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9 07:34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188
추천수 :
153
글자수 :
231,435

작성
24.05.16 20:54
조회
190
추천
4
글자
11쪽

부화

DUMMY

"으아악! 따라 오지 마!"


커다란 바구니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 크리스토퍼가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그런 그를 몸집이 크고 다리도 긴 새가 추적한다.


"구우!"


새들이 긴 다리로 열심히 달리면서 크리스토퍼의 머리를 부리로 쪼아 댄다.


"아야! 아프다고!"


이것들을 당장 베어 버릴까 보다!

···라는 마음은 굴뚝 같지만, 양손으로 바구니를 안은 탓에 상황이 여의치 않다.

지금으로선 필사적으로 달리는 게 최선이다.


"전하! 이쪽입니다!"


저 멀리 서 있는 짐마차.

이미 출발 준비를 마친 그 위에서 니그로가 크게 손짓한다.


"으랏차차!"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마차의 짐칸에 올라탄다.


"받아."


그리고 끝까지 놓지 않았던 바구니를 니그로에게 내동댕이치듯 던진다.


"으앗!"


갑자기 던져진 바구니를 잡느라 니그로가 허둥댄다.


"출발합니다!"


크리스토퍼의 탑승을 확인하자마자, 마차 고삐를 쥔 청년이 서둘러 말을 채찍질한다.

빠르게 달려가는 마차를 뒤쫓는 새들이지만,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탓에 결국 추적을 포기한다.


"사, 살았다···."


추적자, 아니, 추적조(鳥)를 따돌렸다는 사실에 크리스토퍼는 그대로 쓰러진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아니, 힘들어 죽겠어···."


저 달리는 새들과 추격전을 벌인 것도 30분.

그 동안 내내 전속력으로 달린 탓에 지금은 앉을 힘도 없다.


"그보다 알들은? 무사해?"


"어···. 예. 다행히 깨지진 않았습니다."


정말 다행이네.

고생하긴 했지만, 그만큼 성과가 있었다.


"지금 가져온 알이 총 몇 개지?"


"스무 개 조금 넘습니다."


"길루트."


"아, 예. 부르셨습니까?"


이름이 불린 길루트가 크리스토퍼의 옆에 자리 잡는다.


"헨릭에게는 내가 말해둘 테니, 이 알들을 책임지고 부화시키도록."


"저, 정말입니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에뮬라를 돌보는 일을 누군가가 전담으로 맡는 게 좋겠더라고."


말 돌보기를 전문으로 하는 마구간지기.

양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키우는 양치기가 있듯이 에뮬라도 전문가의 손에 맡겨져야 옳다.

···아직 길루트가 에뮬라 전문가는 아니지만.


"뭐, 그대가 나서서 해보겠다니 맡겨보기로 하지."


"가,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전하는 길루트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그렇게 기쁜가?

애완동물도 키워본 적 없는 크리스토퍼로선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본인이 좋아하니 됐다면서 눈을 감는다.


***


"이게 카포러스의 소재로 만들었다는 무기인가?"


콜린이 내민 검을 들어 이리저리 살핀다.

전에 받은 마그이와나 소재의 검에 비하면 외형은 평범한 편.

그래도 카포러스의 깃털을 가공해서 만든 부분은 꽤 마음에 든다.


"이 외에 다른 무기는? 또 있나?"


"있긴 합니다만."


콜린이 카운터 위에 또 다른 무기를 올린다.

활에 해머, 창과 짧은 쌍검이다.


"이게 전부인가?"


"카포러스의 이미지를 살려 디자인하기가 꽤 어렵더군요."


현재 몬스터 소재를 이용한 무기를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르크의 유일한 대장장이인 콜린 뿐.

그에게 헨릭이 당부한 건 단 한 가지.

어떤 몬스터의 소재가 쓰였는지 알 수 있도록 디자인할 것.

콜린도 그 점을 신경 쓰고 있긴 하지만,


"평생 실용성에만 신경 쓰다 보니 장비 디자인하는 게 영 성미에 맞지 않더군요."


"그런가."


"아, 아니! 싫은 건 아닙니다!"


그러려니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갑자기 콜린이 변명을 늘어놓는다.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나름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요."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호, 혹시라도 전하께서 오해하실까 봐 그리 말씀드렸습니다."


오해란 말에 콜린을 바라보는 크리스토퍼의 눈이 가늘어진다.

장비 디자인이 성미에 맞지 않다는 건 그 일이 재미가 없다는 얘기 아닌가.

그냥 솔직히 말해도 될 일을 굳이 아닌 척하다니.

