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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9 07:34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206
추천수 :
153
글자수 :
231,435

작성
24.05.09 21:24
조회
266
추천
9
글자
13쪽

토벌 이후의 고민

DUMMY

"으헉?!"


"저게 대체 뭐야?"


처음으로 영지 탐색에 나선 황자 일행.

그들이 걱정되어 마중 나온 조나단과 아르크 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주변 좀 살피겠다고 나간 사람들이 수레에 뭔가를 싣고 왔으니까.

그게 커다란 도마뱀의 사체라는 걸 알고는 경악을 넘어 공포에 질린다.


"이, 이게 무슨···."


"조나단 씨."


어쩔 줄 몰라 하는 조나단에게 헨릭이 다가온다.


"이곳에도 도축업자가 있겠지요?"


"물론입니다만, 설마 저걸···."


"그럼 그를 불러다가 저걸 도축했으면 하는데, 어렵다고 보십니까?"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조나단의 시선이 수레 위의 도마뱀 사체로 향한다.

저런 걸 도축해서 어디에 써먹게?

이렇게 말하고픈 기색이 역력하다.


"딱히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걸 읽어낸 헨릭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뭐, 슈레인의 새 영주의 첫 전리품을 그냥 버리고 올 수는 없잖습니까."


"이, 이걸 전하께서 잡으셨다고요?!"


조나단은 물론, 뒤에 있던 주민들까지 그 사실에 당황한다.

헨릭이 보기에 좀 오버하는 거 같지만, 나름 이해는 된다.

아까 빈스에게 듣기로 아르크 근처에 몬스터가 나타나도 격퇴하는 게 고작.

토벌은 아예 꿈도 못 꾸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온 지 하루 밖에 안 된 영주가 몬스터를 잡아왔으니.


"지, 지금 당장 도축업자에게 작업하라고 말해놓겠습니다! 그런데 전하는 어디에···."


조나단이 고개를 이리저리 빼면서 일행을 살핀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일행 내에 크리스토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전하라면 수레에 타고 계십니다."


"예?! 어, 어디 다치시기라도 하신 겁니까?"


놀란 조나단이 서둘러 수레로 향한다.

그리고 수레 주변을 돌던 중, 뒤쪽에 실린 크리스토퍼를 발견한다.


"전하!"


"으으···."


수레 끝에 걸터앉은 크리스토퍼가 조나단의 부름에 힘겹게 고개를 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저히 못 버티겠는지 다시 고개를 떨구고 만다.


"왜 그러십니까? 대체 어디를 다치신 겁니까?!"


"괜찮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헨릭이 담담하게 말한다.


"단순한 피로 누적이니까요."


"피, 피로요?"


그러자 조나단의 시선이 다시 크리스토퍼에게 향한다.

지쳤다고 하기에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혹시 모르니까 의사라도 부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고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내놓은 제안을 헨릭이 딱 잘라 거부한다.


"워낙 게으르신 분이라 평소 이상의 활동에 반동이 오는 것도 당연하죠."


"야, 이···."


그 말에 반응을 보인 건 크리스토퍼다.

몬스터를 잡아 힘들어하는 주군을 저런 식으로 말하다니.

아까 자기 의견을 묵살했다고 앙갚음하는 건 아니겠지?


"아무튼 도착했으니 저택으로 돌아가죠."


"···알았어."


어찌 됐건 아르크에 도착한 이상, 계속 수레에 축 늘어져 있을 수도 없는 노릇.

힘겹게 땅에 발을 디디는데, 기사 한 명이 다가온다.


"전하, 괜찮으시다면 제가 부축해드리겠습니다."


"부탁해."


그에게 몸을 기댄 채, 크리스토퍼는 천천히 저택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을 본 조나단과 아르크 주민들은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괜찮을까요? 저런 분께서 영주를 맡으시다니."


"몬스터를 토벌하신 걸 봐선 대단한 분이 맞잖아요."


"하지만 한 마리 잡고 힘들어하시는 것도 좀···."


"자, 자."


새로운 영주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주민들의 시선을 모으려 조나단이 손뼉을 마주 친다.


"전하께서 애써 몬스터를 잡아오셨으니,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합시다."


그러고는 주민들에게 능숙하게 지시를 내린다.

역시 주민 대표는 다르다면서 헨릭이 내심 감탄한다.


***


"아이고···."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크리스토퍼의 얼굴에 닿는다.

눈이 부신 탓에 잠에서 깼지만, 몸 여기저기가 쑤신다.


"역시 무리했나?"


게슴츠레 눈을 뜨고는 조용히 중얼거린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많은 검사와 싸워 승리했지만,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어제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첫 상대가 대형급이라니.

빈스에게 듣기로 어제의 도마뱀이 월등하게 몸집이 크긴 했다.

그래도 대부분의 몬스터는 그 정도의 체격이라고 한다.

