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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상자 님의 서재입니다.

최강자의 탑 등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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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별상자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7
최근연재일 :
2024.05.23 17:06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566
추천수 :
45
글자수 :
90,428

작성
24.05.23 17:06
조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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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층(10)

DUMMY

“왜, 왜 도와주냐니······?!”


뻔뻔한 낯짝으로 떠들던 아줌마가 당혹스런 기색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서쪽 집단 일원들이 미처 도망치지 못한 몇 명을 구타하고 있다.


“지금 저 광경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저 쓰레기 같은 놈들이 사람을 패고 있는데······!”

“그러니까 그게 왜 내가 도와줘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거냐고.”


정말로 모르겠다.

내가 이들한테 저들을 공격하라고 시키기라도 했나?

저들끼리 분위기 타서 저질러놓고 왜 이제 와서 나한테 도와달라는 건데.


“너희가 저지른 일은 너희가 알아서 해결해.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그게 무슨······.”


아줌마가 입을 벙긋거린다.

그때, 인파 속에서 어떤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자네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뛰쳐나가서 기분이 상했나 본데. 자네가 조금만 이해를 해주면 안 되겠나? 우리가 저놈들에게 당한 게 많아서 그래. 억울하고 분통해서.”


아저씨가 탕탕, 가슴을 쳤다.


“저놈들 다 지독하게 나쁜 놈들이야. 사람 가죽 뒤집어쓴 악마 새끼들이라고. 자네도 그걸 아니까 저놈들을 제압하고 우릴 구해준 거 아닌가?”

“아닌데.”

“······뭐?”

“너희들 구해준 거 아니라고.”


아까 감사 인사를 하러 왔을 때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구만.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나.


“나는 그냥 이곳이 어떤 곳인지 구경하러 온 거고. 쟤들은 나한테 덤비니까 상대해 준 것뿐이야. 그러니까 너흴 구해줬니 뭐니 하며 이상한 착각은 안 해줬으면 하는데.”

“그, 그, 그래도!”


무심한 내 말에 아저씨가 발악하듯 외쳤다.


“저놈들은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악인들이라고! 이대로 놔두면 우리처럼 선량한 피해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생길 것이 분명······!”

“그러던가 말던가. 애초에 나는 관심도, 뭘 할 생각도 없어. 그리고 어차피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것도 다 네 기준일 뿐이잖아.”


말하다가 구타를 가하고 있는 서쪽 집단 일원들에게 말했다.


“야, 죽이진 마.”

“아, 옙! 알겠습니다!”


그리고선 아저씨를 다시 돌아봤다.


“내 말도 잘 듣고. 주제도 모르고 나한테 덤빈 거 빼고는 확실하게 악인이라는 느낌은 안 드는데.”

“그건 자네가 몰라서-”

“그래, 난 잘 몰라. 저놈들에 대해. 만난 지 1시간도 안 됐거든. 그러니까 뭘 하고 싶으면 잘 아는 너희들이 하라고. 잘 모르는 나한테 해달라고 하지 말고.”


굳어 있는 얼굴을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또 네 기준을 나한테 강요하지 말고. 간섭하지도 말고. 내 기준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정하는 거니까.”



***



화풀이가 끝났는지 서쪽 집단 일원들이 발길질을 멈췄다.

그들은 내 눈치를 보다가 근처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고선 휴식을 취하며 잡담을 나눴다.

딱히 점심 생각은 안 나는 모양이다. 뭐 있어도 남은 점심이 없으니 줄 수도 없지만.

고개를 돌려 이기환에게 먹다 만 스프를 얼른 해치우라고 하려던 참이었다.


타닥.


뜬금없이 또 뒤에서 누군가가 뛰쳐나갔다.

이번엔 교복을 입은, 여리여리한 체형의 여학생이었다.


“어, 어······? 야, 조심······!”


어디서 주운 건지 양손으로 검자루를 꼬나쥔 여학생은 빠르게 달려나갔고,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어떤 대머리 남자를 향해 검을 찔러 들어갔다.

동료의 주의를 듣고 대머리가 고개를 돌렸다. 검과 여학생을 발견한 눈이 확 커진다.


“······!”


대머리가 검을 회피하려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뾰족한 검 끝이 대머리의 살을 파고들었다.


“으아아아아악! 이 씹년이······!”


검은 대머리의 오른 허벅지에 꽂혀있었다.

