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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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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9 07:34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200
추천수 :
153
글자수 :
231,435

작성
24.05.12 21:28
조회
222
추천
7
글자
11쪽

발전 방향을 제안 받다

DUMMY

"야, 헨릭!!!"


저택 1층에 자리한 헨릭의 집무실.

그 문을 힘껏 열어 젖힌 크리스토퍼가 들이닥친다.


"너 이 자식, 감히 날 속여?!"


"속이다니요?"


분노한 주군의 모습에도 헨릭이 책상 앞에 앉은 채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제가 전하를 속일 게 뭐가 있겠습니까?"


"시치미 떼지 마!"


모른 척 넘어가려는 보좌관의 태도에 크리스토퍼의 분노가 더욱 거세진다.


"결국 나 혼자서 마그이와나 40마리를 전부 토벌했잖아!"


"아, 오늘 할당량인 3마리는 잡아오셨습니까?"


"너···!"


크리스토퍼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진다.

2주 전, 기사들에게 장비 세트를 맞춰주기 위해선 마그이와나를 40마리나 더 잡아야 한다고 들었다.

그중 10마리는 크리스토퍼가 잡기로 하고, 나머지는 헨릭이 방법을 찾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뒤에 헨릭이 마그이와나 소재의 무기를 들고 왔다.

처음에는 활.

그 뒤를 이어 창과 배틀 액스, 크로스보우에 단검까지.

새로운 무기를 들고 올 때마다 기사나 병사에게도 만들어주고 싶은데 소재가 부족하다는 말이 이어졌다.


"처음부터 이럴려고 한 거 맞지?"


"당연하죠."


주군의 추궁에 헨릭이 담담하게 인정한다.


"이제 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전하께서 그리 잘 낚···, 아니, 따라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낚였다고 말하려던 거 맞지?

열 받긴 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실제로 헨릭에게 낚여서 마그이와나 40마리를 토벌했으니까.


"이게 네가 생각한다는 방법이냐?"


"뭐. 열심히 궁리는 해봤습니다만, 전하께서 토벌하시는 것 외에 이렇다 할 방법이 없더군요."


그렇겠지.

현재 아르크에서 마그이와나를, 그것도 대량으로 토벌할 수 있는 건 크리스토퍼 뿐.

기사들도 점점 경험을 쌓아가고는 있지만, 아직 그에게 비빌 수준은 못 된다.

안다, 이 방법밖에 없었다는 걸.


"너 임마, 진짜로 황실모독죄로 처벌 당해야 정신 차릴래?!"


크리스토퍼는 모든 울분을 눈앞의 보좌관에게 쏟아낸다.

알고 있다고 해서 눈 뜨고 당한 게 당연시되는 건 아니니까.


"전하께도 잘 된 일 아닙니까?"


대수롭지 않게 말한 헨릭이 시선을 내린다.

그의 눈앞에 쌓인 서류더미.

그걸 하나씩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이제 마그이와나를 몇 마리나 상대해도 힘들어 하시지 않으시잖습니까?"


"그건···!"


어떻게든 반박하려 했지만, 정작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맞는 말이니까.

처음에는 마그이와나 한 마리 상대하고는 며칠을 침대에서 보냈는데.

계속 상대하다 보니 체력이 좋아지기라도 한 걸까?

지금은 몇 마리를 상대해도 거뜬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어떻게든 한방 먹이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말을 이어간다.


"나한테만 토벌 일을 맡기고 그동안 넌 뭘 했는데?"


"뭘 하긴요."


읽던 서류에서 시선을 뗀 헨릭이 고개를 든다.


"이곳 슈레인 지방을 발전시킬 방향에 대해 고민했죠."


"···어떤 방향?"


사기 친 것과는 별개로 발전 방향이란 것에 관심이 생겼다.

그 자신도 나름 고민하긴 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했으니까.


"전하께서 슈레인에 도착하신 이후로 많이 보신 게 뭡니까?"


"당연히 마그이와나를 포함한 몬스터지."


여기 와서 가장 많이 한 일도 몬스터 토벌이었지.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열심히 산 거 같아서 마음이 짠해진다.


"그렇습니다. 여긴 몬스터가 많다는 것 외에 이렇다 할 특징이 없죠."


그렇게 말하는 헨릭이 들고 있던 서류에 뭔가 적어 넣고는 한쪽에 높게 쌓인 서류 더미 위에 얹는다.


