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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백 님의 서재입니다.

늑대의 이빨은 하늘을 꿰뚫고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장진백
작품등록일 :
2024.07.16 18:37
최근연재일 :
2024.07.24 19:00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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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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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수 :
61,054

작성
24.07.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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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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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제6화

DUMMY

제6화_


훈련이라는 이름을 모방한 고문을 받은 지 두어 달쯤이었을 것이다.


“너희들 이름 뭐야?”


묵묵히 숨 고르며, 터진 상처, 까진 상처, 새로 생긴 상처 붕대 감고, 싸구려 약 바르고 있는 율의 귀에 그런 질문이 들려 온 것이.


얼굴 들어 보니, 모두에게 물어본 아이가 보였다.

밝은 목소리처럼 밝아 보이는 아이였다.


“아, 내 이름은―”


아무도 대답없이 바라보자, 밝아 보이는 아이는 자신이 먼저 제 소개를 하려고 했다.


“하지마라.”


율이 막았다.

밝은 얼굴의 아이가 당황했다.

율에게 왜 라고 묻기도 전에 율이 말을 이었다.


“이름도 과거사도 당장은 묻지마라. 지금은 자신에게도, 우리에게도 철저히 자신을 숨겨.”

“으응? 왜?”


이 말에 물어본 이는 여우를 닮은 아이였다.


“여길 믿을 수가 없으니까. 당장은 너희도 믿을 수 없으니까.”

“왜 믿을 수 없는데?”


율은 여우 아이를 바라보았다.


“집이 불타고, 마을이 불타고, 가족이 처참하게 죽었다. 당장 인근 마을에 가서 어른들에게, 나랏님 녹 먹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중에는 내 아비의 도움을 몇 년간 받은 이들도 더러 있었지. 그런데 아무도 돕지 않더군.”

“······.”

“아니, 돕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고아 취급받고 꺼지라고 욕먹기 일쑤고, 어떤 곳은 잡아다 팔려고 까지했다. 이리저리 도망치다, 큰 도시에 와서 현령이라는 새끼에게 고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었다. 현령이라는 인간이 적사, 흑사 패거리와 한통속이더군. 하긴, 알고 접근 한 거긴 하지만.”

“······그래서 이름도, 이유도, 과거사도 말하지 말라 한거구나?”

“그래.”

“그럼 언제 말하면 돼?”


이번에 질문한 것은 여우를 닮은 아이가 아니다.

처음 이름을 물어본 밝아 보이는 아이였다.

율은 다시 그 아이에게 고개 돌려 말했다.


“······언젠가 살아남으면. 그때 말하지.”

“알았어.”


밝은 아이는 순순히 율의 말을 받아 들이며 맑게 웃었다.

그러다, 뭔가 생각이 났는지.

손뼉 한번 짝 치며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대장은 과거사를 말했네?”

“······아.”


말하다 보니 그랬다.

율도 아니였다.

실수 했다는 표정이 율의 얼굴이 물들 무렵에 맑은 아이는 말했다.


“대장이 말했으니, 나만 이름 말할게. 내 이름은―”


그렇게 아이들은 유일하게 한 아이의 이름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름을 밝힌 밝은 아이는 2년 뒤, 웃으며 죽었다.


***


“······.”

“거, 뭔 생각을 그리해, 대형.”


청년, 율은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건너편에는 언제부터 앉아 있었는지 모를 청년 하나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고운 인상에 실눈을 가진 것이 꼭 여자 여러 홀릴 남여우상이다.

여우 청년의 말에 율은 모닥불에서 시선 벗어나지 않는 채로 대답했다.


“불을 보니 옛생각이 나서.”

“좀 많이 생각했나 보네.”

“가끔 감상 젖을 때가 있는 법이지.”

“하기야.”


여우청년은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만 어둠천장에 수북한 박힌 별빛 사이에서 노란 달님이 요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요요한 달빛이 내려오는 밤 깔린 숲속의 작은 공터다.

모닥불 피어낸 곳이다.


“감상 젖을 만 하네.”


다시 고개 내려, 율을 쳐다본 여우청년은 확실히 이해했다는 듯,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오늘 거사도 치뤘고.”

“거사라 할 것도 없어. 어차피 오늘 일은 새 발의 피나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대형의 복수가 시작 된 거나 마찬가지잖아.”

“······.”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서 고개 들어 여우청년 바라보며 묻는다.


“넌?”

“응?”

“감상젖을 만할 일 없나, 2호.”

“왜 없겠어. 다른 애들 올 때까지 모닥불 보며 대형처럼 감상 잦고 있을 테니 경계 좀 부탁해, 대형.”

“별―”


별거 다 시킨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율은 하려던 말을 목구멍 깊이 삼켰다.

2호라 불린 여우청년의 눈이 몽롱해지는 걸 보니, 왠지 모르게 자신처럼 과거를 생각하며 감상에 젖어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면, 뭐.

휴식을 취하거나.