여학생의 기습을 한 박자 늦게 알아채 완벽하게 회피하지 못한 탓이었다.

대머리가 고통에 울부짖으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 퍽!


“안 놔! 안 놓냐고, 이 씹년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대머리의 주먹질에도 여학생은 검을 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흐르는 핏줄기가 시야를 가림에도. 검을 꽉 부여잡은 손의 손톱이 들리는 와중에도.

이를 악물고 검을 더 밀어 넣었다.

부릅뜬 눈에 독기가 넘실거렸다.


“으아아아아, 씨이이이팔! 이 미친년이 돌았나! 손 놓으라니까! 안 놓으면 진짜로 죽여버린다! 내가 지금 거짓말하는 것 같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여학생을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쓰던 대머리가 피 묻은 손을 허리춤에 갖다 댔다.

그리고 검이 뽑혀 나오는 순간.

여전히 필사적으로 검을 잡고 있는 가느다란 손을 보며 끼어들었다.


“그만. 거기까지.”


대머리가 검을 뽑다 말고 우뚝 정지했다. 마주친 내 눈을 보며 더듬더듬 변명한다.


“아, 아니, 저는 진심으로 죽이려던 게 아니라 겁, 겁만 주려고······.”


성큼성큼 걸어가 여학생의 손을 붙잡았다.

죽어도 놓지 않을 거라는 필사의 의지가 느껴지는 손을 확 잡아당겼다.


푸슉!


“아아아아아악!”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대머리가 벌러덩 넘어졌다.

나는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아직도 검을 꽉 쥐고 있는 여학생을 내려다봤다.

피에 젖은 앞머리가 눈가를 가리고 있다.


“제대로 죽이려면 심장이나 목, 머리를 찔렀어야지. 허벅지 가지고 되겠어?”

“······노리긴 심장을 노렸어요. 실패해서 그렇지.”

“그 말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내 말을 무시했다는 거네?”


여학생이 고개를 들었다.

앞머리가 걷히고 드러난 까만 눈동자 안에는 찐득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네. 왜요? 죽이려면 죽여요. 어차피 성공하든 실패하든 죽을 생각이었으니까.”

“왜 저 대머리를 죽이려는 건데?”


그녀가 내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몇 번 눈을 깜빡거린 그녀가 말했다.


“저놈이 내 친구를 죽였으니까.”

“거, 거짓말입니다! 저 미친년이 지어낸 말이에요!”


대머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넌 조용히 해. 죽기 싫으면.”


한 번 노려봐주는 것으로 단번에 입을 다물게 하고 여학생에게로 다시 시선을 고정했다.


“친구를 죽였다? 그래서 그렇게 필사적이었던 거야? 이러면 네가 죽을 거란 걸 알면서도?”

“네. 왜요? 내 목숨 내가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뭐 문제 있어요?”


여학생이 일어나 치마에 묻은 흙을 털었다.

반항적인 눈빛을 한 채 내게 다가온다.


“당신이 그랬잖아요. 내 기준은 내가 정하는 거라고. 간섭하지 말라고. 당신은 되고 저는 안 된다는 거예요?”


코앞까지 걸어온 그녀가 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아니, 당연히 너도 되-”


말하다가 손을 뻗어 잡았다.

기습적으로 대머리를 향해 찔러 들어가는 검날을.


“이······!”


날 원망스럽게 노려본 여학생이 손잡이를 놓았다. 그리고 허벅지를 붙잡고 엉거주춤 서 있는 대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퍽!


대머리한테 닿기 전에 발로 걷어찼다. 붕 떠서 날아간 여학생이 흙바닥을 나뒹굴었다.

검을 버리고 여학생에게 걸어갔다.

엎어진 상태로 고개만 들어 날 죽일 듯이 노려본다.

그녀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가 지금 너 살려준 거야. 그 정도로는 쟤 절대 못 죽이거든.”

“누가 살려달래! 왜 날 방해하는 건데······!”

“왜 방해하냐라······.”


잠깐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가 도로 시선을 내렸다.


“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뭐······?”


정확히는 그녀가 가진 필사적인 마음가짐.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거스르기 힘든, 죽음이라는 공포마저 뛰어넘게 만든 그 마음가짐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죽기엔 아까운 것 같아서.”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제법 특별했다.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두가 날 거스를 생각조차 하지 못 하고 있는데, 오직 그녀만이 복수를 위해 필사적으로 날 거스르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보통의 사람은 결코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필사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

이것도 나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과거의 나 또한 가지고 있던 재능이자, 이제는 잃어버린 재능.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필사적이지 않게 된 것은.

