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 정령사 - 18
"도대체 그게 뭔데 그러는거요?"
칼츠는 자신의 치료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마자 숨이 막힐 것 같은 초조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스스로도 모를정도로 잘게 떨고 있었는데 곁에 있던 자일도 덩달아 떨릴 정도였다.
"만드라고라"
하인스의 떨리는 목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짧지만 강렬한 그 말에 칼츠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만드라고라!"
"그래. 이건 만드라고라라는 전설상에나 나오는 약초를 증류해서 만든거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 평생을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년에 이르러서야 내 손에 쥐게 되다니"
하인스는 치료사다. 그는 약초와 밀접한 관계를 지녔는데 만드라고라 라고 불리우는 약초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세상에!"
칼츠도 만드라고라를 알고 있었다. 용병들끼리 대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잿거리였다. 만드라고라를 섭취하면 검에 찔리지 않고 마법에도 면역이 생기며 가진 바 능력도 수십배나 향상된다는 전설의 약초였다.
"만드라고라는 전설에나 등장하는 허황된 약초가 아닌가?"
의외의 말에 놀란 칼츠가 띄엄띄엄 물었다. 부정하면서도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전설이 아니다. 역사에도 만드라고라를 복용해서 무병장수한 왕들이 있었다. 지금도 약초꾼들 사이에서 만드라고라를 찾아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들이 많다. 만드라고라는 거짓이 아니다"
하인스의 눈빛이 확신으로 들어찼다.
"이걸 어디서 구했지?"
그의 시선이 눈을 반짝이는 자일에게 향했다. 자일이 또박또박 대답했다.
"하수구요"
"하수구? 왠 하수구? 만드라고라를 하수구에서 찾았다고?"
"네. 저기 금화상자안에 들어있었어요"
"두서없이 말하지 말고 차근차근 말해봐라. 도저히 알아듣지를 못하겠다"
하인스가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설명하지"
칼츠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 궤짝을 가져온 과정을 말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하인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이건 주인이 정해져있던게 분명해. 만드라고라를 증류하려면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 갖곤 어림도 없다. 신전의 대신관이나 마도사들의 손이 닿지 않으면 불가능해"
"이거면 누나를 치료할 수 있나요?"
자일이 가만히 대화를 듣다 물었다. 하인스가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죽은사람도 살려낸다는 만드라고라인데 살아있는 사람 하나 치료하지 못할까"
"죽은 사람도 살려요?"
자일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자신의 스승인 로멘의 차디찬 시체가 떠올랐다.
"말이 그렇다는거지. 실제로는 살리지 못한다"
혹시나 죽은 사람도 살려달라고할까봐 하인스가 얼른 말을 바꿨다.
"일단 네 누나부터 살리고보자"
하인스가 증류한 만드라고라가 담긴 플라스크 유리병을 두손으로 조심스럽게 쥐며 말했다. 그의 재촉에 세 사람은 라쉬가 있는 방 안으로 향했다.
"누나!"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한 가운데 침대에 죽은 듯 누워있는 라쉬를 보며 자일이 안타깝게 불렀다. 하인스의 마른 손바닥이 자일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제 걱정하지 말아라. 네 누나는 살 수 있다"
그러면서 마개를 따는데 은은하게 풍겨오던 향기가 방 안을 감싸안았다. 칼츠가 숨을 들이쉬듯 향기를 맡더니 탄성을 질렀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상쾌한 느낌이야"
"지금부터 집중해야하니 조용히 해라"
하인스가 날 선 어조로 칼츠와 자일을 홀겨봤다. 괴팍하긴 하나 하인스는 치료사였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집중해야했다. 그가 라쉬를 치료하려고 하자 두 사람은 숨조차 조심스럽게 쉬며 하인스를 지켜봤다.
"어디 보자"
하인스가 유리병을 라쉬가 누워있는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놓고 구석진 벽장을 훑었다. 그러다 발견했는지 먼지가 수북한 두꺼운 책을 집어들었는데 책을 테이블에 내려놓자마자 먼지바람이 불었다.
"콜록콜록"
옆에서 초조하게 지켜보던 자일이 먼지바람을 뒤집어쓰고 기침을 했다. 하인스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찢어진 눈매로 자일을 째려봤다.
"조용히 하라니까"
"먼지 가득한 책을 내팽겨치듯 내려놓으니까 자일이 먼지바람을 먹고 기침하는거잖소"
칼츠가 억울한 자일을 대신해 항변했다. 책장을 훑던 하인스가 눈매를 치켜올리며 칼츠를 노려봤다.
"너 상처 치료하고 싶지? 그러면 입 다물고 있어"
그 말에 칼츠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멀뚱멀뚱 눈동자만 굴렸다. 아쉬울게 없는 하인스와 달리 칼츠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고 싶었다. 자일의 머릿속에 둘 사이의 관계가 정립이 되었다.
