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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상자 님의 서재입니다.

최강자의 탑 등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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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별상자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7
최근연재일 :
2024.05.23 17:06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563
추천수 :
45
글자수 :
90,428

작성
24.05.09 01:28
조회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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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1층(1)

DUMMY

[탑 1층에 입장하였습니다.]

[탑 내부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탑 공용언어’로 자동변환·인식됩니다.]

[현재 능력치를 측정 및 수치화합니다.]

[등반자의 정보가 탑에 등록됩니다.]

[‘등반자 정보창’이 개방됩니다.]

[‘임무창’이 개방됩니다.]

[‘상점창’이 개방됩니다.]


연이어 귀에 들려오는 낯선 메시지들.

나는 침착하게 하나하나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주변을 확인했다.


푸른 잔디가 깔린 공터와 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비석.

원형의 공터를 빙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수목들.

지명 같은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이곳이 대충 숲 한복판이라는 건 알겠다.


“뭐, 뭐야?! 여긴 어디야!”

“저, 저기요. 여기 어딘지 아세요? 이상한 창이 보이고 눈 떠보니 여기던데······.”

“······통화권 이탈? 누구 전화 되는 사람 있어요? 있으면 잠시만 빌려주세요!”


정장. 블라우스. 셔츠. 교복. 맨투맨. 원피스, 청바지······.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며 저마다의 목소리를 낸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소수의 몇몇도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마저도 당황스러운 기색을 완전히 감추진 못한다.


그나저나······ 저게 탑 공용언어인가?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인지 아무도 눈치 못 챈 것 같지만, 죄다 똑같은 언어를 내뱉고 있었다.


탑 공용언어.


귀로 들어온 생소한 언어가 뇌를 거쳐 제멋대로 이해된다. 꼭 모국어를 쓰는 것처럼.

토종 한국인인 내 눈에는 여기 있는 서른 명 남짓이 전부 한국인으로 보이는데도 말이다.


내 귀가 잘못된 건 아닐 테니, 탑의 법칙 같은 건가?

탑에 입장할 때 들렸던 메시지에 따르면 그냥 한국어를 말하면 자동으로 변환되는 것 같은데······.

시험 삼아 아무 말이나 뱉어보려고 입을 열 때였다.


“모두 조용!”


돌연 비석 쪽에서 쩌렁쩌렁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패닉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움찔 떨더니 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본다.

누가 나서서 시선을 끄는지 궁금했던 나도 그쪽을 쳐다보았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엔 항상 리더 역할을 자처하며 나서는 사람이 등장하던데, 여기서도 그러려나?


“시끄러우니까 전부 입 다물고 내 말에 집중해라. 살고 싶다면.”


덩치 큰 사람 때문에 안 보여서 자리를 조금 옆으로 옮겼다.

그러자 비석 아래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고지식해 보이는 인상의 중년인.

나 포함 모두가 현대복장을 한 와중에 혼자만 이세계에서 보던 기사들처럼 흑색 갑옷을 착용하고 있어 눈에 확 띄었다.


“······.”


혼자 다른 형식의 복장을 한데서 오는 이질감 때문인지, 딱딱한 표정으로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기 때문인지, 그에게 함부로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딱 한 사람만 제외하고.


“넌 뭔데, 히끅! 나한테 입을 다물라 말라 하고 지랄이야, 새꺄!”


술을 얼마나 들이켠 건지 고주망태가 된 취객 아저씨가 초록 소주병을 거꾸로 잡고 지껄였다.

그리고 그것이 취객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서걱!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뽑혀 나온 검이 그를 반으로 갈랐다.

상체와 하체가 자를 대고 자른 듯 말끔하게 절단되고, 시뻘건 핏물과 내장이 푸른 잔디 위로 후두둑 쏟아졌다.


“꺄아아아아아아아!”


바로 옆에서 눈살을 찌푸린 채 취객의 행패를 지켜보던 젊은 여자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비명을 질렀다.


서걱!


그리고 목이 잘렸다.


“더 떠들고 싶은 자가 있나?”


마치 오늘 점심 뭐 먹었느냐고 묻는 사람처럼, 흑기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거기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 아래로 으으, 하는 신음 소리만 간헐적으로 새어 나온다.


“없다면 지금부터 너희들이 처한 상황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겠다. 딱 한 번만 얘기할 테니 귓구멍 열고 잘 듣도록.”


나는 그의 말대로 귀를 열고 조용히 흑기사를 쳐다보았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인물.

손속이 과격하긴 하나, 자기가 알아서 내가 궁금한 것들을 설명해 주겠다는데 방해할 이유는 없었다.


“현재 이곳은 탑 1층. 너희들은 이제부터 살아남기 위해 험난한 시련을 이겨내고 탑을 올라야 한다.”


