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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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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9 07:34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195
추천수 :
153
글자수 :
231,435

작성
24.05.15 23:42
조회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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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포획 후의 계획

DUMMY

"이런 상황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군요."


안경알 너머의 헨릭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진다.


"토벌하러 가셔서 몬스터를 포획해오시다니."


"뭐 어때."


보좌관의 감탄인지 불평인지 모를 발언을 크리스토퍼는 가볍게 넘긴다.


"사체보다는 살아있는 쪽이 더 도움이 되지 않겠어?"


"어떤 면에서 말입니까?"


"으음, 연구적인 면에서?"


"···어째서 대답이 의문형이죠?"


헨릭이 크게 한숨을 내쉰다.

불만이 많아 보이는 보좌관에서 시선을 떼고 앞쪽을 바라본다.


"으악!"


"이 자식, 힘이 장난 아니야!"


"거기! 좀 더 꽉 잡으라고!"


마을 장정들이 밧줄에 묶인 카포러스를 우리 안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려 10명이 투입됐음에도 카포러스 한 마리를 감당하기가 어렵다.

괜히 몬스터가 아니라니까.


"역시 전하는 대단하십니다!"


옆에 있던 니그로의 얼굴에서 흥분이 묻어난다.


"제 연구를 위해 카포러스를 생포하시다니."


"딱히 널 위해서 그런 건 아냐."


크리스토퍼가 흥분한 연구가를 향한 표정이 차게 식는다.


"다 이곳 슈레인 지방의 발전을 위해서지."


"그럼요, 그럼요!"


정작 그 말을 듣고도 맞장구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니그로다.

···지금 건 비꼰 건데.


"슈레인과 영지민들을 위해서 토벌도 직접 다니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대답하기가 애매하다.

토벌에 직접 나서는 건 맞고, 그 이유가 슈레인의 발전과 영지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것도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는 걸 이 몬스터 연구가는 모른다.


"이곳에 돈이 돌아야 전하의 마음도 편안해지시겠죠."


말문이 막힌 주군을 대신해 헨릭이 한마디 거든다.


"아무리 게으름의 대명사로 통하시는 분이시라도 아랫사람만 고생시키지는 않으시니까."


"오오! 그러시군요!"


헨릭의 말에 니그로가 감탄한다.

···그보다 게으름의 대명사라도 대놓고 말하다니.

그걸 듣고도 감탄만 하는 니그로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이 지금 날 놀리는 거 아냐?


"전하!"


보좌관과 몬스터 연구가를 혼내야 할 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카포러스를 옮긴 장정 중 한 명이 이쪽으로 달려온다.


"카포러스를 우리에 가뒀습니다."


"수고했어."


그 한마디를 건넨 크리스토퍼는 멀리 떨어진 우리를 바라본다.


"꽈악!"


그 안에 갇힌 카포러스가 난동을 부리는 중이다.

답답하겠지.

끝 모를 황야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좁은 우리에 갇혔으니.


"니그로."


"예, 전하."


"카포러스를 길들일 수도 있나?"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니그로가 우리에 갇힌 카포러스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렵다고 봅니다만."


"이유는?"


"우선 인간이 제어하기에는 힘이 너무 셉니다."


한 마리를 우리에 넣는데 장정 열 명이 필요했다.

그것도 엄청 고생한 끝에 이뤄낸 성과다.


"그나마 알에서 부화했을 때부터 키운다면 어찌어찌 될 거 같긴 합니다만···."


"시간이 걸리겠군."


"예, 증조부의 기록에 의하면 카포러스가 알에서 태어나 성체가 되기까지 최소 3년은 걸린다고 하니까요."


"아쉽군."


진짜 아쉽다.

잘만 하면 이동 수단으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몬스터를 길들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맥이 빠진 주군에게 헨릭이 조언한다.


"옛날부터 몬스터를 길들이는 시험은 많았습니다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죠."


"그런가?"


"그 이후로 몬스터하면 무조건 인간의 적이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몬스터에게는 인정을 베풀지 마라.

먼저 죽이지 않으면 이쪽이 죽는다.

이런 식으로 인간에게 있어 몬스터란 위험한 존재로 기억될 뿐이다.


"그래도 뭐, 조금 아쉽긴 하네요."


"아쉽다니 뭐가?"


"이곳에서 말은 그리 유용하지 않으니까요."


