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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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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9 07:34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187
추천수 :
153
글자수 :
231,435

작성
24.05.18 02:35
조회
189
추천
3
글자
12쪽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의 방문

DUMMY

"많이도 벴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크리스토퍼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나무 밑동이만 남겨진 게 황량해 보이기도 했고,

나뭇가지로 가려졌던 자리에 푸른 하늘이 대신한 모습이 시원스럽기까지 했다.


"이제 나무는 그만 베고 밑동이 제거에 들어가죠!"


"예!"


헨릭의 지시에 따라 장정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그들이 나무 밑동이를 삽을 이용해 뽑아내고, 그 자리를 다시 흙으로 덮는다.

그런 식으로 숲이었던 곳을 조금씩 개발이 가능한 토지로 바꾸어간다.


"어이, 헨릭."


주군의 부름에 헨릭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이쪽으로 다가온다.


"부르셨습니까?"


"여기에 무슨 시설이 들어서는지 궁금해서."


"우선 에뮬라를 사육할 시설부터 설치할 예정입니다."


에뮬라 사육 시설이라.

그 말을 듣고 숲에서 그냥 토지로 바뀌어가는 곳을 다시 바라본다.

이 정도 면적이면 24마리의 새끼 애뮬라가 성체가 되어서도 여유롭게 지낼 수 있을 터.

아니, 그걸 제외하고도 남는다.


"그 외에는?"


"아직 미정입니다."


"정해진 것도 없는데, 이만큼의 면적을 확보했다고?"


"어차피 할 거라면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보좌관의 타당한 주장에도 크리스토퍼의 의구심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분명 뭔가 계획이 있을 텐데.


"전하야말로 어떠십니까?"


본인의 계획을 내비치지 않는 대신, 헨릭은 주군의 의사를 묻는다.


"뭔가 계획하고 계신 게 있으시다면 최우선으로 실행하겠습니다."


"딱히···."


"전하!"


딱히 염두에 둔 건 없다고 말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이쪽으로 달려온다.


"빈스? 무슨 일인가?"


"지, 지금 아르크로 마차 여러 대가 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보고를 받은 크리스토퍼도 깜짝 놀란다.

상단조차 방문하지 않는 이곳 아르크에 외부인이 온다니.

그것도 마차 하나가 아니라 여러 대?


"아, 역시나 왔군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주군과는 달리 헨릭은 무척 느긋해 보인다.


"도착하다니? 뭐가?"


"전에 전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무기 디자인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그게 뭐···. 서, 설마!"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느껴진다.


"그 얘기를 황실에 한 건가?"


"그렇습니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시길."


헨릭이 안경을 고쳐 쓰고는 말을 이어간다.


"매달 발리엔 전하께 전하와 슈레인 지방의 상황을 전해드리고 있으니까요."


둘째 형에게 매달 보고서를 올리고 있다는 말을 저리 태연하게 하다니.

이래서 방심할 수 없다니까.

보좌관에 대한 짜증을 애써 억누르기 위해 뒤통수를 벅벅 긁어댄다.


"일단 손님부터 맞아야겠군."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빈스, 일단 주민들에게 입구로 모이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몇 명이 왔는지 파악하도록."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쪽 의도를 눈치 못 챈 빈스가 당혹감을 드러낸다.


"그래야 손님들이 머물 숙소를 준비하지 않겠나."


"앗! 그런 의도셨군요."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빈스의 표정에서 불안감이 조금 가신다.

그 모습에 크리스토퍼도 안심할 수 있었다.


"바로 주민들을 모으겠습니다."


급한 상황인 걸 알기에 빈스는 바로 자리를 떠난다.


"그대들도 지금 작업을 중단하고, 입구로 모이도록!"


"예!"


나무 밑동이 제거 작업을 하던 장정들 역시 삽을 내려놓고는 이동하기 시작한다.


"전하께서도 명령 내리시는 일에 많이 익숙해지셨군요."


옆에서 지켜보던 헨릭이 만족스러워 한다.


"그런가?"


잠시 황궁에서 지낼 때를 떠올린다.

그때는 명령하긴커녕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그래서 간단한 일은 스스로 하곤 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무릇 누군가의 위에 서기 위해선···."


"그 누군가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전에 네가 말했었지."


"기억하고 계셨군요."


"어떻게 잊겠어?"


자신의 보좌관으로 임명된 그 날부터 질리게 들어온 말인데.

그렇게 빈정거리고 싶은 걸 겨우 참고는 아르크의 입구로 향한다.


