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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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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9 07:34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196
추천수 :
153
글자수 :
231,435

작성
24.05.13 21:28
조회
203
추천
5
글자
12쪽

황야에서의 몬스터 수색

DUMMY

"끄아악!"


길을 걷던 크리스토퍼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감싼다.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하필이면 그의 눈을 찔러 버렸기 때문이다.


"저, 전하! 이걸로 눈을 씻으시죠!"


동행하던 니그로가 허둥지둥 물병의 뚜껑을 연다.

원래는 식수용으로 챙긴 거지만, 아무렴 어때.


"고마워."


손에 받은 물로 눈을 씻고 나니 개운해진다.

황야에 발을 딛자마자 이 꼴이라니.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그보다 뭐냐, 그 카포···."


"카포러스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털 빠진 닭!"


"풉!"


카포러스란 이름을 대신하는 표현에 니그로가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렇게 이상한가?

조금 불쾌하긴 하지만, 굳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 카포러스란 녀석은 언제쯤 볼 수 있지?"


"으음, 분명 이 근처에서 카포러스가 자주 나타났는데."


니그로가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털 빠진 닭의 벼슬조차 안 보인다.

이렇게 먼 황야까지 왔는데, 막상 찾던 게 안 보이니 힘이 쭉 빠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중간까지는 마차(라기 보다는 짐수레에 가까웠지만)를 타고 왔다.

나중에 모시러 오겠다고 마부가 말하긴 했는데···.


"···걸어가야 할 지도 모르겠군."


답답함이 입 밖으로 절로 튀어나온다.

이대로 카포러스인가 뭔가 하는 몬스터를 찾아 헤맨다면 분명 그리 될 터.

마음이 조급해지는 탓에 더욱 니그로를 닦달하게 된다.


"뭐 단서 같은 거 없어?"


"잠시만요."


정작 니그로는 주변 살피기에 여념이 없을 뿐, 이쪽의 불안 따윈 안중에도 없다.

몬스터 연구가를 자처하는 만큼, 카포러스 추적에 도움이 될까 데려오긴 했는데.

이래선 주객이 전도된 거나 마찬가지잖아.


"오호라!"


그냥 혼자 움직일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에 니그로가 벌떡 일어선다.


"전하, 아무래도 멀지 않은 곳에 카포러스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째서지?"


"여길 보십시오."


니그로가 가리킨 건 바닥에 떡 하니 놓인 바위다.

얼마나 크냐면 꽤 키가 큰 크리스토퍼가 가려질 정도다.


"여기에 발톱 자국이 난 게 보이십니까?"


그의 말대로 바위의 아래쪽에 길게 난 흔적이 보인다.


"이걸 남긴 게 카포러스인가?"


"그렇습니다. 아마 발톱을 갈았나 보군요."


"바위를 발톱 갈이로 쓴다는 건 처음 듣는데. 보통 나무를 이용하지 않나?"


"평범한 동물이라면 몰라도, 대형급 몬스터에게 나무는 한낱 억새에 불과하니까요."


발톱이라도 들이댔다가는 그대로 부러진다는 얘긴가?

이렇게 설명까지 들으니 정말 몬스터가 다르긴 하다는 실감이 든다.


"이 자국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바위에 난 발톱 자국 주변을 살피던 니그로가 단정 짓는다.


"30분, 길어 봤자 1시간 이내에 생긴 게 틀림없습니다."


"···그 정도면 이미 멀리 가버렸을 거 같은데."


니그로를 향하는 시선이 차갑다.

한 시간 전이라면 그들이 마차에서 막 내렸을 때다.

거기서부터 꽤 먼 거리인 이곳에 오는 동안, 바위에 발톱 자국을 남긴 카포러스는?

아무 생각 없이 이 주변을 맴돌지는 않았겠지.


"게다가 빠르다면서?"


"그렇긴 합니다만···."


크리스토퍼가 한마디 할 때마다 니그로가 어쩔 줄 몰라 한다.

어지간히 난감할 터.

설마 새로운 영주가 이렇게까지 적확한 추측을 내놓을 줄은 몰랐을 테니까.


"그, 그래도 이 주변부터 탐색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굳이?"


"또 다른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잖습니까?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카포러스가 발견된다는 보장도 없고요."


"음."


듣고 보니 그렇네.

무작정 돌아다녀 봤자 피곤해지기만 할 터.

그럴 바에는 이 주변에서 단서를 찾는 게 더 효율적이다.


"정확하게 뭘 찾으면 되지?"


"뭐든 상관 없습니다. 뭔가 부자연스럽다 싶으면 절 불러주십시오."


두 사람은 각자 흩어져 단서를 찾아보기로 한다.


"···살풍경하네."


몸을 돌리자마자, 주변 풍경을 보고 크리스토퍼가 감상을 내뱉는다.

보이는 거라곤 황색의 지면.

