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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머리 에아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4.05.08 15:28
최근연재일 :
2024.06.20 22:4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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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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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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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스뇰이 말하길, 검은발이 다스리는 홀 브림까지 가려면 보름은 걸린다고 말하였다.


"그러면 말을 타고 가는 게 더 빠르지 않아요?"

"안 돼. 너무 돌아가. 게다가 우린 산맥을 넘을 예정이야. 말 타고는 못 넘어."


말도 올라가기 힘든 곳을 사람이 넘을 수가 있단 말인가.

에아론은 스뇰이 일부러 힘든 곳만 골라서 가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자기가 이토록이나 뛰어난 정찰꾼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말이지.

스뇰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괴팍하게 굴었다. 일행 중 한 명이라도 뒤처지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화를 팍팍 내었던 것이다.


"태어나고 줄곧 하던 게 걷기인데 왜 그리 비틀거려. 갓 태어난 망아지도 너보다는 잘 뛰겠다."

"돈 받고 싸우는 건 해봤어도 대신 걸어본 적은 없는 모양이지? 다음부터는 무보수로 싸워라, 등신들아."

"꼬맹이. 넌 이번에 성인식 안 한 걸 다행으로 여겨라. 그리 땀을 흘려서야, 기껏 붉게 물들인 머리 다 씻겨 나갔을 거다."


어느새 모든 사람들이 스뇰의 뒤통수를 노려보게 되었다.

당연히 전사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도 스뇰의 속도를 따라가는 게 도통 힘든 게 아닌지 답지 않게 숨을 헐떡거렸다.

그래도 후미에서 따라오고 있는 외지인들 때문인지 힘든 티를 많이 내지는 않았다.


'긴장하셨나 보네.'


툴툴거리는 것도 잠시, 에아론은 스뇰을 이해하게 되었다.

평소보다 격한 표현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은, 어쨌든지 간에 주변 사람들을 의식한다는 소리이기도 하였다.

어쩌면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스뇰을 누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한심한 것들. 키놀도 니네들이 하는 맹세는 안 받을 거다. 해봤자 어차피 똥 잘 싸게 해주세요, 말고 더 있겠냐?"


'아닌가.'


저 앞서가서 낄낄 비웃고 있는 스뇰을 보자니 에아론은 제 생각을 다시금 재고하게 되었다.


"대단하시군요. 둘째 도련님께서는 별로 지치지 않으시나 봅니다."

"저도 힘들어요. 그래도 그간 삼촌이랑 종종 같이 다녔던 게 어디 가진 않았나 봐요."


전사들은 에아론이 묵묵히 나아가는 걸 보고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아첨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들은 싸우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젬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순박하고 단순한 자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순수하게 놀라고 있었고 그걸 알기에 에아론 또한 감사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저 사람들이 잘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 더 놀라운데요."


전사들도 의외이긴 한 건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외지인들치고는, 예. 그렇군요."


칼리스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스스로가 공언하였던 대로, 스뇰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

특히 놀라운 건 바로 눈신을 신고도 잘 걷고 있더라는 점이다.

눈신을 신으면 평소 걸음걸이와는 다르게 걸어야 하니 더 힘이 드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 용병은 땀을 뻘뻘 흘리기는 하여도 용케 잘 따라오고 있었다.

이에 대해 에아론은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그러자 칼리스는 눈을 찡긋하고는 말하였다.


"늪지대를 가로지르며 걷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괜찮은 편입니다."

"늪지대요?"

"진창이 더 심해지면 늪지대가 됩니다. 여기도 봄이 되면 땅이 마구 질척거리지 않습니까? 늪지대는 그보다 더 심하다고 보시면 돼요."

"와, 그러면 제대로 걸을 수도 없겠는데요."

"몸이 아예 빠져버리죠. 그래서 늪지대 속에는 동물 사체가 많아요.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기 때문이죠."


에아론이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설산을 오를 수 있었던 건 칼리스 덕분이기도 하였다.

저 외지인의 입에서 나오는 바깥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흥미가 돋았던 것이다. 칼리스는 정말 다양한 걸 경험해 본 용병인 듯했다.


"용병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은 염색공이었습니다. "


칼리스는 그리 말하며 장갑을 벗어 손을 보여주었다. 얼룩덜룩하게 묻어 있는 손. 그중 가장 심한 건 손끝이었다.

