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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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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9 07:34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204
추천수 :
153
글자수 :
231,435

작성
24.05.11 23:59
조회
223
추천
7
글자
11쪽

장비를 맞춰야 하는 명분

DUMMY

"다들 서둘러!"


조나단의 외침에 장정들의 움직임도 한층 바빠진다.

이미 해가 산을 넘어간 지 오래.

늦은 시각임에도 숲을 나와 아르크로 향하는 수레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너무 늦었다가는 몬스터들이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그 전에 최대한 빨리 아르크로 돌아가야 한다며 조나단이 다그친다.


"어이, 힘 좀 더 쓰라고!"


장정들이 열심히 수레를 움직인다.

모든 수레 위에는 마그이와나의 사체가 하나씩 실려 있다.


"역시 전하께선 대단하신 분이시군요!"


아르크 입구에서 수레 행렬을 바라보던 니그로가 솔직하게 감탄한다.


"무려 9마리나 되는 마그이와나 무리를 혼자 토벌하시다니."


"뭐, 그 전투력만이 전하의 유일한 장점이니까요."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대답한 헨릭이 뒤를 돌아본다.

그곳에 마련된 임시 벤치.

그 위에 크리스토퍼가 주저앉아 있다.

아니, 그냥 드러누었다고 해야 옳겠지.


"아이고, 힘들다···. 나 죽겠네."


크리스토퍼의 입에서 끊이지 않고 힘들다는 소리가 흘러 나온다.

그 모습이 얼마나 한심한 지.

보다 못한 헨릭이 한마디 하고 만다.


"내일부터는 아침 일찍 기침하셔서 달리기 좀 하시죠?"


"그래선 침대 위에서 뒹굴거릴 수가 없잖아···."


"으이구!"


천성부터 게을러 터진 인간 같으니라고!

굳이 말로 내뱉진 않았어도 주군을 노려보는 그의 시선이 그리 말한다.


"대단하군, 대단해!"


니그로와 함께 마그이와나가 실린 수례를 지켜보던 콜린도 흥분한다.


"이거라면 사전에 기획했던 장비를 전부 만들 수 있겠어."


"거기에 제 연구에도 진척이 있겠어요!"


니그로 역시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원래 몬스터 연구를 위해 이곳을 찾았던 그인 만큼, 본격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쁜 듯하다.


"잘 됐군요, 두 분 다."


그렇게 말하는 헨릭의 얼굴이 담담하다.

그래도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작은 안도감이 피어난다.

이걸로 겨우 첫 발을 내딛었다.

이곳의 발전을 위한, 그리고···.


"아이고, 내 삭신이야."


그의 주군은 여전히 벤치에 드러누워 끙끙거린다.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런 주군 역시 이번 토벌전으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누가 나 좀 저택까지 부축 좀 해줘!"


···아니, 반 발짝이라 해야 하나?

아직 갈 길이 멀군.

헨릭의 입술 사이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


"보십시오, 전하!"


대장간에 방문한 크리스토퍼 앞에 콜린이 장비들을 늘어놓는다.

투구에 장갑, 흉갑, 벨트와 그리브까지 한 세트가 맞춰졌다.


"전하께서 잡으신 마그이와나의 소재로 만든 장비들입니다!"


자랑스럽게 외치는 콜린을 무시한 채, 크리스토퍼의 시선이 장비들에게 향한다.

하나 같이 붉은색을 띄고 있어서 통일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장비가 전부 갖춰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생한 보람이 느껴진다.


"훌륭하군요."


옆에서 장비를 살펴보던 헨릭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다.

이 깐깐한 보좌관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무척 드문데.

그만큼 콜린의 장비 제작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겠지.


"자, 가져가시지요."


"나? 이걸 전부 나보고 가지라고?"


"당연합니다! 이걸 만들 소재를 마련하신 게 다름 아닌 전하이시니까요."


"아니, 그래도···."


장비를 가져가란 말에도 크리스토퍼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걸 만들기 위해 며칠 전 마그이와나를 잔뜩 잡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크리스토퍼가 사냥한 건 9마리, 나머지 2마리는 헨릭의 지휘를 토대로 한 기사들이 잡았다.

