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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도술 쓰는 공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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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최근연재일 :
2024.06.20 22:30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26,269
추천수 :
810
글자수 :
149,729

작성
24.05.27 22:00
조회
1,169
추천
32
글자
9쪽

뜨겁고 화끈한 것 (3)

DUMMY

일단 명령이 떨어지자 그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목숨이 달린 것처럼 움직였고, 실제로도 그러했을 것이다.


저녁이 되자 나는 이미 '샐러맨더의 혓바닥'이라는 물건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것은 빨갛고 길쭉한, 스스로 열기를 뿜어내는 물질이었다.


왜 귀족들이 질색팔색했는지는 알겠다. 이게 단순한 혓바닥이 아니었다. 뭐랄까... 순수한 화기(火氣)의 응집체랄까.


"선배."


탈리아가 비텐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게 공자님 나이에 적절한 장난감으로 보이십니까."


"너무 위험해요. 자칫하다가는 화상을 입겠는 걸요."


릴리까지 거들고 나서자, 비텐은 기댈 구석이 없었다.


"그냥 해 본 소리였다니까. 일이 이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그는 기가 죽은 투로 항변하더니,


"미안."


결국 백기를 들었다.


비텐은 죄 지은 사람처럼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처져있을 필요 없어, 비텐. 당신은 내겐 은인이니까.


농담이 아니라, 내 운명은 지금 이 순간부터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여기에 움직이지 못할 증거가 있다. 이 세계가 전생의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증거, 한음절맥이 불치병이 아니라는 증거.


평생 찾아 헤매던 외경(畏敬)이 눈앞에 있는데, 이걸 스승님을 두고 혼자만 본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도련님."


릴리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 아지랑이 올라오는 거 보이시죠? 손에 닿으면 아야 하실 거예요, 아야."


"아야 갠차나."


"아니에요, 정말로 눈물이 쏙 빠질거여요. 도련님이 아야하시면 안 되니까, 우선 이건 창고에 놓아둘게요, 네?"


"시러!"


나는 혓바닥이 든 통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어떻게 구한 물건인데 내줄 리가.


"공자님, 그거 제게 주시면 제가 나중에 공자님께서 좋아하시는 용암 정령의 핵을 잔뜩! 이만큼!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비텐은 거짓부렁으로 날 회유하려 들었다. 내가 용암 정령의 핵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착안한 훌륭한 작전이다.


평범한 아이였다면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글쎄··· 아쉽게 됐구나, 비텐.


"죄송합니다, 공자님."


탈리아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무례를 용서하시길."


억지로 혓바닥을 가져가려는 모양이다. 아이의 안전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한다면 불가피한 선택이겠지.


자, 결단의 순간이 왔다.


단련된 기사가 어린애 손에서 물건 하나 빼내는 건 일도 아니고, 그것은 힘을 되찾지 못한 내게도 곧 벌어질 일이다.


'움직여, 이반.'


탈리아가 손을 뻗기 전, 나는 의념으로 이반에게 지시를 내렸다.


덜그럭.


쿵-!


등 뒤에서 요란한 소음이 들려왔다. 이반이 머리 - 투구 - 를 바닥에 떨어뜨리자, 세 사람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뭐지?"


꿀꺽.


나는 그 틈을 타 병 안에 든 혓바닥을 낼름 삼켜버렸다. 그리고는 삼매진화(三昧眞火)를 일으켜 위장 안에서 불살라버렸다.


스승님 가라사대, 도사들은 몸에 좋다는 걸 보면 일단 목구멍에 밀어넣고 본다더라.


화기(火氣)가 들불처럼 일어나 기혈을 타고 구석구석 번져나갔다.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혓바닥이 인두로 지진 듯이 홧홧거렸다.


"도련님!"


릴리가 째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배, 뱉으셔야 해! 어서!"


비텐은 얼마나 놀랐는지 말을 더듬었고, 탈리아는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내 입을 벌렸다.


그러나 혓바닥은 이미 삼매진화로 태워버렸기 때문에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대신 어마어마한 열기가 전신의 모공으로 화산처럼 분출중이었다.


그리고,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깨달음은 전생에서 구할 만큼 구했으니, 내게 필요한 건 기를 조달하는 게 전부라는.


"도련님, 괜찮으세요? 네? 아야 안하시구요?"


"아야 아냐."


아야는 무슨, 새로운 경지가 눈앞에 활짝 펼쳐져있는데.


"비텐 경, 가서 물 좀 가져다 주시겠어요? 뜨거운 거 말고 차가운 걸로요!"


비텐이 릴리의 부탁을 받고 주방으로 뛰쳐나갔다. 원죄가 있는 탓인지 그의 발에 날개가 달린 듯했다.


그 사이 릴리는 내 몸 이곳저곳을 더듬으며 이상을 확인했다.


"아프면 꼭 말씀해주셔야 해요, 아셨죠?"


"응!"


이래서 아이는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안 되는 법이지.


그녀의 걱정과 달리, 나는 기연을 맞이하는 중이다.


비유를 하자면 탈피와 비슷할 것이다. 곤충이 번데기에서 성충이 될 때 가장 연약하듯이, 도사도 다음 경지로 도약할 때가 가장 취약했다.


어느 정도로 취약하냐면, 선의로 날 매만지는 손길 때문에 기혈이 꼬여 주화입마를 일으킬 수도 있다.


죽을 수도 있다고.


그러나 전생에서 나의 최고경지는 화신경.


축기경을 뚫을 때 발생하는 난맥 정도는 속속들이 꿰고 있다.


