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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GC

슬기로운 해결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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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WGC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0
최근연재일 :
2022.04.13 10:05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42,488
추천수 :
1,933
글자수 :
1,494,302

작성
22.03.2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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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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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2부: 어제여, 다시 한 번 (6)

DUMMY

레아는 그저 내 곁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꽉 안긴다. 나는 그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구체에서 벗어나 그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석탑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그 자리에 있던 가시탑마저 모습을 감췄다.


치즈도 내 뒤를 따라오고 있을 뿐,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는다. 레아는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난 말이지, 널 처음으로 살려냈을 때부터 줄곧 지켜봤었어. 그리고 내 이름을 지어줬을 때는 짝으로 맺을 생각이었고. 알잖아, 내게는 오직 너 밖에 없었고, 너 역시 나 밖에 없었으니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


레아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다.


""


하지만 역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제 우리 함께 할 때가 온 거야. 그렇지, 내 사랑?"


그래, 어쩌면 그녀는 줄곧 지금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거겠지. 물론 기계 속의 영혼을 이용해서 날 좀 더 빠르게 각성시키려고 한 것도 있겠지만.


결국 그녀의 말대로 오랜 세월 끝에 하나가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줄곧 참아왔던 잠식 증후군도 발현했으니까.


하지만 난 여전히 맥과이어다.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내 몸의 대부분이 레아의 것으로 교체되었지만, 애초에 나는 처음부터 레아의 것이었다.


5살 때 첫 죽음을 맞이했을 때부터, 그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지 미소를 끊이질 않고 있었다.


"자기야, 무슨 일이야? 날 그렇게 보고만 있으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그녀는 언제든지 날 덮칠 것처럼 바라본다. 그 모습을 보고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궁금했던 게 있어. 넌 너의 그 살점으로 이렇게 되살릴 수 있잖아. 그렇다면 아예 새로운 나를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안 그랬던 거야?"


"그치마안... 내게는 맥 너 하나뿐인걸? 그리고 이미 시도해봤어."


"뭐?"


레아는 순식간에 자기 옆에 흐느적거리는 인간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힘없이 축 처져 바닥에 쓰러진다.


그건 나였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모습을 한 인형 같은 것. 내 모습을 이렇게 직접 보니 징그러웠다.


"예전에 내 베개로 사용했던 거야."


설마 예전에 편지에 적혀 있던 베개가 이거였던 건가? 정말이지 넌 내 상상을 뛰어넘는구나, 레아.


아무런 생각 없이 움직여서 그런가, 어느덧 우리는 거대한 산맥에 가로막혔다. 원래는 돌아가려면 해안가 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런 걱정을 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지. 나는 레아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레아, 부탁해."


"물론이지, 자기야."


레아가 그저 손짓 한 번 했을 뿐인데, 우리 앞을 가로막던 산맥 안에서 수많은 가시가 솟아오른다. 그리고 거대한 흙더미들이 하늘 위로 솟구친다.


땅이 요동치면서 길게 뻗어나간 산맥은 순식간에 저 멀리 모습을 감춰간다. 산에서 쏟아지는 흙더미조차 가시들이 그 아래를 가득 메꿔 막아낸다.


하늘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든다. 물론 밤이라 어두웠던 것도 한몫했겠지만.


그리고 가시들은 다시 땅으로 주저앉기 시작했다. 마침내 가시들이 모습을 감췄을 때,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만이 가득했다.


"고마워, 레아."


"아아,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자기야... 좀만 더 해줘어..."


레아는 내 칭찬이 고팠는지 온갖 아양을 부리며 내 팔을 꽉 붙잡는다. 치즈도 뒤에서 지금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입을 열었다.


"굉장하네요. 저도 이전에 산을 뚫고 지나가려고 했었죠.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포기했었습니다."


치즈는 산을 완전히 날려버린 걸 지켜보고는 감탄했다는 듯 말한다. 물론 그녀 역시 레아를 칭찬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레아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치즈."


"네, 주인님."


"저기서 날 얼마나 기다렸지?"


"8개월하고도 20일을 기다렸었습니다. 석탑 앞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죠."


