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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한량 님의 서재입니다.

흔하디 흔한 영지물

웹소설 > 자유연재 > 게임, 판타지

한가한한량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9
최근연재일 :
2021.08.23 11: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8,634
추천수 :
182
글자수 :
247,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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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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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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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27쪽

프롤로그 -하-

DUMMY

“순조로운데? 좀 더 대단한 놈들이 나타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알렉스 네 놈은 언제나 입이 방정이니 아가리는 여물라고 했을텐데?”


“언제 뒤질지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 입을 다물라고? 말도 안 되는...”


키에에에엑


“상공에 하피!”


쿵쿵쿵쿵쿵


“갑옷... 갑옷을 두른 트롤들입니다!”


갑자기 하늘에서는 거대한 독수리의 동체에 여성의 몸과 얼굴을 합친 모습의 하피들이 무리지어 날아오고 있었고, 땅에서는 오크보다 머리 두 개는 더 거대한 덩치에 전신을 중갑옷으로 두른 트롤들이 군대의 옆구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엔 하늘이냐! 다들 손도끼 남았냐!”


“다 쓴지 오랩니다!”


“젠장! 그럼 이제 어떻게...”


패앵.


전장에 팽팽한 활시위 소리가 울리며 맥쿨란의 불만을 잠재웠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쇄애애애액


검은 하늘을 꿰뚫을 것만 같은 초록색 화살깃이 달린 수천의 화살들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파바바바바박


키엑


케에에에엑


“내가 파수꾼들을 잊고 있었네.”


인타라가 이끄는 숲의 파수꾼.


가벼운 가죽갑옷에 초록색 로브를 두른 그들은 거대한 롱보우가 팽팽해질 정도로 화살을 매기고선 쉼 없이 화살을 날려대며 일반 궁수에게는 절대로 닿지 않을 곳에 위치한 하늘의 괴수들을 땅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엑~!


그런 하피들을 쳐내며 거대한 덩치의 괴수가 갑작스레 하늘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와이번... 와이번이다!”


하늘의 왕자라고도 불리며 하피와 오크들을 주식으로 잡아먹는 와이번은 하피의 다섯 배는 넘는 덩치에 박쥐의 그것과도 비슷한 형태의 커다란 날개를 지니고 있었는데, 덩치만 커다란 게 아니었는지 하피들을 족족 절명시키던 화살들이 와이번에게는 그저 생채기만 낼 뿐이었다.


하지만 초록색의 로브를 두른 그들은 그 모습에도 전혀 개의치 않으며 계속해서 화살을 날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무리 속에서 하나의 활이 모습을 드러냈다.


활은 주변의 어떤 것보다도 정교한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섬섬옥수와도 같은 주인의 손을 따라 천천히 시위가 당겨진 활은 기묘한 음색의 울음소리를 내며 거대한 아치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끼리리리리리릭...... 퉁.


주위에 바람을 일으키며 천공 속을 헤집으며 날아간 화살은 하늘의 왕자의 단단한 뱃가죽을 꿰뚫고 들어갔다.


끼엑 끼에엑 끼에에에엑!


고통스러운지 허공 속에서 몸을 뒤틀어 대는 와이번을 향해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이 틀어박히자 와이번의 거대한 동체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중갑옷을 두른 트롤들이 목표를 바꿔선 파수꾼들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정작 자신들을 향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철컹 철컹 철컹 철컹


“하하하! 강철의 형제들이여 저걸 보게나! 참으로 튼튼해 보이지 않나?”


“두들길 맛이 있겠군!”


그 누구보다도 육중하면서도 정교한 중갑옷들을 두르고 전쟁망치를 두 손 가득 들고 있는 그들은 바로, 세베루스의 강철 망치단이었다. 갑옷의 두께만큼이나 두터운 수염을 가득 기른 난쟁이들은 그렇게 호기로움을 쾌활하게 내뱉으며, 자신들보다도 몇 배나 커다란 중갑트롤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중갑트롤들 또한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난쟁이들을 발견하고선 코웃음치며 방향을 바꿨고, 이내 충돌을 시작했다.


“!?”


