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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Te(튜트) 님의 서재입니다.

에반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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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Te(튜트)
작품등록일 :
2022.05.13 18:02
최근연재일 :
2022.10.1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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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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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의 끝에서(8)

DUMMY

대체 왜 엘리아가 저기에 서있는 걸까.


그런 의문에 대한 해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또 다시 그녀를 노리는 놈의 발톱을 본 순간 몸을 날려 그녀를 껴안았으니 말이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내 몸은 누가 떠밀기라도 하듯이 빠르게 엘리아를 향해 내달렸고, 그런 내 등 뒤를 스치는 놈의 발톱이라는 정말 간발의 차로 그녀를 껴안아 바닥을 구르는 것에 성공을 할 수 있었다.


“엘리아···,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유진이···.”


지금껏 계속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던 엘리아였지만 내심은 그러지 못했던 걸까···.


내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모습을 보이며 내 품안에서 몸을 떨던 그녀는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 가슴팍을 적셔가는 그녀의 눈물이 느껴지자 문득 들기 시작하는 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라는 생각.


만약 내가 왕태자에게 대들지 않고 그의 비위를 맞췄더라면 우리에게 또 다른 미래가 있었을까?


만약 내가 엘리아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그녀가 이런 일에 휘말리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만약 내가 에아리스 씨의 손을 잡지 않았더라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수많은 가정을 해보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지금 우리의 앞에 놓인 것은 한 없이 죽음에 가까운 갈림길, 그리고 그 선택을 재촉하는 놈의 발톱뿐이었으니까.


우리들을 향해 내려오는 놈의 발톱을 보며 과연 저것을 피하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을지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죽음을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편해질 것이다.


나를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는 이 고통에서도, 또 다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까란 걱정에서도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


“괜찮아, 괜찮으니까 나한테 붙어있어.”


내가 그것을 선택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그런 고민이 든 순간부터 나에겐 살아야한다는 마음이 있었다는 거니까.


비록 그것이 내 자신보다는 내 품안에 있는 그녀의 생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해도 당장의 내게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은 변함이 없다.


너덜거리는 몸에 채찍질을 해 두 다리로 일어서며 내 안에 있는 힘에게 말을 건다.


네가 원해서 내 몸에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생사를 함께한 이상 잠시만이라도 힘을 빌려주지 않겠나며.


그리고 그런 내 물음에 대답을 돌려준 힘을 느끼며 땅을 박차며 뒤쪽을 향해 뛰었다.


평소만큼은 아니지만 놈의 발톱을 피해 우리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준 다리, 한계에 다다랐는지 그런 다리의 감각마저도 미약해져갔지만 아무런 내색 없이 버티며 엘리아를 땅에 내려준다.


“손목은 괜찮아?, 아까 붙잡고 있던 것 같았는데.”


“네···, 유진이야 말로 괜찮은 거예요?”


“아까 말했잖아 괜찮다고.”


나를 걱정해주는 엘리아에게 지어주는 작은 웃음, 이런 작은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라도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제는 정말로 각오를 시간이었다. 나도, 그리고 그녀도.


“엘리아,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유진···?”


“나는 또 다시 저 놈을 잡으러 갈 거야,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이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 또 다른 길이 하나 남아있기는 했다. 이대로 둘이서 도망을 쳐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에서 숨어 지낸다는 길이.


그렇지만 그 길만큼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밝게 빛나야하는 그녀를 깜깜한 어둠속으로 데려가는 짓이었으니까.


그로 인해서 내 목숨을 걸어야하는 도박을 한다하더라도 그것만큼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줘, 그리고 만약 내가···.”


“싫어···, 싫어요···.”


내가 할 말을 알아차렸던 걸까 엘리아가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나를 붙잡는다.


“차라리 저와 같이 가요, 그러면 어떤 결과가 있더라도 함께···.”


“내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잖아, 엘리아.”


“제발···, 유진···.”


“전에 네가 그랬었지?, 내 것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그러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옆에 둬달라고.”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비겁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나는 그녀를 나에게서 떨어트려놓고 싶었다.


“내가 실패하게 될 경우 곧바로 뒤쪽에 매어뒀던 말을 타고 도망쳐, 그리고 본대로 돌아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줘,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나를 잡고 있던 엘리아의 손을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놈을 향해 뛰었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나와 엘리아의 거리, 그래서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엘리아의 대답.


그녀가 정말로 내 말에 따라주고 있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지만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내 안에 있는 결심이 흔들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저 이를 악 다물며 앞을 향해 뛰었다. 그렇게 굴렀음에도 아직 검집의 안에서 자신을 뽑아주는 것을 기다려주고 있던 내 오랜 무기를 뽑아들고는 달렸다.