'앞으로 부탁할때는 하인스 할아버지한테 말해야지'
자일은 이 집 내의 서열 1위인 하인스에게 잘 보여야겠다고 다짐했다.
"만드라고라의 기운은 너무 강해서 중화시킬 필요가 있다"
하인스가 책 한 구절을 읽고 미간을 좁혔다. 하마트면 라쉬를 죽일뻔 했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은 치료사라면 기본적으로 떼어야하는 약초학 관련 도서였는데 만드라고라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은수저가 어디있더라"
하인스가 방 안을 뒤적거렸다. 자그마한 그릇과 은 수저를 찾은 그는 깨끗한 물을 담고 그 위에 증류한 만드라고라를 한 방울 떨어트렸다.
"와아아!"
자일이 탄성을 질렀다. 만드라고라의 물방울이 물 속에 스며들자 투명하던 물이 바다처럼 푸르게 변했다.
"이걸 먹이면 된다"
하인스가 물이 담긴 그릇을 들고 신중하게 말했다. 은수저로 라쉬의 입에 물을 떼먹이자 그녀의 안색이 금방 밝아졌다. 책 구절을 다시 더듬거리며 찾던 하인스가 칼츠와 자일을 보며 말했다.
"나가"
"왜요?"
"네 누나의 몸에 만드라고라를 발라야된다. 화상으로 일어난 진물을 없애려면 먹는 것보다 몸 전체에 바르는게 가장 낫다. 얼른 나가거라"
한 마디로 라쉬의 몸을 벗기겠다는 소리였다. 자칫 주책으로 보일 수 있는데 칼츠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했다. 칼츠가 군말없이 자일을 끌고 문 밖으로 나갔다.
"방금 네 누나의 안색을 봤냐? 한방울만 먹었을뿐인데 창백한 얼굴이 혈색을 찾았더라"
칼츠가 부르르 떨며 말했다. 하인스의 말대로 전설이라 불리우는 만드라고라의 효능을 단편이라도 본데에 희열을 느꼈다. 자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면 라쉬 누나는 치료되는거에요?"
"당연하지"
칼츠도 해맑게 웃는 자일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좋냐?"
"그럼요"
자일은 자신이 찾은 금은보화안에 든 명약으로 라쉬 누나가 살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다. 제 안방 같은 하수구 안이었으면 여기저기 방방 뛰며 좋아했을 것이다. 칼츠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자일에게 대견하다는듯이 말했다.
"넌 대단한 일을 해냈다"
"그 만드라고라가 엄청 좋은 치료약인가봐요"
"그래. 그거면 나도 치료할 수 있을거야"
칼츠의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자일이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아파요?"
어린 자일이 보기엔 칼츠는 말짱하다 못해 튼튼해 보였다. 칼츠가 굵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야 고통은 없지만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지"
칼츠가 잠시 추억을 회상하는듯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래. 한참 용병으로 전장을 구르다가 얻은 잊을 수 없는 상처 말이야"
"그게 뭔데요?"
자일이 호기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낳아진 라쉬의 상세덕에 자일의 표정에서 생동감이 넘쳤다.
"마나홀"
읇조린 칼츠가 복부를 솥뚜껑같은 손으로 문지르며 인상을 썼다.
"내 마나홀이 부숴졌었다"
"마나홀은 마나를 담는 저장소잖아요"
레논에게 마나라는 개념을 배운 자일이 놀라며 물었다. 마나홀이 깨진 사람은 복구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싸울때에도 항상 신경을 써야한다고 레논이 강조했었다.
"그래. 나는 용병으로서 드물게 익스퍼트까지 올랐는데 그걸 본 귀족 녀석이 나를 시기해서 일부러 내 마나홀을 부숴버렸어"
칼츠가 이를 갈며 말했다.
"평생을 비관하며 살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드라고라로 내 마나홀을 복구할 수 있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그 귀족놈을 죽일거야"
음울한 어조로 말하는 그의 눈빛이 섬뜩했다. 자일은 칼츠의 눈에서 살기를 읽었다.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초보 글쟁이 고샅입니다.
제목을 바꿀 생각입니다. 하수구라는 소재가 비중이 크긴 하나 앞으로 하수구에서 계속 성장할 건 아니기 때문에....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솔직히 하수구와 정령사라는 컨셉이 부합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다른 분들 말마따라 제목이 특이하긴 했지요 ㅎㅎ
그 동안 주인공의 정령사로서의 능력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신 분들이 많을겁니다. 스토리는 벌써 1권의 삼분지 일까지 왔는데 아직도 주인공이 정령과 계약하는 것도 안나오고 있네요.
이제 곧 주인공이 정령사로서의 두각을 드러낼때가 올겁니다.
ps. "엘란을 뛰어넘어 보이겠습니다! +_+"
(포부는 거창하게)
Commen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