하지만 오히려 격돌에서 밀려난 건 커다란 트롤들이었다. 트롤들의 손이나 망치들을 자신들의 키만 한 망치와 도끼를 휘둘러 쳐낸 난쟁이들은, 정강이나 무릎, 발목 등을 내리치며 트롤들의 중심을 잃게 만들었고,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트롤들의 머리를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휴우. 이제 한숨 돌리겠군요.”


“그러게요. 아주 잠깐이지만 한숨 정도는 돌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리스토의 안도 섞인 말에, 인타라는 화살을 쏘며 무뚝뚝하게 답했다.


“길은 제대로 향하고 있는 건가요?”


“예. 기아란씨의 군대가 유능한 덕분에 괜찮습니다. 마왕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진형을 움직이진 않았을 것 같고요.”


“그 말 틀림 없었으면 좋겠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상황은 점점 안 좋게 흘러만 갔다.


“헉... 헉...”


어느 샌가 몬스터들의 군세로 뒤덮인 사방. 끝모를 적의 군세에 비해 마왕의 모습은 털끝하나 보이질 않은데다, 병사들은 조금씩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특히나 제일 먼저 전투를 시작한 황금군의 지친 병사들이 내뱉는 숨소리는 전장 속에서도 들릴 지경이었고, 자신의 병사들이 지친 모습을 보던 기아란은 쳇하고 혀를 찰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기아란의 군대에만 속하는 말이 아닌, 모든 군대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단지 누구의 군대가 더 지쳐 있느냐 그 차이일 뿐이었다. 조금씩 로테이션을 돌려가며 부대를 휴식하게 하고 있긴 하지만 누적되는 피로까지 해소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렇다고 전선을 다른 군대에게 맡기다간 어떤 일이 초래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전선을 돌아보던 기아란은, 숨을 크게 들이쉬는 맥쿨란의 모습을 발견했다.


“......?”


“어이! 마족 겁쟁이 새끼들! 아무나 나랑 맞짱 함 뜨자!”


“......”


정정당당하고 호기로운 표정의 맥쿨란의 모습에, 그의 휘하 부대를 제외한 모두는 벙찐 얼굴을 내비쳤다.


“그런 게 저 녀석들에게 먹힐 거라고 생각 하는가 맥쿨...”


하지만 기아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몸을 흑색 중갑으로 두른 기사가 무쇠의 마찰음을 일으키며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


“도발의 도 자도 모르는 분은 가만히 있으쇼? 응?”


자만 섞인 웃음과 함께 맥쿨란은 검을 들어 흑기사를 바라봤다. 전신을 검은 갑주와 투구로 가린 그는 자신과 비슷한 크기와 외형을 하고 있었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런 흑기사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맥쿨란은 크게 입을 열었다.


“롤스!”


“...호기롭게 나서더니 부하와 같이 싸우려는 건가? 뭐 좋다. 둘 다 같이 죽여주마.”


부하를 먼저 보내고선 뒤이어 달려 나가는 맥쿨란을 보며, 흑기사는 자신의 그레이트 소드를 움켜쥐며 검은 안광을 빛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롤스라고 불린 사내는 흑기사와 몇 미터의 거리를 두고선 등을 돌리고 멈춰 섰다.


“...뭐 하는...”


흑기사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사이 롤스는 두 손을 겹친 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리며 스스로가 받침대가 되었고, 맥쿨란은 그걸 도약대로 삼아 흑기사를 향해 쇄도했다.


“이 무슨 기사답지 못한!”


흑기사는 맥쿨란을 향해 급히 검을 휘둘렀지만, 그는 먹잇감을 덮치는 한 마리 매의 발톱처럼 흑기사를 덮치며 그의 목에 칼을 정확히 찔러 넣었다.


“까고 있네 마족 주제에.”


콰직


그 상태로 검을 비틀자 흑기사의 몸에 머물던 검은 기운이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이 몸이 바로! 검 한 자루로 에린산맥을 평정한 맥쿨란님이시다!”


“와아아아아아!”


“소리 지를 시간에 한 놈이라도 더 베라 이 머저리들아!”


지쳐가는 병사들의 텐션을 억지로 끌어올린 맥쿨란은 흑기사의 몸에 박힌 검을 뽑아들고는 앞장서서 몬스터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위험합니다 맥쿨란! 적어도 인접군대와 보조를...!”


