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별상자 님의 서재입니다.

최강자의 탑 등반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별상자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7
최근연재일 :
2024.05.23 17:06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572
추천수 :
45
글자수 :
90,428

작성
24.05.12 02:26
조회
211
추천
5
글자
12쪽

1층(4)

DUMMY

허공에 손을 뻗었다.

잘 나아가다 중간에 턱, 하고 막힌다.

쭉 편 손바닥에서 딱딱한 감촉이 느껴진다.


“운이 좋네.”


벽처럼 가로막는 종류가 아니라 끝없이 떨어지는 낭떠러지나 무한하게 뻗은 바다 같은 거였다면 애매한 상황에 놓였을 텐데.

무언갈 부수는 데 전문인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퉁.


투명 벽에 돌멩이가 부딪쳤다 추락했다.

이기환이 던진 돌멩이였다.

뒤를 보니 이기환이 투수에 빙의해 자세를 잡고 있었다.


양손을 머리 위에 올리며 와인드업.

한쪽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 올리고 이내 근육질의 다리를 쭉 뻗는다.

앞발이 땅에 착지했다.

동시에 몸과 팔이 한계까지 회전하며 돌멩이를 레이저처럼 쏘아 보낸다.

야구를 배운 적이 있나? 자세가 꽤 전문적인데?


퉁.


하지만 굉장히 역동적인 투구 동작에 비해 돌아오는 소리는 너무나 형편없었다.

몇 번 더 돌멩이를 던진 이기환이 이번엔 돌 망치를 들고 투명 벽을 후려친다.

4번 타자가 홈런 스윙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여전히 소득이 없긴 마찬가지다.

이쯤 되자 오기가 생기는지 이를 악물고, 돌 망치가 깨져라 풀스윙하는데 투명 벽은 비웃기라도 하듯 말짱하다.

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전히 시원찮을 뿐이고.


“헤엑······! 헤엑······! 헤엑······!”


결국 돌 망치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땡볕 아래 전력 질주한 불독처럼 헐떡거린다.

잠시 후, 숨을 어느 정도 고른 그가 나를 올려다봤다.


“······형님, 이거 안 되겠는데요. 팔에 전해지는 충격도 그렇고, 소리가 먹히는 것도 그렇고, 벽에 충격 흡수 기능이 있는 거 같아요.”


나도 같은 생각이다.

누군진 몰라도 벽에 이상한 장난질을 쳐놨다. 힘으로 깨부술 수 없도록.

힘을 가하는 순간, 충격이 강제로 분산된다.


“아무래도 부수거나 뚫는 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을 찾아볼까요?”

“그럴 필요 없어.”


하지만 장난질은 결국 장난질에 불과하다.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정도를, 꼼수나 쓰는 사도는 결코 이겨낼 수 없다.

예로부터 변치 않는 진리다.

나는 투명 벽 앞에 서서 주먹을 뻗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형님? 힘으로는 안 된다니까요. 아마 처음부터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어진-”


쿵.


주먹과 부딪친 벽이 진동한다.

이기환이 내 옆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봐봐요. 형님이 강하신 건 알겠는데 그래도 이건-”


쿠우우우웅······!


두 번째 주먹.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진동이 발생했다.

가볍게 땅이 울리고, 주변 나뭇잎들이 바람에 휘날리듯 흔들거렸다.


“······어, 그래도 이건, 불가능-”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세 번째 주먹.


“······해야 정상, 인데······.”


주먹 세 방이면 충분했다.

1층의 끝을, 그리고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을 부수기엔.



***



높게 떠오른 태양 아래.


“황태성 씨, 이건 어제 했던 말과 다르잖아요.”


임다솔이 굳은 얼굴로 황태성을 찾아왔다.

부드럽게 미소를 지은 황태성이 되물었다.


“뭐가 다르다는 거죠, 임다솔 씨?”

“어제 사냥을 하러 가기로 해 놓고 점심이 다 되도록 미루고만-”

“아, 그건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고 했습니다. 일단은 내부 정리가 시급한 것 같아서 말이죠.”

“······사람들한테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게 내부 정리라고요?”

“예. 내부 정리죠. 한쪽은 두려움에 떨며 아무것도 안 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마냥 5일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허송세월이나 보내고 있고. 자고로 사람이라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집단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이고요.”

“저도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동의해요. 하지만 강제로 할 것이 아니라 말로 설득을 해야-”

“임다솔 씨.”


황태성이 언제 사람 좋은 얼굴을 했냐는 양 표정을 싹 굳혔다.한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저도 좋게 말로 설득해봤습니다. 그런데 어제 어떤 마음씨 착한 여성 분이, 저희가 목숨 걸고 구해온 식량을, 저희와 어떠한 상의도 없이, 공짜로 나누어줘서 그런지, 다들 제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군요. 가만히 있어도 밥을 주는데 자기들이 왜 힘들게 일을 해야 하냐고.”

