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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머리 에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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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4.05.08 15:28
최근연재일 :
2024.06.20 22:4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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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
추천수 :
133
글자수 :
251,832

작성
24.05.1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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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정찰꾼 스뇰 (2)

DUMMY

정찰꾼. 숲의 감시자 혹은 들판의 방랑자라고 불리는 자들.

여러 일들을 맡고 있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제 족장의 땅을 지키는 것이었다. 국경 수비대와 비슷한 역할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일이 일이다 보니 정찰꾼은 주로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살아갔다. 대개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임시 정착지에서 지내는데 한 번 맡으면 평생 하는 게 아닌 주기적으로 인원이 교체가 되었다.

날씨가 유달리 혹독한 경우를 제외하면 임시 정착지에서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간혹 마을로 내려와 생필품이나 식량을 구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웬만해서는 숲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편이었다.

이들의 생존 지식과 숲에 관한 지혜가 남다른 면모를 보이는 것도 바로 이에 기인할 것이다. 오죽하면 족장이 직접 찾아가서 이들의 지혜를 배우려고 할까.

이토록 능력이 뛰어난 자들이기에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선망을 받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날이 많다 보니 정찰꾼들은 허투루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과묵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정찰꾼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존경하거나, 어려워하거나.

어쨌든 흙먼지나 짐승의 변 같은 자연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다 보니 친근하게 대하기가 영 어려운 것이겠지.

그렇다고 한다면, 눈앞에 보이는 풍경도 이와 비슷하게 이해해야 하려나.


'정찰꾼들은 다들 이렇게 살아가나?'


에아론은 어색한 얼굴로 오두막을 바라보았다.

오두막은 오래전에 지어진 것인지 굉장히 허름해 보였다. 나무로 이루어진 벽은 가뭄을 맞은 땅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고 주춧돌에는 누런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여기에 케케묵은 먼지와 이슬 맺힌 거미줄까지 있다면 폐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그러나 이 오두막이 버려지지 않았다는 걸 확연히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오두막 밑에 쌓여 있는 장작에는 이끼가 끼어 있지 않았다.

오두막은 땅으로부터 조금 떨어지게 지어져 있는데 그 밑부분에는 장작이 차곡차곡 쌓여 있던 것이다. 아마 추측건대 장작을 보관하는 헛간이 따로 없어서 그런 듯싶었다.

게다가 오두막 바로 옆에는 간이 대장간이 있었다. 그간 틈틈이 사용했던지 연장이나 도구들이 녹슬어 있지 않았다.

에아론은 호기심 섞인 눈길을 던졌다. 아무래도 성에 있는 것보다는 단출했지만 의외로 있을 만한 건 다 있었다.

쇠모루, 담금질통, 가마, 연장 통, 쇠 집게, 그밖에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 등등.

에아론은, 정찰꾼이 되려면 불과 금속을 다루는 일도 너끈히 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대강 주변에 뭐가 있는지 확인한 에아론은 이제 다시 오두막 앞에 섰다.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조심히 불러보았다.


"저기.. 계세요?"


나뭇잎이 버르적거리는 소리보다도 못한 목소리. 차라리 새 날갯짓 소리가 이보다 더 힘차게 들릴 것 같다.

너무 작게 얘기했다는 걸 깨달은 에아론은 이번에는 목소리 높여 불렀다.


"스, 스뇰 삼촌. 안에 계세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바람에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만이 주변을 덮고 있는 정적을 조금이나마 일깨워주는 것이 전부였다.

혹시 정찰이라도 나간 걸까. 그렇다면 안에 아무도 없는 게 이해가 되었다.


'오래 걸리려나?'


너무 늦게 돌아가면 안 되는데.

여러모로 걱정이 들었지만 에아론은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한 삼십여 분. 나뭇잎 사이로 비쳐오는 햇살이 살짝 옆으로 기운 것 같은 느낌이 들 무렵.

여전히 스뇰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에아론은 에휴, 하고 한숨을 쉬고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하루하루가 아까운 상황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라우르 밑에서 배우는 게 더 나았을걸.

에아론은, 그러나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영 아쉬웠는지 안으로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실례할-. 으악!"


에아론은 깜짝 놀랐다. 문을 열자마자 토끼 한 마리가 후다닥 뛰쳐나왔던 것이다. 반대편 창으로는 다람쥐 두 마리가 창을 뛰어 넘어가는 게 보였다.

