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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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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643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03.06 23:21
조회
1,997
추천
42
글자
10쪽

세계 정복의 시작

DUMMY

인간이 죽는 건 숱하게 봐왔다고 하지만, 그건 인간에 한해서 말한 것도 아니었다.


생전의 내가 즐겨했던 취미는 ‘사냥’이다. 멧돼지, 사슴, 운이 좋은 날에는 무려 곰까지 잡아봤다.


나는 사냥감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을 좋아했다. 상처 입고 죽어가는, 도망칠 곳이 없어진 사냥감의 눈에서 마지막 희망의 빛이 사라지는 것은 언제 봐도 기분 좋았다.


그 순간을 직접 볼 때는 언제나 짜릿하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게 그런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까.

그는 그래서, 내게 억지로나마 빛을 보려주려 했던 것인가.


매일 살인과 협박에 전념하는 마피아의 보스가 자식은 제대로 키우려고 하다니, 아버지는 그게 가능할거라 생각했을까.


...


이스와 셋이서 살게 된 시이나의 집. 나는 거실 한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새벽 공기가 진동하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스키잔.”

“마왕님. 이런 시각에 찾아온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계에 떨어진, 아니 다시 태어난 직후 내가 마왕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던 바람의 정령, 스키잔이다.


일단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건 겉모습뿐. 70년 만에 새로운 마왕이 강림하였다는 것을 알린답시고 떠나버렸었지.


“경과보고를 듣지.”


나는 발을 바꿔 꼬며, 내 발치에 조아린 정령에게 명령했다.


“예.”


스키잔은 일대의 마물들 중 강한 자들에게 내 소식을 전했다. 대부분은 마왕군이 세계를 재패할 것이라 생각하고 기뻐하고 있다고 한다.


“하이오크, 서리거인, 다크엘프를 포함한 23개 부족은 마왕님이 지으실 군대에 벌써부터 자진해서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하오나 하이엘프와 드래곤들은...”


내 눈이 가늘어지는 것을 보았는지 스키잔의 말이 빨라졌다.


“하이엘프는 마왕님을 직접 보지 않고는 휘하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드래곤은 여태 그래왔듯 중립을 유지하겠다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헐벗은 소녀의 동요가 심해지기 전에 치하의 말을 건넸다.


“잘했다.”

“...예?”


비난을 각오하고 있었는지 스키잔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벌써 그 정도의 아군이 생긴 건 좋은 일이지. 그 둘은 이전에는 어땠었지? 선대 마왕 때 말이야.”

“하이엘프는 참전, 드래곤은 불참한 것으로 압니다.”

“그런가. 하이엘프들과는 만나야 할 필요가 있겠고, 드래곤은 처리해야겠군. 수고했어.”

“가, 감사합니다. 마왕님.”


고개를 조아리는 스키잔에게 나는 준비해왔던 말을 꺼냈다.


“그리고 이제 마왕강림 사실을 퍼뜨릴 필요는 없다. 자칫 잘못해 인간들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일이 복잡해져. 여태껏 져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그건...”

“내가 마왕이오, 여기가 마왕성이요 하고 떠벌리는 게 문제다. 마왕이 나타났다는 걸 알면 바로 인간들의 국가들이 힘을 합쳐 돌격해올 텐데. 그들 전부를 상대할 힘이 모이기 전까진 비밀리에 행동해야 해.”

“알겠습니다. 마왕님. 그러면 지금부터의 예정은...”


당연히 상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일을 벌이는 건지는 궁금하겠지. 부하가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잘 이끌어주는 것도 상사의 올바른 마음가짐이다.



“스키잔. 마왕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든 마물들을 통치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존재, 그게 마왕님이십니다.”

“그런 추상적인 것 말고. 실제로 해야 할 일은 뭐라고 생각해.”

“그거야...”

“좋은 기회다. 내 이전의 마왕들은 어땠는지 알려주지 않겠나. 시이나가 알려준 건 군데군데 빠진 곳이 있어서 말이야.”

“... 알겠습니다.”


마왕은 설령 그 존재가 스러진다 하더라도 다시 강림한다. 그리고 그를 무찌를 용사 또한 시기에 맞춰 나타난다. 내가 원래 있던 세계의 판타지 소설에는 마왕은 언제나 인간들을 해치고 세계를 손에 넣으려는 사악한 지배자로, 그에 대항하는 용사는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까지 아끼지 않는 정의로운 자로 그려졌다.


하지만 여기는 어느 삼류작가가 대충 만들어낸 플롯을 그대로 따라가는 허구가 아니다. 진짜배기 판타지 세계인 것이다.


일단 이 곳에는 마족, 마물, 그리고 인간 말고도 악마와 천사가 존재한다.


악마는 지하에. 천사는 하늘에 있다.


너무나도 강대한 둘은 기본적으로 현계에 너무 크게 손을 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남은 것은 지상으로, 마물과 인간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마족도 엄연히 따지면 마물에 속하지만, 지성이 없어 아무나 공격하는 마물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대화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었기에 구분되었다.


하지만 마족과 인간은 너무나도 달랐다.

자신보다 강대한 힘을 가진 자를, 사람은 두려워한다. 서로에 대한 험악한 이야기가 돌고 와전되어 퍼진다. 결국 둘은 진정한 의미로 공존할 수 없게 되었다.