“어, 그게, 저는 양이 충분한 것 같아서······ 고기 굽는 냄새에 사람들이 몰려오기도 했고······ 나눠줘도 되는지 물어보려고는 했는데, 하필 그때 셋 다 안 보이셨어 가지구······.”


임다솔이 쩔쩔매자 황태성이 다시 사람 좋게 웃었다.


“하하하, 어깨 펴시죠? 임다솔 씨한테 뭐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저로선 어쩔 수 없었다,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


한동안 입술을 꾹 닫고 있던 임다솔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그건 알겠어요. 하지만 전투조에 원치 않는 사람들을 강제로 집어넣는 건 진짜 아니잖아요······.”


처음과 달리 자신감이 결여된 목소리.

황태성이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었다.


“임다솔 씨도 어제 보셨잖습니까. 숲이 상당히 넓은 거. 스킬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저 포함 세 명이니까 세 조로 나눠서 탐색을 진행해야죠. 그래야 얼른 2층으로 올라가서 죽어가는 환자들도 살릴 수 있을 테고. 흠, 얘기하다 보니 이것도······ 좀 전과 똑같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네요.”

“······.”

“그리고 그 검은색 갑옷을 입은 남자, 자칭 신의 사도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1층은 어떻게 통과할지 몰라도 2층에선 대부분이 죽을 거라고. 2층에 올라간 다음은 늦습니다. 살려면 지금 1층에서 전력을 키워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다 봐주었다간 아무것도 못 하고 모두가 죽을 겁니다.”

“······.”


어느 순간부터 일방적으로만 흘러가던 대화는 금방 끝이 났다.

임다솔이 심란한 얼굴로 떠나가자마자, 커다란 나무 뒤에서 여우녀가 나왔다.


“팀장님. 뭐가 어쩔 수 없긴 없어요. 고기 구울 때 일부러 노리고 자리 피한 거면서.”


황태성이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황태성을 잠시 바라보다가 여우녀가 시선을 돌렸다.


“근데 저 여자 짜증나네. 지가 뭐 성녀라도 되는 줄 아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여우녀가 작게 코웃음을 켰다.


“그냥 확 죽여 버릴까요? 사냥하러 나가서 사고로 위장하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됐어. 집단을 운용하는 덴 저런 인간도 한 명쯤은 필요하니까. 혼자서 뭘 할 수 있지도 않을 테고. 저 여잔 신경 쓰지 말고 사냥 준비나 철저하게······.”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지면이 작게 진동함과 동시에 어디선가 묵직한 소음이 밀려왔다.


“······?”

“지진······?”


둘이 의아해하며 소음의 진원지를 쳐다봤다.

평소랑 똑같이 울창한 나무들만 가득했다.


“잠깐 지나가는 지진이었나?”

“여기서도 지진이 나요, 팀장님?”

“그건 나도 모르······ 어?”


말을 하다 말고 황태성의 시선이 하늘에 고정됐다.


“왜요? 하늘에 뭐 있어요?”


따라서 하늘을 올려다본 여우녀가 똑같이 굳었다.

하늘에 균열이 가 있었다.

흡사 깨지기 일보 직전인 살얼음판처럼.


쩌저저적.


전염병이 퍼지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번지는 균열.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던 황태성의 얼굴에도 균열이 갔다.


“느닷없이 이게 무슨······.”


그가 항시 두르고 있던 여유로움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대강 열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내가 만든 결과물이 시야에 다 들어온다.


심연을 연상시키는 새까만 중심부.

삐죽삐죽 톱날처럼 깨져 나간 테두리.

바깥으로 뻗쳐나간, 그리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숫자를 늘리고 있는 균열들.


내가 주먹을 꽂아 넣은 자리에는 투명한 벽 대신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 안에서는 질척한 검은 물질들이 꾸물꾸물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었고.


“와······.”


넋 놓고 있던 이기환이 내 쪽으로 느릿하게 걸어왔다.


“이걸 정말로, 부술 줄이야······.”


믿기지 않는지 나와 구멍을 번갈아 본다.

얼굴을 보니 아직 반쯤 넋이 나가 있다.

몇 번 더 나와 구멍을 보던 녀석이 구멍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곤 뭔가 이상한 걸 본 사람처럼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돌연 보면 안 될 것을 본 사람처럼 뒤로 펄쩍 뛰었다.


“머, 뭐예요, 이거?! 돌을 막 녹이는데요?!”