하긴, 오늘 일은 휴식을 취할만 했다.


“······.”


모닥불에 두 사람이 있었지만, 조용했다.

찌르르.

밤의 풀벌레 우는 소리만이 가득채운다.

밤이 깊어져가고, 2호의 감상젖음이 조금 더 깊어져 갈 무렵.

하나, 둘, 사람이 모였다.

한 명은 학사 집안의 곱디고운 도련님 같은 사람이오, 한 명은 돈 많은 상인 집의 잘 먹고 잘 자란 아들 같았다.

둘은 각각 반다경을 두고 나타났고, 둘은 처음부터 모닥불 자리에 있던 이처럼 자연스럽게 동행했다.


“뭐하고 있었습니까. 대형.”

“뭐하고 있었어요? 대형.”


그리고선 2호처럼 율에게 물었고, 율은 2호에게처럼 똑같이 대답했다.

그리고 2호가 지금 과거 감상중이라고 말했고.


“그렇습니까?”

“아하, 그렇군요!”


알았다는 듯.

고개 끄덕이는 둘.

그리고선 2호처럼 감상에 젖는다.


“······.”


세 사람을 보며 율은 기가찼다.

속에서 올라오는 말 저것들에게 툭 하고 던져주고 싶었다.

하지만, 저리 과거 감상 젖은건 자신이 먼저 하지 않았던가.

속에 가득 담긴말 했다가는 제 얼굴 침뱉기라, 율은 차마 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런 자신을 대신해서 속에 가득 담긴 말 던져주는 이가 있었다.

상인 집 아들내미가 감상 젖어 들어간 뒤, 반다경 뒤에 나타난 이.

마치, 구파일방에서 이제 오파일방으로 된 곳이나, 오대세가에서 삼대세가가 되어버린 명문 문파, 무가의 제자 같이 정파 무인의 길을 걷는 바른 이처럼 생긴 이.

그는 오자마자, 멍한 표정의 세 사람을 보고 율에게 물었다.

율은 세 번째 똑같은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선, 바른 정파 무인 청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욕처럼 툭 하고 내뱉었다.


“뭔, 개짓거리래.”

“······.”


율은 속이 시원하면서, 이상하게 찝찝했다.


***


“이야. 다들 죽지 않았네.”


첫 말은 여우 청년 2호였다.


“살고자 한 일인데, 죽을 수 없는 일이지 않겠소.”


그 말 받아 말한 사람은 학사집안의 고운 도련님 같은 청년이었다.


“그럼요, 그럼요. 살려고 한건데, 죽을 수 없는 일이죠. 억울하지, 죽으면!”


학사집안 도련님 말 받아 말한 이는 상인 집안의 잘 먹고 잘산 아들내미였고,


“뭐, 솔직히, 죽지 않게끔 대형이 건네준 호흡법 덕이 컸지, 아니었으면 다 죽었다.”


마지막은 오파일방, 혹은 삼대세가의 제자같이 바른 정파 무인의 길을 걷는 청년의 말이었다.

그리고선,


“고맙소, 대형.”


모두가 하나가 되어 벌떡 일어나 율에게 포권을 취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흑사, 적사, 그리고 송곳 키워내는 것들이 하나같이 모여 술판 벌이고 노는 날이다.

아무리 술판 벌이고 노는 날이라고 할지라도, 흑사, 적사, 놈들 패의 부하들은 살인과 각종 범죄를 업으로 삼는 잘나가는 흑도의 인간들.

그리고 무인들.

흑사, 적사는 이류급 무인이고, 그 밑에 것들도 삼류에 달하는 무인이다.

술에 취하고, 여자에 취할지언정 그 실력 어디 안 간다.

허니, 아무리 7년 동안 송곳으로 살았다고 할지라도, 고작 몸튼튼, 체력 튼튼하게 만드는 토납법으로만 그들을 상대할 순 없는 법이다.

하지만 상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율 때문.

그것도 7년 전, 율이 토납법 내 던지고, 자신이 익히고 있던 호흡법을 가르쳐 준 덕분이다.

그래서 오늘 거사에 살아남았고, 7년간의 송곳질에도 살아남았다.

이를 4명의 청년들이 모를 일 없었다.

그래서 감사 했다.

그리고 7년간 속에 담아둔 궁금증을, 2호가 대표해서 묻는다.


“대형. 이거 광호기(狂虎氣)라고 했었던가? 7년간 각종 인간들 만나고, 심장에 송곳 쑤셔놓고, 이리 살아남다 보니 알겠더라. 이거 꽤, 아니,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상승 무공 같은데, 이리 막 알려줘도 되는 거야?”


상승무공.

지금 같은 흑도가 제 세상인 시대에도 제 식구, 문파, 무가에서 제 핏줄 아니면 절대로 익히지 못하며, 철저하게 그 내용 외부로 나가는 걸 막는 무공이다.

어찌나, 철저하게 지키는지.

