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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한량 님의 서재입니다.

흔하디 흔한 영지물

웹소설 > 자유연재 > 게임, 판타지

한가한한량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9
최근연재일 :
2021.08.23 11: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8,627
추천수 :
182
글자수 :
247,784

작성
21.05.29 19:08
조회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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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0쪽

13화

DUMMY

인원이 적었기에 탐험을 떠날 채비를 갖추는 시간은 적었다. 하지만


“선생님 이대로 가시면 어떡합니까아-”


“선생님.”


“선생니임!”


란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이들 때문에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그녀에게 은혜를 입은, 혹은 상처를 치료 받았던 영지민들로서 그들이 계속해서 떠나려는 란을 만류했지만, 그녀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조언을 이어갔다.


“조제해준 약은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작은 부위의 타박상이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몸에 이상이 생기면 주저 말고 약제소를 찾고요. 다들 아시겠죠?”


“선생님이 안 계신 약제소를 뭐 하러 갑니까?”


“그야 당연히 믿음직스럽진 않겠지만 나름 저의 제자들이니까 잘 해내줄 겁니다.”


응원인지 멕이는 건지 모를 란의 말과 함께 오묘한 표정으로 얼굴을 구기는 두 견습 약제사들. 그렇게 영지민들에게 둘러싸여있던 그녀는, 알렌의 지시를 받은 병사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인파 속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고마워요 이대로 못 빠져나오는 줄 알았어요.”


“이게 다- 란씨가 한 일들 덕분입니다.”


“후훗 그런가요?”


그렇게 한숨 돌리던 그녀는 지긋이 알렌을 바라보았다.


“...제 얼굴에 뭐라도?”


“영주님은 제가 떠나는 걸 아쉬워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유능한 인재가 떠나는 걸 두 눈 뜨고 바라보게 생겼는데 안 아쉬울 리가 없잖습니까?”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만?”


“억지로라도 잡는다고 잡을 수 있는 분이면 진작에 잡았을 겁니다.”


“그건... 꽤나 아쉽네요. 영주님이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란의 표정에, 알렌은 멋쩍은 웃음만을 내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때


“가지 마세요!”


갑작스레 나타나 두 팔 벌려 둘의 앞을 가로막는 금발의 기사. 한나 크리사오르였다.


“안 보내요! 못 보내요 두 분!”


촉촉해진 눈가 속 굳은 심지의 푸른 눈동자. 어지간해선 물러날 것 같지 않은 그녀의 태도에 알렌이 여러 방면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자, 란이 입을 열었다.


“그럼 한 번 골라보시겠어요?”


“...에?”


“영주님과 저. 둘 중 한 명만 못 가게 할 수 있는데 누구를 선택하시겠어요?”


장난, 놀림, 조금 과장하자면 조롱이라 불러도 이상치 않을 말투였지만


“아... 그...”


효과는 굉장했다.


순진하고 정직한 여기사는 그녀의 말을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아- 이런 상황에서도 한나 경에게 장난을 치는 겁니까 당신은!?”


“마지막이니 너그럽게 봐 주세요.”


“......”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던 알렌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일에 대한 보상이 아직이었지 한나 경?


“예? 아니 그...”


알렌이 품에서 꺼낸 건 바로 하얀 비둘기 문양이 새겨진 은 목걸이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


한나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목걸이를 말없이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고, 란은 그런 그녀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


“그동안 괴롭히고 장난쳐서 미안했어요 한나 경.”


“...아뇨. 그렇게 나쁘진 않았습니다.”


“저도 떠나고 싶지는 않지만 한나 경에게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처럼 제게도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에요. 이해해 줄 수 있죠?”


“......예 란씨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습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란은 한나의 품에서 떨어졌다.


[브리드 마을의 인구가 한 명 줄어들었습니다.]


* * *


“괜히 따라간다고 했어...”


그것이 탐사를 떠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제가 말했잖습니까 남서쪽으로 간다고.”


“강을 건넌다고는 말하지 않았잖습니까 영주님? 그리고 이게 수심이 얕은 건가요?”


알렌이나 다른 이들에게는 골반 정도만 젖을 정도의 수심이었지만,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란에겐 배꼽 부분까지 닿을 정도의 수심이었고, 강을 전부 건넜을 때 그녀는 이미 가슴 아래까지 흠뻑 젖었을 정도였다.


“그러게 빌이 업어준다 했을 때 업혔으면 이런 일이...”


“...남사스럽잖아요.”


그녀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발언에 일동 모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사이 등에 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로브를 벗은 란은 치마에 손을 대며 말했다.


“...치마 벗어서 물기 좀 빼려고 하는데 구경할 건가요들?”


“으읏!”


“굳이 보고 싶다면 말리진...”


“괜찮. 아니 미안합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급히 뒤로 돌았고, 멋쩍게 서선 물에 젖은 옷자락을 벗는 소리와 옷감을 비트는 소리, 주르륵 주르륵 소리를 내며 물기가 땅에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 후, 다시금 탐사가 시작되었다.


“식용할 수 있는 열매들이 많습니다.”


“육식 동물이나 다른 몬스터의 흔적 또한 아직까지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흐음? 이건 꽤나 희귀한 약초네요.”


