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티의 수도 1(4)
‘이제 어떻게 한다.’
엘은 소파에 앉은 채로 목을 뒤로 꺾고, 한 손으로는 검을 뱅뱅 돌리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의 시시껄렁한 양아치들과 간부라는 놈들은 모두 모아다 창고에 처박아 뒀다. 지부의 위치도 알았으니 하나하나 소탕해 가면 되지만, 이런 일이 으레 그러하듯, 악의 세력을 절멸시키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아이들을, 어디 맡길 데가 없을까-”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이게 문제였다.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었다. 어떻게든 구해내었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앞길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결국 예비범죄자를 구해주는 꼴이 될 뿐이다. 그래서는 악순환의 반복일 뿐이었다. 갈 곳도 없고,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협박과 사소한 칼질, 그리고 소매치기 기술밖에 없는 아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결국 저 아이들은 다른 양아치들보다 조금 덜 고생하고 범죄자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데시크라이로 보내는 게 어때? 거기라면 좋아할텐데.”
카린이 제안했다.
“생각은 해 봤지만, 계산해 보니 아이들을 다 구하면 적어도 이백가까이 되지 싶단말야. 거기까지 이동시킬 방법이 없어. 신원보증도 문제지만, 다들 너무 어려서, 데시크리아까지 가긴 힘든 여정이 되겠지. 말도 안 통할 테고. 최소한 몇 년은 이 근처 어딘가에서 지내야 할 거야. 외국어 공부도 겸해서 해야 할테고.”
엘은 고개를 들지 않고 카린에게 답했다. 그녀의 제안은 이 아이들을 구하면서 가장 처음 생각해 보았던 것이지만, 현실적인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카린은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보아하니 다 큰 어른도 일자리가 없어 빌빌대기 일쑤인 동네 같은데, 일일이 일자리를 구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내가 언제까지 껴안고 있을 수도 없을 테니, 골치가 아파.”
국가에 맡기는 것은 애당초 선택지에서 빠져 있었다. 이 아이들은 과거의 범죄로 처벌당할 가능성이 높았고, 그 경우 사형이다. 고아원의 아이들이 범죄조직으로 빠지는 것도 제대로 막지 못한 자들이 무슨 얼토당토 않은 짓인가, 싶지만 그게 법이라는데 어쩔텐가. 그걸 피하더라도 잘 해봐야 고아원과 같은 수용시설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이곳의 아이들의 반절 이상은 그러한 수용시설에서 정식의 절차를 거쳐 범죄조직으로 ‘입양’된 것이라고 한다. 아루스 정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똑똑.
말없이 난국의 타결책을 생각하던 두 사람의 침묵을 망설이는 노크소리가 깨트렸다. 엘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들어오렴.”
삐꺽, 문이 열리고 소녀가 들어왔다.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 채찍질을 심하게 당해 피투성이였던 아이였다. 치료를 위해 카린이 손을 대었을 때에도, 흠칫, 흠칫 하며 공포에 전율했다. 이제 8살이나 되었을까? 저런 아이를 보면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채찍질을 할 수 있는 자의 정신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엘은 다시금 분노를 느꼈다. 팔을 하나 자른 것은, 그 돼지새끼에게 너무 가벼운 형벌이지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엘은 이를 갈았다.
“무슨 일이니?”
카린이 얼른 소녀에게 다가갔다.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엘은 지금 표정이 좋지 않아서, 아이에게는 무서우리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두 사람은, 이 아이들이 하늘처럼 무서워하던 이들을 단번에 박살냈다. 마주 대함에 심리적인 부담은 적지 않을 터였다. 소녀는 여전히 흠칫 흠칫 떨면서 어렵게 말했다.
“아, 으- 저, 저기, 피, 필을 사주세요.”
그러면서, 소녀는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동전을 가득 그러모아 손을 펼쳤다. ‘구해달라’가 아니라 ‘사달라’라는데 의아함을 느끼며, 카린은 물었다.
“필? 필이 누구니?”
소녀의 뒤에서, 소년이 주춤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맨 처음 엘에게 잡혔던 콜리라는 소년이었다.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어렵사리 설명했다.
“어, 얼마 전까지 같이 일하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실수로 잡혀서 교수대에 걸렸어요. 자, 장례라도 치를 수 있게 필의 시신을 사 주셨으면 하고... 도, 돈은 있어요! 다들 조금씩 모아둔 돈을 내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그리고 엘과 카린은 왜 ‘구해달라’가 아니라 ‘사달라’였던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사형수의 시체는 거래의 대상인 모양이었다. 엘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답도 나오지 않을 문제로 끙끙 앓고 있기 보다는 돌아다니면서 정보나마 좀 모으면서 고민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그리고 설령 해결을 못하더라도, 이런 착한 소녀의 마음을 무의미하게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엘은 소녀가 내민 손의 동전을 쥐면서 말했다.