미개발 지역이 많은 슈레인 지방에는 잘 닦인 길이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말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곳도 극히 일부.

카포러스의 튼튼한 다리라면 험난한 산길로 잘 다닐 수 있을 텐데.


"아하! 이동 수단이 필요하신 거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니그로가 끼어든다.


"뭡니까, 니그로 씨? 괜찮은 아이디어라도 가지고 있기라도 합니까?"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황야에서 카포러스와 비슷한 생김새의 조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조류 맞아?"


크리스토퍼의 가는 눈이 카포러스에게 향한다.

아무리 봐도 새처럼 생긴 저것이 용에 가깝다니.

역시 믿기 어렵다.

아니, 믿기 싫다.


"틀림없는 조류입니다."


걱정말라는 듯 니그로가 확답을 내놓는다.


"게다가 성격도 온순하고, 크기도 인간이 다룰 수 있을 정도입니다."


"호오, 이름이 뭐죠?"


"에뮬라입니다."


낯선 이름을 듣고 크리스토퍼는 작은 호기심을 가진다.

어떻게 생겼을까?

정말 카포러스보다 온순할까?

···이왕에 맛있으면 더 좋겠는데.


"우선 에뮬라의 알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겠군요."


아무리 온순하다고는 해도 야생성이 강한 성체를 길들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알에서 부화했을 때부터 키우는 편이 낫지.


"전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헨릭이 아주 정중하게 부탁하지만 그의 속내를 크리스토퍼는 잘 안다.

싫다고 해도 소용없을 터.

어떻게든 에뮬라의 알을 확보하게 시켰겠지.

그걸 알면서도 거절할 수가 없다는 게 더 짜증 난다.


"나 혼자서는 어렵겠는걸."


그래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도 마땅찮아서 사소한 반항을 시도한다.


"고작 알 한두 개로 만족하지 않을 거잖아."


"그렇죠."


맞는 말이라면서 헨릭이 맞장구친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주민 몇 명을 동행시키려 합니다."


"영주민을? 기사들은 어쩌고?"


"기사들은 현재 마그이와나 토벌에 힘쓰는 중입니다."


"어째서? 그들의 장비라면 전부 맞췄잖아?"


일전에 고생해서 잡은 걸로 충분했다고 들었는데.

이참에 마그이와나를 멸종시키기로 작정했나?


"이쪽에서 사용할 건 전부 마련했죠."


주군의 걱정을 눈치채라도 챘는지 헨릭이 설명을 시작한다.


"그저 밑준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무슨 밑준비? ···혹시 헌터들이 올 때를 대비한다는 거야?"


"그것도 있습니다만."


부정 당하지 않아 내심 놀라던 차에 헨릭이 또 다른 이유를 꺼낸다.


"가장 큰 이유는 아르크를 넓히기 위함입니다."


슈레인 지방의 유일한 도시인 아르크지만, 규모는 작은 마을 수준.

이렇다 할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다.

그걸 위해선 마그이와나의 개체 수를 줄이고 숲 일부를 개간할 필요가 있다.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나?"


"괜찮습니다. 이제 기사들도 각자 마그이와나 한 마리쯤은 잡을 수 있으니까요."


"···다행이군."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표정이 썩 좋지 못하다.

어떻게든 먼 황야에 안 가려고 했는데!


"개간한 땅에 에뮬라의 부화와 번식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해도 괜찮겠군요."


헨릭은 앞으로의 계획만 중얼거린다.

주군이 무슨 기분인지 조금도 관심 없다, 이거지?

한마디 해줄까 하다가 그냥 한숨으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


"이쪽입니다."


황야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니그로가 앞서간다.


"그쪽에 뭐가 있는데?"


너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에 질문부터 던졌다.


"전에 에뮬라의 둥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앞만 보고 걸으면서 니그로가 설명한다.


"에뮬라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곳에만 알을 낳거든요."


그러니 그 둥지에 에뮬라의 알이 있을 확률이 높다고 말하는 니그로.

그 말에 크리스토퍼는 고개만 주억거린다.

꼭 그래야 할 텐데.

알 찾는다고 쓸데없이 황야를 헤매긴 싫으니까.


"긴장되네."


니그로와 크리스토퍼를 뒤따라오던 빈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이번 에뮬라의 알 채취에 동행한 건 빈스를 포함한 병사 다섯 명이다.


"이곳에 오는 건 처음인데."


"황야에 온 적이 없나?"


"그렇습니다."


