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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GC

슬기로운 해결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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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WGC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0
최근연재일 :
2022.04.13 10:05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42,489
추천수 :
1,933
글자수 :
1,494,302

작성
22.04.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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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추천
6
글자
12쪽

3부: 에델리우스 성당

DUMMY

그들은 원래 북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푸른 마벽이 그들을 막고 있었고, 하는 수 없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남쪽에는 뭐가 있지?"


"어음... 저길 봐! 저 큰 산이 한때 용암을 내뿜던 화산이었대."


체이스가 가리킨 곳에는 화산의 모양을 한,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불을 내뿜지 못하는 죽어있는 산이 높게 솟아올라 있다.

사화산.png

그러나 레벨은 신통치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글쎄, 아까 순환의 산이 훨씬 더 멋있고 재밌는 산인 거 같은데."


체이스는 이를 듣고는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이었다.


"전부터 말했지만 나는 허무의 도시 근방에서만 활동했다고. 저 산을 넘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단 말이야."


"하지만 내 덕에 넘어왔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 그나저나 정작 처음 온 곳 치고는 별다를 바가 없는데."


사실 대륙의 동쪽과 서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도 동쪽과 마찬가지로 깊게 파인 자국들과 뒤틀린 지형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무튼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너는 환생을 할 수 있다... 이건가?"


레벨은 체이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남쪽으로 향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과거에서 지금으로 넘어오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셈이었다.


물론 체이스는 어림짐작만 할 뿐, 실제로 이런 능력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 쉽게 이해가 되진 않았다.


"사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단편적인 뭔가가 아직도 남아있어. 한때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로 환생한 적 있었어. 사고 때문에 일찍 죽었거든.

그 때는 내가 원하는 시점의 환생도 가능했던 거 같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몸은 온전해도 정신이란 게 피폐해지기 마련이더라.

어쩔 땐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택하기도 하고, 일부러 자살을 여럿 시도했었어. 하지만 이 능력은 마치 저주마냥 끝나질 않더라고.

그래서 점점 단순하게 생각하게 됐어. 미안한 일이 있으면 미안하다 말하고, 눈앞에 적이 있으면 쓰러뜨리고.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단순히 살아가면 그것대로 버틸 만했으니까. 그러다가 너를 만나게 된 거야."


"워후, 뭔가 되게 엄청 생략된 거 같네."


그 말을 들은 레벨은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친구가 있었지. 맥과이어. 그 친구를 처음 봤을 때, 마치 방황하던 날 보던 것 같았어. 흐리멍덩한 눈빛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친구.

맥과이어를 처음 만났을 시절은 이제 거의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했어. 그 친구와 함께 했을 때, 그 죽어가는 눈빛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어.

그리고 그 녀석의 눈빛을 다시 보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온 거라고 말할 수 있겠네."


"지금 말만 들으면 단순한 녀석은 아닌 거 같은데? 이렇게 친구를 생각해주는데 단순한 녀석은 절대 그렇게 못한다고."


"그런가?"


"그럼, 물론이고말고. 널 처음 만났을 때도 단순한 녀석이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그건 내가 일부러 그런 거거든. 맥과 함께일 때는 단순하게 살아도 그저 좋았으니까. 그런데 오히려 그 단순함 때문에 내가 맥과이어를..."


레벨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체이스는 그런 그를 기다려줬고, 레벨은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다시 화제를 돌리자면 맥과이어 그 녀석은 더 이상 그 눈빛으로 돌아오지 못했어. 나는 그저 그 눈빛을 되찾아주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것뿐이야."


"이야, 그 맥과이어라는 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나 본데?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겠어?"


체이스는 농담조로 말했지만 레벨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생각에 빠진다.


"사랑이라... 뭐, 틀린 말은 아니다만 동료애라고 봐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레벨은 체이스의 말을 단순히 이성 혹은 동성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으로만 떠올린 듯싶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남쪽으로 향하는 이유가 뭐야?"


"저 푸른 마벽을 뚫고 가야 하지 않겠어? 그러려면 최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게 좋을 테고. 그리고 지도가 틀리지 않았다면 남쪽에는 성이 있을 거야."


