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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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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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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860

작성
07.04.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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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1쪽

모더니티의 수도 1(6)

DUMMY

“그러니까, 사장을 만나게 해 달라니까! 우리도 여기서 일하면서 언제든지 우리 아이 무덤 옆에 묻힐 권리를 얻겠다니까!”


“위로금을 전하겠다 하지 않았소! 그만 돌아가 주시오!”


“자식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사람에게 그깟 돈이 무슨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이제껏 모른 척 하다가 선생님이 샀다는 걸 알고 돈 푼이나 뜯어내자고 물고 늘어지는 하이에나 새끼들 주제에!”


“뭐! 이 새끼가 못하는 소리가 없잖아! 니놈 자식이 죽어도 그딴 소리가 나올 것 같으냐! 이 씨부랄놈아!”


상황은 엉망이었다. 다른 말로 그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어려웠다. 공장 사원들이 스크럼블을 짜서 입구를 막고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험상궂은 얼굴의 사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사원들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 그만두세요.”


마차에서 내린 벤이 황급히 그 소란으로 끼어들며 분쟁이 커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러나그의 등장은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켰다. “마침 잘-“선생님! 오시면 안-“선생, 얼굴 좀 봅시-“그러니까 사칙을 바꿔야-“이 것 보슈-“안으로 들어가세요.” 말의 중간을 말이 잡아먹으며 어떤 말도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그것들은 모두 말이었지만 어느 것 하나 말로서 존재하지 못했고, 그 말의 혼합은 단순한 잡음을 벗어날 수 없었다.


벤의 뒤를 따라 마차에서 내려 입구로 걸어오면서 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대체 무슨 소란일까? 이것은 자신이 오늘 이 공장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대접을 받은 것과 관련이 있으리라 예감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언제 폭력사태로 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두 무리의 대치상태.


“응?”


그들의 모습을 무료하게 살피던 엘의 눈이 빛났다. 공장으로 들어가려던 이들 가운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드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꺼내 드는 것은 육중한 쇠가 머리에 붙은 망치였다. 그는 음습한 눈으로 그 망치를 잡아 쥐고는 높이 들어올렸다. 그리고 선동하듯이 외쳤다.


“자식 장례도 못 치르게 한 놈들이 무덤도 같이 못 쓰게 하겠단다! 차라리 다 같이 죽고 말지! 가자!”


그러자 남자들은 와- 하고 함성을 울리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크게 패싸움이 벌어질 판국이었다. 엘은 검을 날렸다. 남자가 들었던 망치의 머리 쇳덩이 부분이 절단 나서 땅으로 떨어졌다. 무쇠를 공간을 격하고 자르는 장면에 장내의 분위기는 일순에 얼어붙었다. 돌진하려던 자들도, 막으려던 자들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엘을 바라봤다. 침묵 가운데, 몇몇은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엘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상하게 할만한 연장을 꺼내들어 무작스럽게 부딪히는 일은 되도록 피해야 하겠지요.”


“그. 그렇군요.”


잠깐의 침묵이 있고,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썰물처럼 우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가면서 그들은 벤을 향해 “돈을 비싸게 주고 어디서 검객을 고용한 모양인데, 오늘은 이렇게 물러가지만 또 찾아올 테니 빨리 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명백한 으름장이었다. 벤은 우울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엘은 그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아닙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벤은 허리를 굽히며 엘에게 감사를 표했다. 엘은 말없이 그의 인사를 받아들였다. 그가 말하려 하지 않는다면, 굳이 들으려 들을 이유는 없었다. 공장 사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벤의 옆으로 와서 답답하게 말했다.


“선생님, 그러니까 신규 사원은 기존 사원의 가족 가운데서만 뽑을 수 있도록 사칙을 정해야 한다고...”


“그 이야기는 이, 이미 결정된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그, 그만두세요!”


어울리지 않게 벤은 버럭 화내며 사원의 말을 잘랐다. 평소 유순한 모습을 보이던 때문에 지금 화를 내는 그의 모습은 한층 무섭고 강건해 보였다. 사원은 찔끔 몸을 좁히더니 뒤로 물러갔다. 벤은 다시 우울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고민이 있는 것 같았다.






“나 왔어.”


엘은 어두운 뒷골목을 지나 카린과 아이들이 기다리는 조직의 지부 거처로 돌아왔다. 그는품에 과일과 빵을 한껏 안고 있었다. 방 안쪽에 있던 카린이 반갑게 나와서, 남편을 맞이하는 부인처럼 엘을 반겼다. 그녀가 나온 방문에서 목만 빼꼼히 내밀고 이쪽을 바라보는 어린 소년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갈망과 호기심이 불안과 뒤섞인 표정이었다.


“아, 어서와. 왜 이렇게 늦었어?”


“음, 과정이 좀 복잡하더라고. 이미 시신이 팔려서 다시 그 시신을 산 사람도 만나야 했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엘이 사온 과일과 빵을 받아들면서 카린이 채근했다.