외부로 나갔다 싶으면, 제 아무리 혈육이라 할지라도 천라지망 펼쳐 단번에 잘라내고 만다.

2호는 이런 광경 보았고, 그런 천라지망에 일원이 되어 비밀을 지켜낸 경험도 있었다.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물론, 그 뒤 송곳이 되어 원래의 목적을 달성했지만.

어쨌든, 천라지망 펼쳐 제 혈육마저 잡을 그런 상승 무공을 알려줬으니, 미치도록 궁금 할 만 했다.

그런 2호의 말을 듣고 율은 묵묵히 답했다.


“상관 없어.”

“왜?”


왜?


어디 보자.


왜일까?


율은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답이 머릿속에 들려왔다.


<어차피 뿌리는 없어졌으니, 뭣하면 뿌려도 이상하지 않제. 그러니, 아들이 뿌리가 되고, 가족 같은 사람 만나면 알려주삐라. 널리널리 퍼져 새로운 뿌리 박아 넣어버리게. 하하하!>


추억에 깊게 잠겼더니, 옛 추억이 계속 떠오르네.

그 말 그대로 율은 2호에게, 그리고 청년들에게 말했다.


“어찌 되었든, 7년간 동거동락한 너희는 내 가족이니까. 7년 전에 가르쳐 주면서 그리 마음 먹었으니까. 그래서 내 마음대로 했다. 어차피, 주인은 나니까.”

“가족······.”

“왜? 가족 아니냐?”


율이 도리어 물었다.

2호, 여우청년은 그 물음에 고개 저었다.


“아니, 가족 맞지. 한 뜻, 한 마음을 가진 가족.”

“그래. 맞다. 그러나, 구사문에서, 흑사, 적사놈에게 벗어나는 일을 끝마친 가족이다. 헤어져도 상관 없지.”


율은 일어났다.

가족이라 부른 청년들을 향해, 그 까맣고 조용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그전에, 이름이나 알자. 네들 이름 말해 봐라.”


***


“호랑.”


여우 닮은 청년이 먼저 제 이름을 밝혔다.


“나는 학필이오.”

“난 금돈.”

“광견.”


이어, 학사 집안 도련님, 상인집안 아들, 정파 무인 청년이 제 이름을 밝혔다.


“무율이다.”


마지막으로 율이 이름을 밝혔다.

그리고선 율은 제 앉은 곳 옆으로 손을 뻗는다.

적당히 매듭이 묶여 있는 보자기 하나가 율의 손에 딸려 올라왔다.

매듭을 푸니 술과 바닥 넓은 접시 하나가 나왔다.

율은 접시에 술을 가득 따랐다.

이어, 제 송곳 꺼내어 손가락 콕 찍더니, 피 한 방울 술 가득 담은 접시 위에 몇 방울 떨어 뜨렸다.

묵묵히 호랑에게 건넨다.

호랑은 이게 뭐냐고 묻지도 않고선, 율과 똑같이 따라 했다.

이어, 학필, 금돈, 광견 순으로 이어졌다.


“에이씨, 왜 내가 마지막이야.”

“그야, 마지막에 왔으니까, 히히.”


광견이 받고, 피를 떨어뜨리며 ‘툴툴’거리자, 금돈이 ‘히히’거리며 대답했다.


“벽력탄(霹力彈) 심지 불 싸지르고 도망치는데 어쩔 수 있어? 어? 시벌 것들이 돈 빌려 간 빚쟁이처럼 쫓아오는데, 다 처리하느라고 늦을 수 밖에!”


광견은 늦은 불만을 토했다.


“어쩔 수 없잖아. 4호, 아니, 대형 빼고 광견이가 가장 빠르니까. 책임감도 있고. 그러니, 벽련탄 맡길 수밖에 없지.”


금돈이 광견을 칭찬하며 달랬다.


“흠. 뭐, 그건 그렇지.”


광견의 불만 가득한 얼굴이 조금 풀렸다.

그 모습.

일찍이 광견으로부터 호랑, 학필, 금돈, 광견의 피가 담긴 술을 건네받은 율이 가만히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이야. 대장이 웃네.”

“그러게. 대장 웃는 거 처음 본다.”

“웃는 걸 잊어버린 인간인 줄 알았는데.”

“웃으니 나처럼 멋있네.”


율은 흠흠.

헛기침하며 웃음을 지웠다.


“웃을 수 있다. 울수도 있고. 그저, 이름과 이유를 숨긴 것처럼 숨겼을 뿐이다.”

“세상은 우리를 돕지도 않고, 눈여겨보지도 않기에, 철저히 자신을 숨겨라. 대장이 그 녀석에게 말하고, 이어서 말한거지?”

“맞다, 호랑.”

“이제 이름을 밝혔다는 건, 세상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보겠다는 거?”

“개소리.”


호랑의 물음에 율은 단호히 답했다.

광견은 자신을 부른지 알고, 응? 하더니, 나? 라고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율은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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