다그닥... 다그닥...


리스토의 말이 맥쿨란에게 전해지기가 무섭게 안개 속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장병기들이 부딪치고 각 종족의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와중에도, 그 말발굽소리는 유난히 선명하게 지축을 흔들고 있었다.


히히히힝!


안개를 뚫고 입김과 안광, 갈기에 푸른 불꽃을 머금은 괴마와, 그 괴마에 탑승하고서 검은로브를 두르고 낫을 휘두르는 그림 리퍼들로 이뤄진 기마대가 기아란의 군대 앞에 나타났다.


“저... 저건...”


여러 국가들의 주력부대를 산산조각 내는 것으로 파괴력과 무시무시함을 입증한 마왕군의 정예병단으로서, 저들을 직접 경험해본 이들은 저들에게 하나의 이름을 붙였다.


“아... 악몽...”


“악몽이다...”


“우린 다 죽을...”


“머저리들! 그래봤자 창에게는 약한 기병이다! 황금군! 방진!”


조금만 생각해도 간단히 논파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공포로 얼룩져가는 급박한 상황에선 그런 자그맣고 어중간한 위안이라도 먹혀 들어가는 법이었다.


척척척


아직 공포가 채 가시질 않은 상태였지만, 황금군은 순식간에 대기병 진형을 구축하고선 전의를 내뿜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황금군을 향해 돌진하던 기마대는 불과 몇 미터 앞에서 말머리를 틀고선 좌익으로 향했다. 그리고 좌익은 바로.


“이런 젠장!”


경갑옷으로 무장한 맥쿨란의 군대가 있는 곳이었다.


“산개! 산개해! 뭉쳐있지 말고 알아서 저것들 피해내!”


전투 중인 군대가 다짜고짜 산개하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지만, 전차나 다름없는 기병대의 돌격을 검든 경보병이 힘으로 맞상대하는 건 더욱 미친 짓이므로, 맥쿨란의 지시는 정확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의 군대가 입은 피해는 기마대에게 휩쓸리기 이전에 입은 피해에 비해 두 배에 달할 정도였다


“으아아악!”


“녀석들이 다시 돌아온다!”


“이이익! 누가 좀 도와줘!”


“입 다물고 이쪽으로 와라 야만인들.”


그런 그들을 위해 나선 건 알테란의 제국군이었다.


“과거의 원한 같은 건 잊고 서로 돕는 모습. 아주 감동이야.”


“......”


알테란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맥쿨란을 보며 괜히 도와줬나 싶었지만, 달려들기 시작하는 기마대의 모습에 우선 집중했다.


“벽을 세워라 제국군이여.”


척척


알테란의 한 마디에, 타워실드와 창으로 촘촘하게 이뤄진 조립식의 붉은 요새가 악몽과 회색 늑대들의 사이를 가로막았지만, 악몽은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알테란이 악몽을 저지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까 리스토?”


“백업하겠습니다.”


악몽은 분명 강력한 기마대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몇 가지가 존재했다. 첫 번째로, 알테란의 1군단은 대륙 제일의 창보병 부대라는 점이고, 두 번째로 알테란은 악몽들과 맞서 싸운 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때의 전투는 승리라고 할 만한 전적을 세우진 못했지만, 또 패배라고 할 만한 전적도 아니었다. 그렇게 상황을 가늠하던 알테란이 사나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방패 버리고 창만 들어!”


텅 터덩


그의 말에 병사들은 자신들의 몸을 보호하던 거대한 방패를 미련없이 버리고는 기묘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열은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사선으로 창날을 세웠고, 두 번째 열은 평범하게 앞 열 병사의 어깨 너머 사선으로 창날을 내밀었으며, 세 번째 열은 두 번째 열에 위치한 병사의 어깨에 창을 기대며 직선으로 창날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건 마치, 날카로운 가시로 빽빽한 고슴도치와도 같았다.


“...저게 뭐야.”


“알테란 저 미친!”


알테란이 한 행동은 명령받은 병사들이 버벅 거렸거나 거리계산을 조금이라도 잘못 했다간 안하느니만 못하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그런 하이리스크를 감수하였기에, 악몽은 작정하고 준비한 대 기병 창진을 앞에 두고도 말머리를 돌릴 수 없게 되었다.