"성? 사람들이 사는 건가."


"사람이라기보다는 낙인찍힌 자들이 사는 곳이지."


낙인찍힌 자. 원한이나 저주로 인해 죽지도 못하고 정신을 잃은 채로 방황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건축물 근방에 도달하자 낙인찍힌 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입을 벌린 채로 거친 숨소리만 내쉬며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5.jpg

그들이 하는 행동이라고는 그저 이것이 전부였다. 살아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흉한 모습이라 사실상 걸어 다니는 시체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레벨은 이들을 보고 마치 자신도 그들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때 단순하게 살아갔던 시절에 과연 이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었을까.


만약 맥과이어와 함께 했을 때, 적어도 자신이 평소보다 달리 생각이란 걸 했더라면 그는 맥과이어를 잃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아아... 진작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레벨은 어느덧 자신을 낙인찍힌 자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온갖 후회에 가득 사무친 채로 고개를 흔든다.


"미안해... 미안해, 맥과이어... 너의 꿈을 이루려고 노력이라도 했더라면... 나는 그저 멍청하게 가만히 있었어... 그리고 이런 결과를 맺게 되었고... 하아..."


"어이, 어이! 정신 차려! 이런..."


레벨은 옆에서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체이스를 무시했다. 아니, 그의 귀에는 체이스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낙인찍힌 자들의 숨소리가 레벨의 귀에 맴돌고 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잘못을 점점 자각하게 되는 것만 같았다.


만약 맥과이어를 떠나지 않고 곁에 남았었더라면.

만약 맥과이어가 레아와 만나지 않게 노력이라도 했더라면.

만약 맥과이어가 죽지 않게 그를 보호해줬었더라면.

만약 맥과이어의 꿈을 이루게끔 도와줬었더라면.


만약, 만약, 만약!


맥과이어를 조금이나마 더 생각해줬더라면.


"크허어억!!"


검 한 자루가 레벨의 어깨를 꿰뚫고 들어왔고, 마침내 레벨은 정신을 차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낙인찍힌 자들이 주변에 가득 메우며 괴상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미친 새끼야, 정신 차리라니까!"


레벨을 향해 검을 찌른 건 다름 아닌 체이스였다. 레벨은 에겐스 병을 꺼내들어 어깨를 향해 뿌렸다.


"찌른 건 미안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 주문에 휘말려 있었을 거라고. 알아들어? 너 지금 정신 나가 있었다고!"

에델리우스 성당.png

어느덧 두 사람은 성당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레벨은 이 먼 거리를 언제 왔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낙인찍힌 자들이 그를 향해 달려든다.


손에서 재빠르게 푸른빛을 형성시켜 방망이를 꺼내든다. 그리고 낙인찍힌 자들을 향해 있는 힘껏 휘두르자, 그들은 순식간에 으깨지며 날아간다.


저 멀리서 선교사가 깊은 미소를 지으며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도문을 낙인찍힌 자들이 외우기 시작했고, 다시 레벨의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레벨은 한 번 당했으면 당했지, 두 번 당할 사람이 아녔다. 레벨은 오히려 자기를 속였다는 생각에 분노하며 더욱 빠르게 낙인찍힌 자들을 향해 방망이를 휘둘렀다.


체이스도 마법과 검을 휘두르며 낙인찍힌 자들을 하나씩 처리해나갔다. 레벨은 어느덧 선교사 앞까지 달려 나가 방망이를 내리 찍었다.


깡!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선교사의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레벨이 다시 한 번 방망이를 휘두르자 선교사의 머리는 저 멀리 날아가며 목에서 피가 솟구친다.


그리고 주변에 선교사들이 둘 정도 더 남아있었다. 레벨은 곧장 발돋움을 하며 하늘로 뛰어올라 선교사를 향해 방망이를 내리찍었다.


순식간에 곤죽이 된 선교사. 마지막으로 남은 선교사가 주문을 외우자, 손에서 하얀 구체들이 생성되며 레벨을 향해 날아간다.


레벨은 처음 공격을 회피하고는 두 번째로 날아오는 구체를 마치 야구공을 다루듯 있는 힘껏 휘둘렀다. 그리고 그 구체는 곧바로 반사되어 선교사의 심장을 꿰뚫었다.


