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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머리 에아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4.05.08 15:28
최근연재일 :
2024.06.20 22:4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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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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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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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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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떨림 (2)

DUMMY

"아까는 너무 경솔했다. 쓸데없이 그녀를 자극해서는 안 되었어."


아무도 없는 회랑. 바닥을 딛고 굳건히 서 있는 열주 사이로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노곤한 잠을 불러일으키는 따스한 날씨였지만 프라의 목소리에는 서리가 시린 듯 차갑게 느껴졌다.

아스테리아는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순간 어머니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차분하게 굴거라. 괜히 기싸움을 벌이면 너만 피곤해진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나아."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그거 다행이구나. 되지도 않는 머리로 이해하려다 괜한 오해를 하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게 낫겠지."


아스테리아가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프라도 덩달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금 커다란 바구니를 같이 들고 있었다. 바구니 안에는 품질 좋은 양털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스테리아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하인이 대신 바구니를 들겠다는 걸 굳이 만류하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핀잔을 주려고 한 거였나.

프라는 아스테리아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어차피 이 성에 머물 날도 앞으로 얼마 안 남았지 않느냐. 그동안 괜한 소란을 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다가 가거라."

"왜 제가 조만간 떠날 것처럼 말씀하시는 거죠?"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니?"


아스테리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모를 리가. 할아버지가 편찮으셨던 순간부터 이미 아스테리아는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붉은머리 씨족의 남자는 성년이 되면 성인식을 치르지만 여자는 경우에 따라서는 하지 않았다.

다른 씨족의 아내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꽤 있었기에 굳이 머리를 붉게 물들일 필요가 없었다.

아스테리아는 족장의 딸이었고 올해로 열하고도 일곱이 되었다. 당장 혼인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그럼에도 아스테리아가 지금껏 가족들의 품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할아버지, 우글라 덕분이었다.

우글라는 다른 씨족들이 보내오는 혼사를 이제껏 다 거절하였다. 적어도 자신의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는 가족이 흩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우글라는 아스테리아를 어여쁘게 여겼다. 낯선 부족의 땅에 들어가 평생 나오지도 못하고 안주인 신세로 지내는 걸 되도록 늦추고 싶었다.

브레고아가 아버지의 이 같은 결정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글라가 그러한 결정을 내린 이후, 대화를 단 한 번도 나누지 않았다는 점에서 적잖은 불만을 품었을 거라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우글라는 죽었다. 그로 인하여 브레고아가 진정한 홀 다르의 주인이 되었다.

이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홀 다르 주변은 물론이고 동서를 가르는 거대한 칼라투아 산맥 너머까지 도달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다른 씨족의 족장들이 아스테리아를 보기 위해 여기저기서 찾아올 것이다. 본인 혹은 차기 족장이 될 제 아들의 혼사를 위하여.


"네가 평생 이 성에 떠나지 않고 에아론을 돌볼 작정이라면 나도 말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잖느냐. 그러니 일이란 일은 다 저지르고 도망치듯이 나갈 생각이 아니라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다."


프라는 할 말을 다 한 건지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아스테리아는 여전히 못 박힌 듯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제 동생을 모욕하는 걸 듣고도 모른 체 넘어가라는 소리인가요? 옆에서 들으셨잖아요. 그 여자는 대놓고 에아론을 욕했다고요."

"짖지 않는 개를 두려워해야지 어째서 짖는 개를 두려워하느냐.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게 오히려 이쪽이 편하다."

"그 짖음이 너무 불쾌하니까 그렇지요. 그럼 나중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도 가만히 있으실 생각인가요? 혹 에아론이 옆에서 듣고 있다 하더라도?"

"그래."


아스테리아는 황당해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한때 프라를 동정하였던 과거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스테리아는, 그래.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누구하고도 얘기를 나누려 하지 않는, 심지어 자신의 아들과 딸을 남처럼 대하는 모습을 보고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여겼다.

단지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상심한 것뿐이라고. 그로 인하여 자식들에게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 시간이 흘러 마음을 추스르는 날이 오면, 그때는 자신과 에아론에게 관심과 사랑을 줄 것이라 확신했다.

