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 파티
길동은 미라와 함께 리무진을 타고 가평에 있는 대저택 앞에 다다랐다.
정문엔 3층 높이는 됨직한 높은 담장이 빙 둘러싸고 있어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큰 철문 앞에는 일일이 신원을 확인하는 검은 양복의 청년들이 서 있다.
그 뒤로 고급 승용차가 순번을 기다리며 줄지어 있는데, 짙은 선팅으로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 누구도 유리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음, 여기저기에 파파라치가 숨어 있구나!'
멀리 보이는 여러 전원주택의 옥상엔 파파라치나 기자들이 숨어서는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러니 들어가는 차량의 주인들이 얼굴을 숨길 수밖에.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돈 좀 있고 힘 좀 있다는 사람은 다 아는 고급 사교 파티.
이렇게 보안 유지와 물관리가 철저하니 웬만해선 구설에 오르는 일이 없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
짙은 선글라스를 낀 길동이 10억 잔고를 가지고 만들어 둔 출입증을 제시했다.
그는 운전을 돕는 일행으로 참여했을 뿐, 오늘의 주인공은 홍미라.
검은 양복의 청년은 미라에게 마음이 끌렸는지 흘깃흘깃 눈동자가 돌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연예인이라는 전제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눈치다.
물론이지.
우리 가문의 후예 홍미라는 워낙 인물이 출중해 주변 사람들이 다들 연예인 해야 했다고 안타까워하곤 했었다.
다니는 여고에서도, 주변의 남고에서도 찬양하는 추종자가 수백은 되는 강동구 길동의 여신 아닌가!
집안이 좀 더 좋았다면, 오빠가 일찍 각성했더라면 지금쯤 브라운관을 접수하고 영화판에서도 한가락 했을 인물이다.
물론 우리 연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라를 본 청년은 별다른 걸 묻지도 않고 바로 통과다.
거대한 철문이 열리자 차를 안으로 몰아갔다.
널따란 정원을 따라 한참을 가자 또다시 거대한 성벽이 나타났다.
그 성벽 너머가 진짜 파라다이스이다.
다가가자 지하로 들어가는 주차장 입구가 보인다.
그곳에는 차량 발레서비스를 하는 직원들이 줄지어 대기 중이었다.
길동과 미라가 내리자 한 청년이 성벽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위층으로 올라간 다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눈앞에 그야말로 별천지가 펼쳐졌다.
곳곳에 수영장이 있고 사이사이에 가든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비키니를 입은 미녀들이 와인과 칵테일을 마시며 리듬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건장한 몸의 남자들이 미녀와 뒤엉켜 춤추며 향락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역시 최고의 사교 클럽답게 요즘 가장 핫한 연예인들이 다 모여 있는 이곳.
가수 GT용이나 썰미, 영화배우 임시황, 안나는 물론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모습까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넓은 정원 구석, 구석엔 TV에서 봤던 가수들이 라이브 공연을 하고, 그 주변엔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는 청춘들이 보였다.
언덕 이곳저곳엔 조그만 자쿠지가 있고 그 옆 텐트에는 뒤엉켜 밀회를 즐기는 남녀들이 있다.
고작 낮 2시밖에 안 되었는데, 이곳은 이미 붉게 타올라 쾌락의 열기로 뜨거웠다.
길동도 미라도 이 낯선 풍경에 얼음처럼 굳고 말았다.
그때 연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 도대체 뭘 보고 얼이 빠진 거야. 홍길동, 정신 안 차려! ]
< 아! 미안. 너도 여기 와봤으면 똑같았을 거야. 여긴 정말 다른 세상이야. >
길동이 여전히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 그래도 집중해야지. 딴 생각할 때가 아니야. ]
< 그, 그래, 연수야. 고마워! >
연수는 길산, 오로라와 함께 밖에 있는 봉고차에서 대기하며 상황을 살피고 있다.
그녀는 어느새 길동이 하는 대주천과 같은 능력을 구사하고 있었다.
집중하면 직접 보지 않아도 상당히 먼 거리의 상황을 육감으로 느끼고 감지했다.
길동이 자꾸만 헐벗은 미인들의 몸에 시선을 보내며 얼빠져 있는 걸 금방 알아채고 경고한 것이다.
저기가 나노 혈청 부스로구나!
커다란 야외 텐트가 여러 개 설치된 곳에 큰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 여러분 돈이 많다고, 권력이 있다고 너무 안주하고 계신 건 아닌가요?
누구나 초인이 될 수 있는 세상!
저희는 그저 초인이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초인이 되면 그게 다일까요?
앞으로는 초인의 능력이 과거의 부와 권력을 대신합니다.
초능력의 순위가 곧바로 계급이 되고, 서열이 되는 세상에서 여러분에게 가장 윗자리를 드리겠습니다. ##
'와, 정말 솔깃한데. 이 말대로라면 돈 많은 부자가 이걸 안 맞을 이유가 없잖아!'
바로 옆 큰 TV에선 코난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코난이 바로 나노로봇 혈청의 도움을 받아 저렇게 강해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코난처럼 인기를 얻고 영웅이 되고 싶으면 상담을 받으라 한다.
상담사가 여럿 있다 보니 금방 미라 차례가 됐다.
