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9 07:34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208
추천수 :
153
글자수 :
231,435

작성
24.05.08 21:32
조회
333
추천
11
글자
11쪽

그가 이곳에 온 이유

DUMMY

"···어이, 헨릭."


"왜 그러십니까?"


"목적지는 슈레인의 중앙 도시라고 안 했어?"


"그렇게 말씀드리기는 했죠."


"그럼 여긴 뭐야?"


질문을 마치자마자, 크리스토퍼가 시선이 앞으로 향한다.

분명 슈레인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로 향한다고 들었는데.

정작 도착한 곳은 한적한 마을이다.


"오늘 중에 도착한다며? 아직 해도 중천인데, 굳이 여기에 들릴 필요가 있어?"


"전하께서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거 같군요."


눈앞의 마을을 샅샅이 살피는 주군에게 헨릭이 차분하게 말한다.


"이곳이 슈레인 지방의 최대 도시이자, 유일한 도시인 아르크입니다."


그 말을 듣고 크리스토퍼는 다시 눈앞의 도시를 살핀다.

아무리 눈을 씻고, 아니, 비비고 봐도 보이는 건 건물 몇 채가 전부.

이건 그냥 마을 아닌가?


"···여기가 도시라고? 그것도 슈레인 최대의?"


"안 믿기시겠지만, 그렇습니다."


보좌관이 단호하게 못까지 박자, 크리스토퍼는 할 말을 잃는다.

이건 너무하잖아!

아무리 영주가 없고 영지민도 얼마 없다고 해도 슈레인 최대의 도시가 이 모양이라니.


"저···."


황망하게 서 있던 크리스토퍼와 일행에게 누군가가 조심스레 다가온다.

이제 막 노년에 접어든 듯한 남성이다.


"혹시 크리스토퍼 전하이십니까? 이번에 슈레인의 새로운 영주이신···."


"맞네만."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고갯짓 한 번 하자마자, 남성이 몇 번이고 고개를 조아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 이곳 아르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조나단 펠먼이라 합니다."


다시 고개를 숙인 남성 뒤로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줄곧 영주님을 기다렸습니다만, 설마 황자 전하께서 친히 나서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뭐···. 그렇지."


나서기는 무슨.

막 즉위한 큰형이 반강제로 슈레인의 영주 자리를 떠넘겼을 뿐인데.

···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그냥 얼버무리기로 했다.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시죠?"


조나단이 몸을 물리자, 뒤의 마을 주민들이 크게 길을 내어준다.


"앞으로 전하께서 지내실 저택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안내역을 자처하는 조나단의 뒤를 따라 이동한다.

당연히 마을 주민들 앞을 지나가는데, 주변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저분이 황자 전하?"


"잘 생기셨네."


본인 앞에서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창피하잖아.

좀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좋게 봐준 거 같아서 기분이 썩 괜찮다.


"그런데 선황 폐하의 3남이라고 하지 않았나?"


"소문에 의하면 제국 최고의 게으름뱅이라던데."


이어 들려온 평가가 크리스토퍼의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긴다.

대체 누구야?

당사자를 바로 앞에 두고 폭언이나 퍼부어 대다니.

그 말을 당장 취소하라고 다그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른다.


"나중에 속출할까요?"


뒤따라오던 헨릭이 귀에 대고 작게 묻는다.

그 역시 주민들의 수군거리는 걸 들은 거겠지.


"신경 쓸 거 없어."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겠어?"


황자인 크리스토퍼가 이곳 슈레인 지방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이곳 주민들이 접한 황자의 정보라고 하면 대부분 소문일 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도 웃기겠지.


"전하의 말씀이 옳긴 합니다만."


그냥 두라고 했음에도 헨릭은 설득을 포기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쓸데없이 성실하고 충직한 부관···.


"아무리 사실이라고 해도 황족을 앞에 두고 폭언을 내뱉는 건 엄연한 황실능멸죄에 해당합니다."


···일 리가 있나.


"그런 거라면 너부터 처벌 받아야겠는데."


황족을 앞에 두고 폭언 하는 건 헨릭도 마찬가지다.

아니, 하루도 빠짐없이 심한 말을 하는 만큼 더 악질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무리 저라도 서운합니다."


정작 그 말을 들은 당사자는 아쉬운 티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제가 말씀드리는 건 어디까지나 간언이니까요."


