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최근연재일 :
2024.06.26 22:31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45,453
추천수 :
1,296
글자수 :
180,813

작성
24.05.25 22:00
조회
1,943
추천
48
글자
9쪽

뜨겁고 화끈한 것 (1)

DUMMY

나는 뭣 빠지게 도망치는 암살자들을 바라보며 실소를 흘렸다. 원한다면 녀석들이 어디로 튀는지 추적해볼 수도 있겠지만, 뻔하잖아, 크리스겠지.


'허리를 숙여.'


나는 마음속으로 갑옷에게 명령을 내렸다. 갑옷이 허리를 숙이자, 나는 녀석의 어깨를 타고 사뿐하게 바닥으로 내려왔다.


복도는 난장판이었다. 산산이 깨진 판석 주변으로 암살자들이 팽개치고 간 무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것들은 치우지 않고 내버려둘 작정이다. 궁 식구들도 경각심을 가져야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도련님'이 중대한 위협에 처했다는 걸 알아야지 않겠어.


그나저나 동생을 죽이려고 암살자까지 보내다니, 진짜 제정신이 아니잖아.


그쪽에는 다섯 살짜리 아이의 행동을 제어하는 어른이 없나? 아니면 내가 너무 순진한가? 어른과 아이의 합작품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어쨌든, 진법으로 혼란을 주고 꼭두각시로 마무리한다는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특히 꼭두각시의 성능이 인상적이다.


갑옷이 얼마만큼의 힘을 내줄지는 순전히 콜린의 의지에 달린 일이었는데, 그의 상태가 뭐랄까, 조금 흥분했달까.


'허허허, 그렇게 제가 좋으십니까?'


'이런 건 어떠십니까?'


그날 그가 나와 놀아준 시간이 무려 세 시간이 넘었다. 그 이상은 술식이 감당이 안 될 우려가 있어서 그만 돌려보내야만 했다.


콜린의 힘을 잔뜩 흡수한 덕분에 갑옷은 에너지를 활화산처럼 뿜어대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루기가 조금 버거울 지경이다. 저걸 완전히 내 꼭두각시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도력을 빠른 시일내에 축기경(築基景)까지는 끌어올려야만 한다.


게다가 술식을 새기면서 새롭게 안 사실인데, 갑옷을 만들 때 사용한 재료가 단순한 강철이 아니었다. 강철보다도 훨씬 단단한 무엇이었다.


'돌아가자.'


갑옷이 쿵쿵거리며 앞장섰다. 진법이 발동중이라고는 하지만, 이 덩치를 들키지 않고 방으로 데려가려면 길을 잘 골라야만 했다.


나는 침실에 도착한 뒤 수고했다는 의미로 갑옷을 한 차례 두들겨주었다.


갑옷?


자꾸 갑옷, 갑옷, 이러니까 미안한 기분이 든다. 오늘 밤 녀석과 꽤 손발이 잘 맞았거든.


뭔가 어울릴만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데, 그렇다고 내가 작명센스가 있는 건 또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갑옷의 원래 주인의 이름을 따오기로 했다.


이반.


그래, 너는 이제부터 이반이다.



**



다음 날, 궁은 발칵 뒤집어졌다. 순찰을 돌던 병사들이 침입자의 흔적을 발견했고, 경비책임자에게 보고를 올렸다.


날이 밝자 제복을 입은 수사관들이 말을 타고 잇달아 도착했다. 궁의 모든 식솔, 하녀, 정원사, 요리사, 초병, 심지어는 마굿간지기까지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콜린은 수사관보다도 먼저 궁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나를 앞뒤로 뒤집어가며 상처가 없다는 걸 몇 차례나 확인했다.


"녹이 슬어버릴 놈들 같으니···!"


콜린이 노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더냐? 정녕 자식을 어미의 무덤에 같이 묻어야만 속이 시원하겠다는 게냐?"


노인은 누군지도 모를 대상을 향해 역정을 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을 통해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을 깨달았다.


이래서 내 방에 어머니의 초상화가 걸려있지 않았구나. 그림을 보면 호기심을 느꼈을 테니까.


나는 속으로 어머니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녀가 꽃다운 나이에 죽어야만 했던 데에는 틀림없이 내 지분이 상당할 것이다.


'기사'라는 자들을 처음 본 것도 이날이었다.


"저기 비텐 경 아니세요?"