아르크에 온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이런 태도라니.

아직까지 이곳 주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거 같아 씁쓸했다.


"일단 지금처럼만 해주게. 장비 디자인은 헨릭과 상의해서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예, 예! 감사합니다!"


돌파구를 찾겠다는 말에 콜린이 무척 감격해한다.

정말로 장비 디자인이 힘에 부쳤나 보네.

이번 슈레인 발전 계획에 가장 필요한 과정 중 하나인 장비 제작.

그걸 콜린 한 사람에게만 떠맡겼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전문가를 섭외하겠네."


"전하만 믿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콜린에게 큰 부담을 준 거 같아 미안해진다.

꼭 장비 디자인 전문가를 찾아야지!

다짐하는 크리스토퍼의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전하~!"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크리스토퍼를 애타게 부른다.

뭔가 싶어 대장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전하~! 어디 계십니까~!"


자신을 부르면서 중앙 광장을 뛰어다니는 길루트를 발견한다.


"길루트? 무슨 일이지?"


"앗! 거기 계셨군요!"


그토록 찾던 사람을 발견한 길루트가 대장간 앞으로 다가온다.


"전하께 꼭 전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보이는군."


크리스토퍼는 담담하게 말을 받아친다.

볼일이 없었다면 그렇게 애타게 찾지 않았을 테니까.


"그 볼일이라는 게 에뮬라에 관련된 것일 테고."


"그, 그런 것까지 아십니까?!"


놀라는 길루트와는 달리 크리스토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 외에 나와 그대 사이의 접점이 또 있나?”


"···없지요, 예."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되었는지 길루트도 안정을 되찾는다.

이제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군.

이런 사람이 그렇게 날뛸 만한 이유라면···.


"혹시 알에서 에뮤트의 새끼가 부화한 건가?"


"앗! 예, 그렇습니다!"


길루트의 얼굴에 다시 흥분이 감돈다.


"총 24마리가 부화했습니다."


"새끼들의 상태는?"


"전원 건강합니다."


그런가.

아픈 개체는 없다는 거지?

다행이라고 내심 안도하는 크리스토퍼다.


"괜찮으시다면 보러 오시겠습니까?"


"그러지."


그 길로 대장간을 떠나 길루트의 뒤를 따른다.

도착한 곳은 그의 집.

아직 에뮬라를 전문으로 사육할 시설이 없어서 임시로 그곳 창고를 이용하고 있다.


"얘들아, 아빠 왔다!"


창고 문을 열기가 무섭게 삐약삐약 울음소리에 귀가 따갑다.

그래도 마냥 기분이 나쁘지만도 않은 건,


"귀엽네."


허리를 굽혀 상자 안을 들여다 본다.

갓 태어난 새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모습에 괜히 마음이 흐뭇하다.


"그렇죠?"


맞장구치는 길루트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난다.


"한 마리씩 이름을 붙여줄 걸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그 얼굴로 말해도 설득력 없어. ···그런데 이름을 붙여준다고? 왜?"


"그야 이름이 없으면 헷갈리지 않습니까."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한 길루트의 태도에 할 말을 잃는다.

24마리나 되는 새끼 에뮬라들에게 전부 이름을 붙여준다니.

그런 귀찮은 짓을 왜 하지?

전담 사육을 맡은 만큼, 에뮬라라면 앞으로도 질리게 볼 텐데.


"전하, 이중에 한 마리 골라주시겠습니까?"


도저히 이해 못할 사고 방식의 소유자인 길루트가 갑자기 제안한다.


"고르라니, 왜?"


"골라 주신 아이를 전하 전용으로 키우려 합니다."


내 전용?

그게 뭔가 싶다가 이내 눈치챈다.

황궁에서 지낼 때도 전용 애마가 있었으니까.

승마하는 것도 귀찮아서 공식 행사가 아니면 딱히 볼 일이 없긴 했지만.

그래서 애마의 이름이 뭔지도 모른다.


"토벌 활동을 자주 나가시는 전하이시니, 애마, 아니, 애용 에뮬라 한 마리 정도 가지셔야겠죠."


처음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다.

기사들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행동하는 걸 선호하니까.


"으음."


상자 안에 담긴 에뮬라 새끼들을 바라본다.

하나 같이 이쪽을 올려다 보면서 삐약거리기 바쁘다.

···아니, 딱 한 마리 예외가 있긴 하지만.


'저 녀석은 어째 기운이 없어 보이는군."


크리스토퍼의 검지가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새끼 에뮬라를 가리킨다.