"그게 간언이면 지금 큰형님 주위에 있는 놈 전원이 충신이게?"


같잖은 소리나 해대는 보좌관과 투닥거리는 사이, 앞서가던 조나단이 걸음을 멈춘다.


"여기입니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한 건물 앞.

2층으로 된 목조 주택이다.

조나단은 저택이라고 했지만, 크리스토퍼가 보기에는 글쎄.

주변의 다른 집보다 조금 큰 걸 빼고는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7명이 살 수는 있나?"


크리스토퍼와 헨릭, 그리고 호위를 맡은 5명의 기사.

이들이 생활하기에 눈앞의 주택은 너무 작아 보인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망해하는 크리스토퍼와는 달리 조나단이 힘차게 대답한다.


"이 주변은 빈집 투성이이니까요."


"···허."


크리스토퍼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웃으면서 할 얘기는 아닌 거 같은데.

대담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어리석다고 비웃어야 하나.


"잘 됐군요."


황당해하는 크리스토퍼를 대신해 헨릭이 주변 정리에 나선다.


"여러분은 저 집에 머물면서 돌아가면서 한 명씩 전하의 호위를 맡아주십시오."


"나머지는 어떻게 할까요?"


"특별한 임무가 없을 시에는 아르크의 순찰을 맡으면 될 겁니다."


"저, 말씀 중 죄송합니다만."


능숙하게 지시를 내리는 헨릭에게 조나단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인다.


"이곳에도 자경단이 있긴 합니다."


"규모가 어떻게 됩니까?"


"청년 대여섯 명이 전부입니다만."


"지금 불러 주시겠습니까?"


"잠시만요. 어이! 빈스!"


조나단이 저 멀리 떨어진 사람 무리를 향해 크게 손짓한다.

잠시 후, 인파를 헤치면서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낸다.


"부르셨어요?"


기사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듬직한 체구의 청년이다.

그런데 어째 조나단과 인상이 비슷하다.


"제 아들인 빈스입니다. 자경단을 이끌고 있고요."


이어진 조나단의 설명에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가, 부자지간이었구나.


"빈스 씨."


크리스토퍼가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이번에도 헨릭이 나선다.


"아버님께 듣기로는 자경단이 이곳 아르크 주변을 순찰한다고 하던데요."


"그렇습니다."


"다들 전투 경험이라도 있습니까?"


"전투라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가끔 주변에 산적이나 마물이 나타나곤 하죠."


그때마다 자경단이 나서서 쫓아낸다고 빈스가 말한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충분하다니, 뭐가 말입니까?"


"빈스 씨."


되묻는 빈스를 헨릭이 곧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대들 자경단 전원을 슈레인의 영주이신 크리스토퍼 전하의 병사로 삼고 싶습니다."


"예? 벼, 병사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빈스는 물론 조나단까지 크게 놀란다.


"하, 하지만 저희는 병사가 될 만큼 전투 실력이···."


"그거라면 문제 없습니다."


헨릭의 시선이 빈스를 지나 대기하던 기사들에게 향한다.


"저들이 책임지고 당신들을 훈련시킬 테니까요."


"맡겨만 주십시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기사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다.

열의가 넘치는 그 모습이 크리스토퍼로선 도통 이해하기가 어렵다.

할 일이 늘어나는 게 뭐 그리 좋다고.


"감사합니다!"


넘치는 열의를 가진 건 기사들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사 나으리들, 부족한 아들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제안을 받은 당사자인 빈스는 물론이고, 조나단까지 무척 만족해하는 눈치다.

그 모습 역시 크리스토퍼로선 이해하기가 어렵다.

보통 병사하면 떠오르는 건 잡일꾼이란 이미지다.

위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시킬 때마다 군말 없이 따라야 하는 직종일 뿐인데.

뭐가 기쁘다고 저런 반응인 건지, 원.


"그리고 전하."


대충 상황 정리를 마친 헨릭이 뒤돌아본다.


"전하께서도 급히 결정해주실 사안이 있습니다."


"뭔데?"


이번에는 나한테 일을 시킬 셈인가?

앞으로 살 집에 도착하자마자 일 얘기라니.

지긋지긋한 감도 있긴 하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한다.


"앞으로 아르크를 포함한 슈레인 지방의 발전 방향을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발전 방향?"


"지금 전하 밑으로는 저와 기사들을 포함해 병사들까지 있습니다."