"그렇다면 그걸 이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뭘 이용해? 설마 몬스터를 토벌하는 거?"


"예."


혹시나 해서 물어본 말에 헨릭이 고개를 끄덕인다.


"너, 제정신 맞아?"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보좌관이 걱정된다.

보통 몬스터 토벌이라고 한다면 기사나 용병을 불러들여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그걸 발전 방향으로 삼는다고?


"우리가 가진 돈으로 작은 용병단이나 고용할 수나 있겠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희가 돈을 왜 써요?"


헨릭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주군을 흘겨본다.


"그 반대입니다. 몬스터 사냥을 온 헌터들에게 저희가 돈을 받는 거죠."


"···너 요즘 피곤한가 보다. 가서 좀 쉬어."


보좌관을 바라보는 크리스토퍼의 표정에서 안스러움이 묻어난다.

생각이 짧았어.

얼마나 피로가 쌓였으면 저런 헛소리를 진지하게 하지?

부하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했다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크리스토퍼다.


"흐응~."


막상 쉬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헨릭은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주군을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무래도 전하께선 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신 듯하군요."


자신만 이해 못할까?

누가 들어도 마찬가지일 거라며 크리스토퍼는 살짝 코웃음친다.


"사실 전하께서 토벌을 나가신 동안, 저 역시 기사들과 함께 마그이와나를 잡으러 다녔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크리스토퍼가 마그이와나 40마리를 잡긴 했지만, 기사들이 별도로 7마리를 잡았다고 들었다.

이유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장비 제작에 쓸 소재를 구하겠거니 했으니까.


"물론 소재를 모으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만."


헨릭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눈앞에 주군을 세워둔 채 본인만 앉아 있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이라도 한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마그이와나 소재의 장비가 얼마나 쓸만한 지 파악하기 위해섭니다."


"그래서? 어떤 결론이 나왔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황실 병사의 장비보다 낫다고 봤습니다."


보좌관의 후한 평가에 크리스토퍼는 내심 놀란다.

그 정도라고?

황실 기사보다는 지위가 낮다고는 하나, 황궁에 근무하는 병사에게도 괜찮은 장비가 지급된다.

전에 듣기로는 중급 헌터의 장비보다 낫다고 하던데.


"그럼 마그이와나 소재의 장비를 외부에 팔면 되잖아?"


"그것도 생각해봤습니다만, 쉽진 않겠더군요."


"왜?"


"상단을 불러들여 먼 지방에 판매하는 걸로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마그이와나 소재의 장비로 수익을 내려면 꽤 비싸게 팔아야 한다.

그 가격이면 차라리 다른 장비를 사는 게 훨씬 이득이다.


"그럴 바엔 방향성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외부에서 비싸게 팔 수 없다면 그쪽에서 오게 하면 된다고.

그렇게 말하는 헨릭이다.


"누가 이 먼 곳까지 오겠어?"


크리스토퍼의 반응은 아직까지 신통찮다.

고작 몬스터 소재로 만든 장비를 사러 온다고?

그런 짓은 귀차니스트인 그는 물론이고,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도 안 할 터.


"제 얘기는 아직 안 끝났습니다."


헨릭이 표정을 굳힌 채 말을 이어간다.


"여기에선 완성된 장비를 팔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순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의심했다.

완제품을 팔지 않겠다니.


"그럼 뭘 팔 생각인데?"


"파는 게 아니라 가공을 대신 해주는 거죠."


"가공이라니, 너 설마···."


보좌관의 의도가 뭔지, 슬슬 감이 잡힌다.


"이곳에 헌터들을 불러들일 작정이야?"


그 말이 맞다면서 헨릭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충 과정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먼저 헌터가 원하는 장비에 필요한 몬스터의 소재를 알아서 구한다.

그걸로 장비를 만들어 주는 대신 그 수수료를 받겠다는 얘기다.


"괜찮지 않습니까? 잘만 하면 전하의 부담도 줄어드니까요."


부담이라니.

토벌해야 할 몬스터의 수가 줄어든다는 얘긴가?


"잠깐, 그럼 헌터가 오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면 원래의 계획을 조금 변경해야겠지요."


원래의 계획은 몬스터 소재로 만든 장비를 타지방에 가져다가 판매하는 것.

그걸로 수익을 내려면 마그이와나 소재의 장비를 아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그보다 귀한 몬스터의 장비를 비싸게 팔던가.