"오셨습니까?"


그곳에는 이미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거기에는 크리스토퍼의 지시를 받았던 빈스도 포함된다.


"저기 온다!"


한 주민이 길 너머를 가리키며 외친다.

그 끝에서 커다란 마차 여러 대가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마차를 끄는 말들의 머리에 태양 자수의 천이 씌워져 있다.

한눈에 봐도 황실 소속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 어떻게 하지?"


"환영한다는 의미로 꽃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냐?"


"다들 집중하세요!"


손님이 온다는 사실에 안절부절못하는 주민들.

그들을 헨릭이 큰 목소리로 통제한다.


"저들이 황실에서 보내긴 했습니다만, 정식으로 방문 수속을 밟은 건 아닙니다."


초대도 받지 않은 손님을 크게 환영해줄 필요는 없다.

그리 말하자 주민들의 소란도 잦아든다.


"그래도 무례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그렇게 헨릭이 말을 마무리할 때쯤, 가장 앞서던 마차가 입구 앞에 멈춰 선다.

서둘러 내린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자, 그 안에서 한 명의 청년이 내려온다.


"윽!"


그 얼굴을 본 크리스토퍼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크리스토퍼 전하."


이쪽의 표정이 어찌 되든 상관 없다는 듯이 청년이 정중하게 예를 갖춘다.

푸른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에 같은 색의 눈동자.

마치 바다를 연상시키는 미남이다.


"건강하신 거 같아서 안심이군요."


"네가 내 건강을 신경 쓴다는 건 도저히 믿기지 않는데."


"얼굴을 보자마자 하는 말치곤 너무 냉정하지 않습니까?"


서운하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것치곤 싱글벙글거리다니.

같잖긴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낼 필요는 없다.


"그보다 카밀, 네가 여기까진 웬일이지? 네 상사는 둘째 형님이잖아."


"그 둘째 형님이신 발리엔 전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카밀이라 불린 청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매우 진지해진다.


"당분간 전하를 보필해서 슈레인 지방을 발전시키라고 하시더군요."


"둘째 형님이? 너한테 그런 명령을 내리셨다고? 왜?"


"동생을 걱정하는 형의 마음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설득력 없는 소리할 거면 당장 돌아가."


기분이 차게 가라앉는다.

뭐가 어쩌고 저째?

헬레니운 제국의 최고 냉혈한으로 유명한 발리엔 이테리움 헬레네가 동생을 걱정한다고?

바보 동생이 멍청한 짓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닌지를 걱정하겠지!


"거 참."


크리스토퍼의 냉랭한 태도에 카밀도 꽤 난감해하는 눈치다.


"디르케 백작."


어색해진 분위기를 타파하려는 듯 헨릭이 나선다.


"인사는 이 정도로 하고, 뭘 가져오셨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그제야 잊고 있던 걸 깨달은 카밀이 서두르기 시작한다.


"전에 파셀 보좌관이 보낸 편지에 장비 제작으로 슈레인을 발전시킨다고 적혀 있었더군요."


"뭐, 그런 셈이지."


크리스토퍼는 어중간하게 맞장구친다.

헌터들이 몬스터를 사냥해 얻은 소재로 무기를 만들어주고 수수료를 얻는다.

이게 정확한 계획이지만, 아직 거기까지 알려줄 생각은 없다.


"특히 장비 디자인에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발리엔 전하께서 황도의 무기 장인을 여러 명 파견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하는 사이, 카밀의 뒤로 남성 여럿이 줄을 맞춰 선다.

하나 같이 우락부락한 체격인 게 딱 봐도 대장간에서 일하는 사람 같다.


"형님의 배려에 감사하긴 한데."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크리스토퍼의 표정에는 못마땅함이 가득하다.


"아쉽게도 이곳 아르크에 대장간이라고는 단 하나 뿐이라서."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밀이 자신만만하게 말을 받아친다.


"무기 장인 외에 대장간 설비를 맡을 인부도 충분히 데려왔습니다."


"뭐라고?"


서둘러 몸을 빼서 카밀 뒤를 살핀다.

하지만 보이는 거라곤 우락부락한 무기 장인들 뿐.


"좀 비켜보게. 뒤가 안 보이잖나."


"시, 실례했습니다!"


당황한 무기 장인들이 물러서니 그제야 뒤쪽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들만큼이나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과 함께 마차에 실린 각종 장비들이 보인다.


"이게 다···."


뭔가 싶었다.

너무 많이 보냈잖아.