고작 몇 시간도 안 됐던 거 같은데 아무리 빠르게 100층에 도달했다고 해도 여기서의 시간은 꽤나 많이 지났나 보구나.


"치즈, 한 번 더 질문할게. 넌 내가 주인처럼 보여?"


치즈는 내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고는 묵묵히 답한다.


"네, 제 주인님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내가... 맥과이어처럼 보여...?"


"네, 영락없는 맥과이어 주인님이십니다."


틀렸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단언하면 대답할 수가 없잖아. 나는 그 때의 나와는 다르다고.


아니, 어쩌면 치즈의 말이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결국 본질은 같으니까.


"자기야, 저 여자랑 대화 그만하고 나만 바라봐주라, 응? 여기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지쳤는데 다른데 정신 팔면 어쩌자는 거야..."


"그래, 미안해. 치즈, 들었지? 당분간 내 뒤만 따라와 줘. 부탁할게."


치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묵히 내 뒤를 따른다. 우리는 텅 빈 평원을 지나 앞으로 나아갔다.


* * *


"자기야, 여기가 어딘지 알아?"


우리는 그저 레아가 가자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레아가 입을 연 것이다.


"포스보 자유도시를 지났었으니까... 글쎄. 모르겠는데."

어제 (6-1).jpg

우리는 포스보 자유도시에 들르지 않고 그저 아래쪽으로 걷기만 했다. 원래는 레아가 눈앞에 보이는 성들도 다 부수면서 지나가려고 했지만, 내가 그러지 말자고 명령했었다.


"레아 마을이라고 하더라고. 웃기지 않아? 내 이름을 쓴 마을이 이런 곳에 있다니!"


물론 우연에 불과하겠지. 실제로 레아는 Leah를 사용했지만, 저 레아는 R로 시작하는 이곳 언어의 마을이 분명하다.


하지만 발음이 비슷하다는 걸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는 마을을 가만히 응시한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레아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짓한다.


그러자 마을 너머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온갖 가시가 마을을 뒤덮더니 이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침묵만이 가득 메웠다.


"가자, 이제."


레아는 만족했다는 듯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고, 나 역시 그녀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녀가 싫어하던 레아 마을의 참혹한 진실이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가시가 마을을 뒤덮었고, 여기저기서 끅끅대는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마을을 뒤로 한 채로 우리는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 때, 저 멀리서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산 앞에서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꽤나 많은 군대가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공공의 적, 멸망을 부르는 자, 맥과이어는 들어라! 더 이상 아스트리아 대륙에 발을 딛지 못할 것이다. 당장 떠나도록!"


기사는 나름 용맹스럽게 우릴 향해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게, 자기 뒤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가득 서 있었고, 우리는 고작 3명이 전부였다.


"주인님, 처리할까요?"


"됐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자."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다른 여자들도 내 뒤를 따른다. 기사는 묵묵히 다가오는 우릴 보며 다시 한 번 소리친다.


"그만! 그 이상 접근하지 마라! 너희들은 공공의 적으로써 아스트리아 대륙을 향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아으아아하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아악!!"


기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뒤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한다. 기사가 당황하며 뒤를 돌아봤을 때, 수많은 병사들은 이미 가시에 박힌 뒤였다.


수천에 가까운 병력이 한 번에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실로 엄청났다. 고통에 겨운 비명이 천지를 뒤흔들고 있었고, 기사는 이를 보고는 공포에 질려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사... 사... 살려주어으윽..."

"깍... 끅... 끅... 커흐윽..."


병사들은 가지각색으로 가시에 박힌 채로 바동거렸지만,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오히려 독이 된 셈이었다. 그리고 축 늘어지면서 갑옷 소리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앞을 봤을 때, 우리는 이미 그의 눈앞에서 여전히 걷고 있었다. 기사는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우리가 떠나는 걸 가만히 지켜만 봤다.


* * *


"커흑!! 께윽... 껙...!"


목에 박힌 가시를 뽑으려고 혀를 내밀며 손짓을 하지만, 이후 날아가는 가시를 이마에 정통으로 맞고 그대로 뒤로 고꾸라진다.