마침내 선교사들이 쓰러지자 낙인찍힌 자들은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레벨은 숨을 깊게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우... 후우... 후우..."


"굉장한데, 레벨. 솔직히 네 실력이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체이스는 상황이 끝났다고 판단하며 레벨에게 다가갔다. 그들을 공격한 선교사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 찌른 건 미안했어...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오히려 고맙지. 덕분에 정신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하핫, 사실 좀 과격하긴 했지. 근데 네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까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체이스는 여전히 레벨의 어깨를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에겐스 병을 뿌려 검이 파고든 흔적 말고는 멀쩡했다.


"그나저나 이 성당은 대체 뭐 하는 곳이지?"


"책에서 읽었는데 낙인찍힌 자들을 다스리는 그런 곳이었던 거 같아. 한때는 낙인찍힌 자들을 올바른 길로 유도하는 일을 했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들도 부패하고 지금처럼 악용하고 있는 거지."


체이스는 쓰러져 있는 선교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성당 쪽에서 기도문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놈들이 더 올 수도 있겠어. 일단 여길 벗어나자."


체이스는 혹시 레벨이 한 번 더 당할까봐 그의 손을 붙들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체이스가 예상한 대로 성당에서는 선교사들과 성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기사는 풀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했고, 검에서 밝은 빛이 일렁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주문을 외우자 낙인찍힌 자들은 고통스럽다는 듯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대항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레벨과 체이스는 멀찍이서 숨어 이 광경을 잠시 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성직자들은 다시 낙인찍힌 자들을 조종했고, 성기사는 다시 성당으로 되돌아갔다.


"휴우우... 조금만 늦었으면 저놈들이랑 다시 싸웠을 거야. 저런 녀석들과 싸우는 건 자살행위라니까."


"뭐, 못 싸울 건 아닌데."


"레벨, 네가 센 건 알지만 때로는 피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야. 특히나 저 성기사에게 상처라도 입었다간 에겐스 병으로도 치유 못할 수도 있다고."


레벨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결국 다른 선교사들에게 조종당하는 낙인찍힌 자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아까 생각했던 후회 틀리진 않았어."


"뭐?"


"정신 공격을 당하면서 완전히 틀린 생각만 한 건 아니라고.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맥과이어를 위해 생각이라도 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았겠지."


"어이, 너 다시 정신 공격당하고 있는 거야?"


"아얏!"


체이스는 주먹으로 레벨의 이마를 세게 친다. 레벨은 그 공격을 맞고 머리를 문질렀고, 체이스는 그런 그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만약이라고 가정하지 마. 어차피 이미 늦은 거잖아. 앞으로 더 잘할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지,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래, 네 말이 맞아... 내가 잘못했어."


"잘못을 알았으면 됐고. 어쨌든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필요는 없어. 이제 움직이자."


레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뒤로 빠져 체이스를 뒤따라갔다. 그는 마지막으로 멀어져 가는 에델리우스 성당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앞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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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3부 Epilogue: 레벨 137 22.04.13 141 5 12쪽
269 3부 Epilogue: 레벨 3? 22.04.12 79 6 12쪽
268 3부 Epilogue: 레벨 2 22.04.11 112 6 13쪽
267 3부: 현자의 탑 22.04.08 94 5 13쪽
266 3부: 빌디어의 성 22.04.07 94 6 12쪽
265 3부: 흑요석 성 22.04.06 105 6 12쪽
» 3부: 에델리우스 성당 22.04.05 106 6 12쪽
263 3부: 순환의 산 22.04.04 89 5 12쪽
262 3부: 무인 초원 지대 22.04.01 87 6 12쪽
261 3부: 나르칸 늪지대 22.03.31 117 6 12쪽
260 3부: 허무의 도시 22.03.30 96 6 12쪽
259 3부: 인고의 숲 22.03.29 89 6 12쪽
258 3부 Prologue: 해결사 22.03.28 81 6 2쪽
257 2부 Epilogue: 잠식의 끝에서 22.03.22 85 6 12쪽
256 2부: 어제여, 다시 한 번 (6) 22.03.21 9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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