"세상에, 탈리아 경께서 오셨어요!"


하녀들은 그들이 한 명 한 명 등장할 때마다 호들갑을 떨었다. 마치 그들의 존재만으로 어둠이 가시고 구원이 찾아올 것처럼.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기는 해. 전생으로 치면 젊고 출중한, 촉망받는 무림 고수를 지켜보는 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크리스는 너무 이목이 끌렸다고 여겼는지, 아니면 곳곳에 배치된 기사들이 성가셨던 건지, 한동안은 죽은 듯이 잠잠했다.


그 사이 나는 드디어 망할 기저귀를 졸업했다. 암살 위협보다도 더 무서웠던 게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 모르는 배변의 위협이었다.


발작도 한 차례 겪었다.


한음절맥의 발작은 드라마틱하다. 온 몸이 땡땡 굳고, 누운 자리에서 서릿발이 돋아나고, 얼음 섞인 핏물이 코와 입으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데, 누군들 이걸 한 번 보게 되면 둘 중 하나를 고르게 되는 것 같다.


나를 괴물로 여기거나, 더 사랑하게 되거나.


"······쿨럭."


"도련님, 정신 차리세요!"


릴리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절대 눈을 감으시면 안 돼요. 아셨죠? 눈 뜨시고 절 보세요!"


그녀는 내 뺨을 찰싹찰싹 두들기며, 따뜻한 수건으로 몸을 쉴 새 없이 닦아냈다.


나는 가물가물한 의식의 끈을 붙든 채 미소를 지었다. 냉기 때문에 몸은 얼어붙고 있었지만, 가슴만큼은 몽글몽글했거든.


발작은 사흘 밤낮으로 날 괴롭힌 끝에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어찌된 일인지 절맥의 힘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중단전을 미리 뚫어놓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잡아먹혔을지도 모르겠다.


릴리는 발작을 세상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나는 이제 체념을 넘어선 수용의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이미 난 알잖아.


하늘 아래 용, 백호, 주작, 현무, 기린, 해태, 맥, 천구, 봉황, 삼족오, 구미호, 만년화리, 공청석유, 인형설삼 따위는 없다는 걸.


진실이었던 것은 오직 하나,


스승님의 넋이 틔워낸,


붉디 붉은 우담화.


"공자님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보랏빛 머리카락을 뒤로 돌려묶은 소녀가 침실로 들어서며 물었다. 붉은 머리를 갈기처럼 풀어헤친 청년이 소녀를 뒤따랐다.


보랏빛 소녀의 이름이 탈리아, 붉은머리 청년이 비텐이었나.


두 사람은 이번에 보강된 경비인력의 핵심이었다. 듣기로 무척 젊고 유망한 기사라고들 하고, 내 느낌으로도 그랬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어요."


릴리가 대답하자, 탈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발령을 받자마자 공자님께서 잘못되시는 줄 알고 많이 걱정했습니다."


탈리아와 릴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비텐은 내 머리맡으로 와서 잔망스럽게 손짓발짓을 했다.


"비텐 경, 지금 무슨 짓입니까."


탈리아가 준엄한 목소리로 비텐을 나무랐다. 비텐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아니, 공자님께서 심심해하실까봐 그랬지."


"경의 망발을 보고 어린 공자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기사란 원래부터 경박한 자들인 줄 아실 거 아닙니까."


"조카들은 이러면 좋아하던데······."


비텐이 작게 궁시렁거렸다.


미안하다, 비텐. 내가 조금만 더 내려놨다면 호응을 해줬을 텐데.


"그런데 정확히 공자님께서 어떤 병을 앓고 계시는 겁니까? 웬만한 병은 콜린 주교께서 치유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병이 아니라 각성 능력이기 때문에 기도로도 손을 쓸 수 없다고 하세요."


"각성 능력이라고요?"


"네, 냉기를 발산하는 능력이에요. 그래도 평소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신데, 가끔 피가 얼어버릴 정도로 냉기가 강해질 때가 있으세요."


"자기 몸을 해치는 각성 능력이라니, 드문 경우로군요."


"제가 걱정되는 건 공자님의 몸이 날이 갈수록 조금씩 더 차가워지시는 것 같다는 거예요. 콜린 님처럼 뛰어난 분도 손을 쓰실 수 없는데, 이대로라면 앞으로는 어떻게 되실지······."