“시신은 따로 다시 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먼저 산 사람이 이미 묻어주었다더군. 묻어주려고 산거래. 좋은 사람 같더라. 그래서 참배도 간단하게 하고 왔어. 나중에 아이들하고 카린도 한 번 갔다와. 공원 같아서 조용하고 좋은 곳이던걸.”


“헤, 그 사람이 누구야?”


“음, 벤 알리라는 사람이던데, 젊은데 굉장히 부자 같더라. 굉장히 큰 공장을 소유하고 있더라고. 자기 말로는 자기께 아니라고 하는데... 주식이던가? 하여간 부자인건 틀림없는 거 같아.”


엘이 말하자, 카린은 손뼉을 치며 눈을 반짝였다.


“벤 알리? 아, 나 그 사람 알아!”


“네가 어떻게 알아?”


“신문에 나온 사람이니까.”


그리고 두 사람은 방안으로 들어가 얼마 전 샀던 신문을 펼쳤다. 확실히 거기에는 ‘공리주의는 인간을 옷입은 짐승으로 만든다.’라는 이름의 글이 벤 알리라는 이름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엘은 오늘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엘을 향해 쓰게 웃으면서 사람이 옷 입은 짐승은 아니잖습니까. 하고 말했었다. 확실히 그가 이 글을 써낸 사람인 것 같았다. 엘은 사설을 읽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사설이었다. 하지만 오늘 접한 어눌한 그의 화법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정한 글이었다. 거기서 그는 공리주의를, 사실상 아루스 공화국을 지탱하는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아루스는 변형된 공리주의를 기본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한 사람의 여성을 백명의 남자가 강간해 얻는 쾌락이 그 여성의 불행보다 크다면 정의라고 긍정하는 체계다. 그러므로 그것은 정의로운 체계가 아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 아루스는 규칙 공리주의라는 변형된 공리주의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규칙 공리주의란 특정한 사태가 반복적으로 일어날 경우 일회적으로는 전체적으로 이득이 크더라도 장기적으로 파멸적이라면 그 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 명의 여성이 강간당해 강간당하는 자들이 얻는 쾌락이 더 크더라도 그러한 행위가 반복될 경우 사회 전체 시스템이 파괴되어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음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 기본이다. 그러니 아루스의 법이란 바로 공리의 규칙이다.


벤은 이 부분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이러한 규칙 공리주의 위에서 그것을 긍정하는 시스템은 여자가 강간당하고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 강간행위가 보편적이 된다면 문제라고 판단하고, 그래서 막고 있는 것이라는 부분을 비판했다. 그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여성이 강간당하고 있다는 사태 자체가 문제라고, 그것이 문제시 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것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 점을 떠나 전체의 쾌락과 불행의 합산을 정의의 원칙으로 삼을 때, 인간은 단지 욕망하는 생물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그때 인간은 옷 입는 짐승이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짐승조차 욕망에 따르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규칙 공리주의로서 시스템이 운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벤은 긍정했지만, 그는 결코 그러한 시스템을 ‘정의롭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가능하다면 언제든 그것을 벗어날 수 있도록 개개인이 엄격하게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소 어렵지만 엄격하고 열정적인 글이었다. 다 읽고 난 다음 엘은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을 엘은 거의 알지 못한다. 얼마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그간 여행해 본 세상에는 타인을 자신을 위한 도구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작자들로 충만해 있었다. 아직도 창고에 처박혀 끙끙대고 있을 쓰레기들은 그러한 인간궁상의 한 조각밖에 되지 못한다. 옷 입은 짐승. 그래. 세상은 옷 입은 짐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엘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아이들을 이런 사람에게 맡길 수 있다면 무척 좋을텐데.”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카린이 동조했다. 그녀는 벤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런 글을 쓰고, 그 글의 내용을 진실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임에 틀림 없을테고,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신문을 읽던 두 사람의 곁으로 처음 여기 왔을 때 채찍을 맞고 쓰러져 있던 소녀가 다가왔다.


“저기, 언니...”


카린은 얼른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엘은 신기한 것을 바라보는 것 처럼 그녀의 모습을 바라봤다. 과거 시스톤이 말했던 것 처럼 카린은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엘은 괜히 얼굴을 붉혔다.


“아, 미안. 잠깐만 기다려. 여기 오빠가 먹을 거 사왔으니까 나눠줄게.”


“으응, 배, 별로 안 고파요. 괜찮아요. 그보다, 피, 필은 어떻게 됐나요?”


“벌써 벤 알리라는 분이 묻어줬대. 내일 다 같이 무덤에 찾아가보자.”


카린은 친절한 얼굴로 답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뒤가 시끄러웠다. “벤 알리?” “벤?” “아, 그 사람?” 벤 알리의 이름이 나오자 아이들이 이상스럽게 수군거리고 있었다. 왜들 그러는 것일까? 벤 알리는 사회명사인 것 같았지만, 이 아이들과 이렇다할 접점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엘은 의문어린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사설 같은 건 등장하면 원본을 제작하는 걸 기본으로 하지만 글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과감히 간략화!


*각종 의견을 받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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