놀란 기색이 역력한 이기환이 구멍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구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검은 물질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명칭은 암흑 물질. 녹인다기보단 닿는 건 모조리 소멸시켜버리는 특징을 가진 물질이지.”


암흑 물질.

차원과 차원 사이, 빈 공간을 메꾸고 있는 물질이다. 동시에 상당히 위험한 물질이고. 나조차도 오랫동안 접촉하면 타격을 입을 정도로.


“될 수 있으면 가까이 가지마. 너는 닿자마자 순식간에 소멸해 버릴 테니까.”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릴······!”


어느새 구멍과 멀찍이 떨어진 이기환이 질색하며 제 주변을 살폈다.

암흑 물질이 있나 확인하는 건가?

저 덩치로 호들갑을 떠는 게 왠지 웃겨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때.

주변을 다 확인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가 고개를 들고 날 쳐다봤다.


“어······ 그런데 형님.”

“응?”

“탑 밖으로 나간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려면 저 끔찍한 걸 뚫고 나가야 한다는 건데······ 가능하세요?”

“가능은 하지. 근데 안 나가려고.”


암흑 물질을 보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나갈 필요가 없어졌다.


탑등반물 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던 호기심.

탑의 외형은 어떻고, 탑 바깥의 세상은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은 이미 풀렸으니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쩍쩍 금이 가 있는 균열 중에 유난히 깊은 곳에서는 구멍에서처럼 암흑 물질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이 바깥은 암흑 물질로 꽉 차 있고.

그 말인즉슨 나가봤자 볼 수 있는 거라곤 저 암흑 물질밖에 없을 거라는 것.


이로써 탑이 어떤 구조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탑 같은 건 그냥 개념일 뿐이다.

아마 ‘신의 탑’은 우리가 아는 건축물 탑처럼 층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 차원 하나하나가 각각 하나의 층을 이루며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독립적인 단일 차원들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임무를 클리어하면 개방된다는 포탈일 것이고.


“갑자기 안 나가신다고요? 나가려고 벽을 부순 거 아니었어요?”


눈을 깜빡거리며 의아한 기색으로 묻는 이기환에게 이유를 설명해줬다.

그러자 날 보는 눈빛이 기묘하게 바뀐다.


“형님은······ 그런 걸 어떻게 다 아세요?”

“여러 일을 겪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지.”

“여러 일이란 게 뭐길래-”

“그건 나중에 시간 많을 때, 그때 내키면 얘기해줄게.”


지금 1층 차원이 점점 무너져 내리는 중이거든.

얼른 포탈을 열지 않으면 포탈을 생성하는 장치가 망가질지도 모른다.

차원 이동 같은 편리한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절대로 피해야 하는 일이지.

잘못하면 차원 미아가 되어 버린다고.


“저기, 그럼 형님······!”


발을 떼려는데 이기환이 또 불렀다.

쳐다보자 처음 봤을 때처럼 입술을 달싹거리며 뜸을 들인다.


“왜 그러는데? 시간 많지 않다니까.”

“그으, 이걸 물어보면 실례가 될까 해서요······.”


실례?

그러면 아예 말을 꺼내지 말던가.

중간에 말이 끊겨서 그런지 더 궁금하다.

하늘을 보고 대충 여유 시간을 가늠한 후 말했다.


“됐고. 궁금하니까 얼른 말해 봐.”

“어, 그러면······.”


긴장되는지, 꿀꺽 침을 삼킨 그가 잠시간 또 머뭇거리다 마침내 물었다.


“형님은 능력치가 어떻게 되세요?”

“능력치?”

“등반자 정보창에 나와 있는 능력치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있었지.

나중에 본다고 미뤄두고 있다가 깜빡했다.


“잠깐만. 확인해 볼게.”


나는 마음속으로 ‘등반자 정보창’을 외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최강자의 탑 등반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지 공지 24.05.28 15 0 -
16 2층(10) 24.05.23 41 0 12쪽
15 2층(9) 24.05.22 61 1 13쪽
14 2층(8) 24.05.21 71 1 12쪽
13 2층(7) 24.05.20 85 1 13쪽
12 2층(6) 24.05.19 97 1 14쪽
11 2층(5) 24.05.18 99 1 12쪽
10 2층(4) 24.05.17 114 2 12쪽
9 2층(3) 24.05.16 133 3 15쪽
8 2층(2) 24.05.15 155 3 13쪽
7 2층(1) 24.05.14 169 4 12쪽
6 1층(5) 24.05.13 185 4 12쪽
» 1층(4) +1 24.05.12 212 5 12쪽
4 1층(3) +1 24.05.11 231 5 17쪽
3 1층(2) +1 24.05.10 281 5 15쪽
2 1층(1) +1 24.05.09 300 5 13쪽
1 프롤로그 +1 24.05.08 339 4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