마치 피가 묻은 것처럼 붉었다.


"방금 뭐라 했죠?"

"염색공. 옷을 물들이는 사람을 말합니다. 커다란 통에, 마찬가지로 커다란 옷감을 넣고 하루종일 주무릅니다. 발로 밟아야 할 때도 있어요. 그렇게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시작하면 저녁 종이 칠 때까지 염색을 합니다."

"저녁 종?"

"말 그대로 저녁이 왔을 때 치는 종입니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정오가 되었을 때, 저녁이 왔을 때가 되면 성에서 종을 울리죠."

"우린 그런 게 없어요. 그냥 닭이 울면 그때 알아서 일어나죠."

"예. 그렇더군요."


에아론은 가파른 곳을 오를 때를 제외하면 줄곧 칼리스와 대화를 나누었다. 다른 용병들은 그리카 어를 잘 할 줄 몰랐다. 하더라도 아주 간단한 말뿐이었다.

칼리스는 에아론의 끝없는 질문이 그리 싫지 않은 건지 성실하게 답변해 주었다.

오히려 당사자인 칼리스는 괜찮아하는데 주변 인물-특히 스뇰-이 가장 귀찮아했다.


"야, 자꾸 듣고 있자니 짜증이 난다. 그만 좀 물어봐. 그럴 시간에 체력이나 아끼라고, 꼬맹아."

"삼촌은 외지인이 우리 말을 쓰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사람이 사람 말하는 게 뭐가 그리 신기하다고. 개가 사람 말하는 정도는 되어야 신기한 거지."


에아론은 칼리스에게 자기가 귀찮냐고 물었다. 칼리스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야 즐겁습니다. 이럴 때 수다 떨지 언제 떨겠습니까. 그보다 저는 공자님이 신기합니다. 싫어하실 줄 알았거든요."

"왜요?"

"보통 다른 나라나 지방에서 온 사람이 있으면 깔보고 욕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그러나 공자님은 그렇지 않잖습니까. 공자님 같은 분을 만나 뵈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냥 신기해서 그래요. 그리고 저도 그, 제국이라는 곳으로 내려가면 저 또한 외지인이 되는 거잖아요?"

"깨어 있으신 분이군요. 누구하고는 다르게 말이지요."


그 말이 과연 누구를 겨냥했을까. 에아론은 스뇰의 등을 보며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스뇰은 코웃음을 쳤지만 눈은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칼리스는 곧장 배낭을 뒤지더니 초록색 잎을 꺼냈다.


"선두자의 노고는 나도 잘 알고 있지. 이걸 씹어라. 피로가 가실 테니. 참고로 그거 귀한 거니 다 씹지는.. 이런."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스뇰은, 피로를 잊을 거라는 말을 듣자마자 잎을 뺏어가 질겅질겅 씹었다.

그러나 곧 스뇰은 우웩, 하며 뱉었다.


"아이고. 저 비싼걸.."

"독초냐!"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저기 남쪽 지방에서 재배하는 담뱃잎이다. 여긴 그런 게 없나 보지?"

"담배라고? 이게? 웃기지 마!"


스뇰은 눈을 한 주먹 퍼서 입안에 넣었다. 어지간히도 맛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스뇰은 슬금슬금 칼리스에게 오더니 말했다.


"그거 하나 더 있으면 줘 봐."


칼리스는 빙긋 웃었다.


"이제부터는 물물교환. 여긴 그리카니 그리카 식으로 해야지."


결국 스뇰은 건육과 맞바꿔서 담뱃잎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툴툴거리던 스뇰은 이내 침묵한 채 잎만 질겅질겅 씹었다.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렇게 에아론 일행은, 티격태격하면서도 때로는 서로에게 장난도 치면서 막힘없이 나아갔다.

다만 모두가 한 번에 걸음을 멈출 때도 있었다. 키놀의 제단이 나타났을 때였다.

아마 까마득한 과거에 어떤 사람은 이곳에 간이용 제단을 만들었더랬다.

발길이 끊겨 오래도록 방치된 제단은 그러나 지금, 다시 제단으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저게 키놀이란 거죠."


