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 정령사 - 10
밖은 이제 막 좌판을 접는 상인부터 해서 사람들이 사라지는 오후였다. 사내는 더러운 아이를 안고 묵묵히 걸었다. 남쪽 성문 끝 부근까지 근처에 초라한 집들이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이 곳은 미슐랭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유랑민들이었다. 공작은 그들을 위해 남쪽에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그들은 유용한 일꾼이자 비상시에는 징집병사가 될 수 있었다.
"아부지. 나와보슈"
유랑민들이 있는 곳에 조금 떨어진 집이 있다. 사내는 주저없이 그곳을 덜컥 열며 소리치자 노인이 자다 깬듯, 졸린 얼굴로 어기적 나왔다.
"술 쳐먹고 있을 놈이 여긴 왜...이건 뭐냐?"
얼마 못 잔 탓인듯, 짜증 섞인 얼굴에 놀람이 드러났다. 한 아이가 마치 죽은 듯이 아들의 품에 안겨있는데, 형체가 몰라볼수없을정도로 엉망이었다.
"묻지 마시고 치료해주시오. 그래도 살아는 있으니까"
"얼른 데려오기나 해라"
노인이 허겁지겁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엉망진창인 집 안에 들어서자 희미한 약초냄새가 풍겼다. 어느새 노인은 약초를 갈고 있었다.
"따뜻한 물좀 가져와라"
"제길, 이래서 집에 오기 싫었다니까"
"잔말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네 놈 말대로 살려야 할거 아니냐"
사내가 투덜거리든 말든 노인은 진지한 얼굴로 소년을 덮고 있는 거죽을 벗겼다. 쿰쿰한 냄새와 함께 앙상하게 마른 몸 위로 붓고 터진 상처들이 가득했다.
"어느 몹쓸 자식이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거냐"
사내가 떠온 물을 수건에 담가 상처부위를 닦고 소독하면서 노인이 물었다. 아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사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 아니라니까"
"네 놈이었다면 너는 내 자식도 아니다"
"앙헬이라는 녀석인데, 조만간 손 봐줄겁니다"
사내의 얼굴에 살짝 살기가 올라왔다 사라졌다. 가까이서 보니 처참한 상처가 보였다. 앙헬의 잔인함에 손이 근질거렸다. 당장이라도 가서 때려부셔주고 싶었다. 그 보다 아이의 상세가 궁금했다.
"어떻게 잘 치료가 됐나?"
"나도 모른다. 당분간 열을 동반하고 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날거다. 털고 일어서면 살아날거고 아니면 죽겠지. 모든 것은 이 녀석의 의지에 달렸다"
퉁명스러운 말과 달리 손짓엔 정성이 담아 있었다. 사내는 아이를 내려보았다. 왠지 이 아이와의 인연이 오래갈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잘 보살펴주쇼. 나는 이만 가볼랍니다"
"무고한 사람 때리면 넌 내 아들도 아니다"
노인의 퉁명스러운 말에 사내는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복잡한 마음을 술로 달래려는 사내의 마음이 등에서 느껴졌다.
[강해져야 한다. 자일, 약하면 잡아먹힌다. 넌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해야한다. 먹고 먹히는 이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아]
꿈 속에서 나타난 레논은 누구보다 약해보이는 앙상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눈빛은 누구보다 날카롭고 매서워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레논이 손을 올렸다.
드드드드!
거대한 땅의 해일이 일어났다. 그 위용에 몸서리를 칠려는 찰라 레논이 하늘을 가리켰다.
쿠와아앙!
거대한 폭풍이 레논 위를 휩쓸었다. 강맹하고 매서운 칼날 같은 바람을 오연히 맞으며 레논의 형형한 두 눈빛이 쏘아보고 있었다.
[강해질테냐!]
"으악!"
자일은 비명을 질렀다. 온 몸에 고통이 엄습했다. 눈은 침침해지고 머리는 정신없이 어지러웠다. 몇 번 눈을 깜빡이자 정신이 돌아왔다. 시야가 밝아지고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는 노인이었다.
"이 녀석이 강단이 제법이네. 하루만에 일어나다니 대단하군"
"하루?"
"그래, 이 녀석아. 네 놈이 기절하고 깨어난지 하루다. 아, 깨어났다고 몸이 다 낳은건 아니니 당분간 누워 있어라. 귀찮게 움직이지 말고"
노인의 목소리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자일은 멍하니 천장을 보다 벌떡 일어났다. 몸속의 기관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자일은 노인의 심기를 건드리려는듯,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야, 임마! 움직이지 말랬잖아"
"가야해요"
자일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때, 자일을 데려온 사내가 나타났다.
"왜 그럽니까?"
"아, 글쎄. 이런 몸을 하고 가야한다고 발버둥을 치네"
노인이 필사적으로 아이를 눕히려고 했지만 아이는 낑낑거리며 일어서려고 한다. 사내는 둘을 바라보다 흠, 하며 노인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노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자 사내가 자일을 보며 말했다.
"대체 왜 가려는지만 말해라. 그런 몸을 하고 밖에 나가면 큰...저런!"
콰당!
자일이 무리하게 움직이더니 그만 바닥에 엎어졌다. 그러나 자일의 눈빛은 전혀 망설이는 기색이 아니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한발, 한발 천천히 움직였다. 사내와 노인은 그 지독함에 혀를 내둘렀다.
"저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움직이는 이유가 대체 뭐냐?!"
노인의 말에 사내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저 아이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사내는 그나저나 밖에 나가기 전에 옷은 입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일은 알몸이었다.
"왜 가려는거냐. 이유를 설명해라. 도와주겠다"
사내의 손은 크고 강했다. 자일은 그 손에 잡혀 옴짝달싹도 못했다. 자일은 불안한 얼굴로 사내를 보았다. 사내의 눈빛은 다른 자들과는 달리 진실이 담겨 있었다. 자일은 머뭇머뭇 거리다 이내 눈빛을 굳히고 말했다.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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