내 머릿속에는 다음 경지로 향하는 고지전이 한창이지만, 동시에 릴리의 앞에서 순진무구한 도련님 연기를 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씀.


릴리는 눈물을 매단 채 한참이나 내 상태를 확인한 뒤, 마침내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를 놀래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 또 절맥이 발작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혓바닥이 창고에 처박히는 걸 어떻게 바라보고만 있겠어.


기회가 왔을 때 움켜쥐지 않으면 기연이 기연이 아니라는 걸 전생을 통해 배웠잖아.


화기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게 느껴진다. 어떻게 혓바닥을 가져올 것인지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고, 지금부터는 기혈이 튀는 것만 제어하면 된다. 길어도 날이 밝기 전에는 경지의 상승이 마무리될 것이다.


모든 상황이 손바닥 안에 있으니, 안심들 하시라.


"도, 도련님?"


"응?"


나는 태연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러나 릴리의 표정이 태연하지가 않았다. 그녀가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함했다.


"눈에서 불이 나오고 계세요!"


···응?



**



크리스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그는 근래에 기분이 좋아본 적이 없었다.


원흉은 불과 이 년 전만 해도 가계도에 없던 놈이었다.


이덴 에스테르지.


분명 어미에게 충분한 독을 썼는데도, 녀석은 기어이 세상 밖으로 기어 나오고야 말았다.


심지어는 그 와중에 각성 능력마저 깨쳤다고 한다.


능력 자체는 별 것이 아니었으나, 오히려 자기 몸을 갉아먹는 류로 보이지만, 각성 능력이란 나이를 먹어가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진화하기 마련.


귀하디 귀하다는 자연계 능력을 각성했다는 것 자체가 심사가 뒤틀린다.


첫 만남이 불쾌했다는 건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때 놈이 얌전히 독을 처먹기만 했어도 더 이상의 골칫거리는 없었을 터.


"스타니스."


"예, 주군."


검은머리 소년, 스타니스가 크리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소년의 어깨에는 윤기가 흐르는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아버지가 놈의 궁에 들르셨다고?"


"예, 그렇습니다."


"왜?"


"이덴 공자께서 원인 모를 발작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것이 걱정되신 나머지 - "


"왜! 왜 그놈한테만 그러는데!"


크리스가 책상 위의 잉크통을 집어서 벽에 던져버렸다. 스타니스는 잉크통이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갔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동정심 때문입니다."


그가 말했다.


"동정심은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지요."


크리스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며칠 전, 드렉 공작은 전승기념식을 치르기 위해 군을 이끌고 공작저로 향하던 중이었다. 때문에 크리스를 비롯한 많은 귀족들이 공작저에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공작은 삼남인 이덴이 아프다는 말에 주저하지 않고 경로를 바꾸었다.


"뿐만이 아닙니다. 즉석에서 수장고의 보물도 하사하셨다고 합니다. 그 귀하다는 샐러맨더의 혓바닥을 말입니다."


크리스가 숨을 헐떡이며 스타니스를 노려보았다. 진한 갈색 눈동자가 분노로, 시간이 흐르면서는 점점 공포에 젖어들었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날 버리실까?"


스타니스가 크리스에게 바짝 다가섰다.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이덴 공자를 그냥 내버려 두신다면요."


"하, 하지만 암살도 실패했고, 아버지가 기사도 둘이나 붙여주셨어. 여기서 내가 뭘 할 수 있어?"


"당분간 직접적인 공격은 자제해야합니다. 세간의 이목이 너무 쏠려있습니다."


"그러면? 그놈이 설치는 걸 두고만 봐?"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가 아이의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다시는 이 문제로 귀찮지 않게끔 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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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화염 거인 (1) +4 24.06.18 422 21 14쪽
25 해프닝 (0) +2 24.06.17 491 20 13쪽
24 창단 (4) +3 24.06.16 564 22 13쪽
23 창단 (3) +2 24.06.15 580 24 14쪽
22 창단 (2) +3 24.06.13 657 23 11쪽
21 창단 (1) +2 24.06.12 731 32 12쪽
20 어린 성자 (0) +2 24.06.11 802 25 16쪽
19 수상한 애완동물 (2) +3 24.06.09 875 29 15쪽
18 수상한 애완동물 (1) +4 24.06.08 897 29 13쪽
17 경매 (0) +3 24.06.07 869 28 15쪽
16 용돈벌이 (3) +3 24.06.06 900 30 13쪽
15 용돈벌이 (2) +2 24.06.05 929 26 14쪽
14 용돈벌이 (1) +1 24.06.04 986 28 11쪽
13 가정 교습 (3) +2 24.06.03 1,023 33 10쪽
12 가정 교습 (2) +2 24.06.02 1,035 35 10쪽
11 가정 교습 (1) +1 24.06.01 1,076 31 10쪽
10 불과 얼음의 노래 (3) +1 24.05.31 1,123 33 11쪽
9 불과 얼음의 노래 (2) +2 24.05.30 1,127 31 12쪽
8 불과 얼음의 노래 (1) +1 24.05.29 1,152 37 11쪽
» 뜨겁고 화끈한 것 (3) +1 24.05.27 1,170 32 9쪽
6 뜨겁고 화끈한 것 (2) +2 24.05.26 1,211 37 11쪽
5 뜨겁고 화끈한 것 (1) +1 24.05.25 1,263 34 9쪽
4 형제애 (2) +1 24.05.24 1,315 32 11쪽
3 형제애 (1) +2 24.05.23 1,379 32 12쪽
2 윤회의 굴레 (0) 24.05.22 1,460 35 10쪽
1 상서로운 꽃 (0) +2 24.05.21 1,618 3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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