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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도술 쓰는 공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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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최근연재일 :
2024.06.20 22:30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26,271
추천수 :
810
글자수 :
149,729

작성
24.05.26 22:00
조회
1,211
추천
37
글자
11쪽

뜨겁고 화끈한 것 (2)

DUMMY

"선배."


탈리아의 존칭이 한 단계 낮아졌다.


"도움이 안 될 이야기는 처음부터 꺼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도움이 안 되다니, 펨브로크 가문의 망나니 얘기 못 들었어? 그 왜 있잖냐 - "


"공자님께서는 아직 두 살도 안 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닌 마경에서 나는 최상급 마력의 원천을 무작정 권유하시면 어떡합니까. 그것이 공자님의 각성 능력과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킬지 아무런 고려도 없이 말입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진지한 건 아니었고······."


비텐의 목이 거북이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어찌나 살벌하던지, 한음절맥을 내가 아니라 그녀가 가진 것처럼 느껴졌을 정도였다.


비록 비텐은 저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지만, 나는 물러날 생각이 조금도 없다. 나는 비텐이 남긴 단서에 내가 평생 찾아 헤매던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리리."


"네, 도련님."


"용앙 정녕이 모야?"


탈리아가 비텐을 노려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해서 공자님께 헛바람을 불어넣으셨잖습니까.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라는 말이 눈빛에 서려 있었다.


"도련님, 용암 정령이란 말이죠···."


"지금 아실 필요 없는 것입니다."


탈리아가 끼어들었다.


"용앙 정녕이 몬데! 몬데에!"


그러나 그녀가 용맹한 기사일지는 몰라도, 떼를 쓰는 아이를 상대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거든.


나는 한 시간여에 걸친 장절한 사투 끝에 마침내 책 한 권을 얻어냈다. 몬스터 도감이라는 제목의 두꺼운 그림책이었다.


"여기 보이시나요? 이게 바로 용암 정령이랍니다."


릴리가 녹아내리는 용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인간의 형상의 정령을 가리켰다. 나는 꿈으로도 이 비슷한 존재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의 핵을 빼내자는 이야기였다는 거지?


탈리아가 화를 낼 만하네. 순순히 자기 것을 내줄만큼 착해보이진 않거든.


하지만 이런 전설적인 존재가 실재하고, 어떻게든 핵을 구할 수만 있다면······.


"이건 불사조고요."


이번에 그녀가 펼친 페이지에는 불타는 깃털로 뒤덮인 새가 그려져 있었다. 크기가 어찌나 크던지, 날개 한쪽의 길이가 산 하나와 맞먹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이놈은 생김새가 주작하고 똑같은데?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녀가 가리킨 새는 주작이 틀림없었다.


주작의 허파를 구할 수만 있다면야 한음절맥이 아니라 한음절맥의 할애비가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단을 두고 굳이 허파를 쓰겠다는 발상은 특이하긴 하다.


"그리고 이건 레드 드래곤이랍니다."


나는 책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는 그만 얼어버렸다.


비늘로 뒤덮인 길쭉한 몸통, 툭 튀어나온 주둥이, 두 갈래로 곧게 뻗은 뿔.


···용이다.


커다란 날개와 뚱뚱한 하체가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닮았다면 용의 아종이라고 부를 만하다.


용은 도가(道家)에서 일컫는 전설적인 생물 중에서도 언제나 최고로 꼽히는 놈이었다. 녀석들 중 한 마리는 동서남북 중에서 방위 하나를 담당할 정도이니 말 다했지.


다만 도사들이 탐내는 보물은 용이 입에 물고 있는 여의주인데, 이 나라 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진 않은 듯했다.


그래서 심장을 빼먹나?


아무튼, 비텐이 영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누가 주작의 허파나 용의 심장을 준다고 하면 나는 넙죽 큰절부터 올릴 텐데.


물론 탈리아도 악의가 있어서 비텐을 나무란 건 아닐 것이다.


어떤 쓰레기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거든. 재보에는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라고.


아무리 엄청난 보물이라도 그걸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 독이나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람이 주작의 허파 같은 걸 접해봤자 기연을 얻기는커녕 숯덩이가 되고 말겠지.