[하이시아 지역에 대한 지식이 27.4퍼센트가 되었습니다.]


- 30퍼센트를 넘길 경우 하이시아 지역에 대한 이동력이 10% 증가합니다.


처음 도달한 지역의 산행이었지만, 유능한 두 부하와 약제사 동행인 덕분에 탐사는 순조로웠다.


‘좋아! 이 산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30퍼센트는 족히 넘을 수 있겠는데?’


그런 와중, 한 곳을 유심히 조사하던 제이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영주님.”


“뭐지 제이스? 발견한 거라도 있나?”


“사람의 행적입니다.”


제이스의 말에 일동 모두 움직임을 멈추며 알렌을 바라보았다.


“확실한가?”


“미세하긴 하지만 사람의 발길은 짐승의 것에 비해 뚜렷한 법입니다.”


“...추적은 할 수 있겠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일단은 가능합니다.”


“좋아. 추적해.”


아무리 탐사에 능한 사람이 탐사를 한들 산에 기거하는 사람보다는 못한 법이니, 큰 힘들이지 않고 물품이나 정보를 얻거나 산에 대한 정보를 교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이 호의적이지 않은 존재 일수도 있지만


‘그럴 때는 그럴 때의 방법이 따로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제이스의 뒤를 따라 산속을 돌아다닐 때였다.


“찾았습니다.”


그 말과 함께 제이스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산허리의 일부를 깎아내어 다진 것만 같은 조그마한 공터와, 한 가족이 넉넉히 살 법한 아담한 오두막이었다. 하지만 무릎을 간질일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수풀과 허름해진 나무집이 사람의 손을 벗어난 지 꽤 되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폐허... 인 것 같습니다.”


“빌의 말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 렇지요?”


하지만 폐허가 아닐 경우, 더욱 복잡하다는 걸 깨닫지 못한 알렌은 일행과 함께 천천히 오두막을 향해 걸어갔다.




“응?”


오두막까지 약 3미터. 거대한 나무의 밑을 지나가던 알렌은 무언가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직감하기와 동시에, 땅이 솟으며 하늘이 뒤집혔다.


촤악!


“큿.”


“아윽!?”


“우와앗!?”


수풀 아래 숨겨져 있던 거대한 그물이 곤충을 잡아먹는 파리지옥마냥 일행을 감싸 올렸고, 일행은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아... 영화에서 그물 속에 갇히면 꼼짝을 못하던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네.’


옴짝달싹 못하게 된 상황에서도 호기심을 채우던 알렌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현실의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다들 괜찮아? 다친 곳은?”


“하아... 거기, 영주님... 조금만... 비좁... 아읏!”


“!?”


귓가에 속삭이듯 가까이서 들려오는 나지막하면서도 다급한 란의 목소리와, 등에 가득 뭉그러지는 보드랍고도 뭉클한 감각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와중, 오두막의 문이 벌컥 열리는 것과 동시에 붉은 물체가 순식간에 눈앞으로 달려들며 서슬퍼런 창날을 들이밀었다.


“너희... 누구야!”


쇳소리와도 같이 갈라진 목소리. 덥수룩하게 자란 붉은 머리칼과 거적때기나 다름없는 꼬질꼬질한 옷차림. 그리고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이 상접한 피골. 하지만 아이의 붉은 눈동자와 손에 들린 창날 끝에선 망설임 한 점 없는 흉흉한 살기가 날카롭게 쏘아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그 창 치워라 꼬마야.”


간신히 그물의 범위에서 벗어난 제이스가, 재빨리 활에 시위를 먹이고는 창을 들고 있는 꼬마를 향해 겨누었다.


“잠깐! 잠깐 꼬마야! 우리와 대화를 하지 않을래? 우린 나쁜 사람이...”


“닥쳐! 너희가 어떤 놈들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여긴 대체 왜 온 거야!”


불신과 분노. 그리고 오랜 허기로 인해 제정신이 아닌 눈동자는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기묘한 상황 속에서 이뤄진 기묘한 대치. 알렌은 이대로 대치가 이어진다고 한들 좋을 게 하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젠장 어떡해야 하지... 어떡해야 하지?’


......콜록.


열린 문 안쪽에서 들릴 듯 말 듯 새어나온 작은 기침소리. 그리고 아이의 흔들리는 눈동자. 알렌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찰나의 생각에 모험을 걸어보기로 했다.


“제이스!”


알렌은 손을 억지로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 불빛 하나 비치지 않는 어두운 오두막. 시력이 좋다 자부하는 제이스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무엇이 존재하는 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는 아주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활시위의 끝을 돌려 오두막의 열린 문 너머를 향해 겨누었다.


“!?”


그러자 알렌을 향해 창을 겨누던 아이 또한 다급히 창날을 움직여 제이스를 향해 겨누었다.


“화... 활 내려놔!”


“창부터 내려놔라 꼬마야.”


여전한 분노와 불신. 하지만 그보다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나고 있는 건, 바로 동요와 걱정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알렌이 다시금 말했다.


“꼬마야.”


흠칫


“자. 꼬마야 다시 대화를 해보자.”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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