즉, 앞으로 대형급 몬스터를 상대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체력 단련이라도 할까?"


그렇게 중얼거리자마자 바로 후회한다.

생각만 해도 귀찮으니까.

그나저나 아침이 밝았는데도 헨릭이 깨우러 오지 않는다.

어제 몬스터를 상대로 고생한 걸 알아준 보상으로 쉬라는 걸까?


"하암···."


이유야 뭐든 잘 됐다.

더 자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돌려 햇빛을 피한다.

그대로 눈을 감으려는데,


"실례합니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쾅쾅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아무래도 누가 저택을 찾아온 듯하다.


"누구야, 아침부터 시끄럽게."


작게 불평하고는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 쓴다.

몇 번 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그친다.

헨릭이나 기사가 저택 문을 열었겠지.

알아서 상대하게 두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점점 잠에 빠져들려던 찰나,


"전하, 기침하셨습니까?"


방문을 노크하는 것과 동시에 헨릭의 목소리가 들린다.


"···왜?"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대답한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 깬 탓에 영 기분이 나쁘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문이 열리면서 평소처럼 단정한 차림의 헨릭이 방으로 들어온다.


"해가 뜬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침대에 누워계십니까?"


"이 정도는 괜찮잖아. 그보다 무슨 일이야?"


얼굴을 보자마자 잔소리부터 하려는 보좌관에게 용건을 묻는다.


"주민 중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왜 왔대?"


"어제 전하께서 토벌하신 몬스터에 관해 꼭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말에 크리스토퍼는 눈을 뜨고 고개만 올린 채로 헨릭을 바라본다.


"무슨 할 말?"


"저도 물어 보기는 했습니다만, 전하께 직접 말씀드려야 한다고만 하더군요."


그러니 얼른 일어나서 알현 준비를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헨리로부터 뿜어져 나온다.

더 자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애써 떨치고 크리스토퍼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헨릭의 도움을 받아 세수하고 옷까지 갈아입은 다음, 1층 응접실로 향한다.


"슈레인의 영주이신 크리스토퍼 전하를 뵙습니다."


응접실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서서 예를 갖춘다.

갈발갈안의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남성이다.


"자네인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이른 시각부터 무작정 찾아온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알면 오후에 오지 그랬냐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참자, 참아야 해.

보아하니 남성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영주이자 황자인 자신을 만나서 엄청 긴장한 듯하다.

그런 사람에게 대뜸 기분 상할 말을 할 만큼 낯짝이 두껍진 않다.

···뒤에서 대기 중인 보좌관이라면 몰라도.


"사과는 됐으니 본론부터 들어가지. 그래, 할 말이란 게 뭔가?"


"어제 전하께서 잡아오신 마그이와나를 살펴봤습니다."


"마그이와나?"


"아, 그 몬스터의 이름입니다."


저 말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거였다.

몬스터에도 이름이 있나?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이름이 없으면 뭐라 부르겠냐고.


"그 마그이와나가 말입니다."


남성의 두 손이 무릎 위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

긴장했나 싶었지만, 목소리에서 그런 기색이 전혀 없다.

오히려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는 듯이 눈이 반짝거린다.


"실생활면으로 볼 때 아무 짝에도 쓸모 없습니다."


"···뭐?"


"그러니까 먹을 수도 없고 벗겨낸 가죽도 일반적인 동물 가죽에 비하면 실용도가 훨씬 낮다는 겁니다."


"그걸 웃으면서 얘기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고생해서 잡은 입장에서는 힘이 쭉 빠지는 얘기인데.

그걸 신나게 말하다니.

헨릭만큼이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입니다."


진짜 본론을 꺼내기 직전, 남성이 허리를 곧추 세운다.


"마그이와나의 소재는 실생활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그 얘기라면 아까 했잖나."


"전하, 일단 얘기를 계속 들어보시죠."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지 말라 타박하려는 걸 헨릭이 만류한다.


"그걸로 장비를 만들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보다 월등한 성능을 가지게 됩니다."


"장비라고?"


"무기나 방어구 같은 거 말입니다."


아, 그 장비인가.

그렇게 말하니 조금은 귀가 솔깃해진다.


백수를 인생의 목표로 삼은 크리스토퍼에게도 취미가 있다.

바로 무기 수집.

그중에서도 검을 모으는 걸 좋아했다.

황궁에 있을 때도 꽤 많은 수를 모으긴 했지만, 슈레인으로 떠나기 직전에 전부 처분했다.

먼 길 가는 데 짐만 되니까.


"전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크리스토퍼가 흥미를 보이는 걸 눈치챈 남성이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전하께서 직접 토벌하신 마그이와나의 소재로 장비를 만들겠습니다."


"괜찮은 제안이군요."


정작 대답한 건 헨릭이다.


"그 전에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인지요?"


"당신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그 마그이와나의 소재로 장비를 만들면 성능이 좋다는 걸."


