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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상자 님의 서재입니다.

최강자의 탑 등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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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별상자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7
최근연재일 :
2024.05.23 17:06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569
추천수 :
45
글자수 :
90,428

작성
24.05.18 20:10
조회
98
추천
1
글자
12쪽

2층(5)

DUMMY

하나의 거대한 비석이 수천 조각으로 쪼개져 무너져내렸다.

크기가 크기였던 탓에 뿌연 먼지구름이 크게 일어났다.

손을 휘저어 먼지구름을 쫓아낸 후 내가 들어왔던 입구 쪽을 확인했다.

터널처럼 동그랗게 구멍이 뚫린 나무 벽 너머, 반투명한 장막이 점멸하고 있었다.


깜빡, 깜빡······.


이윽고, 장막이 완전히 꺼지고 귓가에 메시지가 들려왔다.


[안전지대가 파괴되었습니다.]


예상대로 비석은 안전지대를 유지하는 핵심 장치였다.

너무 예상한 대로라 실망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어쨌든 비석은 송출탑 비스무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 같다.

추가적인 메시지가 안 뜨는 걸 보면 포탈과는 관련이 없을지도?

뭐 이건 2층의 임무를 클리어한 후에야 확실해지겠지만.


“이, 이, 이······.”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지 뚝뚝 끊겨 나오는 목소리.

고개를 돌리니 암왕이 주먹을 꽉 쥔 채 날 노려보고 있었다. 얼마나 힘을 준 건지 미세하게 떨리는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선명하다.

가면을 써 표정이 보이지 않음에도 굉장히 열 받았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이렇게 분노하는 거지? 안전지대가 파괴된 것이 그렇게 큰일인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2층에서 암왕을 위협할 만한 존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딱 하나.

층계 균형자라는 용암 거인만 제외한다면.

하지만 조장 아저씨가 말하길 용암 거인은 일반적인 몬스터와 달리 안전지대를 무시한다고 했었는데······.


“이 미친놈이, 진짜······.”


활활 타오르다 못해 사방팔방으로 불똥을 튀겨대던 목소리가 한순간 착 가라앉았다.

다만 진정이랑은 달랐다.

날뛰는 감정을 욱여넣고 또 욱여넣어, 날카롭게 벼려놓은 듯한 목소리였다.

어쩐지 주위가 캄캄해진 듯한 기분마저 들 정도로.

아니, 단순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나무와 나무가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 나무 벽.

그 안의 그림자가 영역을 넓혀가듯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너, 그냥 죽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암왕이 뇌까렸다.

그와 동시에, 짙은 그림자 안에서 무언가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화살.


화살들이었다.

일일이 숫자를 다 세기도 힘든, 엄청난 양의 화살 세례.


푸슈슈슈슈슉!


사출된 화살들이 바닥을 제외한 모든 방위를 빈틈없이 점하며 날아온다.

온 세상이 화살로 가득 찬 듯한 광경.

그런데, 자세히 보니 평범한 화살들이 아니었다.


검은 기운이 불길하게 넘실거리는 것도 있고, 검붉은 색의 가시나무 같은 게 뾰족하게 뻗어 나오는 것도 있고, 까만 그림자를 흩뿌리며 시야를 가리는 것도 있다.


“흠.”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 굴려 암왕 쪽을 은밀히 살폈다.

솔직히 지금 날아오고 있는 화살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뚫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뚫고 나갈 수 있으니까.


다만 지금 내가 고민하는 건, 암왕의 도주를 100퍼센트 확률로 저지할 수 있느냐, 이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솔직히 100퍼센트 확신하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게, 암왕은 이미 도주할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쳐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삼왕의 바로 뒤편, 그림자가 비정상적으로 일렁이는 광경을 유심히 관찰했다.

늪같이 질척이는 질감도 그렇고, 기분 나쁘게 꿀렁거리는 것도 그렇고, 암왕이 도주할 때 썼던 그림자랑 판박이다.

아마 저대로 한 발자국만 뒷걸음질 치면 그때와 같이 신형이 푹 꺼지며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겠지.

그래서야 지붕 위 닭 쫓던 개 신세밖에 되지 않는다.

더불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도주한 암왕은 두 번 다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고.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확 전력으로 돌진해서 아예 반응도 못 할 속도로 잡아채 버려?