아스테리아의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진 듯싶었다.

프라가 밝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을 때 비로소 고대하던 날이 왔노라며 기뻐하였다.

에아론에게 이것저것 챙겨주는 시늉을 하였을 때는 순간 눈물이 나기까지 하였다.

이제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노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게 불과 어제, 아니 몇 시간 전이었다.

근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걸까. 어머니는 아직도 그림자에 젖어 있었던 걸까.

그때 프라가 말했다.


"어차피 그런다고 에아론이 어떻게 되는 게 아니야. 그러니 과히 반응하지 말거라."


아스테리아는 혼란스러웠다. 프라가 어떤 마음을,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방금 그건 에아론을 위하는 말인가? 아니면 여전히 무관심하다는 걸 드러내는 말인가?

프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스테리아의 시선을 가만히 마주하였다.

열주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이 프라와 아스테리아의 얼굴을 비추었다. 모녀의 눈동자는 똑같은 호박색이었다. 단지 색이 옅고 짙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상황에 맞지 않는 다소 뜬금없는 생각이었다만, 프라는 새삼 아스테리아가 제 딸임을 실감했다.


"리아. 에아론은 내 아들이다."


실바람이 불었다.


"그동안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살았지. 아니, 살았다고도 볼 수 없었다. 그저 유령처럼 성 내부를 거닐기만 하였으니.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야. 하루하루 내 의무를 상기하며 온전히 에아론만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아스테리아의 눈동자가 떨렸다.


"어머니, 당신은 도대체-."


아스테리아는 말을 하다 말았다. 갑자기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날, 할아버지께 어떤 말을 들으신 거죠?"


프라가 고개를 돌렸다. 아스테리아는 최대한 똑바로 말을 하려 애썼다.


"어떤 말을 들었길래 그때 눈물을 흘리셨던 거죠? 최근 태도를 바꾼 이유가 혹시 그 때문인가요?"


정원을 지나 모녀 사이를 스쳐 지나간 바람은 바구니에 수북이 쌓여 있는 양털을 건드렸다.

바닥에 떨어진 양털 하나. 프라는 양털을 집어 바구니에 넣으려다 말았다.

양털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다.


"난 에아론을 정찰꾼으로 만들고픈 생각은 없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성의 주인이 되는 게 낫겠지."


아스테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아까 전에 아스테리아가 에키아 앞에서 정찰꾼 운운했던 걸 지적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스테리아는 그 뒤엣말이 더 충격이었다. 프라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쇄담이 쓸데없이 길었구나. 어서 가자. 하인들이 기다리고 있겠다."


프라는 먼지가 묻은 양털을 매몰차게 버렸다.



*



에아론은 끙끙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웃옷을 벗으니 어깨와 가슴에 푸른 멍이 살짝 생겨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 구르기라도 한 것일까? 차라리 그런 것이었다면 이렇게 짜증이 나진 않았을 것이다.

요즘 에아론은 스바르 때문에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 툭하면 글리마 연습을 한답시고 에아론을 상대로 기술을 시연했던 것이다.

전에는 검술 대련이란 명목으로 마구 두드리더니 이젠 또 글리마라니. 이러다가는 몸이 가루가 되어 부서진다 해도 그리 놀랄 것 같지 않았다.

그보다 대체 어디서 뭘 들었길래 갑자기 글리마 타령을 한단 말인가.

이런 에아론의 의문은 얼마 안 가 풀렸다.


"대회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에아론은 하인들과 같이 접시를 닦고 있었다. 그들을 도우려는 마음에서 한 것도 있지만 더 중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또 스바르에게 끌려 나가기 싫어서였다.

그래서 이들을 도와주는 김에 겸사겸사 주방에 숨어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스바르는 주방에 잘 출입을 하지 않으니 여기라면 들키지 않고 있을 수 있을 테지.


"예. 성인식을 치를 날이 다가오면 마을에서는 글리마 대회가 열립죠."


남자 하인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 그릇을 벅벅 닦으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고기를 담고 있었던 터라 기름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힘 있게 하지 않으면 잘 닦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 하인은 딱히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 식사를 하면서 그 또한 고기를 얻어먹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사냥에 나갔던 족장 일행이 커다란 순록을 잡아온 덕분이었다. 그러니 이참에 하인들도 입에 기름칠을 할 수 있던 거겠지.

