온 레라는 용병의 신원이 불분명하오. 그래서 이 승부는 무효요."


"이제와서 그게 무슨 소린가요!"


카린이 발끈하며 앞으로 나섰다. 행정관은 후- 하고 쓸어내리듯 자신만만하게 웃고는 말을 시작했다.


"두 사람이 상인의 고용으로 호위 임무차 여기 왔다고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행정관에서 자료를 찾아 살펴본 결과 자네들이 말하던 지역으로 가던 상인에 대한 관세기록에 없었네. 그렇지 않은가?"


그러면서 행정관은 툴을 바라봤다. 툴은 비대한 고개를 만족스럽게 끄덕이며 "그렇습니다."하고 답했다. 카린은 새빨개진 얼굴로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그..."


그렇지만 뒷말은 쉽사리 이어지지 않았다. 그 틈을 타고 비릿하게 웃으면서 행정관은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이 어디 출신인지를 모르는 이상 이 승부를 긍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특히 이번과 같은 경우 두 사람이 남작령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은 분명한데, 만에 하나 적성국이 파견한 공작원이라거나 한다면,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곤란하지 않겠나?"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관은 말은 그럴 듯 했다. 하지만 피리아 측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승부가 난 이제와서 그런 이야기를 꺼낸다니, 이게 애국심의 발로가 문제가 아닌, 이익의 문제에 관련한 일종의 보험이었다는 것은 명백했다.


"아야야야야...."


그리고 행정관이 자신만만해 하고 있던 사이, 엘이 아픈 몸을 세우며 그를 바라봤다. 행정관은 여전히 비릿하게 웃으며, 뭐하러 일어났냐는 시선을 그에게 보내며 말했다.


"유감이군. 하지만 자네의 솜씨는 훌륭했네. 그걸 봐서 곤란한 질문은 하지 않도록 하지. 이제 이 일에서 손을 떼도록 하게.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을 하지. 내 밑에서 일할 생각은 없나? 안바르디 백작가문의 기사로 써줄 생각이 있네만."


거창하게 적성국의 공작원 운운했지만 사실은 위협일 뿐이었다. 그는 두 사람의 신원이 불분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껏해야 밀수범의 호위나 하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딕을 쓰러뜨린 실력은 진짜이니 선처를 베푼 것이다. 엘은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아, 그 점에 대해 저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뭐지?"


"그게-"


그러면서 엘은 카린을 바라봤다. 그녀는 엘의 눈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른 눈치채고 품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를 하나 꺼내 엘에게 건냈다. 엘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뜯은 다음 의아해 하고 있는 안바르디 행정관의 면전에 그것을 들이내밀었다. 뭔가, 하고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이내 창백해졌다.


"이..."


그리고 행정관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원념을 담아 툴을 바라봤다. 갑작스런 시선에 툴은 어쩔줄 몰라 할 뿐이었다. 한동안 증오에 찬 시선으로 툴을 바라보던 행정관은 이내 신색을 억지로 회복시키고 엘과 얼굴을 대면했다. 엘이 싱글벙글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저는 만에 하나라도 서로에게 슬픈 일이 생기기를 원치 않습니다. 제 뜻이 무엇인지 잘 알아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군. 잘 알았네."


"그럼 저희 두 사람의 신분은 명확한 것이군요."


"그래. 두 사람의 신분은 확실하네."


"그럼 저희는 승리했고, 영지는 롤의 것이군요."


"그래."


"아, 그리고 이 일이 끝나고 난 뒤, 양피지는 모처에 맡겨질 예정입니다. 만에 하나의 일이 남매에게 생길 경우... 아마 슬픈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는 행정관의 답이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입술을 꽉 다물고 노려보는 듯한 시선으로 엘을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알겠네."


"안심했습니다."


엘은 웃으며 내밀었던 양피지를 다시 돌돌 말아 품에 넣었다. 안바르디 행정관은 일그러진 얼굴로 뚫어져라 양피지가 들어간 곳을 바라봤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뜻의 한숨을 쉬고는등을 돌려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툴과 자즌이 그에게 다가가며 쩔쩔매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안바르디 행정관은 버럭 화내며 그들을 밀쳤다. 다시 그들이 접근하려 했을 때 호위병들이 무기를 내밀며 접근을 막았다.


그리고 엘은 그들 가운데 섞여 사라져 가는 시스톤을 바라봤다. 그도 엘의 시선을 눈치챈 듯, 엘을 돌아보고는 히죽이 웃었다. 엘의 얼굴이 불편해졌다. 자기보다 세어봐야 얼마나 세다고 저런 오만한 웃음인지! 불쾌한 마음이 무럭무럭 피었다. 그는 '쯧!'하고 혀를 차곤 시선을 다시 안쪽으로 돌렸다.


"그럼... 이제 끝났군요."


엘의 말에 그곳에 있던 이들은 꿈에서 깨어난 것 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있었던 엘과 행정관의 대화가 너무 기묘했던 탓이다. 이내 칸이 흠, 하고 운을 뗀 뒤에 공터에 들어와 선언했다.


"이 승계전은 롤 도련님 측의 승리입니다."