에아론은 한동안 넋을 잃었다. 여기가 진정 사람이 사는 공간인 건가?

오두막 안은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자연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었다. 도처에 깔려 있는 흙과 나뭇잎. 바닥 사이에는 이름 모를 버섯이, 벽과 벽이 맞닿아 있는 구석진 곳에는 자그마한 나무가 자라나 있기까지 했다.

이렇다 보니 집안에 있는 가재도구들도 상태가 안 좋은 건 마찬가지였다. 진작 도끼로 쪼개서 장작으로 써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두막 안이 마냥 어둡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남향이라 그런지 부족함 없이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에아론은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먼지 쌓인 식탁과 선반, 그리고..


"이건 깨끗하네."


화덕 위에 올려져 있는 냄비는 먼지가 가라앉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역시나 이 오두막은 버려진 곳이 아니라는 것이겠지. 어쨌든 이곳을 거점으로 생활한다는 건 확실했다. 문제는 대체 어디서 잠을 청할 것이냐는 거겠지만.

에아론은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조그마한 구멍이 군데군데 뚫려 있었다. 덕분에 실오라기 같은 햇볕이 집안 이곳저곳을 비추고 있었다.


"아무도 안 계시죠?"


여하간 안에 아무도 없는 게 다시금 확인이 되었다.

에아론은 발길을 옮겼다. 만약 내일 와보고 또 없다면 그때는 그냥 라우르에게 배우는 것으로 하자.

그리 생각하며 거실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을 즈음일까. 끼익, 콜록..

에아론은 고개를 내렸다. 방금 바닥이 약간 밑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는 기침 소리.

에아론은 고개를 약간 갸웃하더니 제자리에서 살짝 뛰었다. 바닥에 쌓인 먼지가 휘날리더니 방금 전 들렸던 소리가 다시 났다. 그렇게 두어 번 더 뛰던 에아론은 갑자기 들려온 고함에 질겁했다.


"야 이 썰어버릴 자식아아!"


바닥이 위로 솟구쳤다. 그건 한 치의 과장도 없는, 그저 담백한 사실이었다. 적어도 에아론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솟구친 바닥 속에서 쿵쿵거리며 걸어올라 오는 남자.

남자는 그야말로 야만인 그 자체였다. 덥수룩한 수염과 정돈되지 않게 길게 늘어져 있는 갈색 머리카락. 그나마 옷은 제법 단정한 편이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에아론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상대가 들고 있는 걸 보고는 재차 비명을 질렀다.

남자는 날카롭게 벼려진 무시무시한 단창을 한 손으로 꼬나쥐고 있었다. 타오르는 눈빛을 보니 당장이라도 에아론의 배를 꿰뚫을 것처럼 보였다.


"으, 으우아아아악!"


에아론은 일어나려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는, 그러다 다시 일어나더니 반쯤 닫혀 있던 문을 주먹으로 쳐서 열어버렸다.

그러나 문 앞에 계단이 있다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앞으로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상당한 아픔이 밀려온 탓인지 에아론은 잠시 공포를 잊었다.

그 사이에 밖으로 걸어 나온 남자. 에아론은 비명도 지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상대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에아론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멀뚱히 제자리에 선 채로 문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짝은 부러지다 만 나뭇가지처럼 문틀에 간신히 걸려 있는 채로 덜렁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위쪽 경첩은 아예 뜯겨 있기까지 했다. 마치 쉼 없이 부는 눈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남자는 단창으로 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가 한 거냐?"


에아론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도 안 날뿐더러, 혹 했다 하더라도 절대 수긍할 수 없었다.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았다.

에아론의 대답에 상관 없이 이미 남자는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네가 했다 이거지.."


에아론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



"더 세게 밟아, 빌어먹을 자식아!"


에아론은 눈물을 흘리며 위에 달린 줄을 잡아당김과 동시에 풀무를 발로 짓밟았다. 바람의 열렬한 호응에 응답하듯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가마로부터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스뇰은 쇠 집게를 들더니 가마에 넣어두었던 경첩을 빼들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경첩을 모루 위에 얹고는 망치로 두드렸다. 때릴 때마다 한순간의 번쩍임과 동시에 불티가 휘날렸다.