제단 옆에 놓인 조각상을 보며 칼리스가 조용히 물었다. 에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키놀의 형상을 본떠 만든 그 조각상은 흡사 새와 동물을 섞어 놓은 듯한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독수리처럼 커다란 날개로 감싼 몸. 늑대와 같은 얼굴은 저 푸른 창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날카로운 발톱은 그리카로 보이는 험한 지형을 짓밟고 있었다.

오래도록 눈바람을 맞아 깎인 곳이 많아서 그렇지, 만약 갓 만들어졌을 때 봤다면 세밀한 표현에 놀랐을 것이다.

필시 솜씨 있는 조각가가 만들었을 테지.


전사들은 제단 위에 간단한 음식을 올려놓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 경배 의식을 드렸다.

스뇰은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얼른 가자고 보채지는 않았다.

어쨌든 앞으로 갈 길은 멀다. 괜히 서두른다고 힘을 뺐다간 산맥을 다 넘지도 못하고 퍼질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참에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에아론도 전사들 사이에서 경배를 드렸다. 다만 간이용 제단 앞에서 경배를 드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조금 어색한 감이 있었다.

외지인들은 어떤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까.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괜히 뒤통수가 근질근질하였지만 차마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다. 경배 의식을 할 때는 오로지 키놀에게 집중을 해야 했기에.


그때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살짝 눈동자를 굴려서 쳐다보니, 맙소사. 칼리스도 같이 하고 있는 게 아니던가.

칼리스는 앞서 전사들과 에아론이 보이는 것처럼 같은 모습으로 경배 의식을 드리고 있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했다.

의식이 끝나자 칼리스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에아론을 발견하고는 씩 웃었다.


"그러다 입에 파리 들어가겠습니다. 아, 여긴 눈이 들어간다고 표현을 해야 하나. 아무튼 얼른 가시지요. 에아론 공자님."


에아론은 칼리스가 어떻게 경배 의식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그러나 일행이 걸음을 재개하였기에 더 물어보지는 못했다.

하늘에는 곧 눈이 내릴 듯 흐릿하였다.



*



시르나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이 어떤 건지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 남이 들으면 조금 웃길지도 모르겠으나 시르나는 벌써부터 에아론을 제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의 차이일 뿐 늦든 빠르든 결국 결혼을 할 것 아닌가. 그러니 부부라 생각해도 그리 이상할 건 없을 것이다.

시르나가 제 도시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였다.

에아론이 모든 걸 마치고 무사히 홀 다르로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 남아 있기로 하였다.


"네 기특한 마음은 키놀께서도 좋게 봐주실 게다."


프라는 시르나의 이러한 행동을 좋게 보았다.


"그럼 여기서 지내는 동안 내 옆에 있거라. 옆에서 이것저것을 알려줄 터이니."


어쨌든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으니 언제까지 식객으로 머무를 수만은 없었다.

시르나는 프라의 곁을 따라다니며 신부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빈말로도 쉽다고 보기는 힘들 듯하다.

프라는 자상하기보다는 엄격한 선생님 같았다. 틈만 나면 손으로 시르나의 행동을 지적했던 것이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마땅히 감내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니 버틸 만하였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밤이 찾아오면 시르나는 홀로 방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유달리 시린 빛을 내고 있는 달.


'지금쯤이면 어디쯤에 도착해 계실까. 혹시 벌써 적과 만나서 싸우지는 않을까. 어디 다치신 건 아닐까.'


온갖 고민과 걱정이 시르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에아론이라면 잘할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 잠들기 전에 항상 드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기에.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몸을 뉜 시르나는 문득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바깥 복도에서 누군가 신음을 흘리고 있던 것이다.

이 시간에, 과연 어떤 사람이 아픈 소리를 내고 있단 말인가.

시르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소리는 저 복도 끝에서 나고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시르나는 화들짝 놀랐다.

한 청년이 알몸으로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것이다.

시르나는 숨을 들이쉬며 얼른 뒤돌았다. 대체 누구길래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거기 누구야."


그때 상대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시르나는 답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상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에아론에게, 스바르에 관하여 얼핏 듣기는 하였다. 하지만 설마 저런 안쓰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설마 저번에 도망친 걔냐? 이번에는 제대로 몸을 바칠 생각인가 보지?"


