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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최근연재일 :
2024.06.26 22:31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45,534
추천수 :
1,296
글자수 :
180,813

작성
24.05.29 22:00
조회
1,796
추천
52
글자
11쪽

불과 얼음의 노래 (1)

DUMMY


제아무리 대단한 도사라고 한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의 내가 딱 그렇다.


축기경을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던 와중이었다. 잠깐 생각이 튄 사이에 기혈 하나가 반란을 일으켰고, 그때 눈에서 불꽃이 조금 튀어나온 모양이다.


"도련님!"


이번에는 진짜 고막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잠깐만 참고 계세요!"


릴리는 필사적으로 손부채질을 하다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여기 도와주세요!"


"물 가져왔습니다!"


마침 부엌으로 가지러 떠났던 비텐이 돌아왔다. 그는 우당탕 달려와 들고 있던 냉수를 내 얼굴에 그대로 끼얹어버렸다.


사실 이렇게 호들갑떨만한 일은 아니다. 잠시 기혈이 놀란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시간만 주어졌다면 알아서 가라앉힐 수 있었다.


"괜찮으세요, 도련님? 네?"


그녀는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탈탈 털어낸 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어떻게 샐러맨더의 혓바닥을 삼키고도 멀쩡하실 수가 있는 거죠?"


"각성 능력!"


비텐이 손바닥을 내리치며 외쳤다.


"잊으셨습니까? 공자님께서 냉기 능력자이시라는 걸?"


···그랬던가?


"예, 바로 그겁니다! 공자님의 몸 안에 내재된 어마어마한 냉기가 샐러맨더의 열기를 잡아버린 거죠!"


비텐이 흥분한 투로 외쳤다.


흠, 재미있는 가설인걸.


이 세계 사람들이 멍청한 건 아닌데, 유독 절맥에 대한 개념이 없더라고. 마치 그것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인 양, 극복이 아니라 소유의 대상인 양.


뭐, 굳이 정정하진 않겠다. 내게 해가 될 착각은 아니니까.


지금 중요한 건 마침내 축기경의 문이 활짝 열렸다는 것이겠지.


우선 자신한다. 무림이라는 게 생긴 이래 두 살 나이에 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도가에서 말하는 경지의 구분을 도식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연기경 -> 축기경 -> 결단경 -> 원영경 -> 화신경 -> 등선경


도식으로 보면 만만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도사는 축기경의 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나는 불과 두 살의 나이에 남들이 평생에 걸쳐 도달할 성취를 얻은 것이다.


자아,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가······.


······라고 마냥 자축하기엔 아쉽긴 해. 구름 위에서 노닐던 놈이 개울물에서 송사리와 함께 물장구를 치고 있으니.


그래도, 첫술은 제대로 떴으니까.


무엇보다도 영물이 실재한다는 걸 확인했잖아?


도감을 살펴보니까 샐러맨더가 엄청 귀한 놈은 또 아닌 것 같더라고. 드래곤 못지않은 강력한 몬스터가 수두룩한 것 같던데, 그렇다면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가 보인단 말이지.


그러니까 이 첫술에 담긴 건 '희망'인 셈이다.



**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나는 일곱 살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라는 짧은 말 안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우겨넣을 수 있을지, 잠시 과거를 돌이켜보자.


우선 크리스는 잠잠했다.


나는 이게 조금 놀라웠다. 암살자 고용비를 아끼겠답시고 직접 두 발로 뛰기까지 했던 놈이 어떻게 얌전해진건지.


동생을 죽이는 유행은 끝난 건가?


그렇다고 녀석이 손 놓고 구경만 한 건 아니었다. 듣자하니 나를 향한 '사회적인' 혹은 '정치적인' 압박이 강해졌다는데······.


"미렌 부인께서 공자님께만 초대장을 보내지 않으셨어요."


"공자님의 생신인 걸 뻔히 알면서 파티를 열다니, 정말 너무들 하시네요!"


내가 봤을 때 크리스는 작전을 다시 짜야한다. 고립이니 뭐니하는 헛짓거리를 할 시간에 차라리 암살자나 더 보내는 게 나았다.


어쨌거나 사람은 칼을 맞으면 죽기 마련이니까.


5년 동안 경지도 한 단계 더 올라섰다.


결단경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인간 내단'이다. 도력이 너무나도 넘쳐난 나머지, 단전에 땡땡 굳어 내단이 되어버렸거든.


인간이라고 동물과 다를 게 뭐가 있겠어, 영험하면 영물 되는 거지.


"공자님, 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


탈리아가 엄숙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드디어 이 날이 왔군요."


비텐은 초조한 듯이 붉은 수염을 배배 꼬는 중이었다.


나는 거울을 바라보며 옷매무새를 마지막으로 다듬었다. 평소에는 외모를 꾸미는 데에 이 정도까지 부산을 떨지 않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어때?"


"정말 몰라보게 늠름해지셨어요!"


"오늘 도련님보다 주목받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하녀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늠름해진 건 모르겠는데, 확실히 귀엽기는 해. 눈송이가 위로 더 자랐으니 고드름이 됐다고 해야 하나.


나는 기사들의 인도를 받아 마차로 향했다. 제국의 모든 귀족은 일곱 살이 넘으면 사교계에 얼굴을 내밀게 된다.


그렇다면 사교계란 무엇이냐,


"칼 대신 입으로 싸우는 곳입니다."


비텐이 명쾌하게 정리했다.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야 공작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오늘 멋진 모습을 보여주셔서, 공자님의 편을 최대한 많이 만드셔야 합니다."