이 이야기의 끝을 알기 위해서.


나에게 주어진 엔딩 이후의 이야기를 알기 위해서.


모든 것이 끝난 후 내가 엘리아와 다시 마주보며 웃을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멈추는 일 없이 나를 향해 달려든 놈의 품을 향해 뛰어들었고, 나를 할퀴려는 놈의 발톱을 피해 어깨죽지에 검을 꽂아넣으며 그대로 놈의 몸에 매달렸다.


“크아앙!”


“망할 새끼야···, 시끄러우니까 엄살 좀 적당히 부려라.”


시끄럽게 울부짖는 놈의 목청에 그런 중얼거림을 내뱉으며 비어있는 팔을 놈의 입에 가져다 댄다.


그러자 언제 비명을 질렀냐는 듯이 입을 확 다물어버리는 놈, 예상하고 있던 그 모습에 이제야 비로소 놈에 대해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껏 내가 짐승의 본능이라고 생각한 이놈의 빠른 움직임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놈 지금까지 엄살만 부리고 있었으니까.


마치 어린애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살짝만 건드려도 울음을 터트리는 그런 엄살을.


사실 처음부터 이상한 일이긴 했다. 고통에 울부짖던 놈이 팔만 입으로 가져가면 원상태로는 돌아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몸짓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유일한 방법이 막혔다는 것에 대한 초조함과 검은 괴물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았을 거라는 편견이 있었기에.


이렇게 가지고 있던 검을 한 번 찔러 넣기만 하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도 모르고 그렇게나 헛고생을 하고 있었다니···, 바보 같은 내 자신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이제라도 놈의 행동을 하나 이해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그것이 비록 내 팔을 피하는 저 망할 도리질까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닫힌 입이야 놈의 행동거지를 이용해서 비틀어 열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자, 그럼 이제부터 시작할 것은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라는 간단한 싸움.


먼저 움직이는 것은 나로 거두었던 빈손을 다시금 놈의 얼굴을 향해 내민다.


그것이 또 자신의 입으로 올 거라 예상을 했는지 입을 다문 채로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놈, 하지만 나는 그런 놈의 입을 지나쳐 녀석의 코를 손바닥으로 감싸듯이 꽉 붙잡았다.


코를 잡혔음에도 내 팔을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 놈은 계속해서 비명소리도 내지 않으며 입을 열지 않았고, 그 대신에 자신의 팔을 막 휘둘러 나를 떼어내기 위한 몸짓을 이어갔다.


처음으로 휘두른 오른쪽 팔에는 이미 한 번 긁힌 적이 있던 내 왼쪽 어깨가 또 다시, 다음으로 휘둘러진 왼쪽 팔에는 오른쪽 허벅지가 당해버린다.


나를 휩쓰는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듯한 강한 고통, 이미 감각 같은 것은 없어진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놈의 발톱이 지나가는 곳마다 불에 달궈진 통증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놈의 코를 잡고 있는 손을 놓치지 않았다. 내 몸이 넝마가 되고, 정신이 흐릿해짐에도 오히려 남은 힘을 쥐어짜 녀석의 코를 꽉 붙잡았고.


검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지기 직전 내가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이 일어났다.


“크앙!”


거친 숨을 내뱉듯이 강한 입바람과 함께 열리는 놈의 입.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쥐고 있던 손을 놓으며 놈의 입에 내 오른손을 집어넣었고, 그와 동시에 몸 안에 있던 힘을 끌어올리며 잡고 있던 코를 꽉 쥐었다.


아까와는 달리 돌멩이도 부술 수 있는 그 힘에 타격이 들어갔는지 무의식적으로 닫혀가는 놈의 입.


이윽고 내 오른손에 박혀가는 송곳니의 감각에 나는 웃었다. 싸움의 승자는 아무래도 나인 것 같다라며.


그리고 그 순간 흐릿해진 내 정신에 낯선 기억들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거 먹어.’


‘네가 받아온 거잖아, 왜 나한테 줘?’


‘나는 또 받아오면 되니까.’


시작은 더러운 골목길 안에서 누더기 옷을 입은 어떤 여자아이와 먹을 것을 나누는 것부터.


기억의 주인으로 보이는 듯한 남자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여자아이도, 대화를 나누는 골목길도 처음 보는 것이었고.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라는 생각으로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자니 상황은 급격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두 아이가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한 것으로···.


‘꺄악!’


‘무슨 짓이야!’


이어지는 기억은 어딘지 모를 감옥 같은 곳에 갇혀서 고문을 받는 두 아이의 모습.