하지만 그랬다간 돌진하는 여파에 휩쓸려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암왕이 흑기사보다 강하긴 하지만, 내 전력을 감당할 수준은 아니니까.


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당히 애매한 상황이었다.

전력을 다하자니 여파에 휩쓸려서 흑기사처럼 사망할 것 같고.

적당히 하자니 떨어져 있는 거리도 상당할뿐더러 만반의 준비를 마쳐놓은 뒤라 놓칠 확률이 높다.


하다못해 방심이라도 좀 해줬으면 모르겠는데······.

검은 가면 속 첨예하게 빛나는 눈빛과 슬쩍 왼발을 뒤로 빼놓은 자세는 누가 봐도 방심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의 모습이었다.

내가 돌진하는 액션을 조금이라도 취하는 순간 망설임 없이 도주할 거라는 직감이 든다.


이건 뭐······ 당장은 마땅한 방법이 없네.


작게 혀를 차며 주위 상황을 확인했다.

방법을 궁리하는 동안 이미 화살들은 근처까지 접근한 후였다.

그리고 암왕은, 여전히 경계하는 태도를 유지한 채 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아니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일단은 어울려 주자고.


나한테 이미 한 번 형편없이 당했던 암왕이다.

그런 만큼 내가 본인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다시 내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암왕이 아무 생각 없는 멍청이가 아니라면, 날 상대할 무언가를 준비해왔다고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러니 어울려 주며 방심을 유도해 보자.

상대가 방심하지 않는다면, 방심하도록 판을 깔면 되는 거니까.


꽈악.


나는 주먹에 힘을 주고 빠르게 내질렀다.

천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주먹을 따라 급격히 솟구치는 풍압.

내 몸을 중심으로 용오름이 일어나며 화살들을 비롯한 주위의 모든 것들이 갈가리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태풍의 눈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무형의 공기막을 기준으로 바깥에는 온갖 파편들이 어지럽게 휘몰아치는 반면, 내부는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


머리 위로 뻗었던 주먹을 내리고 암왕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화살 세례를 분쇄하자마자 바로 이어서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암왕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폭왕.

빨간 가면을 쓴 자가 장궁에 길쭉한 화살을 메긴 채 이쪽을 겨냥 중이다.


화살 세례도 간단히 분쇄했는데 고작 화살 하나 날리려고?

그런 의문을 떠올렸을 찰나.


“······응?”


바닥에서 무언가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검붉은 색을 띠는 가루들이다.

보자마자 뭔지 알아챘다.

수많은 화살 중에서도 유독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검붉은 가시나무가 뻗어 나오던 그것들.

내 주먹질에 갈가리 찢겨나간 미세한 파편들과 입자들이 바닥에 박힌 화살들의 그림자를 통해 내 쪽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근데 이걸 왜 이쪽으로 보낸 거지? 무슨 숨겨진 의도라도 있나?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암왕 쪽을 쳐다봤을 때.

폭왕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놓았다.


쐐애애애애애액!


붉은 화살은, 폭왕의 손을 떠나자마자 주변 공기를 가르며 가속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용오름 중인 공기층에 도달했다.


휘이이이잉······!


접근하는 모든 것을 찢어버리려 강하게 휘몰아치는 바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화살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안과 밖을 나누고 있는 공기막마저 손쉽게 관통했다.

그리하여 붉은빛의 화살촉은 안쪽 잔잔한 공기층에 퍼져있던 검붉은 입자들과 접촉하는 데 성공했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폭발했다.



***



“이야, 장관이네. 장관이야.”


폭왕이 휘이익,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전방. 대폭발의 현장에선 버섯 모양의 까만 구름이 실시간으로 뭉게뭉게 자라나고 있었다.

나무 벽 내부 공간의 대부분을 침범한, 굉장히 방대한 범위였다.

외곽 끄트머리에 있는 삼왕에게까지 여파가 미칠 정도로.


일대를 장악한 버섯구름이 서서히 떠올랐다.

곧 버섯구름의 머리 부분이 돔 형태의 천창에 닿았다.

그리고 천장을 통과해 하늘로 빠져나갔다.

천장 중앙에 뻥 뚫려 있는 구멍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장대한 광경을 보며 폭왕이 가면 속에서 혀를 내둘렀다.