에아론은 음식 부스러기가 묻은 나무 그릇을 잿물이 담긴 통에 담가 조심히 닦았다.

세게 했다간 재 가루가 그릇 틈 사이에 끼고 말 테니까.


"근데 성인식이랑 대회랑 뭔 상관인데요?"

"그야 또 한 명의 전사가 탄생하는 순간인데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요? 부디 성인식이 잘 치러지게 해달라고 다들 온몸으로 키놀께 기원하는 것입죠."


에아론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눈동자를 굴렸다.


"그럼 볼리도 참여할 건가요?"


하인의 이름은 볼리였다. 볼리는 크게 웃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물론입죠. 날마다 오는 게 아니잖습니까요. 이번 기회에 우승까지 노려볼 생각입죠."

"우승하면 뭐가 좋은데요?"

"어이구야, 우승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요. 홀 다르 최고의 글리마르라니! 생각만 해도 날아갈 것 같지 않습니까요."


주변에 있던 하인들이 볼리에게 물을 뿌리며 야유를 퍼부었다. 너한테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건 덤이었다.

볼리 곁에 있던 에아론도 졸지에 물을 맞고 말았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느새 물놀이가 벌어졌다. 에아론도 싱글벙글 웃으며 하인들과 함께 장난을 쳤다.

하지만 너무 신나게 놀아서 그런지 옷이 푹 젖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보모에게 걸려 꾸중을 듣고 말았다.

오후가 되니 여지없이 스바르가 에아론을 찾아왔다. 에아론은 마주치지 않으려고 숨어 있으려 했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스바르는 에아론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야. 오히려 영광으로 알아야 해. 미래의 글리마 우승자가 연습 상대로 널 지목을 한 거라고. 내가 이기면 너도 명예를 얻게 되는 거야."


그런 명예라면 죽어도 받고 싶지 않았다. 에아론은 끌려가지 않으려 버텼지만 힘으로는 스바르를 이길 수 없었다.

마을 근처에 있는 들판으로 가니 몇몇 사람들이 글리마 연습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과연 할 일은 다 하고 연습하는 건지 아니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노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조만간 다가올 대회를 즐기기 위해 다들 신을 내고 있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스바르나 에아론 또래의 소년소녀들도 자리에 있었다. 그들은 남자, 여자 구분 없이 아무나 짝을 맺고 승부를 펼쳤다.

스바르와 에아론이 도착하니 소년 몇 명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도 안 오길래 도망친 줄 알았잖아. 스바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우승자 자리를 두고 내가 왜 도망쳐?"


스바르는 패기 있게 웃옷을 벗고 바닥에 던졌다. 그러고는 멀찍이 서 있는 에아론에게 손짓했다.


"빨리 와. 몸 풀어야지!"


에아론은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옷을 벗었다. 솔직히 사람들 앞에서 옷 벗는 게 에아론에게는 무척 창피한 일이었다.

소년들만 있다면 조금은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저기 소녀들도 있었다. 소녀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저들끼리 꺄르르 거리며 웃고 있었다.


"준비됐어?"

"아니."


스바르는 에아론이 뭐라 하건 상관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에아론은 그런 스바르가 무서워서 두 팔을 모아 몸을 틀었다.


"억!"


에아론이 속수무책으로 바닥에 엎어지자 스바르는 팔로 목을 졸랐다. 에아론은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항복이야! 형!"

"너무 시시하잖아! 당하지만 말고 좀 반항이라도 해 봐!"


에아론은 저도 모르게 손톱을 세웠다. 그러자 스바르가 버럭 화를 내었다.


"반칙이야! 치사하게 굴지 마."


깨물어도 안 되고 할퀴어도 안 된다. 주먹으로 쳐도 안 되고 급소를 차는 건 더더욱 안 되었다.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거나 몸을 들어 뒤로 넘기거나 목을 조르는 것과 같은 기술만 허용되었다.