듣고 보니 그렇네.

이곳 아르크 주민들은 몬스터 토벌 경험이 전무한 수준.

토벌을 할 수 없으니 소재를 못 얻고, 당연히 소재를 가공한 제품을 만들어 본 적도 없을 터다.

그런데 눈앞의 남성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애기를 진행했다.


"그보다 당신은 누구죠? 아직 이름도 못 들었는데."


"이, 이런···. 초면에 정말 실례가 많습니다."


헨릭의 지적에 남성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니그로 슈미트라고 합니다. 직업은 몬스터 연구가이고요."


"몬스터 연구가?"


"원래 저희 집안은 생물학을 연구하는 걸로 유명하죠."


"아! 그 슈미트 집안 분이셨습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크리스토퍼와는 달리, 헨릭은 바로 알아듣는다.


"제가 다닌 황립대학 생물학 교수도 슈미트 가문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저희 숙부님이십니다!"


친척 얘기가 나오자, 니그로의 표정이 밝아진다.

숙부가 대학교 생물학 교수?

게다가 황립대학 소속이라면 우수함에 있어서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리고 황립 생물 연구소에도 슈미트의 성을 지니신 분이 많았죠."


"알아주시니 영광입니다."


부끄러운지 니그로가 뒤통수를 긁적인다.

대단한 집안을 가진 사람이었네.

···잠깐만.


"그렇다면 자네는 이곳 슈레인 출신이 아닌 건가?"


"예, 전 원래 황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니그로의 부모는 황립 생물 연구소 소속, 즉 엄청난 엘리트다.

그런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란 니그로 역시 생물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처음에는 부모처럼 연구소로 들어가려고 나름 준비도 많이 했다.


"그런데 집에 있던 연구 일지를 발견하고는 목표를 바꾸었습니다."


"연구 일지?"


"제 증조부께서 기록하신 건데 몬스터를 연구한 내용이 잔뜩 담겼더군요."


"혹시 증조부의 성함이 알버스 슈미트입니까?"


"저희 증조부도 아십니까?!"


"이곳에 오기 직전 황궁 도서관에 남은 그분의 연구 기록을 봤습니다."


몬스터가 득실득실한 슈레인 지방으로 가는 게 결정되었다.

그걸 파악하자마자 헨릭은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에 들어갔다.

물론 몬스터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그 일환 중 하나였다.


"유일하게 그쪽 증조부 님께서 남기신 기록만이 쓸 만하더군요."


"보좌관 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천국에 계신 증조부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래서."


기뻐하는 니그로를 향해 크리스토퍼가 말문을 연다.


"자네는 증조부의 연구 일지를 보고 몬스터에 관심을 가진 건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곳 슈레인 지방까지 오게 된 거고요."


기세를 가지고 이곳까지 왔지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슈레인 지방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곤 이곳 아르크 뿐.

그마저도 몬스터을 토벌할 수준은 아니었다.

연구자인 니그로가 직접 몬스터를 잡을 수도 없었던 터였고.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몬스터를 피해 그들의 서식 환경을 파악하는 정도였죠."


"그런 와중에 새로운 영주이신 전하께서 마그이와나를 토벌했군요."


"그렇습니다!"


어두웠던 니그로의 표정이 다시 밝아진다.


"부탁입니다, 전하!"


그리고는 테이블에 양손을 얹은 채 고개를 푹 숙인다.


"부디 절 전하의 전속 연구가로 고용해주십시오!"


"고용하면?"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전하께서 잡아오신 몬스터를 연구해서 어떻게든 도움이 될만한 장비로 만들겠습니다!"


결국 본인 연구를 위해 몬스터를 잡아오라는 거군.

엄청 귀찮긴 하지만, 장비를 만들겠다는 제안은 꽤 끌린다.

그래도 일하는 건 정말 싫은데.

본능적인 게으름과 새로운 장비를 향한 욕망.

그 사이에서 고뇌에 빠진 크리스토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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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 대장장이들의 자존심 싸움 24.05.20 147 4 12쪽
12 그가 방문한 목적 24.05.19 172 5 13쪽
11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의 방문 24.05.18 190 3 12쪽
10 부화 24.05.16 191 4 11쪽
9 포획 후의 계획 24.05.15 193 5 11쪽
8 황야에서의 몬스터 수색 24.05.13 204 5 12쪽
7 발전 방향을 제안 받다 24.05.12 223 7 11쪽
6 장비를 맞춰야 하는 명분 24.05.11 224 7 11쪽
5 또 다시 토벌전 +1 24.05.10 249 6 11쪽
» 토벌 이후의 고민 24.05.09 266 9 13쪽
3 첫 번째 탐색 24.05.09 293 8 12쪽
2 그가 이곳에 온 이유 24.05.08 333 11 11쪽
1 선황의 게으른 막내아들이 황궁을 떠나게 된 이유 24.05.08 411 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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