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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상자 님의 서재입니다.

최강자의 탑 등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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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별상자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7
최근연재일 :
2024.05.23 17:06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570
추천수 :
45
글자수 :
90,428

작성
24.05.21 16:18
조회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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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2층(8)

DUMMY

“그건 뭐 하는 거야?”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서쪽 안전지대를 향해 이동하던 중.

헨리를 보고 물었다.


“네?”

“화살 쥐고 뭐 하는 거냐고.”


허리춤의 매달린 화살통.

그 안에서 화살 하나를 꺼낸 그가 붉은 기운을 밀어 넣고 있었다.


“아, 이거요? 제 능력 중 하나예요. 기운을 미리 화살에 부여해 놓는 거죠.”

“용암 거인한테 쓰려고?”

“어······.”


그가 말하다 멈칫했다.

이걸 말해도 되나, 하는 표정이다.

얘는 진짜 생각이 얼굴에 다 드러나네. 그래서 가면을 쓰고 있던 건가?


“왜? 네 대장이 말하지 말랬어?”

“어, 그걸 어떻게······?!”


어떻게긴 뭘 어떻게야.

지금 네가 얼굴로 다 불고 있잖아.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어제 내가 말하지 않았어? 방해할 생각 없다고. 아니 방해가 뭐야, 뭣하면 도와줄 수도 있어.”

“저, 정말요?”

“어. 정말. 근데 네 대장이 싫어할 거 같아서 그러진 않으려고.”

“아.”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돼.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만 한 강자 중에 나만큼 말이 잘 통하고 괜찮은 사람이 또 없거든.”


떡밥을 낚싯바늘에 걸고 낚싯대를 던지자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짓는다.

떡밥을 물기 직전 망설이는 붕어를 보는 것 같다.

낚싯대를 살살 흔들어 유혹했다.


“어제 일 떠올려보면 딱 견적이 나오지 않아? 너희가 날 죽이려고 했는데도 나는 아무 짓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갔잖아.”

“아, 그건, 어, 죄, 죄송······!”

“아니. 사과받으려는 건 아니고. 어제 일은 서로 오해가 쌓여 발생한 헤프닝에 불과하잖아.”


대수롭잖게 손을 휘저으며 웃었다.

이건 진심이었다. 어제 일에서 딱히 내게 위협이 될 만한 일은 없었으니까.

나름 재밌기도 했고.

내 진심이 담긴 반응에 마침내 붕어가 미끼를 덥석 물었다.


“확실히······ 최강혁 님이 나쁘신 분은 아닌 거 같아요. 저 같으면 오해라고 해도 이렇게 대인배처럼 넘어가진 않았을 텐데······.”


여태 같이 이동하는 동안 줄곧 그의 얼굴 한편에 자리하던 경계심이 흐물흐물 풀어진다.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다.

뭐 나야 땡큐지만.


“항상 크리스와 대장이 한패를 먹고 저를 나무라는데······.”


몇 번 공감해주자 이제는 자기가 알아서 떠들기 시작한다.

됐다.

이 정도면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연결고리를 걸어놨다고 봐도 되겠지. 주설아와 귀환자에게.


귀환자가 원수라고 밝힌 주설아.

어제 귀환자에 대해 많은 걸 물어봤지만 단서라 불릴 만한 건 몇 개 없었다.

확실한 단서라고 할 만한 건 귀환자의 얼굴뿐인데. 그건 주설아의 머릿속에만 들어있다.

주설아가 귀환자를 발견하고 입 싹 닦으면 나로선 바로 앞에서 얼굴을 보고도 놓칠 수 있다는 거지.

어제 대화를 나눠보니까 나한테 그리 호의적인 태도이지도 않았고.

힘으로 압박할 수 있는 유형도 아닌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주설아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인물.

크리스와 헨리.

그중 헨리와 가까워지면 귀환자의 존재를 숨기기 힘들어진다.

이 녀석은 표정에 생각이 다 드러나니까.

관계를 맺어두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나한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해 줄 것이다.


“너도 먹을래?”

“네?”

“육포. 먹을만해.”


내가 먹고 있는 육포를 권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주시면 감사하죠, 헤헤.”

“그럼 꺼내 먹어. 가방에서.”


헨리의 어깨에 걸려있는 가방을 턱짓했다. 출발할 때 맡긴 내 가방이다.


“아, 맞다. 내가 들고 있었지.”


곧 가방을 뒤적거린 그가 육포를 꺼내 입에 물었다.


“어때? 먹을만해?”

“맛있는데요?”

“더 먹고 싶으면 물어보지 말고 알아서 꺼내 먹어. 다 먹어도 돼.”

“정말요?”

“어. 마음껏 먹어.”