중부의 크시포스 제국에서 유행하는 스포츠인 레슬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었다. 아니면 동부의 씨름과 비슷하거나.

여하간 에아론은 어쩔 수 없이 두 손으로 스바르의 팔뚝을 움켜잡았다. 그럼에도 힘이 부족한지 풀 수가 없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자 얼굴이 벌게졌다.

에아론이 마른 기침을 내뱉고 나서야 스바르는 팔에 힘을 풀었다. 스바르는 혀를 찼다.


"야, 핏덩이. 넌 대체 언제쯤 돼야 실력이 늘래? 이 정도 당하면 그래도 맷집이라도 강해져야 하는 거 아냐?"

"그러면 나랑 안 하면 되잖아. 시시하다면서 왜 계속하는 건데?"

"이따 다른 애들이랑 할 거야. 근데 널 강하게 만들어 주려고 그러지. 형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언제 철들래?"

"됐어. 나 갈 거야."


에아론이 땅에 떨어진 옷을 주우려 했다. 하지만 스바르가 먼저 옷을 낚아채가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어서 줘!"


에아론이 두 팔을 뻗으며 덤볐지만 턱도 없었다. 스바르는 놀리듯이 혀를 내밀었다.


"갖고 싶으면 날 이겨!"


에아론은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어떻게든 옷을 가져가려고 했다. 하지만 스바르가 더 키가 컸던 탓에 어림도 없었다.

화가 난 에아론은 스바르를 넘어뜨리기 위해 짧은 다리로 마구 휘저었다. 나름 어디서 본 것을 따라 한 것일 테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공격이 아니었다.

그게 공격이라면 허공에 흩날리는 민들레 씨앗에 맞는 것도 공격이라 칭해야 할 듯했다.

결국 이렇다 할 반격도 하지 못한 채 에아론은 바닥에 누워 헐떡이게 되었다. 스바르는 히죽 웃으며 에아론의 얼굴에 옷을 던졌다.

에아론은 미간을 찌푸리며 스바루를 올려다봤다. 스바르는 해를 등에 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얼굴이 그림자로 덮여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재미있었어. 역시 내기가 걸려야 하는 건가?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네가 한 번이라도 날 이긴다면 널 형이라 불러줄게."


에아론은 믿지 않았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꽃 찾기 내기를 하였을 때, 그때도 스바르는 자신이 지면 에아론을 형이라 대접한다 했었다. 그러나 에아론이 먼저 나팔꽃을 찾자 손바닥 뒤집듯이 번복하였다.


"형이라 불러준다니까?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 거야. 무릎 꿇으라면 꿇고 엎드리라고 하면 엎드릴게."

"안 믿어."


스바르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키놀께 맹세하노니, 나 붉은머리 스바르가 핏덩이 에아론에게 지면 평생 형으로 대접할 것이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어색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굳이 맹세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어서였다. 저러다 정말 지게 되면 꼼짝도 없이 동생을 형으로 모셔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바르는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방금 맹세한 거 들었지?"

"정말 지킬 거지?"

"단, 오늘 이겨야 해. 그것도 글리마로 말이야. 안 그러면 무효야."

"뭐야. 그런 소리는 안 했잖아!"

"싫으면 관두던지."


에아론은 스바르를 노려보았다. 그래, 형 대접이니 뭐니 그런 건 기대도 않는다. 그런 것보다는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동안 스바르에게 당한 것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몸에 힘이 맴돌았다. 에아론은 떨리는 가슴을 품은 채 벌떡 일어났다.


"건방진 동생에게는 매가 약이지."


스바르는 짓궂은 웃음을 흘리며 두 팔을 벌렸다.


작가의말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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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변화의 꼬리 (1) +1 24.05.23 17 2 14쪽
14 아담한 승리 +1 24.05.22 14 4 15쪽
13 정찰꾼 스뇰 (5) +1 24.05.21 17 4 16쪽
12 정찰꾼 스뇰 (4) +1 24.05.20 22 3 20쪽
11 정찰꾼 스뇰 (3) +1 24.05.19 19 3 13쪽
10 아픔 +1 24.05.17 19 5 19쪽
9 정찰꾼 스뇰 (2) +1 24.05.16 19 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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