"아, 이 아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길루트가 상자 안에 손을 넣어 그 새끼 에뮬라는 조심히 들어 올린다.


"이 아이는 태어난 지 겨우 몇 시간 밖에 안 됐으니까요."


"그럼 여기선 막내인가?"


"그런 셈이죠."


크리스토퍼의 시선이 길루트의 손, 그 안에서 몸을 웅크리기만 한 새끼 에뮬라에게 향한다.

막내라고 하니 동질감이 느껴진다.

그 자신도 막내니까.

여러 모로 우수했던 형들과는 달리 검술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쓸모도 없는 주제에 자기 주장만 강하다.

그렇게 평가 받은 탓에 권력을 노리는 귀족들에게 먼저 배척당했다.


"후우···."


멋대로 떠오르는 옛 기억을 떨치려 고개를 흔든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그 모습이 이상했는지, 길루트가 의아함을 드러낸다.


"아냐, 아무 것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한 다음, 길루트의 손 안에 있는 새끼 에뮬라를 가리킨다.


"그 녀석으로 하지."


"예? 이, 이 아이를요? 하지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지···."


"그걸 해내는 게 전담 사육사라고 보는데."


번복은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는 허리를 편다.

아이고, 허리야.

상자 안을 들여다 보느라 굽혔던 허리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맡겨주십시오."


아픈 허리를 두드리는 크리스토퍼를 향해 길루트가 자신 있게 말한다.


"전하의 기대에 보답할 수 있게 훌륭히 키워내겠습니다."


"그대만 믿겠네."


"그럼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시겠습니까?"


"뭐? 내가?"


"전하께서 친히 고르신 아이니까요."


고른 책임을 지라는 듯이 길루트가 손, 정확히는 그 안에 있는 새끼 에뮬라를 내민다.

순진해 보이는 그 표정이 얼마나 같잖던지.

설마 24마리의 이름을 짓는 게 귀찮아진 거 아냐?

이런 의혹이 들지만, 차마 물을 용기가 안 난다.

어차피 물어봤자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대답만 들을 거 같고.


"이제껏 동물에게 이름을 붙인 적이 없었는데."


"아하하, 전하께서 처음 지으신 이름이라니."


살짝 긴장한 크리스토퍼를 향해 길루트가 기쁜 표정을 짓는다.


"그걸 받는 이 아이에게는 큰 영광이겠군요."


"어떨까?"


영광의 가치는 인간에게만 의미 있을 텐데.

다툼에서 승리한 영광의 보상으로 영역이나 암컷을 차지한다면 그나마 이해한다.

하지만 황족에게서 받는 이름이 갓 태어난 새끼에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흐음."


사육자의 손 안에서 있는 새끼 에뮬라를 내려다본다.

그 시선을 눈치라도 챈듯 그것 역시 크리스토퍼를 올려다 본다.

마치 자기 주인이라도 알아본 것마냥 고요하게.


"펠릭스, 펠릭스가 좋겠어."


"펠릭스라. 고대어로 행운이란 뜻이죠?"


"잘 아는군."


"귀동냥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전하, 이 아이는 암컷입니다만."


"응?"


수컷이 아니란 말에 순간 당황했지만, 서둘러 이름을 변경한다.


"그, 그럼 펠리시아로 하지."


"좋은 이름이 생겨서 다행이구나, 펠리시아."


"삐약."


길루트가 웃으면서 한 말에 새끼 에뮬라, 펠리시아가 대답한다.

···설마 사람이 한 말을 알아들었나?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자신의 전용 에뮬라를 크리스토퍼는 빤히 쳐다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 대장장이들의 자존심 싸움 24.05.20 147 4 12쪽
12 그가 방문한 목적 24.05.19 171 5 13쪽
11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의 방문 24.05.18 190 3 12쪽
» 부화 24.05.16 191 4 11쪽
9 포획 후의 계획 24.05.15 192 5 11쪽
8 황야에서의 몬스터 수색 24.05.13 203 5 12쪽
7 발전 방향을 제안 받다 24.05.12 222 7 11쪽
6 장비를 맞춰야 하는 명분 24.05.11 223 7 11쪽
5 또 다시 토벌전 +1 24.05.10 248 6 11쪽
4 토벌 이후의 고민 24.05.09 266 9 13쪽
3 첫 번째 탐색 24.05.09 293 8 12쪽
2 그가 이곳에 온 이유 24.05.08 333 11 11쪽
1 선황의 게으른 막내아들이 황궁을 떠나게 된 이유 24.05.08 410 11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