네가 후에 가져다줄 것에 비하면 육포 따위야 별거 아니니까.



***



[안전지대에 진입하였습니다.]


노란색의 반투명한 막을 통과하자 귓가에 메시지가 들려왔다.

서쪽 안전지대에 도착했다는 신호.


“오랜만이네요, 여기도.”


작업하던 화살을 화살통에 넣은 헨리가 사람 키만 한 수풀을 헤쳤다.

곧 넓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에 높다란 비석이 솟아있고, 그 주변부로 동쪽 안전지대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천막들이 규칙성 없이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다.

그나마 정렬된 느낌이 나던 동쪽 안전지대와 달리 이쪽은 일단 아무 데나 세우고 봤다는 느낌이 강하다.

목책 같은 것도 안 보이고.


“사람은 안 보이네?”


외곽이어서 그런가?

주위를 구경하며 천막 몇 개를 지나쳤다.

그때, 콧속으로 맛있는 냄새가 흘러들었다.

오면서 육포 몇 조각을 집어 먹었음에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그러고 보니 슬슬 점심때던가?

냄새를 따라갔다.

얼마 걷지 않아 냄새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솥을 열심히 휘젓고 있다.


요리랑은 굉장히 안 어울리는 남자.

국자를 휘저을 때마다 잘 발달된 전완근과 이두근이 꿈틀거리는 남자.


“너 여기서 뭐 하냐?”

“어······? 형님?”


이기환이었다.

놀랐는지 눈을 크게 치켜뜬 그가 휘젓던 국자를 멈췄다.

그와 동시에.


“야 이 새끼야! 누구 마음대로 손 멈추래.”


퍽.


처음 보는 남자가 이기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가늘게 자란 염소수염이 야비해 보이는 남자다.


“국자 다시 안 잡아? 확 씨!”


염소수염이 손바닥을 들고 때리는 시늉을 하자, 흠칫한 이기환이 황급히 국자를 잡고 스프로 보이는 요리를 다시 휘젓기 시작한다.

잔뜩 주눅이 들어있다. 잘 보니 멍 자국도 군데군데 나 있고.

내가 2층에 올라와 여러 가지 일을 겪는 동안 이기환도 나름대로 많은 일을 겪었나 보다.

이기환에게 으름장을 놓은 염소수염이 내 쪽을 돌아봤다.


“넌 뭐냐? 우리 노예랑 아는 사이야?”


노예?

어쩐지 취급이 이상하다 싶더니.

2층에 올라와 이기환도 나처럼 서쪽 집단 파티를 만난 모양이다.

나야 알아서 잘 해결했지만, 이기환은 그러지 못했겠지. 실력이 안 되니까.

나는 며칠 새 거칠어진 이기환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


“아는 사이지. 걘 노예가 아니라 짐꾼이거든.”

“뭐?”

“걔는 내 짐꾼이라고.”


아마 이기환도 염소의 노예보단 내 짐꾼이 되길 원할 거다.

내 말을 들은 이기환이 휘젓던 국자를 멈췄다. 그리고 염소수염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뭐가 그리 웃긴지 단추 구멍 같은 눈에서 눈물까지 찔끔 새어 나온다.

한참을 웃다 눈가를 닦은 그가 물었다.


“너, 내가 왜 이렇게 웃는지 알아?”

“모르겠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저 혼자 뜬금없이 웃어놓고.


“그야 모르겠지. 근데 내 눈에는 빤히 보여서 말이야. 네가 이놈과 똑같은 노예가 될 미래가.”


염소수염이 입꼬리를 삐죽이며 검집에 손을 올렸다.


“곧 노예가 될 새끼가 사리 분간 못 하고 지랄 염병을 떠는데 안 웃고 배겨? 너는 내가 몸소 교육해 테니까 기대-”

“사리 분간 못 하는 놈은 너지.”


불쑥 내 옆에 서 있던 헨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네가 지금 누구 앞에서 입을 나불대고 있는 건지 알긴 하냐.”

“넌······.”


염소수염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여 헨리를 스캔한다.

다음 순간, 얄팍한 입술에서 픽, 하고 비소가 튀었다.


“너 병신이냐. 보니까 궁수 같은데 앞으로 나와서 뭐 어쩌려고. 가장 먼저 칼침 맞고 뒤지려고?”


그가 보란 듯이 검을 뽑아 들었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둘이 쌍으로 병신들이었네.”

“이래도?”


씩 웃은 헨리가 가방에서 빨간 가면을 꺼내 썼다.

그걸 본 염소수염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포, 포, 폭, 폭왕?!”

“그래, 내가 폭왕이다. 이제야 네가 어떤 미친 짓을 저질렀는지 알겠-”

“라고 할 줄 알았냐?”

“······뭐?”