스르릉, 허공에 핏물을 턴 검이 검집에 꽂혔다.


“당연하게도 이는 결코 쉽지 않다. 1층은 튜토리얼과 비슷한 느낌이니 운 좋게 클리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아마 2층에선 여기에 있는 대부분이 죽게 되겠지.”


담담하게 죽음을 예고하는 말에 몇몇이 죽은 취객과 여자 쪽을 쳐다봤다. 그리곤 뭘 상상했는지 가늘게 어깨를 떤다.

그 모습을 본 흑기사가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치 강조하는 것처럼.


“하지만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모시는 신께선 그런 너희를 가엾이 여겨 사도인 나를 이곳으로 내려보내셨으니.”


팔짱을 끼고 듣다가 순간 멈칫했다.

방금 쟤가 뭐라고 한 거지?

신? 사도? 내려보내?

‘신의 탑’이라는 명칭이 ‘신이 제작한 탑’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신이 거주하는 탑’이란 의미였나?

아니지. 아직 탑 안에 신이 거주한다곤 안 했다.


신이 실존하고, 그 신을 모시는 사도가 존재한다.

딱 여기까지가 흑기사가 말한 팩트지.

물론 흑기사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신도가 된다면 신께선 은총을 내리실 것이다. 사람 한 명 죽이지 못하는, 나약하디 나약한 너희들조차 탑을 충분히 오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은총을 말이다.”


딱.


흑기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탑 계약서>


1. 앞으로 ‘최강혁’이 탑에서 얻는 모든 포인트는 5:5의 비율로 ‘최강혁’과 ‘키헬룸’에게로 분배된다.


2. ‘키헬룸’은 본 계약이 체결되는 즉시, ‘최강혁’에게 스킬 [지옥불]을 제공한다.


3. 탑의 율법에 따라 본 계약은 당사자 쌍방 어느 한쪽이 사망하기 전까지 유지된다.


계약을 체결하시겠습니까?



나는 계약서를 꼼꼼히 읽었다.

계약서엔 두 개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최강혁과 키헬룸.

‘최강혁’은 내 이름이니까, ‘키헬룸’은 자연히 저 흑기사가 말한 신이 된다.


그런데, 키헬룸은 정말 신이 맞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계약서에 따로 ‘신’이라는 명칭도 붙어있지 않을뿐더러. 계약을 체결하면 포인트도 평생 절반이나 받쳐야 한다.

그 대가로 받는 건 딸랑 효과도 알 수 없는 스킬 하나뿐.

포인트가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대충 느낌상 탑에서 통용되는 화폐쯤 되는 것 같은데······ 이건 너무 노예계약 아닌가?

이거 전지전능한 진짜 신이 아니라 순 사이비 신인 거 아냐?


“저기, 신의 사도님.”


그때 흔들림 없는 미성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적막을 깨뜨렸다.

단발머리를 한 자그마한 뒤통수.

하얀 블라우스와 청바지.

나보다 한참 앞줄에 선 여자였다.


“이 계약을 꼭 해야 하나요? 하지 않고 저희가 살아남을 방법은 없는 건가요?”


흑기사가 고개를 틀어 질문한 여자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압박감이 상당할 텐데, 여자는 일말의 미동도 없이 그 시선을 받아냈다.


“살아남을 방법이라······.”


투박한 손가락이 각진 턱을 쓸어낸다. 이윽고 흑기사가 손을 내리고 단언했다.


“그딴 건 없다.”


그리고 매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쓱 훑고선 덧붙였다.


“너희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뿐이다. 만약 거절하는 자가 나온다면 탑을 오르기도 전에 내 손에 죽을 것이니까.”


한순간 공기가 얼어붙은 느낌이었다. 꼼지락대던 사람들이 일제히 정지해서.

이 장소에서 태연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오직 흑기사와 나뿐이었다.


“정확히 30초 주겠다. 죽기 싫다면 30초 안에 눈앞의 계약을 체결-”

“잠깐만. 나도 질문할 게 있는데.”


모처럼 찾아온 질문 타임이 이대로 파할 분위기이길래 손을 번쩍 들었다.

흑기사에겐 물어볼 것이 많다.

키헬룸이라는 신의 정체부터 시작해, 탑은 어떤 공간인지, 탑은 총 몇 층인지, 신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또 얼마나 강한지 등등······.

가장 먼저 뭐부터 물어볼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흑기사가 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 너.”

“아, 잠시만. 뭐부터 물어볼지 고민 중-”

“한 번만 더 내 말을 끊으면 그땐 죽이겠다. 입 다물고 얌전히 계약이나 체결해라.”

“체결하면 질문받아주는 거야?”