그렇게 십여 번 더 두드린 스뇰은 담금질통에 담그더니 다시 또 가마에 넣었다. 이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니 에아론은 사실상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형편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가서 물이나 떠와!"


스뇰이 물통을 가리키며 외쳤다. 에아론은 좋아하고 물통을 품에 들어 안았다. 가마의 열기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얼음장 같은 호수에 한 번 더 빠져도 좋았다.

호수는 스뇰의 오두막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에아론은 물통을 안은 채로 아예 호수에 풍덩 빠졌다.


"푸하!"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물에 빠진다는 게 이토록이나 즐거울 줄이야. 한동안 호수에서 물장구를 치며 나올 줄 모르던 에아론은 스뇰의 벼락같은 호통에 후다닥 다시 달려갔다.

스뇰은 제 몸에 물을 끼얹으며 에아론의 머리를 쥐어때렸다. 에아론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주먹이 어찌나 매섭던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스뇰은 주먹만 매섭지 않았다. 말도 꽤 험했다. 스뇰은 작업하는 내내 욕을 했는데 상당수는 에아론을 향한 것이었다.


"네가 뭐 빌어쳐먹을 족장이라도 되냐,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게? 네 똥구멍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가 보지?"

"가뜩이나 어제 하루 종일 못 자서 피곤해 죽겠는데, 이 개지랄 같은 염병을 떨어야 한다니."

"거지발싸개 같은 자식. 코털보다도 못난 자식. 흙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보다 형편없는 자식."


하도 듣고 있자니 정신이 어질어질해졌다. 에아론은 중심을 잡고 있기도 어려워 비틀비틀했다.

이윽고 경첩을 원상복구로 되돌리자 스뇰은 에아론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안 따라오고 뭐해!"

"가, 갈게요!"


스뇰은 문틀에 경첩을 박을 위치를 확인하였다. 그러고는 기존에 만들어두었던 나무 못을 들더니 주먹을 쥐어 쾅쾅 박았다. 경첩이 고정된 걸 확인한 스뇰은 문짝을 들었다.


"밑을 꽉 잡고 있어. 흔들리지 않게 잘 붙들고 있으란 말이야."


에아론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저러다 목이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스뇰은 콧김을 큼, 하고 내뿜더니 앞서 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주먹으로 못을 박았다.

에아론은 경이와 동시에 제 손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보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운 건 왜일까.

문짝에도 경첩을 단 스뇰은 이내 흡족한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자, 닫아 봐."


에아론은 문을 흔들었다. 잘 움직였다. 에아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밀어서 문을 닫으려 했다. 닫히지 않았다.


"안 닫히는데요..?"


문이 아까보다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문고리가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한 스뇰은 얼굴을 팍 구겼다.


"시발."


이제 보니 문을 뒤집어서 달고 말았다. 스뇰은 박힌 못을 힘겹게 뽑더니 이번에는 제대로 달았다. 스뇰은 퉁퉁 부어오른 주먹을 하고서 뒤로 물러났다.


"해 봐. 될 거야."

"안 되는데요..?"


이번에는 위쪽으로 조금 높게 달아서 그런지 윗부분이 걸리고 말았다.

스뇰은 주먹을 쥐려다가 그냥 망치를 갖고 왔다. 한참을 사투한 끝에 비로소 문이 제대로 닫혔다.

둘 다 땀을 뻘뻘 흘린 채로 헐떡였다. 그러다 문득 눈이 마주친 두 사람. 에아론은 이번엔 또 어떤 호통을 들을까 벌벌 떨었다.

그때 스뇰이 와하핫, 하고 웃더니 에아론의 등을 퍽퍽 쳤다.


"됐다. 됐어. 음, 아주 잘 됐어. 배 안 고프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에아론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에아론은 어색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스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뭣 좀 먹어야겠지. 일로 와. 줄 테니까."


에아론은 거절하려고 했다. 해가 어느덧 기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갈 거면 지금 당장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스뇰이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하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스뇰은 콧노래를 부르며 화덕에 불을 지폈다. 약간 어둡던 내부가 그 불 하나로 인하여 확 밝아졌다.

냄비가 달궈질 동안 스뇰은 재료 준비를 하였다.

바닥에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잡아당기니 바닥문이 덜컹, 하고 열렸다. 그건 지하 창고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아까 전에 스뇰이 나왔던 바로 그곳이었다.