가면을 보고 경악하던 염소수염이 언제 그랬냐는 양 표정을 싹 바꿨다.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띄워져 있다.


“폭왕이면 암왕 뒤에 숨어서 호의호식하는 따까리 새끼잖아. 삼왕 중에 최약체. 너 무슨 자신감으로 여길 찾아온 거냐? 우리 서쪽 집단이 만만해 보여?”

“······우리?”


헨리가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에 염소수염은 행동으로 답했다.


“지금 놀고 있는 새끼들 당장 튀어나와! 침입자다!”


그가 냅다 고함을 지르자 몇 초도 안 되어 휘익, 하고 천막 입구가 젖혀졌다.


“하아아암······. 뭐가 왔다고?”

“그것보다 밥은 다 됐어? 배고파 뒤지겠다.”

“오, 맛있는 냄새.”


막 잠에서 깬 것 같은 사내들이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나왔다.

곧이어 천막 뒤에서도 몇 명이 합류했다.

그렇게 모인 열댓 명의 동료들을 등에 업고, 염소수염이 기세등등하게 우릴 보았다.


“내가 혼자일 줄 알았냐? 미안하지만 여긴 내 영역이거든? 목왕이 요새화시킨 남쪽 안전지대가 아니라 서쪽 안전지대라고!”

“······치사하게 숫자로 밀어붙이려고? 넌 남자가 돼서 쪽팔리지도 않냐?”


가면 안에서 심각함을 가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숨을 건 전투에 쪽팔리고 말고가 어디-”

“라고 할 줄 알았냐?”

“······뭐?”


이번엔 염소수염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어설픈 심각함 따위 저 멀리 날려버리고, 경쾌한 목소리가 뒤따라 나온다.


“난 또 한 백 명쯤 우르르 몰려나오나 했는데, 고작 열두 명? 열두우우며어어엉? 너, 폭왕이란 이름이 우습냐?”

“······이 숫자로도 안 된다고?”

“그럼 당연히 안 되지. 자신 있으면 덤벼 봐. 열두 명 정돈 화살 두 대도 필요 없어. 내가 화살 한 대로 너흴-”

“그러면 더 늘리면 되지.”

“······뭐?”


당황한 척하던 염소수염이 비죽거렸다.

그리고 헨리는 또 당황한 척을 하고 있었다.


“뭔······.”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입에선 실소가 새어 나온다.

어이가 없어서.

대체 이 꽁트 같지도 않은 꽁트를 언제까지 하려는 건데.

내가 고개를 젓든 말든 상관 않고, 염소수염이 입을 놀렸다.


“더 늘리면 된다고, 병신아. 내가 언제 열두 명이 전부라고 했냐?”

“열두 명이 전부가 아니라고······?”


염소수염이 낄낄거리며 거대한 솥을 가리켰다.


“너는 이게 고작 12인분밖에 안 되어 보이냐? 궁수 주제에 병신 눈깔이야?”

“설마······.”


헨리가 또 어설프게 당황하는 척을 할 때.

뒤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일었다.


“응? 얘넨 누구냐? 음식 냄새 맡고 온 거지새낀가?”


뒤를 돌아보았다.

가장 선두에 선 산적 두목처럼 생긴 중년인을 필두로 족히 오십은 될 법한 인파가 우글우글 모여서 이쪽으로 오고 있다.

염소수염이 두목한테 소리쳤다.


“카일리 님! 폭왕입니다, 폭왕!”

“폭왕? 폭왕이 여길 제 발로 찾아왔다고?”


빨간 가면을 본 털북숭이 두목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안 그래도 암왕 년이 날파리처럼 쏘다녀서 거슬리던 참이었는데, 이게 웬 떡이냐. 모두 도망가지 못하게 포위해!”


두목의 명령에 뒤에 있던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나와 헨리를 둘러쌌다.


“이게 무슨······.”


헨리가 반만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뒷말에 뭐가 나올진 뻔하다.

염소수염과 1절에, 2절에, 3절까지 했으니, 이번엔 4절을 하려고 하겠지.

눈치도 없이 기어코, 4절을 말이다.


이제야 이해된다.

주설아가 왜 그토록 헨리에게 과민하게 반응하던 건지.

주설아 정도면 성인군자였다.

만약 내가 그녀라면 쏘아보는 것만으로 안 끝냈을 테니까.

바로 이렇게······.


“이라고 할 줄 알았······ 악!”


냅다 뒤통수를 후려갈겼겠지.

어쨌든 이걸로 내게 정신 공격을 가하던,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놈은 처리했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져 기절한 놈을 그대로 두고 해괴한 표정으로 날 보는 놈들에게 손짓했다.


“뭐 하고 있어? 덤빌 거면 시간 끌지 말고 빨랑 한꺼번에 덤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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