아무리 자신이 상관이라고는 하나, 성과를 전부 차지하는 것도 좀 그런데.


"나보다는 기사들에게 맞춰주는 쪽이 더 좋겠어."


"허걱!"


크리스토퍼의 그 말에 헨릭과 콜린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진다.

뭐야?

둘 다 왜 저래?


"오, 오옷!"


어색한 침묵을 콜린의 외침이 깨버린다.


"역시 전하는 다르시군요! 자신보다 부하들을 먼저 생각하시다니!"


"뭐, 뭐?"


순간 콜린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부하들을 먼저 생각해?

내가?


"그런 게 아니라 기사들의 전투 경험이 부족해서···."


"크흑!"


나름 타당한 이유를 대려고 했으나, 콜린은 눈물을 참느라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거 사람 말 좀 들으라고.

이래선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겠네.


"현명한 판단을 내리셨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눈만 깜빡거리던 헨릭이 뒤늦게 찬성 의사를 밝힌다.


"기사들 전원 전투 경험이 부족하니 부상 위험이 높으니까요."


"그래!"


하고 싶었던 말이 저거라고!

대신 말해주니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역시 유능한 보좌관을 곁에 두면 여러 모로 편한···.


"하지만 이걸 다섯 명에게 나눠주는 건 보기가 그리 좋지 않군요."


···거 같지는 않네.


"뭐 어쩌라고?"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의도를 물었다.


"이미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헨릭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진다.

알면서 뭘 묻냐는 듯한 태도다.

안다고 해야 하나?

아니, 모르고 싶지만 알 수밖에 없다고 해야 정확하겠지.


"···즉, 네가 하고픈 말이 이거야?"


끝내 외면하지 못한 걸 크리스토퍼는 입에 올리고 말았다.


"기사 전원에게 이 장비 세트를 전부 맞춰주자고?"


"바로 그겁니다."


"제정신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크리스토퍼가 버럭 호통친다.

장비 한 세트 맞추기 위해 마그이와나 열 마리의 소재가 필요했다.

그런데 기사들 전원에게 맞춰준다고?

그러려면 최소 40마리는 더 잡아야 한다.


"나보고 죽으라는 거야?!"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헨릭이 검지로 안경을 살짝 들어올린다.

그 모습에 불안감만 커진다.

분명 저 행동 직후에 궤변이 이어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리 전하께서 검의 달인이라고 해서 40마리, 그것도 대형급 몬스터를 상대하시는 건 어려우시겠죠."


"그야 그렇지."


지금 건 단순한 사실.

그래서 크리스토퍼도 대수롭지 않게 맞장구친다.


"그래도 며칠 전에는 9마리를 거뜬히 잡으셨습니다, 맞죠?"


"그야 뭐."


크리스토퍼의 말끝이 흐려진다.

거뜬히 잡은 건 아닌데.

아홉 마리를 전부 토벌한 직후,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으니까.

혼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도 없어서 호루라기로 헨릭 일행을 불러야만 했다.


"그렇다면 10마리까지는 하실 수 있겠죠?"


"잠깐, 왜 10마리야?"


다급하게 반박에 나선다.

직전에 잡은 건 9마리인데, 은근슬쩍 할당량을 늘리려 해?

아니, 그보다···.


"나보고 또 잡으라는 거야?!"


"그 정도는 하셔야죠."


펄쩍 뛰는 주군을 향해 헨릭이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말을 이어간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하를 위해 이 먼 지방까지 따라온 기사들을 위해서잖습니까?"


"윽!"


크리스토퍼는 할 말을 잃고 만다.

헨릭이라면 모를까.

기사들에게는 나름 미안한 감이 없잖아 존재한다.


황궁을 떠나기 직전, 큰형인 레길리스는 호위 명목으로 기사단 하나를 내어주려 했다.

그걸 듣고는 얼마나 기겁했는지.

너무 부담스러워서 큰형에게 온갖 허세를 다 부렸다.

자신의 검술 실력이면 충분히 잘 할 수 있다느니.

최고의 수재인 헨릭이 동행하니 문제 없다느니.

어떻게든 호위는 필요 없다고 어필한 결과, 레길리스는 기사단을 물리기로 했다.

그래도 헨릭과 단 둘만 보내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넘긴 게 말단 기사 다섯 명이었다.