릴리가 말끝을 흐렸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그건 내가 말해줄 수 있다. 누구보다 차가운 가슴을 가진 아이가 누구보다 뜨겁게 살다가, 반짝이는 얼음꽃 한 송이만을 남기고 퇴장하는 거지.


말해줄 수 없는 건 이번 생에는 누구 묘에 그 꽃을 바치느냐는 것 정도.


"몸이 차가운 게 문제라면, 따뜻하게만 해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비텐이 불쑥 끼어들었다.


"비텐 경."


탈리아가 스산한 어조로 말했다.


"도움이 안 될 이야기는 처음부터 꺼내지 마십시오."


"아니, 나는 어디까지나 아이디어 차원에서······몸이 차가우면 따뜻하게 해주는 게 맞잖아?"


"말씀은 감사해요. 저희도 공자님의 체온을 보존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중이랍니다."


릴리가 두터운 솜옷과 뜨겁게 달궈진 보온석을 보여주었다. 탈리아는 눈으로 비텐을 힐난했다. 그것 좀 보라는 듯이.


그러나 비텐은 굴하지 않았다.


"제 말은 이겁니다. 이거저거 해 봐도 도저히 될 거 같지가 않으면, 차라리 무진장 뜨거운 걸 몸 속에 넣어보자는 겁니다. 각성 능력이고 뭐고, 다시는 기도 못 펴게 기강을 확 잡아버리자는 거죠."


양기(陽氣)를 띤 음식을 먹이자는 말이로군.


스승님께서 초기에 시도하셨던 방법이다. 덕분에 귀하다는 장뇌삼도 달여 마셔봤고, 쌍두사를 잡아서 술을 담그기도 했고, 생강이나 마늘을 즙을 내서 먹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또 먹어봤던 게······.


"왜 있잖습니까. 용암 정령의 핵이라든가, 불사조의 허파라든가,"


···응?


"아니면 레드 드래곤의 심장 같은 거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주6일 저녁 10시 ~ 12시에 연재됩니다. 24.05.21 973 0 -
33 과일 서리 작전 (5) +3 24.06.26 430 22 12쪽
32 과일 서리 작전 (4) +2 24.06.25 529 26 14쪽
31 과일 서리 작전 (3) +6 24.06.24 612 28 12쪽
30 과일 서리 작전 (2) +3 24.06.23 701 27 11쪽
29 과일 서리 작전 (1) +2 24.06.21 777 34 13쪽
28 화염 거인 (3) +8 24.06.20 820 32 12쪽
27 화염 거인 (2) +6 24.06.19 825 31 12쪽
26 화염 거인 (1) +4 24.06.18 891 32 13쪽
25 해프닝 (0) +2 24.06.17 927 29 13쪽
24 창단 (4) +3 24.06.16 1,004 33 13쪽
23 창단 (3) +2 24.06.15 1,013 34 14쪽
22 창단 (2) +3 24.06.13 1,108 33 11쪽
21 창단 (1) +2 24.06.12 1,221 42 21쪽
20 수상한 애완동물 (3) +2 24.06.11 1,328 35 14쪽
19 수상한 애완동물 (2) +3 24.06.09 1,398 40 15쪽
18 수상한 애완동물 (1) +5 24.06.08 1,423 38 13쪽
17 경매 (0) +4 24.06.07 1,383 38 15쪽
16 용돈벌이 (3) +3 24.06.06 1,409 42 13쪽
15 용돈벌이 (2) +2 24.06.05 1,457 38 14쪽
14 용돈벌이 (1) +1 24.06.04 1,535 40 11쪽
13 가정 교습 (3) +2 24.06.03 1,604 45 10쪽
12 가정 교습 (2) +3 24.06.02 1,609 48 10쪽
11 가정 교습 (1) +1 24.06.01 1,674 44 10쪽
10 불과 얼음의 노래 (3) +1 24.05.31 1,743 46 11쪽
9 불과 얼음의 노래 (2) +2 24.05.30 1,746 48 12쪽
8 불과 얼음의 노래 (1) +1 24.05.29 1,794 52 11쪽
7 뜨겁고 화끈한 것 (3) +1 24.05.27 1,805 49 9쪽
6 뜨겁고 화끈한 것 (2) +2 24.05.26 1,857 53 11쪽
» 뜨겁고 화끈한 것 (1) +1 24.05.25 1,944 48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