···어느 쪽이든 크리스토퍼의 부담이 커지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이 뭔데?"


"오오! 전하께서 의욕을 가지시다니!"


"네 계획에 내가 빠질 리가 없으니까 그렇지!"


현재 슈레인 지방에서 몬스터 토벌이 가능한 건 크리스토퍼 뿐.

그런 그를 헨릭이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전하께서 해주실 일은 단 하나입니다."


헨릭이 단호하게 검지를 세운다.


"슈레인 지방에 나타나는 몬스터를 사냥해서 그 소재를 모으시면 됩니다."


"몇 종류나? 그리고 몇 마리씩 잡으면 되는데?"


"그야 각 몬스터 소재 장비가 확립될 때까지는 계속 잡으셔야죠."


"계속?!"


그 말인즉슨 거의 무한대로 잡으란 얘기잖아!


"내가 미쳤다고 그 짓을 하겠냐?!"


"하셔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말과는 전혀 다르네 헨릭의 표정에서는 안타까움이 1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외에 슈레인 지방을 발전시킬 방법 따윈 없으니까요."


"그, 그래도···."


그래도 잘 찾으면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대로 입을 다물고 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수재로 유명했던 헨릭이 내린 결론이다.

그가 못 찾은 방법을 게으름의 대명사인 크리스토퍼가 찾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저절로 나온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째서 이 지경이 된 걸까?

자신은 그저 느긋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때 머릿속에 어떤 목소리가 스쳐 지나간다.


『네 삶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걸 찾아라. 그러면 넌···.』


숨을 거두기 직전의 부황이 남긴 유언이다.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라.

아직까지는 그걸 찾지 못했다.

그리고 큰형 레길리스가 무슨 생각으로 이곳 슈레인 지방을 넘긴 건지도 의문이다.


"알았어."


"하시겠습니까?"


"안 하면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이고 닦달할 게 뻔하니까."


헨릭의 잔소리를 핑계로 대긴 했지만, 사실은 다르다.

그저 알고 싶어졌을 뿐이다.

슈레인 지방, 그리고 이곳의 주민들.

그게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로 남을지, 그리고 자신은 어떤 존재로 남을지.


"그럼 전하께서 토벌하실 몬스터는 제가 지정해드리겠습니다."


"내가 알아서 잡으면 되는 거 아니었어?"


"그래도 되지만, 순서를 정하는 편이 전하께서 행동하시기에 편하실 듯하여서."


그렇게 말한 헨릭이 서류 한 장을 내민다.

거기에는 한 몬스터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뭐야, 이 털이 다 빠진 닭은?"


그게 그림을 본 크리스토퍼의 감상이다.

머리에 달린 벼슬은 영락없이 닭의 그것.

그에 비해 몸에 털이라곤 하나도 없고, 다리도 길쭉해서 괴상하다는 인상이 든다.


"카포러스라는 이름의 몬스터입니다."


서류에 몬스터에 관한 정보가 적혀 있지만, 헨릭이 직접 설명해준다.


"날지는 못하지만, 다리 힘이 상당해서 잘 달린다고 합니다."


"이런 건 본 기억이 없는데."


최근 마그이와나 사냥을 위해 거의 하루 내내 숲을 돌아다닌 크리스토퍼다.

마그이와나 외의 다른 몬스터를 몇 번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카포러스는 본 기억이 없다.

이런 털 빠진 닭이라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고.


"카포러스는 황야 지역에서 많이 발견된다더군요."


"황야 지역이라니?"


"숲과는 반대 방향인데, 좀 거리가 있습니다."


"···굳이 먼 곳까지 가야 하나?"


"마그이와나만큼이나 만만한 게 그거라서요."


어차피 계속 잡을 거라면 약한 쪽이 더 낫지 않냐는 헨릭.

그 말에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크리스토퍼는 고개만 푹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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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비를 맞춰야 하는 명분 24.05.11 223 7 11쪽
5 또 다시 토벌전 +1 24.05.10 249 6 11쪽
4 토벌 이후의 고민 24.05.09 266 9 13쪽
3 첫 번째 탐색 24.05.09 293 8 12쪽
2 그가 이곳에 온 이유 24.05.08 333 11 11쪽
1 선황의 게으른 막내아들이 황궁을 떠나게 된 이유 24.05.08 411 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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