“······.”


으름장에도 전혀 기죽지 않고 되묻는 나를 흑기사가 묘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렇게 시선이 부딪치길 몇 초.

그가 입을 열었다.


“신도가 된다면 사도로써 조언 정도는 해주마.”

“그래? 근데 이건 어떻게 해야 체결할 수 있는 건데? 말로 해야 하나? 아니면 생각?”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계약을 어떻게 하겠다 생각하는 순간, 계약창이 사라졌으니까.

동시에 메시지가 들려왔다.


[‘키헬룸’의 계약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계약했어. 이젠 질문받아주는-”

“너.”


영하까지 떨어진 것 같은 목소리가 내 말허리를 뚝 잘랐다.

흑기사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계약 결과를 아는 방법이 있던 건가?

대리인인 거 같길래 속여넘길 수 있나 했더니. 실패였다.


“지금 죽고 싶다고 발악하는 거냐. 감히 내 앞에서 계약을 거절해? 거기다 대놓고 거짓까지 입에 담아?”


검자루에 손을 올린 흑기사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단지 한 걸음 걸었을 뿐인데, 나와 흑기사 사이를 가로막던 인파가 우수수 갈라졌다.

순식간에 뻥 뚫린 고속도로처럼 일직선의 길이 생겨났다.


“그래, 꼭 이런 놈들이 있지. 좋게 말해선 들어 처먹질 않는, 제 주제도 모르는 멍청한 놈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스르릉.


차갑게 흥분한 흑기사가 검을 뽑아 들고 성큼성큼 거리를 좁혔다.

서늘한 금속광이 햇빛에 번쩍였다.


“꽤 침착하군. 설마 이곳이 꿈속이라고, 그래서 죽어도 잠에서 깰 뿐이라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착각 중인 건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오산이라고-”

“저기, 진정하고 말로-”


내가 좋게 말하려고 한 순간.


“또 내 말을 끊어?”


한쪽 눈썹을 신경질적으로 꿈틀거린 흑기사가 지면을 강하게 박찼다.


쿵.


지면이 작게 진동하며 검은 신형이 대포알처럼 내게 쇄도한다.


······아니, 나는 좋게좋게 대화로 풀어가려고 하는데, 왜 혼자 급발진하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게 말해선 들어 처먹지 않는, 제 주제도 모르는 멍청한 놈은 내가 아니라 흑기사, 너인 거 같은데.


계약을 거절한 게 그렇게 큰일인가?

물론 계약을 거절하면 죽인다고 하긴 했지만, 그리고 내가 거짓말을 한 번 하긴 했지만, 이건 어딜 봐도 고작 계약 하나 거절했다고 죽이는 쪽이 이상한 거잖아.

반면 나는 질문에만 잘 대답해주면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고.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갔나 생각하는 와중에도 흑기사는 급속도로 내게 가까워졌다.

그리고 흑기사가 3분의 2지점에 도달했을 때, 나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아무튼 전투는 이미 벌어졌고, 나는 이미 시작된 전투를 피하는 성향이 아니다.

오히려 전투를 선호하는 편에 가깝지.


그러니까.

한판 붙어 보자.


안 그래도 신의 사도는 얼마나 강한지 궁금했다.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고.

좀 다르긴 하지만, 신의 사도를 보면 신이 얼마나 강한지 대충은 알 수 있겠지.

못다 한 질문은 전투가 끝난 뒤에 하면 된다.

나한테 맞은 후에는 저 뻣뻣한 태도도 훨씬 온순하게 교정되어 있을 테니까.


사악-


어느새 근접한 날카로운 검날이 내 가슴을 베어 들어온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적당한 타이밍에 주먹을 내질렀다.


후우우우우웅!


적당히 힘을 준 주먹이 공기를 밀어내고 검날과 부딪친다.


그리고.


쩌저적······!


산산조각이 났다.

주먹이 아니라 검이.


······엥? 이게 이리 쉽게 부서진다고?


내 예상보다 심각하게 약한 검의 내구성에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순간.


콰지지직!


검을 부순 내 주먹은 흑색 갑옷마저 종잇장처럼 뚫어냈고, 삽시간에 흑기사의 가슴까지 관통했다.


“어······.”


당황한 나는 붉게 물든 주먹을 슬며시 거두며 눈앞의 흑기사를 쳐다봤다.


“이, 이······.”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부릅뜨인 눈.

희미해지는 생명의 끈을 필사적으로 부여잡듯. 떨리는 입술이 힘겹게 달싹거렸다.


“이, 게에, 왜······.”


하지만 끝내 입술이 완전히 열리는 일은 없었다.


쿵.


뻥 뚫린 가슴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쫙쫙 금이 간 흑갑옷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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