“......”


히히히힝!


하지만 악몽은 더욱 박차를 가하며 예견된 격돌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콰자자자자작


찢고 깨지고 꿰뚫리는 비명소리들이 섞여 굉음을 자아냈다. 창날에 꿰뚫리는 말들과 기수들.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는 기병들과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깔리는 창병들.


“틈새를 매워라! 예비열! 넘어온 녀석들을 죽여라!”


“......”


잠시간의 분전 끝에 악몽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말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가는 것 또한 만만치 않았고, 그 결과 악몽의 병력은 처음에 비해 3분의 1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마... 막아냈어. 악몽의 돌격을...”


“그런데 교환비가 왜 저래.”


알테란이 작정하고 세운 계획이 맞아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악몽의 군대가 죽은 수와 알테란의 군대가 죽은 수에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1.3? 1.5? 그런 짓을 하고서야 저 정도의 교환비라고?”


“그래도 녀석들의 수를 저만큼이나 줄였으면...”


히히히힝!


하지만 안개 속에서 다른 한 무리의 악몽들이 지면을 박차며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다른 몬스터들 또한 동시에 달려 나오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병사들의 얼굴에서 절망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말려 죽겠는데요?”


“그하하하! 뭐냐! 벌써 다 죽는 거냐? 마왕 얼굴도 못 보고?”


“......”


리스토는 전황을 둘러보며 고심을 거듭했지만, 이렇다 할 계책이 나오질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제가...”


“내가 전 병력으로 어떻게든 틈을 만들테니 비집고 들어가라.”


“알테란?”


“잠깐 그렇게 되면...”


“조국을 망치게 만든 네놈들에게 대륙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한탄스럽지만... 승리하고 죽어라 개자식들아.”


“...이젠 정말 이것밖에...”


다그닥 다그닥.


또 다시 다른 방향에서 들려오는 말발굽소리.


“뭐야. 저 빌어먹을 기마대 더 꿍쳐놓고 있었어?


“아니, 뒤 쪽이다.”


그 때,


뿌- 우-


병장기들이 부딪치는 소리와 수많은 생명체들의 고함소리를 뚫고, 청아한 뿔나팔 소리와 함께 한줄기의 은빛이 평원을 비추기 시작했다.


은빛의 털을 망토처럼 두른 풀 플레이트 아머차림의 기마대가, 백색 산양이 그려진 푸른색의 깃발을 들고 나타났다.


“은빛 양모 기사단!”


“왔군!”


“하르카 저 자식 설마 저럴려고...”


양모 기사단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이상하게도 안개를 몰아내며 적진을 밝혀내었고, 마왕군의 진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하군.”


몬스터들로 그득하게 들어선 사방천지의 모습과 그들을 지시하는 몇 몇의 존재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정체모를 제단.


“저게 마왕...”


하지만 그 광경에서 목표에 대한 희열이나 분노보다도, 피부가 저릿할 정도의 강대한 힘이 공포로 다가왔다.


“저걸 도대체 어떻게...”


“전군! 목표가 눈앞이다! 전쟁에 끝이 다가왔다!”


“그래! 저 마왕의 모가지만 따면 끝이다!”


“와아아아!”


“......”


그 모습에 악몽은 말머리를 틀어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고, 인타라는 그들을 향해 활시위를 매겼다.


“인타라씨!”


하지만 리스토가 가리키는 곳들을 확인한 인타라는 지체 없이 자신의 군대에게 작전을 하달하기 시작했다.


“전 제국군! 전면에 벽을 세워라!”


“우와아아아!”


척 척 척 척


그 사이 알테란의 명에 따라 사각의 붉은 요새가 세워지며 몬스터들의 돌격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오래는 못 버틴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작전을 세우겠습니다.”


그렇게 몇 분 후. 요새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균열은 빠르게 확산되어 갔다.


“벽이 무너진다!”


“작전 개시합니다.”


“좋다! 가자!”


무너지는 정면을 향해 맥쿨란을 필두로 그의 군대가 나아가기 시작했다. 살기등등한 기세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몬스터. 그에 비해 반절 가까이 줄어들고 지쳐버린 맥쿨란의 병사들. 그 비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었다. 그 때


퉁.