그녀가 다가가 상담사의 맞은편에 앉았다.
길동은 먼발치에서 미라를 지켜보고 있었다.
상담 부스 주변 공중에는 여러 드로이드가 떠 있다.
이 녀석들이 방문자를 일일이 스캔하며 그 신분이나 초능력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길동이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드로이드가 금방 움찔하며 반응하는 바람에 더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미라가 잘 해줘야 할 텐데.'
길동은 기운을 집중해 미라의 상황을 살폈다.
10번의 주사를 맞는데 회당 가격은 1억 원이라고 한다.
총 10억 원이면 초인이 되어 우월한 힘과 연장된 수명을 갖게 된다.
수명이 늘어난 것만으로도 그 돈값을 하는데, 거기다 숨은 능력을 키워 초인으로 만들어주기까지 하니 마다할 이유가 있느냐며 설득한다.
그때 미라가 수명은 어느 정도 연장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기본이 100년이라고 한다.
결국 주사 1회당 적어도 10년은 수명이 늘어나는 셈.
미라가 부작용이나 걱정되는 부분은 없느냐고 물었다.
상담사는 그런 건 전혀 없다며 만족해하는 사례들을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보여주는 영상에선 초인으로 거듭난 일반인들의 경험담이 쭉 이어졌다.
하나같이 만족하고 자신이 얻은 힘으로 좋은 일을 하니 보람도 있다며 적극 추천한다.
미라도 어느새 설득돼 혈청을 맞아보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걸 금세 알아차린 상담사가 옆에 있는 부스로 가 어떤 종류의 초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초능력이 무엇인지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미라는 실제 너무 궁금했던 터라 곧바로 일어나 옆 부스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곳엔 익숙한 여러 장비가 있었다.
가운데 있는 큰 캡슐을 가리키며 그곳에 누우면 장비가 가동해 자신의 특성을 찾아준다고 설명했다.
미라가 겁 없이 바로 캡슐에 들어가자 자동으로 문이 닫혔다.
5분 정도 걸렸을까?
캡슐 문이 열리고 미라가 천천히 나왔다.
상담사는 미라에게 전사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며 원더우먼처럼 힘 있고 강인한 여전사로 다시 태어날 거라고 말했다.
'녀석들도 보통이 아닌데.
라온의 후손인 만큼 전사의 피가 흐를 텐데 그걸 대번에 알아내는구나!
역시 무시할 녀석들이 아니야.'
미라는 가족과 상의한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상담사가 자신의 명함을 건넨 다음 우선 상담 등록을 하자며 미라의 인적사항과 캡슐 테스트 결과를 기재하고 있다.
다음번엔 미라를 통해서도 뫼비우스의 조직원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미라의 임무는 여기까지.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다.
그런데 때마침 중앙무대에서 GT용과 썰미의 공연이 시작됐다.
수영장과 정원에 있던 이들이 모두 무대 주변으로 모였다.
“우우웅!” 하는 스피커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웅장한 라이브 연주와 함께 속사포 랩이 쏟아져 나왔다.
워낙 흥이 많은 홍씨 남매.
하필 미라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바로 GT용.
그녀는 이미 열광의 도가니 속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저 녀석 내 말을 들을 애도 아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만 즐기다 갈까?'
길동도 이렇게 무대 가까이에서 라이브 공연을 본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역시 가수는 달랐다.
매력 있는 중저음의 보이스에 리듬을 한층 고조시키는 그루브, 분위기에 딱 맞는 춤사위까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 이 모든 게 상상을 초월했다.
그때 여가수 썰미가 뛰쳐나와 GT용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섹시한 커플 댄스를 선보인다.
아! 연예인은 다르긴 다르구나!
훨친한 키에 말랐지만 볼륨있는 몸매.
특히 얼굴은 어쩜 저리 매력적일까?
관능적이면서도 천진난만해 미묘한 백치미가 담겨 있었다.
멋진 공연에 흠뻑 빠지다 보니 어느새 30분가량이 지나고 말았다.
[ 지금 놀러 간 거 아닌데. 너무 재미나는 거 아니야? ]
연수가 또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싸늘하다.
'아! 여자친구 바가지라는 게 이런 거구나!
조금, 진짜 조금 즐긴 것뿐인데.'
< 미, 미안, 혹시 뫼비우스 일당이 더 있는지 보려다가 그만. ······일 마쳤으니까 이제 나갈게. >
길동은 공연에 푹 빠져 있던 미라를 설득해 주차장으로 갔다. 그리곤 함께 리무진에 탑승해 천천히 저택을 빠져나왔다.
다들 밤늦은 시각까지 이곳에 머물며 재밌게 보낼 텐데 너무 이른 시각에 나오는 거라 그곳 사람들도 이상하게 보는 눈치다.
하지만 황제성에게 빌린 리무진은 빨리 돌려줘야만 한다.
이런 작전에 투입된 걸 알면 그 성격에 가만있지 않을 게 분명하다.
길동은 대리 기사에게 부탁해 미라와 리무진을 돌려보낸 다음 다시 연수 일행과 합류했다.
나노 혈청을 홍보했던 조직이 바로 뫼비우스 일당.
이제 그들이 나오면 곧장 미행해 본거지를 찾아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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