하지만 나는 능력이 되잖아.


그러니 난 이 책에 나온 생물들을 어떻게든 만나야겠다, 어디까지나 이것들이 실존한다는 가정하에.


별안간 바깥이 시끄러워졌다. 릴리가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그 동안 나는 도감을 몇 장 더 넘겨보았다.


책에는 용이나 주작 말고도 흥미로운 생물이 많이 실려있었다. 여성의 몸통에 날개가 달린 새라던가, 반은 인간이고 반은 거미인 괴물이라던가, 초록빛 피부의 소인족이라던가.


"도련님!"


별안간 릴리가 날듯이 달려왔다. 몇 걸음 되지도 않는 거리를.


"크, 큰일났어요!"


큰일?


크리스가 또 과자라도 가지고 왔나?


"공작 전하께서 여기로 오고 계세요!"


"예?"


"뭐라고요?"


두 기사가 소파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중간에 도련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으셨나봐요. 그래서 길을 틀어서 별궁으로 진로를 바꾸셨대요."


"탈리아!"


비텐이 사자후를 내질렀다.


"뭡니까, 선배."


"아까 내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해다오."


"밥 한 번 사시죠. 아니, 세 번."


"그래, 얼마든지 사마."


나는 나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직 새 부모님을 만나뵐 마음의 준비가 덜 됐다고.


"일단 옷부터 입혀드릴게요!"


릴리가 날 납치했다.


궁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난리의 정도를 따지자면 암살자를 색출하겠다며 수사관들이 돌아다닐 때보다 지금이 더했다.


모든 집기는 자리에서 최소한 한 번은 위치를 옮겨서 청소 및 세탁이 되었으며, 공작님 눈에 거슬리겠다 싶은 물건들은 가차없이 퇴거조치 되었다.


내 역작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었다.


"나중에 또 그리게 해드릴게요, 네?"


심혈을 기울여 설치한 팔문금쇄진이 이렇게 분쇄되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 이반이었다. 녀석은 내가 조종하지 않을 때엔 장식물일 뿐이니까.


점심 무렵이 되자, 말 탄 기사들이 정문으로 줄줄이 들어왔다. 단 두 명의 기사가 오는 것만으로도 그 호들갑이었는데, 지금은 눈에 보이는 사람만 족히 수십 명이었다.


이거 하나는 알겠네. 크리스가 날 암살하려는 이유. 이런 권력을 빼앗길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눈이 어떻게 안 돌아가겠냐.


마침내 아버지가 입궁하자, 방에는 마치 시위를 당긴 활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나돌았다.


"공작 전하 드십니다."


왔다.


비텐과 탈리아, 릴리가 마중에 나섰다. 곧이어 키가 훤칠한, 초상화에서 봤던 그대로의 인물이 안으로 성큼 걸어왔다. 근엄하고, 강건하고, 제복을 입은, 군인의 표상 같은 남자였다.


"전하."


비텐과 릴리아가 왼쪽 가슴에 주먹을 얹으며 경례를 올렸다. 아버지는 고개를 슬쩍 끄덕이며, 곧장 내게 다가왔다.


나는 발돋움을 하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가장 먼저 떠오른 심상은 '굳건함'이었다. 노련하고 용맹한 영혼이,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그 어떤 사람보다 다부진 육신에 깃들어있었다.


"아빠?"


나는 서툴게 그를 불렀다. 무슨 짓을 저질러도 용서받을 거라는 아이다운 자신감을 내세우며.


"···훗."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기둥처럼 우뚝 솟은, 고목나무 같은 거인이 미소를 지은 것이다.


"다시 불러 보거라."


"아빠!"


"옳지, 네가 이덴이로구나."


그는 손을 뻗어 나를 번쩍 안아올렸다. 그러더니 한음절맥의 냉기를 느끼고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래, 네게 특이한 각성 능력이 있다고 들었지."


그가 릴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내 아들이 어떤 상태인지 소상히 말해보아라."


"예, 전하."


릴리는 그녀가 아는 모든 것을 천천히, 빠짐없이 전달했다. 아버지는 추임새 하나 없이 릴리의 말을 신중하게 경청했다. 그러더니 손을 까딱여, 이번에는 옆으로 물러나있던 비텐과 탈리아를 불러들였다.