인타라의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로질렀고, 뒤이어 수천의 화살들이 뒤따라 목표를 향해 쏘아져 갔다. 그리고 그 화살들의 목표는


“움직여라 움직여 이 머저리들 크락!?”


“저쪽이다 저쪽! 크허학!”


“화 화살!? 아아악!”


안개 속에서 가려져 있던 마군 지휘관들이었다. 군대를 조율하는 지휘관이 일시에 저격당하자, 군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고, 그 속을 맥쿨란과 그의 병사들이 헤집고 나아갔다.


“...지금!”


“돌격!”


“전군 돌격!”


“와아아아아-”


군을 이끌며 나아가던 리스토는 마지막으로 알테란을 향해 뒤를 돌아보았다.


“뒤돌아보지 마라! 제국의 벽을 딛고 나아가라! 전군. 창을 들어라! 제국군의 강인함과 위대함을 녀석들의 핏속에 새겨 넣어라!”


“와아아아아!”


“.....”


그 모습을 보며 리스토는 아무런 말없이. 다시금 앞을 향해 나아갔다.


“와아아아아!”


마왕을 향해 나아갈수록 강력한 몬스터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규율이 흐트러지고 진형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그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혼란 속에서 그들은 우직하게 적들을 베어가며 나아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마왕 녀석에게 욕 한바가지 정도는 날려줄 수 있겠는데?”


“크하하하하하! 그거 유쾌하겠구만! 그래! 무슨 욕을 할 건가!”


“글쎄? 마왕... 정도면 패드립 정도는 날려줘야지?”


“푸훗.”


맥쿨란의 말에 전쟁 내내 굳은 표정이었던 인타라마저 활을 매기던 손을 멈추고 실소를 머금었다.


“크흡... 그런 농담 할 시간에 하르카가 악몽을 붙잡고 있는 사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야...”


번쩍!


천둥과도 같은 하얀 빛이 소리 없이 반짝였다. 그 이변에 말을 멈추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리스토들은 진짜 이변을 마주하게 되었다.


키야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정화되어가는 악몽과, 그들을 짓밟고 나아가는 은빛 양모 기사단. 입이 떡 벌어지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곧바로 대응한 건 리스토 뿐이었다.


“...작전, 작전 변경! 양모 기사단을 위해 길을!”


“음? 음! 알겠다! 가자 힘쟁이들아!”


“젠장! 진짜 주인공이구만! 하지만 도중에 지쳐서 자멸하면 내가 나갑니다!”


“예.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맥쿨란의 말이 낮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리스토는 그들을 믿고 있었다. 대륙 제일의 창보병이 알테란의 1군단이라면, 대륙 제일의 기마대는 하르카의 은빛 양모 기사단이라는 것을.

콰작 콰자작 콰자자작.


파죽지세.


리스토의 말처럼, 양모 기사단은 파죽지세의 기세로 몬스터의 무리를 헤집으며 나아가고 있어었다. 하지만 단순히 일직선으로 밀고 나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단은 전장 속에서 수시로 변해가는 닫힌 길과 열린 길. 위험한 길과 안전한 길을 파악하며 주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자가 바로 기사단장인 하르카였다.


그렇게 하르카가 이끄는 양모 기사단은 순식간에 알테란의 군대가 있는 곳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제국의 무시무시한 창과 방패였던 붉은 군대는 대지에 붉은 피를 뿌리고는 차가운 시체가 되어버렸고, 그들을 이끌던 알테란 또한 초주검의 상태로 검과 창을 들고 서 있을 뿐이었다.


“알테란 경!”


“...가라.”


“...옛!”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얼마 남지 않은 병사들을 지휘하며 적들을 베어나가는 알테란의 모습을 뒤로하고 하르카와 그의 기사단은 자신들을 위해 뚫린 길을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길을 따라 움직이던 그들의 앞에, 길목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뭉쳐있는 몬스터 무리의 두터운 벽이 나타났다.


“하르카님!”


“레오. 돌파합니다.”


“옛! 은빛 양모 기사단의 부단장이 지시한다! 전군! 돌파진형으로!”


히히히힝!