동시에 하나의 의문이 마음 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한다.

작은 형이 이렇게까지 챙겨준 적이 있던가?

매일 눈이 마주치자마자 제대로 하라며 잔소리했던 기억 밖에 안 나는데.


"전하의 활약에 발리엔 전하는 물론, 황제 폐하께서도 무척 만족하셨습니다."


둘째 형의 의도가 뭔지 고민하던 크리스토퍼의 귀에 카밀의 신이 난 목소리가 닿는다.


"특히 몬스터 소재를 이용한 장비 제작으로 발전 방향성을 잡았다는 소식을 접하시곤 무척 기뻐하시더군요."


슈레인 지방의 발전이 더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몬스터다.

셀 수도 없는 많은 몬스터를 토벌하려면 헬레니움 제국의 군사력 전부를 쏟아내야 할 정도다.

그런데 새로운 영주가 된 크리스토퍼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다름 아닌 몬스터 소재의 장비를 만든다는 계획으로.


"그건 내가 계획한 게 아닌···."


"역시 황실에서도 전하의 계획을 인정하셨군요."


크리스토퍼의 정정하려는 말을 계획을 발안한 장본인이 막아버린다.


"게다가 그 계획을 돕기 위해 이렇게 대규모 인원까지 파견해주시다니."


헨릭이 감격했다는 듯이 두 손을 꼭 모은다.


"참, 파셀 보좌관."


황도 쪽을 향해 기도하던 헨릭에게 카밀이 말을 건다.


"황제 폐하께서 그대에게 전언을 보내셨네."


"제게 말입니까?"


"음, '못난 동생을 잘 이끌어줘서 정말 고맙네'라고 하시던데."


그 말에 헨릭이 어떠한 답도 하지 않는다.

그저 눈을 반짝거리기만 할 뿐.

보좌관의 그런 표정은 처음이라 크리스토퍼로선 신기하기만 했다.


"그럼 전하, 저희는 어디서 머물면 될까요?"


"저, 디르케 백작님이라 하셨습니까?"


머물 곳을 묻는 카밀을 향해 조나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긴 여행에 지치신 분께 이리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째서지?"


“네가 연락도 없이 들이닥쳐서 이쪽은 아무 준비도 못했다고.”


"아하! 그런 거였습니까?"


크리스토퍼의 설명에 카밀이 미처 몰랐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는 조나단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네. 그럼 준비되면 바로 알려주게."


"물론입니다. 자, 다들 서두르라고!"


조나단이 다급하게 주민들을 이끌고 숙소 준비에 나선다.


"전 잠시 도착한 인부와 장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헨릭 역시 병사들과 함께 일렬로 세워진 마차 무리로 향한다.


"기다리는 동안, 전하의 저택에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그건 상관 없지만, 먼저 내 질문에 답부터 하라고."


"무엇인지요?"


"넌 여기 왜 온 거야?"


"···예?"


질문이 이해되지 않았는지, 카밀이 눈만 깜빡거린다.


"아핫! 전하도 참."


그리고는 왜 그러냐는 듯이 손을 내젓는다.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 발리엔 전하의 명을 받고···."


"둘째 형님이 널 이 먼 곳까지 보낸 것 자체가 이해 안 된다고."


너스레 떠는 카밀을 대하는 크리스토퍼의 태도가 냉랭하다.

그 모습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카밀 역시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이것부터 묻지. 여기에 온 건 오로지 형님의 뜻이야? 아니면 네가 자원한 거야?"


"후자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굳이?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무시하기로 한다.


"그럼 내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겠군."


크리스토퍼가 기억하는 카밀은 무척 계산적이다.

거기에 헨릭에 뒤지지 않을 만큼 두뇌 회전도 빠르다.

그런 사람이 고작 상관에게 잘 보인다는 이유로 이 먼 지방까지 올 리가 없을 터.

그 이유를 듣기 위해 크리스토퍼는 가늘게 뜬 눈으로 카밀을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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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발전 방향을 제안 받다 24.05.12 222 7 11쪽
6 장비를 맞춰야 하는 명분 24.05.11 223 7 11쪽
5 또 다시 토벌전 +1 24.05.10 248 6 11쪽
4 토벌 이후의 고민 24.05.09 266 9 13쪽
3 첫 번째 탐색 24.05.09 293 8 12쪽
2 그가 이곳에 온 이유 24.05.08 333 11 11쪽
1 선황의 게으른 막내아들이 황궁을 떠나게 된 이유 24.05.08 410 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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