하지만 그 고문이라는 것이 매우 이상했다. 어떤 건장한 남성이 피가 나고 있는 자신의 팔을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져가고, 입을 꽉 다물고 있던 아이들이 버티지 못해 입을 열면 손바닥으로 아이들을 내리치는.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지만···.


저것과 비슷한 행동을 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방금 전까지 내가 검은 괴물에게 했었던 행동이었으니까.


지금 이 기억이 주인인 남자아이가 검은 괴물로 변한 자라고 가정을 한다면 검은 괴물이 했던 행동은 저 고문에서 각인된 방어본능, 그리고 지금 고문을 하고 있는 이들이 이 아이를 검은 괴물로 바꾼 놈들이라 가정을 한다면 저 고문은 내가 피를 먹이는 것을 막기 위한···.


매우 그럴싸한 가정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애써 부정했다. 내 피로 검은 괴물을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은 피아스 왕국에서도 상층부들만 알고 있는 정보, 그걸 저들이 알고 있다는 것은 주요인물 중 배신자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억지로 생각을 지워내는 동안 또 다시 변해가는 기억.


다음으로 이어진 것은 역시나 처음 보는 숲속에서 줄에 묶인 채로 무릎의 꿀려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처음 보는 남자, 하지만 그런 남자의 손에 들린 약은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먹어라, 그러면 너희는 자유다.’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남자의 검은 속삭임에 의심 없이 약을 받아먹는 아이들.


이윽고 울부짖는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모든 빛이 사라진 듯 깜깜해지고, 다시 빛이 돌아왔을 때 보이는 광경은 검게 변해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남자아이와 그 앞에 온몸에서 피를 쏟아내며 죽어있는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크아아아아앙!’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을 내뱉는 곰···, 아니 남자아이.


한참 동안을 여자아이의 시체를 보며 울부짖던 남자아이는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이들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냄새를 쫓기 시작했고···.


그 냄새는 방금 전까지 우리들이 싸웠던 모르트 협곡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것으로 기억은 끝이 났는지 다시 돌아오는 내 자신의 시야.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내 손을 문 채로 기절을 하고 있는 검은 머리의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이 아이가 나와 싸웠던 검은 괴물이자, 방금 보았던 기억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나는 그 남자아이를 꽉 안아주었고.


그 순간 내 온몸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기억을 잃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내 몸을 타고 일렁거리는 검은 연기와 그런 나를 향해 비명을 지르며 다가오는 엘리아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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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에필로그와 프롤로그 (1부 完) 22.10.13 9 0 13쪽
115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 22.10.12 9 0 14쪽
114 이야기가 끝난 후의 이야기(3) 22.10.11 15 0 13쪽
113 이야기가 끝난 후의 이야기(2) 22.10.10 10 0 12쪽
112 이야기가 끝난 후의 이야기(1) 22.10.07 14 0 14쪽
» 사선의 끝에서(8) 22.10.06 19 0 13쪽
110 사선의 끝에서(7) 22.10.05 13 0 12쪽
109 사선의 끝에서(6) 22.10.04 13 0 12쪽
108 사선의 끝에서(5) 22.10.03 14 0 12쪽
107 사선의 끝에서(4) 22.09.30 14 0 13쪽
106 사선의 끝에서(3) 22.09.29 15 0 12쪽
105 사선의 끝에서(2) 22.09.28 13 0 13쪽
104 사선의 끝에서(1) 22.09.27 14 0 13쪽
103 믿는 것과 믿고 싶은 것(2) 22.09.26 13 0 12쪽
102 믿는 것과 믿고 싶은 것(1) 22.09.23 14 0 12쪽
101 신뢰와 불신 22.09.22 14 0 12쪽
100 사라진 성녀는(6) 22.09.21 14 0 12쪽
99 사라진 성녀는(5) 22.09.20 16 0 12쪽
98 사라진 성녀는(4) 22.09.19 16 0 13쪽
97 사라진 성녀는(3) 22.09.16 17 0 12쪽
96 사라진 성녀는(2) 22.09.15 14 0 12쪽
95 사라진 성녀는(1) 22.09.14 22 0 11쪽
94 확실하게 해두고 싶어서요. 22.09.13 20 0 13쪽
93 보통의 생각이란 건 22.09.12 16 0 12쪽
92 동산 위의 꽃은 지고(8) 22.09.09 17 0 14쪽
91 동산 위의 꽃은 지고(7) 22.09.08 17 0 13쪽
90 동산 위의 꽃은 지고(6) 22.09.07 16 0 13쪽
89 동산 위의 꽃은 지고(5) 22.09.06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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