"어떻게?"


"각성 능력이 있으시잖습니까."


비텐이 찡긋 윙크했다.


"크게 티를 낼 필요도 없습니다. 음료수 위에 얼음을 띄우거나, 차가운 손으로 악수만 하고 다니셔도 됩니다. 그 정도만 해도 눈치껏 알아들을 겁니다. 크리스 공자만 잘난 게 아니라는 걸요."


내가 각성 능력자라는 착각은 현시점에도 유구하게 이어지고 있다.


각성이란 개념은 아직도 익숙지 않다.


어느 날 평범하기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벼락을 맞은 듯이 찌르르하더니 초인으로 거듭난다는 건데, 그렇게 얻은 능력이 꼭 쓸모가 있다는 보장은 없다. 비텐이 아는 누구는 물고기와 대화를 나눌 줄 알게 됐다는데, 그런 걸 어디에 써먹겠어.


"이랴, 이랴!"


나는 마차를 타고 공작저로 이동했다.


공작저는 여전히 무지무지하게 컸다. 건물의 한쪽 끝에서 중앙까지 이동하는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마당에는 귀족들의 마차가 한가득이었다. 내 것처럼 말 두 필이 끄는 초라한 마차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마차 밖으로 몸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노년의 집사가 다가와 정중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이덴 에스테르지 도련님이시로군요.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나 초대장을 안 가져왔거든."


"괜찮습니다. 전하의 영식(令息)이지 않으십니까. 기별은 제가 따로 드릴테니,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나는 집사의 안내를 따라 공작저 안으로 들어섰다.


메인 홀은 이미 미어터지는 중이었다. 하인은 홀 앞에서 목청을 가다듬더니,


"이덴 에스테르지 공자 전하 드십니다!"


라고 외쳤다.


동시에 수많은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저분이 비전하를 얼려 죽이고 태어났다는 그분이로군."


"크리스 공자님과 사이가 안 좋으시다며?"


"말도 붙이지 마. 아는 척도 하지 마. 마벨 공자님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다면."


"쉿, 들을라."


···다 들린다, 다 들려.


"이거 분위기가······."


비텐은 당황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예상보다 훨씬 적대적이라는 거지.


당연하잖아, 비텐.


오늘 이 자리를 위해 형님들이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노력했겠어.


누군가의 사돈, 누군가의 주군, 누군가의 친구··· 그들이 이미 수많은 이유로 얽히고섥켜서 한 덩어리나 다름없었다.


나는 걸음을 돌려 디저트 테이블로 향했다. 각양각색의 디저트들이 테이블 위에 한가득이었다.


"역시 애는 애로군요."


"여기가 어떤 자리인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나봅니다."


내가 과자를 먹기 시작하자 경계의 눈초리는 비웃음으로, 이윽고는 무관심으로 변해갔다.


그래, 그 편이 내게도 좋다. 나도 분위기 파악할 시간은 필요하니까.


나는 과자를 먹으면서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던 와중에 익숙한, 전생에서 익히 느꼈던 기운을 감지했다.


맞은편 디저트 테이블 앞에 또래의 아이가 한 명 보였다. 아이는 간식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애는 누구지?"


탈리아가 눈매를 가느다랗게 좁혔다.


"라슬로 님이로군요. 아바로 백작가의 장남입니다."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나?"


"듣기로는 아직 각성 능력을 발현하지 못했나 봅니다."


"각성 능력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


"작위를 못 물려받습니다, 간단하죠."


당연하지만 각성 능력은 누구에게나 발현되는 게 아니다. 오늘 이 자리는 누군가에게는 화려한 데뷔의 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공개 처형식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나는 과자를 하나 챙겨서 아이에게 다가갔다. 파란머리의 깡마른 남아였다. 녀석은 날 발견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이, 이덴 공자 전하···!"


녀석이 서둘러 예의를 차리려고 하자,


"됐고, 이거나 받아."


나는 들고 온 과자를 내밀었다. 녀석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먹어."


순순히 그걸 입에 넣어 오물거린다. 운 좋은 줄 알아, 크리스였다면 독을 듬뿍 발라뒀을 텐데.


"너 각성 능력이 없다며?"


"···네?"


"각성 능력이 없어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야?"


녀석의 눈매가 잔경련을 일으켰다. 고작 일곱 살배기가, 단순히 이 자리에서 소외받았다는 이유로는 저런 반응이 나올 수가 없다.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녀석은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팔을 억지로 빼내려 들었다.


그러나 나는 녀석이 가늠할 수조차 없는 힘을 지닌 도사다. 나는 녀석의 팔을 옴짝달싹 못하게 얽어매면서, 예복의 소매자락을 위로 걷어올렸다.


앙상한 팔뚝에는 학대의 흔적이 가득했다. 종횡으로 가득한 오래된 자국들과, 그 위에 덧대진 새로운 상처들.


"제발, 놔주세요."


녀석은 이제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나는 탈리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정신적으로 고통을 가하면 각성 능력이 발현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탈리아가 억눌린 어조로 대답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헛소리입니다만, 그걸 진지하게 믿는 사람도 꽤 존재합니다."


라슬로는 시선을 내리깐 채 수치심을 삭히고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서 수십년 전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렸다. 안으로부터 자신을 닫아버린 채 서서히 죽어가던 어떤 아이를.


"그나저나 너······."


나는 녀석의 파란 눈을 들여다보며 빙긋 웃었다.


"선재(仙才)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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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불과 얼음의 노래 (2) +2 24.05.30 1,749 4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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