그 위에 놓인 바위 여러 개와 듬성듬성 자란 탓에 풍경을 더욱 황량하게 만드는 몇몇 풀.

저 너머에 보이는 거대한 바위들까지.

이런 게 황야란 생각이 절도 든다.


"흔적, 흔적이라."


감상은 여기까지 하고, 주변에 뭔가 있는지 살피기로 한다.

뭔가 있기나 한가 싶으면서 두리번거리던 크리스토퍼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온다.


"깃털?"


초록빛 바탕에 특이한 무늬가 들어간 깃털이 바닥에 털어져 있다.

마치 공작새의 깃털 같네.

길이도 1미터에 가까울 정도로 길다.


"어이, 니그로!"


"아, 예! 뭔가 찾으셨습니까?"


"이걸 주웠는데."


깃털을 들어 올리자, 가까이 다가온 니그로의 눈이 커진다.


"오옷! 그, 그것은 카포러스의 꼬리 깃털!"


"엥? 이게?"


크리스토퍼의 휘둥그레진 눈이 깃털과 니그로를 번갈아 오간다.

이게 카포러스의 깃털이라니.


"내가 본 카포러스 그림에는 이런 깃털은 그려지지 않았는데."


"그게 말입니다."


본인이 나설 차례라고 판단했는지, 니그로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수컷 카포러스끼리 싸우는 일이 많습니다."


"영역 다툼이라도 하나?"


"그렇죠. 문제는 이 싸움이 보통 과격한 게 아닙니다."


"어느 정도인데?"


"부리로 쪼는 건 기본이요. 앞발로 할퀴고, 심지어 뒷다리로 점프해서 상대를 짓누르기까지 한다니까요."


···진짜 과격하네.

일반 동물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게까지 격렬한 다툼이 벌어지면 몸에 깃털이 뽑히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래서 꼬리 깃털을 많이 가질수록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죠."


요컨대 서류에 그려진 카포러스는 패배자, 그것도 최하위 등급이라는 거군.

몬스터의 세계를 알면 알수록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만든다.

···역시 다툼 없이 마음 편히 사는 게 최고라니까.


"그런데 이 깃털, 꽤 상태가 좋은데요."


건네받은 깃털을 살펴보던 니그로가 솔직하게 감탄한다.


"윤기도 흐르는 걸 봐선 뽑힌 지 얼마 안 된 거 같습니다."


"그 말은···."


"꽉."


"뭐야, 니그로? 이상한 소리 내지 마."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뭐? 그럼 아까 그건···."


소리의 근원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크리스토퍼의 눈에 뭔가가 들어온다.

높은 바위 너머로 머리 하나가 솟아 올랐다.


"꽈악?"


닭의 벼슬이 단 그것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뭐야, 그 표정은?

그 모습이 왠지 호기심 많은 꼬마 같은 탓일까?

크리스토퍼 역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아앗!"


그 정적을 니그로의 외침이 산산이 부숴버린다.


"저, 전하! 카포러스입니다!"


"보면 알아."


잔뜩 흥분한 연구가와는 달리 크리스토퍼의 말투가 담담하다.

설마 목표물이 알아서 나타날 줄이야.

누가 보면 짜고 친 줄 알겠어.


"넌 물러서."


"예, 옛!"


니그로가 멀리 떨어진 걸 확인하고는 허리춤의 칼집에서 칼을 뽑는다.


"꽈악!"


이쪽의 적의를 느꼈는지, 카포러스가 바위 뒤에서 뛰쳐나온다.

그렇게 카포러스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자, 잠깐!"


그걸 본 크리스토퍼가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다.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그림으로 봤던 것과는 차이가 너무 크다.

머리까지는 문제 없다.

문제는 몸통.

아까 주운 꼬리 깃털이 풍성한 건 물론이고, 양쪽 앞발에도 비슷한 게 잔뜩 달렸다.

이래선 털 빠진 닭이라고 할 수 없잖아.

지금의 카포러스는 마치···.


"공작 깃털을 단 타조?"


"꽈악!"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카포러스가 그 자리에서 펄펄 날뛴다.


"전하, 지금 이런 말씀드리긴 뭐합니다만."


멀찌감치 떨어진 바위 뒤에서 니그로가 몸을 빼꼼 내민다.


"카포러스가 겉보기에는 새 같아도 실제론 용에 가깝습니다."


"···용?"


잠시 니그로에게 머물렀던 시선이 곧 카포러스에게 향한다.

용의 친척이라고?

저게?


"난 인정 못 해!"


"꽈악!"


크리스토퍼의 고함에 화답하듯, 카포러스가 포효한다.

어딜 봐서 새라는 거야?

겉보기에도 그렇고, 울음소리도 꼭 거위 같구만!


"그, 그래도 다리와 꼬리는 용과 비슷하잖습니까?"


다소 기가 죽긴 했지만, 니그로는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게 카포러스의 다리는 타조처럼 길긴 해도 가늘진 않다.