"정식 기사로 인정받을 만큼의 전투력은 갖추었습니다만."


주군이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이때다 싶었는지, 헨릭이 말을 이어간다.


"그래도 다섯이 힘을 합쳐서 한두 마리 잡는 게 고작이더군요."


그런 기사들이기에 몬스터와의 전투 중 다칠 확률이 높다.

부상 위험도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장비는 제대로 맞춰 주는 게 낫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은근히 크리스토퍼를 압박한다.


"내가 마그이와나 10마리를 잡는다고 쳐."


자신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진 채 여기까지 온 기사들에 대한 미안한 건 사실이다.

그런 그들을 위해 마그이와나 열 마리 정도는 흔쾌히 잡아줄 수 있다.


"그럼 나머지 30마리는? 그건 누구한테 시킬 건데?"


기사들 다섯 명 전원에게 장비를 맞춰주기 위해선 총 40마리의 마그이와나가 필요하다.

10마리는 자신이 맡는다고 해도 30마리는 누가 잡지?

현재 아르크에서 토벌이 가능한 건 크리스토퍼와 기사들 뿐.

그 기사 다섯 명이 겨우 한두 마리 잡는다는 걸 감안하면···.


"결국 나한테 시킬 속셈이지?"


"···쳇."


헨릭이 작게 혀를 찬다.

들켰다는 태도에 크리스토퍼의 짜증이 더욱 커진다.


"그럴 거면 네가 잡아! 네 쪽이 더 기사들을 필요로 하잖아."


"윽!"


말문이 막힌 보좌관을 보면서 크리스토퍼는 큰 희열을 느낀다.

꼴 좋다!

평소에 주군 알기를 뭐 같이 여겨서 악담이나 퍼붓더니.

그 입을 다물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이, 일단 진정하시죠."


헨릭이 손을 들어 잠시 대화를 멈춘다.

얼씨구.

할 말 없으니 말을 막는 거 보소?

같잖은 태도이긴 하지만, 점점 밀리는 보좌관에게 그 정도의 여유는 흔쾌히 내어주기로 한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일단 헨릭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봐선 꽤 동요한 눈치다.

주군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겠지.


"우선 마그이와나 10마리 토벌부터 해주시겠습니까?"


"나머지 30마리는?"


"그쪽은 제가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기나 한가?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굳이 따지지 않기로 한다.

조만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포기할 게 뻔하니까.


"그럼 마그이와나의 사체를 옮겨줄 인원을 소집해."


“예? 지금요?"


"어차피 할 일이라면 빨리 끝내는 게 낫잖아."


그 뒤로 계속 쉬면 최고지.

그렇게 결정 내린 크리스토퍼는 검을 챙기러 저택으로 걸음을 옮긴다.


***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전하, 이걸 보시지요."


정오가 가까워지던 시각.

방 의자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던 크리스토퍼에게 헨릭이 뭔가를 내민다.


"웬 활이야?"


"전하께서 잡으신 마그이와나의 소재로 만든 겁니다."


"오호."


마그이와나의 소재를 썼다는 말에 크리스토퍼도 관심을 보인다.

꽤 괜찮은 활인걸.

이 정도면 보조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겠어.

원래 검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크리스토퍼지만, 활도 꽤 잘 다루는 편이다.

그래서 활을 보고 있자니 갖고 싶은 욕심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


"기사 중에 궁술이 특기라고 하는 자가 있어서 이것과는 별개로 새로 만들려고 했습니다만."


"그런데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마그이와나의 소재가 부족합니다."


"뭐? 내가 잡은 10마리는?"


"그건 이미 방어구 제작에 다 썼죠."


이 활은 남은 소재로 겨우 만들었다는 말에 크리스토퍼의 어깨가 살짝 처진다.

보좌관의 의도가 뭔지 뻔하니까.


"이거 하나 만드는데 몇 마리나 필요한데?"


"한 마리, 아니, 두 마리면 충분하겠군요."


"쳇! 알았어."


혀를 차면서도 크리스토퍼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10마리에 비하면 한두 마리 토벌하는 건 일도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실수였다고 깨달은 건 그로부터 2주일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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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가 이곳에 온 이유 24.05.08 333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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