“갔다 올게.”
“응.”
엘의 말에 카린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그녀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이곳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고 보호해야 했기 때문에 같이 갈 수는 없었다.
칙칙한 건물을 빠져나온 엘은 태양을 잠시 눈부신 듯 바라보다가 정부 행정기관을 찾아 움직였다.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30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트리타스의 시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청에는 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었고, 엘은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서야 관리를 만날 수 있었다.
“시신을 사러 오셨다구요?”
깐깐하게 생긴 중년의 관리가 엘을 바라보며 물었다. 엘은 공손한 태도로 그에게 용건을 전했다.
“예. 사고자 하는 것은 필이라고 하는 소년의 시신입니다. 소매치기로 잡혀 사형을 당한 것으로 압니다. 오늘 오후까지 교수대에 걸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필, 필이라... 이름을 대는 건 드문 경우인데, 의료 관계자 분이 아닌 모양이군요.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관료가 무감동하게 물었다. 사형수의 시신은 흔히 병원이나 대학에서 사러 온다. 공개 해부회 같은 것은 꽤 인기 있는 구경거리이기도 했다. 엘은 조직에서 되찾으러 왔다는 의심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에게 답했다.
“고아원에서 알던 사이입니다. 운이 나쁘게 범죄 조직에 입양되었다고, 합니다. 장례나마 치러주고자 찾으러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뭐, 그런 경우도 있는 거지요.”
엘의 답변에는 당신과 같은 이들이 무능하고 부패하게 굴어서 그런 아이들이 교수대에 걸렸다는 질책도 포함되어 있던 것이었다. 입양자의 신원을 확실하게 체크했더라면 그 아이가 소매치기 따윌 했을 리가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 멍청한, 혹은 딱딱한 관리는 전혀 모르는 듯, 서류만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태도가 멍청해서인지, 정말로 냉담해서인지는 알아내기 힘들었다.
“......”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척이나 화가 난다는 거였다. 엘이 심호흡을 하며 울분을 가라앉히던 도중에서, 관리가 건조한 목소리로 엘에게 충고하듯 설명했다.
“15세 이하 소아의 시신은 어른에 비해 드물게 들어오기 때문에 인기가 좋습니다. 어쩌면 경매에 붙여질지도 모르고, 어쩌면 벌써 팔렸을지도 모릅니다.”
“시체로, 장사를 다 하는군요.”
엘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했다. 돌아온 답변은 사무적이었다.
“범죄를 저질러 국가에 해를 끼쳤으니 그나마라도 해야 하겠지요.”
“그렇군요.”
엘은 대화를 포기하고 관리와 같은 사무적인 말을 되돌렸다. 대화를 하고 있다간 이쪽의 울화가 언제 폭발할지 모를 일이었다. 관리의 대처는 아마 규정에는 어긋나지 않을 것이지만, 무척이나, 무척이나 사람을 분노케 하는 측면이 있었다. 곧 서류를 뒤지던 그는 원하던 자료를 발견한 듯,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다.
“필, 필- 필이라... 아, 여기 있군요.”
“얼마입니까?”
엘은 되도록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얼른 시신의 값을 치르고자 했다. 하지만 관리는 고개를 저으며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유감이지만, 이미 팔렸습니다. 미리 소아의 시신을 예약한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주인이 결정되어 있는 시신인 이상 저희로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엘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구매자를 찾아가 직접 흥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관리는 곤란한 얼굴로, 그러나 입가로는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비굴한 미소를 띄우며 엘에게 답했다.
“그건, 규정상 말해 드릴 수가...”
뇌물을 바라는 것이 틀림없었다. 엘의 뇌리에서 작게 울화가 터져 나왔다. 엘은 몸을 앞으로 길게 쭉 빼내며, 관리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고, 살기에 충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죽고 싶지 않으면 말해, 이 개새끼야.”
“베, 벤 알리입니다.”
평범한 인간이 엘의 말에 담긴 위협에 견뎌낼 리는 없었다. 관리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의자에 주저앉으며 답했다. 공포에 질린 그의 표정을 보며 그나마 쌓였던 울화가 조금 풀림을 느끼며 엘은 여유롭게 물었다.
“벤 알리라, 들어 본 것 같은데... 그래서 주소는?”
“시, 십오 구역 이십 삼번지입니다.”
원하는 대답을 듣고 난 뒤, 엘은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리는 두려운 눈으로 한참동안 멀어지는 엘을 바라봤다.
*의견 주시는 분들은 주로 올라오면 재깍재깍 읽는 분들이어서, 전부를 남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싶어 비밀글로 전환했습니다. 앞으로도 독자 분들의 여러 의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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