오히려 용의 근육질 다리에 가깝다.

그리고 꼬리도 전에 질리게 잡은 마그이와나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도 인정 못 해. 아니, 안 해!"


"꽈악, 꽉!"


인정 못 할 거면 어쩔 건데?

카포러스의 노성이 크리스토퍼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잡아서 통닭구이, 아니지, 통카포러스 구이로 만들어 주겠어."


"드시면 곤란한데···."


니그로의 걱정 어린 중얼거림도 무시한 채, 크리스토퍼는 카포러스에게 달려든다.


"꽉!"


그 모습을 본 카포러스가 힘차게 뛰어 오른다.


"헉!"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점프력에 크리스토퍼도 기겁한다.

동시에 열 받는다.

헨릭, 이 웬수가!

잘 달린다고만 했지, 점프력도 대단하다곤 한마디도 안 했잖아!

···아니, 아까 니그로가 말하지 않았나?

수컷 카포러스끼리 싸울 때 뒷다리로 점프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꽈악!"


눈 깜짝할 사이에 크리스토퍼의 뒤를 잡은 카포러스가 앞발을 휘두른다.

뒷다리에 비하면 빈약해 보이는 앞발이지만,


"윽!"


옆으로 피하려는 크리스토퍼의 얼굴에 앞발의 발톱이 길고 가는 상처를 남긴다.

닭, 아니, 타조 같이 생기긴 했지만 역시 몬스터라는 건가.

만만하게 봤다가는 오히려 당할 거 같다.


"하지만 상대는 나라고!"


만만찮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

외침에 놀랐는지 카포러스의 움직임이 잠시 주춤댄다.

지금이다!

빈틈이 생기자마자, 근육질의 다리를 노리고 검을 힘껏 휘두른다.


"끼에엑!"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지는지, 카포러스가 비명을 질러댄다.

그런 것치곤 다리는 이렇다 할 상처가 남지 않았다.


"쳇! 참 두꺼운 다리네."


나름 힘을 담은 공격이었는데, 유효타도 먹이지 못하다니.

생각 이상으로 만만찮은 상대다.


"저, 전하!"


전투 상황을 지켜보던 니그로가 외친다.


"뒷다리, 계속 뒷다리를 노리셔야 합니다!"


굳이 왜냐고 되묻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상황만 봐도 카포러스의 공격 주축은 뒷다리라는 걸 알 수 있으니까.

높이 뛰어오르거나, 앞발로 할퀴기 위해서라도 뒷다리가 튼튼해야만 한다.

반대로 뒷다리가 부실하다면···.


"하앗!"


기합을 넣음과 동시에 다시 카포러스의 다리를 노린다.

당해줄 생각이 없다는 듯, 카포러스가 재빨리 옆으로 피한다.

어림없지!

크리스토퍼는 막 내디딘 다리를 중심으로 몸을 크게 돌린다.


"꽈악?!"


예상도 못한 움직임에 놀랐는지, 카포러스의 눈이 확 커진다.

좋았어!

공격할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낮춰 뒷다리를 노린다.


"저, 전하?!"


멀리서 지켜보던 니그로가 경악한다.

그도 그럴 게, 지금 크리스토퍼는 검 대신 자기 몸을 던졌으니까.

몸통박치기라니.

다소 야만스럽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꾸엑!"


크리스토퍼의 체중을 견디지 못한 카포러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으니까.


"니그로, 밧줄!"


카포러스를 온몸으로 누르면서 크리스토퍼는 외친다.


"예?"


"밧줄 가져오라고! 이 녀석 생포하게!"


"아, 알겠습니다!"


처음에는 뭔가 싶었던 니그로가 서둘러 가방을 뒤적거린다.

그리고 곧 두꺼운 밧줄을 들고 이쪽으로 달려온다.


"뒷다리부터 묶어!"


"꽉! 꽈악!"


니그로가 밧줄로 포박하는 사이, 카포러스가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심하게 몸부림친다.

그걸 온 힘을 다해 억누르는 크리스토퍼의 얼굴에 맺힌 땀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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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대장장이들의 자존심 싸움 24.05.20 147 4 12쪽
12 그가 방문한 목적 24.05.19 171 5 13쪽
11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의 방문 24.05.18 190 3 12쪽
10 부화 24.05.16 191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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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야에서의 몬스터 수색 24.05.13 204 5 12쪽
7 발전 방향을 제안 받다 24.05.12 222 7 11쪽
6 장비를 맞춰야 하는 명분 24.05.11 223 7 11쪽
5 또 다시 토벌전 +1 24.05.10 249 6 11쪽
4 토벌 이후의 고민 24.05.09 266 9 13쪽
3 첫 번째 탐색 24.05.09 293 8 12쪽
2 그가 이곳에 온 이유 24.05.08 333 11 11쪽
1 선황의 게으른 막내아들이 황궁을 떠나게 된 이유 24.05.08 411 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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