선두가 속도를 늦추자, 그 사이 후방에 있던 기병들이 따라붙어선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밀집해 마름모꼴의 진형을 갖춘 기사단은 점차 속도를 올리며 정면을 향해 창을 곧게 뻗었다.


그림리퍼처럼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정련되고 날카롭게 규율 잡힌 군대의 집단 기마돌격은 맞상대하는 자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으...”


“으으... 어...”


“녀석들이 흔들린다! 박차를 가해라!”


“돌격!”


“하아아아아아압!”


일순간이었다. 부숴져 망가지고 나가떨어지며, 창에 찔리고 꿰뚫리는 파육음 등이 한데 섞인 소리와 함께 벽이 뚫렸다. 그리고 하르카는 그 벽이 생성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너머엔 바로 리스토의 군대가 포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개! 속도를 줄여라!”


“과연. 대륙 제일이라 불리는 은빛 양모 기시단의 기마돌격. 잘 봤습니다.”


“...은빛 양모 기사단의 단장 하르카. 피난민을 위협하던 무리로부터 피난민을 보호하고 지금 복귀했습니다.”


“연합의 명을 어기고 단독행동을 했으면서 병력의 절반을 잃고서 돌아온 죄. 그 죄의 대가는 충분히 가져왔습니까?”


“예. 충분히 받아왔습니다.”

리스토는 하르카의 허리에 매어진 검의 모습을 확인하고선 재차 입을 열었다.


“가세요. 마왕을 향해서.”


“옛!”


갸아아아아아


그런 그들을 막으려는 듯이 몬스터들이 총공격을 가해왔지만, 리스토의 군대는 밀리질 않았다.


“어서!”


“...가자!”


말 울음소리와 함께 은빛의 무리가 거세게 나아가기 시작했고, 그 무리를 리스토의 군대가 벽을 세우며 비호했다. 하지만 그 벽도 거대한 굉음과 함께 한쪽이 터져나갔다.


“으아아아악!”


“하! 내 이럴 줄 알았지!”


벽을 뚫고서 나타난 존재는 바로 거대한 도끼를 들고서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한 괴인이었다.


“자. 가기 전에 나를 먼저 쓰러뜨려봐라!”


“어이 덩치. 나랑 놀자.”


“음?”


타닷


촤악


그런 괴인의 오금을 베어내며 한 검사가 나타났다.


“...껍질 두꺼운 거 봐라. 다리를 자르려 했는데 무릎도 못 꿇렸잖아?”


“맥쿨란.”


“가. 마왕 안 잡을 거야?”


“...무운을.”


하르카와 양모 기사단이 괴인을 지나쳐 말발굽을 달렸지만, 괴인의 눈은 맥쿨란을 향하고 있었다.


“네 놈이 죽인 그 녀석. 내 부하였다.”


“내가 죽여? ......아 그 흑기사!”


“그래.”


“별 볼 일 없는 녀석이 부하라면 네 녀석 또한 별 볼 일 없겠군.”


“그 말!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철회하게 만들어주지!”


다그닥 다그닥.


맥쿨란과 괴인. 그리고 쏟아지는 몬스터들과 그들을 막기 위한 군대들의 몸부림을 지나쳤지만, 그 너머는 더욱 심화된 전장이었다.


“흠... 노인을 상대로 그런 둔기는 과하다고 생각지 않은가?”


“노인? 이 세베루스의 눈에는 백골로 다져버려야 할 시체들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구먼!”


퉁- 투퉁- 퉁-


“거기 뾰족 귀 누님. 그 위험해 보이는 활은 좀 내려놓고서 진득한 대화라도 나누지 않을래?”


“......”


“황금이라... 인간에게는 참으로 과분한 물품이군.”


“하얀 뱀이라... 이 몸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가죽인 것 같군.”


각자의 군대가 총공격을 감행하며 주력부대들의 발을 묶어 놓고 있는 그 전장 속에서 열려 있는 한줄기 길. 하르카의 기사단은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하늘에서 빗발치고 사방에서 죄어오는 몬스터들에 의해 아군들이 셀 수없을 정도로 죽어나갔지만, 그럼에도 나아갔다. 비명 속에 사그러져 가는 죽음들에 눈돌리지 않고. 우직하게 나아갔다. 그러자 남은 것은 외눈 안경을 착용한 사내가 이끄는 몬스터들로 이루어진 두텁고 날카로운 벽뿐이었다.