스바르는 입술을 이죽였다. 웃음은 금방 멎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안되겠군. 열이 나서 말이야. 아마 안으면 화상을 입을 거야. 그러니 꺼져."


이토록이나 추운 복도건만 놀랍게도 스바르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당장 동상을 입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시르나는 일단 이불을 갖고 오기로 하였다.


"기다리세요. 제가 이불을 갖고 올게요."

"잠깐."


스바르는 고개를 돌렸다. 빛을 잃은 눈동자가 시르나 주변을 탐색하듯 둘러보고 있었다.


"넌 누구지?"


시르나는 침묵했다. 그저 뭐라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 침묵을, 스바르는 달리 이해한 모양이다.


"누구냐고 물었어. 너, 여기서 일하는 년 아니지. 거짓말할 생각은 마. 눈이 먼 거지 귀가 먼 거는 아니니까."

"시르나, 라고 합니다. 스바르 님."

"시르나?"


스바르는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되뇌었다. 시르나가 얼른 덧붙였다.


"동생분 약혼자여요."

"에아론의?"


고개를 끄덕이던 시르나는 상대가 눈이 안 보인다는 걸 깨닫고 곧바로 긍정했다.


"네."


스바르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설마 시르나가 이곳에 와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시르나는 조심히 그에게 다가갔다.


"모포라도 갖다 드릴게요. 아니면 옷이라도.."

"가."

"네?"

"가라고. 신경 쓰지 말고."

"도와드릴게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없어!"


스바르는 곁에 온 시르나를 확 밀어버렸다. 시르나는 짧은 비명과 함께 바닥에 엎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흘렀다.

아픈 것도 잠시, 시르나는 조금 화가 났다.

언젠가 이곳 식구가 될 몸이니 지금부터 친하게 지내자는 생각을 방금 전까지 품고 있던 참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해서야 어찌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알았어요. 귀찮게 해드리지 않을게요."


절로 톡 쏘아붙이고서 자리에 일어나는 시르나. 그때.


"야."


시르나가 고개를 돌렸다. 스바르는 머뭇거리고는 말했다.


"모포라도 갖다 줘."


시르나는 침묵했다. 이번의 침묵은 스바르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기다리세요."


잠시 후, 소녀는 따뜻한 모포를 들고 왔다. 스바르는 모포를 몸에 두르고 자리에 일어났다.


"방까지 바래다 드릴까요?"


스바르는 말없이 자리를 떴다. 벽을 더듬거리며 나아간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눈이 내렸다. 밤의 어둠을 뚫고 내려오는 눈은 마치 야객과도 같아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에아론 일행은 화덕에 불을 피운 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버려진 오두막이었다.

천장이 뚫려 있어 칼바람이 가끔 내부를 휩쓸었지만 그래도 바깥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먼저 불침번을 서는 사람은 에아론이었다. 다른 이들은 에아론을 불침번으로 세울 생각이 없었지만 스뇰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따라왔으면 마땅히 네 몫도 해내야지."


에아론도 그 말에 딱히 이견이 없었다. 그래도 첫 순서로 배정해줬으니 스뇰 나름대로 배려를 해줬다고 볼 수 있었다.

에아론은 불이 꺼지지 않게 미리 가져온 삭정이를 넣었다. 불은 사흘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곳곳에서 잔잔히 번지는 코골이.

그런 와중에도 아직 자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칼리스였다.

칼리스는 바닥에 누워 있기는 하였지만 눈을 감지는 않고 있었다. 그저 손가락에 껴 있는 반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에아론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칼리스가 고개를 돌렸다. 에아론은 말없이 칼리스의 반지를 바라보았고 칼리스는 빙긋 웃었다.


"제 보물이죠. 한번 보시겠습니까?"


에아론이 고개를 끄덕이자 칼리스는 반지를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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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정찰꾼 스뇰 (5) +1 24.05.21 15 4 16쪽
12 정찰꾼 스뇰 (4) +1 24.05.20 21 3 20쪽
11 정찰꾼 스뇰 (3) +1 24.05.19 18 3 13쪽
10 아픔 +1 24.05.17 19 5 19쪽
9 정찰꾼 스뇰 (2) +1 24.05.16 17 5 16쪽
8 정찰꾼 스뇰 (1) +1 24.05.15 23 4 14쪽
7 다짐 24.05.14 20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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