“뭔 놈의 주먹질이 닿지도 않았는데 천장을 박살 내냐. 비석을 부순 것도 그렇고, 힘 하나는 진짜 역대급으로 미친놈이었네.”


그가 쥐고 있던 장궁을 등 뒤에 둘러맸다.

버섯구름을 지켜보던 암왕이 그 모습을 흘깃 보고는 한마디 했다.


“아직 죽었다는 메시지 안 떴어. 활 집어넣지 마.”

“에이, 대장. 이 정도 폭발이면 신의 사도도 열에 아홉은 즉사예요, 즉사. 나머지 하나는 빈사 상태로 언제 이승을 뜰지 말지 카운트다운이나 하고 있을 거고요.”


폭왕이 말하면서 가면에 손을 올렸다.


“용암 거인 상대할 자원 빼고 제작해 놓은 전부를 쏟아부었는데 상식적으로 사람이면 이걸 버틸 순-”

“헨리, 물러나!”


가면을 벗느라 시야가 가려진 잠깐 사이, 암왕이 다급하게 외쳤다.

소리를 들은 폭왕이 잠깐 멈칫했다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서둘러 한 걸음 물러났다.

한쪽 발이 뒤쪽에 자리한 그림자 통로에 빨려 들어가고서야 그가 반쯤 벗겨진 가면을 완전히 벗어젖혔다.


“······!?”


시야를 회복한 폭왕의 눈이 놀람으로 휘둥그레졌다.

검은 머리 남자는 멀쩡했다.

대폭발의 한복판에 있던 사람답지 않게 상처나 그을림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현재 엄청난 속도로 삼왕 쪽으로 쇄도하는 중이었다.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낀 폭왕이 주춤거리며 나머지 발 한쪽도 그림자 통로 속에 집어넣었다.

폭왕이 가면을 벗는 동안, 진작 사태를 파악하고 움직였던 암왕과 목왕은 이미 가슴께까지 통로에 진입한 상태였다.


촤아아아아악!


암왕이 그림자 속에서 검을 뽑았다.

애검을 뺏긴 후 임시로 들고 다니던 검날 위로 그림자가 일렁였다.

곧 그림자는 암왕이 휘두르는 대로 쭉쭉 늘어나며 남자를 덮쳤다.


파앙!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남자는 달리던 속도를 유지한 채 가볍게 손을 휘저어 그림자 칼날을 튕겨냈다.

이번엔 턱밑까지 잠긴 목왕이 능력을 사용했다.

땅속에서 다수의 나무뿌리가 튀어나오며 일부는 남자한테 창처럼 쏘아져 들어갔고, 일부는 단단하게 얽히며 두터운 벽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역시 전부 소용없는 짓이었다.


쿠우우웅······!


남자가 지면을 밟았다. 그리고 힘을 모으듯 무릎을 살짝 굽히고 급가속했다.

동시에 암왕을 향하는 것 같던 방향이 살짝 틀어졌다.

그 끝에 존재하는 것은, 아직 허리까지밖에 그림자 안으로 진입하지 못한 폭왕이었다.


“······!?”


남자한테 쇄도하던 나무뿌리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그대로 남겨졌다.

단단할 것 같던 나무 벽은 너무도 쉽게 박살 났다.


멈추지도,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모든 방해물을 순식간에 뚫어낸 남자가 최단 거리로 돌진했다.

그 시점에서 암왕과 목왕은 그림자 통로 안으로 정수리까지 집어넣은 상태였다.

반면 방심하다 진입이 늦은 폭왕은 가슴께까지밖에 집어넣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남자에게 그 약간의 차이는 굉장히 크게 작용했다.

한순간이었다.

정말 한순간에, 폭왕의 코앞까지 도달한 남자가 지체 않고 큼직한 손을 뻗었다.

나름 저항하려 목을 이리저리 꺾어 본 폭왕은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결국 목이 잡히고 말았다.


“커억······!”


숨 막히는 소리와 함께 잡초 뽑듯이 폭왕이 그림자 속에서 끌려 나왔다.

허공에 꽉 붙들린 폭왕은 목이 졸리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검은 머리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남자는 진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재밌다는 듯이.

또 즐겁다는 듯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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