에아론은 호기심에 젖은 눈으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와.'


에아론은 이제야 스뇰이 어디서 지내는지 알 수 있었다. 그곳은 단순한 창고가 아니었다. 또 하나의 집이라 해도 좋았다.

간단한 가재도구는 물론이고 잠자리, 심지어 식량도 있었다.

마른 고기와 먹다 남은 당근, 버터 한 덩어리를 꺼낸 스뇰은 전부 냄비에 넣었다. 들들 볶으니 군침을 자극하게 만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됐다. 아니, 아직 먹지 마."


스뇰은 냄비를 식탁에 쿵 내려놓더니 선반에 있는 잔 두 개를 꺼냈다. 뒤집어 놔서 그런지 잔 안은 그리 더럽지 않았다.

잔에 물을 채운 스뇰은 오두막 안에 자라난 버섯을 땄다. 그 버섯을 손바닥으로 마구 문지른 다음 반으로 쪼개고는 잔에 퐁당 넣었다.

에아론이 불안하게 쳐다보니 스뇰이 말했다.


"안 뒤져."


식탁에는 바닥과 마찬가지로 흙먼지가 뒹굴고 있었지만 둘 다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정말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비록 맨손이었기에 뜨거워서 제대로 쥐지 못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스뇰은 웃음을 터뜨리며 에아론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주로 숲에서 일어난 일들이었고 솔직히 말하면 딱히 재미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고된 노동을 함께 한 사이라서 그런지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눈앞에 있는 음식처럼 달고 맛있었다.


"그때는 정말 얼어 죽는 줄 알았지. 눈보라가 제대로 불어서는 길도 못 찾았다고. 그렇게 심한 눈보라는 내 인생에 처음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길을 찾으셨대요?"

"야, 이 모지리 자식아. 내가 괜히 정찰꾼이겠냐? 남들은 함부로 따라 할 수 없는 직감이 내게 있단 말이지."


스뇰이 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에아론은 감탄을 뱉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여기로 돌아왔다 이거야. 이게 다 내 잘난 능력 덕분이지."

"키놀께서 지켜주신 것도 있겠네요."


이제껏 쉬지 않고 웃으며 떠들던 스뇰은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에 에아론은 눈을 껌뻑였다.


"키놀은 없어. 그딴 건 다 말도 안 되는.. 그래, 미신 같은 거라고."

"네?"


에아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무슨 말씀을-."


스뇰은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


"그냥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없으면 없는 거야. 알았어?"

"하, 하지만 할아버지가 그러셨단 말이에요. 키놀께서 우리 모두를 굽어보고 계신다고."

"그야 네 할아버지가 멍청하니까 그런 거고."

"절대 아니에요. 할아버지처럼 똑똑하고 인자한 분은 세상에 또 없을 거예요."

"이 세상에 똑똑한 녀석은 없어. 멍청이거나 덜 멍청이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런 의미에서 네 할아버지는 아주 멍청이인 게 분명해."

"그만해요!"


에아론이 화를 냈지만 스뇰은 아랑곳 않고 계속 낄낄 웃었다. 입맛이 싹 사라진 에아론은 들고 있던 고기를 내려놓았다.


"왜.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들으니 영 안 내키냐? 그럼 나 줘. 잘 됐지, 뭐."

"저 갈래요. 삼촌."

"그래. 멀리 안 나간다."


스뇰은 자리를 떠나는 에아론을 보며 고기를 쯔업쯔업 씹어댔다. 그러나, 곧 무언가 깨달은 사람처럼 표정을 굳혔다.


"잠깐."

"왜요."

"너 방금 뭐라 그랬냐."

"뭐가요."


스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에아론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던 스뇰은 문득 물었다.


"너 누구냐,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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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아담한 승리 +1 24.05.22 14 4 15쪽
13 정찰꾼 스뇰 (5) +1 24.05.21 15 4 16쪽
12 정찰꾼 스뇰 (4) +1 24.05.20 21 3 20쪽
11 정찰꾼 스뇰 (3) +1 24.05.19 18 3 13쪽
10 아픔 +1 24.05.17 19 5 19쪽
» 정찰꾼 스뇰 (2) +1 24.05.16 18 5 16쪽
8 정찰꾼 스뇰 (1) +1 24.05.15 23 4 14쪽
7 다짐 24.05.14 20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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