“저곳은 힘들겠습니다. 우회해서...”


“가자 기사단이여! 목숨을 바쳐 길을 뚫어낸다.”


“레온!”


“저희가 어떻게든 뚫겠습니다. 가세요 하르카님!”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지만 이미 기사단은 그의 의지를 벗어나 있었고, 언제나처럼의 선봉이 아닌, 대열의 정 가운데에서 비호를 받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모두들...”


“자. 가자. 기사단의 마지막을 장식하자!”


“우오오오오!”


아쉬움 따위 한 점 남아있지 않은 전장의 희열 속에서 기사들은 자신들을 가로막고 있는 마지막 벽을 향해 힘껏 부딪쳤다.


굉음.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지만, 벽은 뚫리지도 막히지도 않고 있었다.


“이곳이 뚫리면 마왕님의 면전이다! 죽을 각오로 막아라!”


“이곳만 뚫으면 마왕의 앞이다! 죽을 각오로 나아가라!”


양측 모두 그야말로 필사적인 전장 속 교착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일순간. 찰나와도 같은 순간이었지만 작은 틈이 벌어졌다. 그리고 하르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움직였다.


히히힝!


군마는 거세게 부르짖으며 힘차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울음소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몬스터들이 방어를 도외시하며 그를 덮쳤고, 이내 수십에 달하는 몬스터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하지만 하르카는 그 말에 타고 있지 않았다.


“!?”


타다닷


그 사이. 하르카는 창을 휘두르며 몬스터들의 별다른 제제도 없이 재빠르게 걸음을 내달았다.


“멈춰라!”


그런 하르카를 향해 마왕의 옆을 지키던 집사의 채찍이 날아들었지만, 레온의 왼팔이 그 채찍을 잡아챘다.


우두둑.


뼈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레온은 안면을 찡그리는 것으로 고통을 인내하며 계속해서 채찍의 움직임을 봉쇄해 나갔다.


“그렇겐... 못하지!”


“이 하찮은 존재가!!”


그렇게 레온과 마지막으로 눈의 대화를 나눈 하르카는 기사단들과 몬스터들을 넘어 마침내 마왕의 제단 앞에 당도했다.


“건방진! 감히 짐의 어전에 허락 없이 발을 들이대는 것이냐!”


“......”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마왕의 압력에 하르카는 대답 대신 검을 뽑아들었고, 이내 하얀 빛이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성검 카르디! 교활한 천사 놈들의 안배인가!”


“아니! 이건 천사의 성검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염원과 기원이 담긴, 민중의 검이다!”


“네놈!”


“하아아압!”


마왕의 강대한 힘과 하르카의 일격이 부딪치자 강렬한 빛이 번쩍하고 평원 전체를 비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빛이 잦아들자, 멀쩡히 서 있는 마왕의 모습과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먼지가 되어가는 하르카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비추어졌다.


“하르카님!”


“정신 차리고 저길 봐!”


그가 가리키는 곳. 그곳에는 마왕이 승자의 위엄을 떨치며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커헉.”


푸슉.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비틀거렸고, 그의 발치에는 피를 머금은 성검이 주인을 잃고 땅에 꽂혀 있었다.


“마왕님!”


“마왕이... 마왕이 부상을 입었다!”


“마왕을 죽일 수 있다!”


“마왕을 죽여라!”


“인간 녀석들을 몰살시켜라!”


그렇게 전쟁의 전황이 다시금 뒤바뀌게 되었다.


절망을 가슴에 품고 필사의 각오를 다짐하던 연합군과 시작부터 승리를 확신하던 마왕군의 전쟁은


희망을 가슴에 품은 연합군과 절박함과 패배의 공포가 새겨진 마왕군의 전쟁으로 뒤바뀌게 되었다.


결국 전쟁의 승리는 마왕군에게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평원은 수많은 몬스터들의 피의 강과 시체의 산으로 변모하게 되었고, 그 위에선 태양의 햇살만이 내리쬘 뿐이었다.


[그랜드 심포니아의 클로즈 베타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종료하시겠습니까? Y/N]


작가의말

프롤로그만 두 개를 만들어 재낀 한가한 한량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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