모여들었던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피리아는 기쁜 얼굴로 엘을 돌아보며 그에게 다가갔다. 엘이 웃는 얼굴로 프리아를 돌아봤다. "저, 감사드릴-" 그리고 고마움의 말을 전하려던 차에, 엘의 눈빛이 흐려졌고, 쓰러지듯 다시 누웠다. 카린의 마법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역시 충분한 수준은 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시스톤과 싸우며 입었던 그의 부상은 내외 모두 엄중했다. 피리아는 얼른 다가가 그를 품에 안았다. 옆에 있던 카린이 '웃!'하고 당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로서 승계전은 끝났다.




엘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카린의 마법 덕분에 특별히 외상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마법으로도 내상은 어쩔 수 없었다. 시스톤과의 싸움에서 무수히 있엇던 마나의 충돌로 엘의 속이 상당히 상했다. 그게 완치되려면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삼좌의 마나운용은 일반적인 것과 달리 무척 복잡, 정교해서 외부에서 도움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삼좌 끼리도 그 운용의 방법론은 일치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대신에 수복력이 굉장히 뛰어나서 치명적인 수준의 내상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회복 된다는 것이다. 자체 회복력을 뛰어넘는 수준의 내상을 입는다면 그건 그냥 폐인이 된다는 말일 뿐이었다. 회복은 불가능했다.


그런 상세를 핑계로 엘은 면회객을 모두 물리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양피지 문제라던가, 롤의 암살 공작등, 아직 모든 사태가 정리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들은 내일 정리해도 모두 충분한 것들이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톤과 싸웠을 때 느꼈던 감각을 조금이라도 더 음미하는 것이었다. 엘은 양손을 들어 검을 쥐는 자세를 취하고, 상상 가운데 그 양손으로 쥔 검의 끝을 노려봤다.


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이 흘렀다. 이미 해는 지고 달이 높이 뜨는 시각이 되었다. 그리고 암흑 가운데 아득한 투지의 감정이 미약하게 재생됐다. 시스톤과의 싸움.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깨어난 설명할 수 없는 아득함- 엘은 희열을 느끼며 한층 정신을 집중했다.


'음...'


그때, 엘은 세계 전부가 자신에게로 다가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껴안을 수 없이 거대한 것이, 좁은 가슴에 아무런 무리 없이 들어와 거대한 전체를 이루는 듯한, 그러한 감각이었다. 그것은 모든 인지를 초월해 있었고, 그래서 모든 인간의 가치평가를 넘어서 있어서서, 그 질과 양, 양 측면에서의 막대한 존재감에 그저 아득함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이미 자아는 없거나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는 거대한 실체의 한 단편이거나, 그 실체 자체였다.


서브라임. 엘이 그 감각에 압도되었던 것은 사부를 처음 만났을 때와, 검을 수련하면서 각각의 계단을 올라섰을 때 이후로 무척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이 감각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엘은 사부에게 물려받은 검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시건방진 비만 도마뱀에게 복수 할 수 있을테지!'


시스톤을 생각하고 엘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천년 가까이 살아놓고 쪼잔하기 이룰 말할 데 없는 그 도마뱀에게 한방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기분좋은 청량감이 퍼져나갔다. 흡족한 감정에 잠시 취해있던 엘은 아차, 하고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당시의 감각을 잃은 것이다.


"젠장..."


엘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엘은 다시 검을 쥐는 자세를 취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결국 엘은 한숨을 쉬며 손을 내렸을 뿐이다. 방금전의 감각이 재현되지 않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중요한 실마리를 놓쳤다. 다시 이런 기회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높은 운과 많은 수고를 다시 들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시스톤과 싸웠던 그 정도의 수고는 말이다.


"지나간건 어쩔 수 없지. 치료에나 전념할까."


투덜거리면서 엘은 마나를 강하게, 전력으로 운용했다. 그러자 누운 엘의 주변으로 마나가 반투명하게 직접적인 형상을 드러냈다. 휘황한 광경이었다. 여러 마법진이 엘을 중심으로 통합되듯 뻗어 있고, 그것을 따라 마나가 회전하는 시스템이었다. 마나의 흐름 중간중간에 헐겁거나 찌랏하게 아픈 부분들이 있었다. 직접적인 타격으로 마나의 맥이 손상되거나 끊어진 곳들이었다. 한동안 그런 감각을 견디며 마나를 운용하던 엘은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주변으로 펼쳐져 있던 마나의 운용진이 환상처럼 스러졌다.


"쓰읍."


살짝 고통을 느끼면서 엘은 침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작은 걸음으로 창문을 열어 저택을 빠져나오고는 도무지 부상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그의 옷길을 벨 듯이 펄럭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긴 달빛 아래, 환상처럼 스러지던 엘의 신영이 멈춰선 곳은 달빛을 풍족히 받는 어느 언덕의 위에서 였다. 도시에서 상당히 떨어진, 외진 초록의 스산한 언덕이었다. 그리고 엘은 깊게 심호흡을 하며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멀지 않은 곳의 수풀이었다. 거기서 천천히 후드를 깊게 둘러쓴 한 사람이 걸어놨다. 키가 큰, 호리호리한 사람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블랙 둠의 후계자. 제 부름에 응해주신 것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달빛을 닮은, 청아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엘은 싱긋 웃으며 그녀의 인사에 화답했다.


"저도 처음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실버 라이트의 후계자."





*승계전 끝났습니다. 그리고 집접은 집접회로(IC)할때 그 집접입니다. 집적도 괜찮지만.


*탈력...(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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