거기까지만 듣고도 보좌관이 말하는 의도를 바로 눈치챈다.

요컨대 봉급을 달라는 얘기다.

아무리 상대가 황자라 하더라도 정당한 대가 없이는 따르지 않는다.

그건 크리스토퍼도 잘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조나단."


"예, 전하. 하명하시지요."


"여기 사람들의 생업이 뭐지?"


"기본적으로는 자급자족으로 살아갑니다."


농사를 지어 곡물을 얻고,

몬스터를 피해 동물을 사냥해서 고기를 얻고,

원자재를 직접 가공해서 필요한 재료나 도구를 만든다고 조나단이 말한다.

하지만 크리스토퍼가 원한 대답은 그게 아니다.


"그런 거 말고 특산물 같은 건 없나? 다른 지역에서 뭔가 사러 올 게 아닌가."


봉급을 내어주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또 그 돈을 벌려면 어떻게든 타지방에 팔 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런 의도로 물어봤건만,


"그게···."


조나단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설마 아니겠지?

안 좋은 예감이 드는 걸 애써 무시하고는 다시 입을 연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상단이 일 년에 몇 번 정도 오지?"


"그게 말입니다···."


"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전히 대답하지 못하는 조나단을 대신해 헨릭이 나선다.


"전하, 이곳을 방문하는 상단 따윈 없습니다."


"뭐···."


보좌관의 단호한 발언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찾아오는 상단이 없다니 왜?


"누가 찾아오겠습니까?"


멍한 표정의 주군을 향해 헨릭이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곳 슈레인 지방에는 오랫동안 영주가 부재했죠."


영주란 단순히 그 지방을 통치하는 사람이 아니다.

본인과 영지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통치하는 지역을 발전시킬 의무가 있다.

하지만 슈레인은 오랜 기간 영주가 없었고 몇 안 되는 영주민은 먹고 살기에도 바빴다.

거기에 주위에 넘치는 거라곤 몬스터뿐.

그 결과, 발전의 토대조차 잡히지 않았다.


"즉,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건가?"


간신히 상황을 파악한 크리스토퍼는 천천히 말문을 연다.


“특산품 하나 없는 이곳을 어떻게든 발전시켜서 너희에게 봉급을 달라고?”


“바로 그겁니다!”


헨릭이 손뼉까지 치면서 감탄한다.

그의 칭찬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긴 하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다.

오히려 불쾌하기 짝이 없다.


"이···."


"왜 그러십니까, 전하?"


몸을 부들부들 떠는 크리스토퍼가 걱정됐는지, 조나단이 조심스레 묻는다.

하지만 그런 건 당사자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


"이 망할 형!!!"


지금쯤 황도에서 국정을 논하고 있을 레길리스.

많은 간신과 극소수의 충신들과 함께 제국의 미래를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낼 터.

그런 그에게 닿지도 않을 분통을 터뜨린다.

왜 하필 이런 미개발 지역을 내어준 거야?

마지막 배려라면 더 나은 곳을 줄 수도 있었잖아.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

하지만 황도에서 출발해 이곳 아르크까지 도착하는 데만 걸린 시간은 열흘.

그래서 돌아갈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미치겠다···."


"저, 전하!"


"정신 차리십시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은 크리스토퍼를 보고 주변에서 난리가 난다.

단 한 사람, 헨릭을 제외하고.


"어휴!"


당장이라도 기절할 기세의 주군을 보면서 그는 고개만 절레절레 내저을 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 대장장이들의 자존심 싸움 24.05.20 147 4 12쪽
12 그가 방문한 목적 24.05.19 172 5 13쪽
11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의 방문 24.05.18 190 3 12쪽
10 부화 24.05.16 191 4 11쪽
9 포획 후의 계획 24.05.15 193 5 11쪽
8 황야에서의 몬스터 수색 24.05.13 204 5 12쪽
7 발전 방향을 제안 받다 24.05.12 223 7 11쪽
6 장비를 맞춰야 하는 명분 24.05.11 224 7 11쪽
5 또 다시 토벌전 +1 24.05.10 249 6 11쪽
4 토벌 이후의 고민 24.05.09 267 9 13쪽
3 첫 번째 탐색 24.05.09 293 8 12쪽
» 그가 이곳에 온 이유 24.05.08 334 11 11쪽
1 선황의 게으른 막내아들이 황궁을 떠나게 된 이유 24.05.08 411 11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