수많은 산맥과 숲을 뚫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는데도 우릴 노리는 자들은 여전히 들끓었다. 심지어 눈앞에 쓰러진 저 놈은 타 차원에서 소문을 듣고 온 녀석이었다.


확실히 공공의 적이라는 이름의 유명세는 실로 엄청났다. 온 왕국에서 우릴 잡기 위해 지금까지 막았던 텔레포트 마법도 거침없이 썼을 정도니까.


심지어 남부의 비행선까지 용병으로 고용했고, 엘프나 마족들도 우리에게 대항하기 위해 연합을 꾸릴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우릴 찾아왔을 때, 단 한 명도 살아남질 못했다. 오죽했으면 이전에 한 번 살려준 기사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사라며 소문이 자자할 정도겠는가.


고르둑 왕국에선 우리가 근처에 다다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피난하기 바빴다. 들리는 소문만 해도 수만의 병사가 아무런 힘도 못 쓰고 다 죽임을 당했으니 겁이 나는 게 당연한 것이다.


성 근처만 지났을 뿐인데 저 성에는 아무도 없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저 고르둑 왕국 깃발만이 흩날리고, 동물들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그래도 여전히 우릴 막으려고 차원문을 눈앞에서 타고 온 녀석들도 있었다. 원하는 건 다 줄 테니 자기 팀에 합류하라는 녀석도 있었다.


물론 그런 녀석들에게 그저 레아의 가시를 선물해주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자기들도 알아서 아무런 말도 못할 뿐더러,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했으니까.


우리가 지나간 길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쌓여있었다. 그래서인지 고르둑 왕국을 거의 지나칠 무렵에는 가끔씩 찾아오는 능력자 말고는 거의 없었다.

어제 (6-2).jpg

"레아,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 거야?"


다시 산맥 하나가 우릴 가로막는다. 이번에 레아는 거대한 가시를 만들어 마치 드릴처럼 산맥을 일직선으로 뚫기 시작했다.


"응?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자기야. 그러니까 좀만 힘내자고."


"그냥 떠날 거면 차원문을 타고 가도 되지 않나 싶은데."


살육이라면 지겨울 정도로 봤는데. 그러나 레아는 지금 순간 정도는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았는지 그저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좋아한다는데 나라고 말릴 필요는 없었다. 치즈는 여전히 우리 뒤를 묵묵히 따라오고 있었고.


그나저나 이렇게 아스트리아 대륙을 횡단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그녀는 줄곧 나와 하나가 되었다며 좋아하지만, 정작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자, 이제 가자."


레아는 나를 향해 하이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고르둑 왕국을 벗어나 산맥이었던 곳까지 지나친다. 굳이 이렇게 산맥을 뚫고 지나갈 필요가 있었나 싶었지만, 그래도 산을 뚫어버리는 건 생각보다 멋있긴 하다.


한참을 걸은 끝에 마침내 산맥을 벗어나 기나긴 평원이 펼쳐진다. 물론 그 평원 너머에도 산맥이 이어져 있었고, 숲이 길게 늘어져 있다.


우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숲에 들어섰을 때,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내 눈앞에서 들려왔다.


"기다렸어, 맥과이어."

어제 (6-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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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3부 Epilogue: 레벨 3? 22.04.12 79 6 12쪽
268 3부 Epilogue: 레벨 2 22.04.11 112 6 13쪽
267 3부: 현자의 탑 22.04.08 94 5 13쪽
266 3부: 빌디어의 성 22.04.07 94 6 12쪽
265 3부: 흑요석 성 22.04.06 105 6 12쪽
264 3부: 에델리우스 성당 22.04.05 105 6 12쪽
263 3부: 순환의 산 22.04.04 89 5 12쪽
262 3부: 무인 초원 지대 22.04.01 87 6 12쪽
261 3부: 나르칸 늪지대 22.03.31 117 6 12쪽
260 3부: 허무의 도시 22.03.30 96 6 12쪽
259 3부: 인고의 숲 22.03.29 89 6 12쪽
258 3부 Prologue: 해결사 22.03.28 81 6 2쪽
257 2부 Epilogue: 잠식의 끝에서 22.03.22 85 6 12쪽
» 2부: 어제여, 다시 한 번 (6) 22.03.21 9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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