정확한 일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내가 최강자의 위치에 가까워졌을 때일 것이다.


궁금하다.

과연 그녀는 언제까지 필사적일 수 있을까?

복수를 성공하기 전까지?

복수를 성공한 후에도?

만약 복수를 성공한 후에도, 그리고 나보다도 오랫동안 이 필사적임을 유지한 채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녀는 후에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뭐 아직은 섣부른 가정에 불과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 되는 거니까.”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여전히 독기에 찬 눈을 한 채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고 있는 그녀를 향해.



***



쿠웅.


거멓게 탄 오크 전사가 뒤로 넘어갔다.

심장에서 검을 뽑아낸 이기환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검 상태를 살피고 다시 움직이려던 그를 황태성이 붙잡았다.


“기환 동생. 잠깐만 쉬었다 가지.”


이기환이 황태성을 돌아봤다.

황태성이 덧붙였다.


“마력을 거의 다 소모해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

“아, 그런 거라면······ 알겠습니다, 태성 형님.”


근처 널찍한 바위 위에 이기환이 앉았다.

황태성과 여우녀, 족제비남도 따라 앉았다.

이기환은 앉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가방에서 천 조각을 꺼내 검을 닦았다.

여우녀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기환 씨, 뭘 그렇게 서둘러요?”

“······티가 납니까?”

“네. 엄청.”


여우녀가 고개를 주억였다.

몇 초간 입안에서 말을 고른 이기환이 대답했다.


“요번 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하니까요. 이번에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남에게 휘둘리게 된다는 것을요.”

“그래요? 근데 요 며칠 새 기환 씨 실력 엄청나게 성장하지 않았어요?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될 것 같은데······.”

“맞아. 완전 미친 재능. 지켜보는 내가 다 질투가 나던데.”


족제비남이 맞장구쳤다.


“그래도 형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실력이죠.”

“······형님이면, 최강혁 씨요?”

“네.”


잠시 일대가 고요해졌다.

분위기를 살피던 여우녀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우리 인연도 참 신기하지 않아요? 어떻게 거기서 만나지?”

“그러니까. 노예로 잡힌 사람들이 있다길래 한 번 보러 갔는데 거기서 딱 기환 동생이랑 마주칠 줄이야.”

“운이 좋았죠. 형님 누님들이 힘써주신 덕분에 요리사 역할로 빠질 수도 있었고.”

“운이 좋았던 건 우리지.”


조용히 대화를 듣던 황태성이 끼어들었다.


“기환 동생이 말해준 덕분에 최강혁 씨가 오해하지 않게 됐잖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서쪽 집단에 속해있었다는 걸.”

“어······ 형님은 별로 신경 안 쓰시는 것 같던데. 형님 누님들은 상황이 다 끝난 뒤에 오시기도 했고······.”

“그래도 동생이 없었으면 또 달랐을지도 모르지.”


그리 말한 황태성이 대화 흐름을 틀었다.


“그나저나 말이 나와서 그런데 최강혁 씨는 지금 뭐 하고 있어?”

“형님이요? 저도 잘은 모르는데, 쉬고 있지 않을까요?”

“사냥은 안 하고?”

“아마도 사냥은 안 할걸요? 뭐, 2층에 올라와서 많이 돌아다녔다고 용암거인이 깨어나기 전까지 정신을 릴랙스한다고 하던데······.”

“용암 거인을 잡으려는 건가?”

“아마 그러지 않을까요? 저도 정확한 건 몰라요. 말을 안 해주셔서.”

“만약 최강혁 씨가 용암 거인을 잡는다고 하면, 기환 동생도 참여할 거야?”


족제비남이 흥미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이기환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에이, 제가 어떻게 그래요. 저도 제 주제를 알아요. 저는 그냥 화산에서 최대한 멀리 피해있어야죠.”


웃으며 말한 이기환이 닦던 검을 검집에 넣었다.


“슬슬 출발할까요? 꽤 많이 쉰 것 같은데.”


그가 일어나자 뭔가를 더 물으려던 황태성이 입을 닫았다.

곧 넷은 다시 사냥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로부터 며칠 후.

중앙 화산이 분화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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