"비텐과 탈리아였나."


"그렇습니다."


"예, 전하!"


"암살 기도가 들어왔다던데."


두 기사의 표정이 한층 무거워졌다.


"예, 현장에서 두 개의 무기와 함께 싸움이 벌어진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수사관들이 배후를 캐는 중입니다만 아직 뚜렷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탈리아가 대답을 마쳤을 때였다.


"하필이면 전하께서 자리에 계시지 않을 때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다니요."


"반드시 주동자를 찾아내서 엄벌을 내려야 합니다!"


아버지를 따라온 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높였다.


그것을 들은 아버지는 성마른 웃음을 흘렸다.


"재미있군. 내게 굳이 급할 것도 없던 토벌대를 꾸리라고 압력을 넣은 건 자네들이 아닌가."


"그, 그것은 공교롭게도 시기가······."


"악적들이 전하의 부재를 노린 것이 틀림없습니다!"


"부재를 만들어낸 건 아니고?"


귀족들이 고양이 앞의 쥐처럼 목을 움츠렸다. 마치 눈을 마주치면 벼락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누가 봐도 뒤가 구린 모양새였지만, 나는 암살의 배후 따위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관심있는 건 용의 보주와 불사조의 깃털, 심장, 허파 같은 것들이다. 내가 강해지면 자잘한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이 된다.


"아빠?"


"불렀느냐, 이덴."


그가 날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기가 감돌던 얼굴에 거짓말처럼 훈풍이 내려앉았다.


"이거 바바."


나는 릴리가 가져다준 책을 펼쳤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마그마가 뚝뚝 떨어지는 용암 정령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호오, 용사라도 되고 싶은 게냐?"


"아냐, 이거!"


나는 손가락으로 정령의 가슴팍에 꽂혀있는 핵을 정확히 가리켰다.


"고, 공자님···!"


동시에 비텐의 입에서 돼지 멱 따는 듯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미안하다, 비텐.


하지만 이번 생에는 나도 부모 덕이라는 걸 누려보고 싶거든. 동전 세 닢보다 싸게 팔려본 경험이 없다면 네가 이해해 다오.


"내 아들이 정확히 뭘 원하는 거지?"


아버지가 물었다.


"그것이······."


릴리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을 때였다.


"재미삼아 나온 이야기입니다만, 공자님께서 흥미를 느끼셨나 봅니다."


탈리아가 해명에 나섰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 몇몇 불속성 몬스터에 관한 말이 나오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내 관심을 끌기 위해 꺼낸 가벼운 주제였다는 식으로, 한음절맥과는 조금도 연관을 짓지 않았다.


나는 그게 그녀의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절맥과 연관을 지었더라면.


아버지는 이렇게 받아들이셨거든.


"탈론."


"예, 전하."


장신의 호위무관이 고개를 숙였다.


"수장고에 불속성 몬스터의 부산물이 좀 있더냐?"


"정확한 건 확인을 해봐야겠습니다만, 샐러맨더의 혓바닥은 확실히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 전하···?"


귀족들이 당황했다.


"새, 샐러맨더의 혓바닥을 막내 공자님께 주신단 말입니까?"


"전하! 신중하게 결정하심이 좋으실 듯합니다!"


귀족들은 질색팔색을 했다.


뭔데, 나도 좀 알자.


뭔지는 몰라도 되게 귀한 물건인 것 같은데.


"내오거라."


아버지가 지시했다, 오직 그만이 보일 수 있는 오만함으로.


"내 아들이 가지고 싶다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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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가정 교습 (2) +2 24.06.02 1,035 35 10쪽
11 가정 교습 (1) +1 24.06.01 1,076 31 10쪽
10 불과 얼음의 노래 (3) +1 24.05.31 1,123 33 11쪽
9 불과 얼음의 노래 (2) +2 24.05.30 1,127 31 12쪽
8 불과 얼음의 노래 (1) +1 24.05.29 1,152 37 11쪽
7 뜨겁고 화끈한 것 (3) +1 24.05.27 1,170 32 9쪽
» 뜨겁고 화끈한 것 (2) +2 24.05.26 1,212 3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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