처녀들은 밤이면 피를 빨아간다는 흡혈귀를 두려워하고, 흡혈귀는 종교적인 이유로 본인을 사냥하려는 헌터들을 피해 몸을 숨긴다. 수인에 의해 잡아먹힌 아이들에 대한 소문이 돌고, 상류층들이 장식품으로 쓰기 위해 수인들의 목을 자른다는 흉흉한 얘기도 돈다.


인간과 마족은 각각 다른 왕을 섬기게 되었다.


“지독한 얘기입니다. 마족들은 왕을 섬길 자격도 없다는 것인지, 인간들은 마왕이 나타날 때마다 저들끼리의 분쟁을 멈추고 연합군을 만들었습니다. 대(對) 마왕 연합군은 마왕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수적 열세에 밀리다 보니 결국 이기는 건 인간들이었지요.”

“인간에 우호적인 마왕은 없었던 건가?”

“있었습니다만... 결과는 항상 같았습니다.”


스키잔은 동공을 탁하게 흐렸다.


“동맹을 맺어도 결국 배신당했지요. 인간이란 생물은 본래 이기적입니다. 그들의 의리에 기대해선 안 됩니다.”

“국가 대 국가로는... 마족들은 나라를 만들거나 하지는 않았던 건가?”

“물론 마왕님이 나라를 세우시면 그곳에 모이곤 했습니다만, 부족 단위로 생활하는 자들도 적지 않기에 인간들처럼 꼭 어느 나라에 귀속된다는 법이 없습니다.”

“사냥하는 쪽이 아니라, 사냥당하는 쪽이라는 뜻이군.”


스키잔은 분한 듯이 입을 다물었지만, 반론을 꺼내지는 않았다. 내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여태껏 인간은 마왕과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사냥을 한 것이다. 한 쪽은 연합해서 쳐들어오는 마당에 이쪽은 뭉치기조차 못했다.


스키잔을 비롯한 마족들은 날 본인들을 구원해줄 구세주로쯤 아는 모양이지만,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인간의 세계에서 살았던 인간이었다. 이렇게 단시간에 그들의 고통을 알고 보듬어줄 도량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마족을 노예로 해서 끌고 다녀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더군. 보기 껄끄러웠다.”


이놈들은 이용가치가 있다. 내가 안락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소비할 수 있는 것들이다. 슬슬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지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전의 마왕들은 보통 어떤 식으로 나라를 세웠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부터 시작하기엔 너무 손이 갈 곳이 많아.”

“보통은 그렇게 하셨습니다만...”


나는 귀찮은 것을 싫어한다. 훨씬 편한 방법이 바로 앞에 있는데 굳이 험난한 길을 왜 택할까.


“왕국을 손에 넣는다. 윗선을, 필요하다면 전부 갈아치우고 나의 나라로 한다.”

“과연, 그래서 이곳에 체재하셨던 것입니까.”

“그렇다고 해서 바로 마왕의 나라...로 공표하지는 않아. 빼앗은 지 하루 만에 타국에게 침공당할 생각은 없다.”


스키잔이 내 한마디 한마디가 명언인 것처럼 새겨듣는 것을 보고,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지, 스키잔. 해줄 일이 생겼다.”

“무엇이든 명해주십시오.”

“나는 왕국의 탈취를 위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일을 미뤄도 되는 건 아니겠지. 결국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군사력이다. 오합지졸로는 인간의 군대를 이길 수 없다. 지금부터 포석을 깔아두는 것은 필수.”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군대의 편성담당은 너로 하겠다. 과거 마왕군에 있었다면 비슷하게 군을 꾸리는 것도 가능하겠지. 아닌가?”

“혜안이십니다. 하지만 저는 전 마왕군에 몸을 담았지만, 말단에 불과했습니다. 저 같은 것으로 괜찮으실지...”


몸을 배배 꼬았지만 싫은 눈치는 없었다.


“말단에서 일해 봐야 좋은 운영을 하는 법이지. 하이엘프들과 드래곤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군편성 지휘를 부탁한다. 따르지 않는 자가 있거든 내 명이라고 전해라.”

“예, 마왕님.”

“그리고 잠시,”

[이런 식으로 사념으로 대화하는 건 익숙한가.]

[물론입니다, 마왕님. 정령은 본래 입을 빌지 않고 직접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없겠지. 앞으로 연락은 직접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면 사념으로 주고받는다.]

[예, 마왕님.]

[그러면 가기 전에 하나 더 명령을 내리지. 드래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 전부 설명해라.]


전혀 원하지 않았던 이세계에서의 환생. 하지만 어쩌면 이건 찬스일지도 몰랐다. 내가 전생에서 다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내 의사가 어느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조직을, 나라를 만든다. 그것을 방해하는 건 뭐가 됐든 제거할 뿐이다.


더 이상 타인에 의해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건, 사양이다.


그래, 이렇게 빚을 지워두면 나중에 도구로 써야할 때가 올 때 도움이 된다.


작가의말

작가의 말 기능이 있었네요... 이제 처음 알았습니다. 미세먼지 심하니 마스크 꼭 끼고 다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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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0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69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03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49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68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36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15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07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65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32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58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1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22 32 10쪽
31 앞으로의 연재 공지 및 1권 후기 +3 19.03.25 1,447 21 1쪽
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11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18 38 10쪽
28 명령을 내리다 +4 19.03.23 1,396 3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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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슬은 묶었다 +3 19.03.12 1,604 4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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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대련을 하다 +2 19.03.11 1,728 37 8쪽
14 몰살은 성공적이었다 +6 19.03.10 1,723 36 8쪽
13 도적 소탕전을 시작하다 +3 19.03.09 1,779 3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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