크리스토퍼의 질문에 빈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딱히 쓸만한 게 없으니까요."


보통 아르크 주민들에게 필요한 건 대부분 숲에서 구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황야에 있는 거라곤 메마른 대지와 커다란 바위 뿐.

굳이 올 필요조차 없다고 빈스가 말한다.


"그렇다면 아르크 주민 중에 황야에 방문한 사람은···."


"아마 없다고 생각합니다. 니그로 씨를 제외하면요."


그 말에 앞서가던 니그로를 바라본다.

앞으로 향하는 그의 걸음에서 여전히 자신감이 넘쳐 난다.

빈스가 이렇게 말할 정도니 조금은 믿어봐도 될 듯 싶다.


"참, 그대들이 여기에 온 이유를 알고 있나?"


"헨릭 보좌관 님께 들었습니다. 에뮬라의 알을 수집한 다음, 아르크에서 사육한다던데."


"그렇긴 한데, 주민 중에 사육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글쎄요.'


빈스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진다.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말과 양, 소, 닭을 키우고 있긴 하지만, 전담으로 맡을 사람은···."


없다는 거군.

그럼 에뮬라는 어떡하지?

그것도 아르크 주민들에게 돌아가면서 사육하라고 지시해야 하나?


"저기, 전하···."


고민에 빠지기 직전, 누군가가 크리스토퍼를 조심스레 부른다.

누군가 했더니 빈스와 함께 동행한 주민 중 체구가 작은 남성이다.

빈스와 함께 병사가 되어서 얼굴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딱히 대화한 적은 없지만.


"자네는···."


"소개가 늦었습니다. 전 길루트 데움이라고 합니다."


길루트라 이름을 밝힌 청년이 고개를 푹 숙인다.

체구가 작은 탓에 고개까지 숙이니 그 얼굴이 잘 안 보인다.


"내게 할 말이라도 있나?"


"그게 말입니다···."


질문을 했음에도 길루트의 말이 쉬이 이어지지 않는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한가 본데.


"이해해주십시오, 전하."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다 못한 빈스가 대신 입을 연다.


"길루트 이 친구가 워낙 내성적이라서요. 같은 아르크 주민들과도 대화하는 일이 드뭅니다."


"그런 사람이 먼저 말을 걸 정도라면 꽤 중요한 용건인가 보군."


"그, 그렇습니다!"


긴장한 탓에 길루트의 목소리가 한층 커진다.

곧 실수를 한 걸 눈치챈 그의 얼굴을 붉힌다.


"하고픈 말이 뭔가? 혹시 에뮬라에 관한 건가?"


하는 수 없이 이쪽에서 먼저 용건을 꺼내기로 한다.

길루트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해가 질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으니까.


"앗, 예."


그렇다면서 길루트가 고개를 끄덕인다.


"전하께서만 허락해주신다면 제가 에뮬라를 전담해서 키워보고 싶습니다."


"이유는?"


"그게···."


"길루트는 원래 동물을 좋아합니다."


이번에도 말을 못 잇는 길루트를 대신해 빈스가 나선다.


"사실 아르크 공동 사육하는 동물들도 이 친구가 거의 키워낸 셈이고요."


"저 말이 맞나?"


"예, 예···."


말끝을 흐리는 길루트를 크리스토퍼가 조용히 바라본다.

말수가 너무 적은걸.

저래선 헨릭의 질문에 대답이나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직접 에뮬라를 키워보겠다고 나서다니.

그것만 봐도 동물을 좋아하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다.


"나중에 아르크로 돌아가면 보좌관과 얘기해보도록 하지. 지금은 알 채취에만 집중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다시 긴장한 탓에 길루트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래도 나름 결과에 만족한 눈치다.

길루트 데움이라.

당분간 지켜볼 필요가 있을 거 같다.

···그 전에 에뮬라의 알부터 손에 넣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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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발전 방향을 제안 받다 24.05.12 222 7 11쪽
6 장비를 맞춰야 하는 명분 24.05.11 223 7 11쪽
5 또 다시 토벌전 +1 24.05.10 249 6 11쪽
4 토벌 이후의 고민 24.05.09 266 9 13쪽
3 첫 번째 탐색 24.05.09 293 8 12쪽
2 그가 이곳에 온 이유 24.05.08 333 11 11쪽
1 선황의 게으른 막내아들이 황궁을 떠나게 된 이유 24.05.08 411 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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