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장진백 님의 서재입니다.

늑대의 이빨은 하늘을 꿰뚫고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장진백
작품등록일 :
2024.07.16 18:37
최근연재일 :
2024.07.24 19:0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805
추천수 :
6
글자수 :
61,054

작성
24.07.19 19:00
조회
69
추천
1
글자
12쪽

제5편

DUMMY

제5화_


“모가지 찌르나 미간 찌르나. 숨구멍 콱 막힐 곳 찔러 잘 죽이면 그만이지.”

“가죽 잘 팔려면 모가지가 낫지 않아요?”

“흠, 흠······ 겨, 겨울에 우리 쓰면 되제.”

“역시 아부지요. 안 그래도 영이 겨울옷 필요 했는디.”

“흐흐흐. 그라제. 아부지는 계획이 다 있다 이거제.”


율의 아부지가 기분 좋아 웃었다.

율도 따라 웃었다.


“읏차. 요놈 뼈가 통뼈인기라. 발골해서 우리 아들 칼 하나 만들어 보자!”

“끄아! 이러니 내 아부지가 좋소!”

“흐하하하! 좋다. 좋아!”


두 부자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

이어서 율의 아버지는 ‘웃차’ 하며 율을 번쩍 들어 목마 태웠다.

율의 머리가 하늘에 닿았다.

푸른 하늘이 가까워진 것을 보며 율은 ‘우와!’하고 즐거워했다.

즐거워하는 율을 올려다보며, 율의 아버지는 하늘처럼 맑게 웃었다.


“집 가자. 영이랑 엄마 기다린다.”

“예. 아부지!”


부자는 멧돼지 다리 잡고 끌고, 집을 향해 걸어간다.


“아부지.”

“오냐.”

“나, 아부지가 참 좋소.”


이리 목마 태워 하늘 보게 하는 아버지가 율은 참 좋았다.

뭐가 되어든간 기분 좋게 크게웃는 아부지가 율은 참 좋았다.

사냥을 알려주고, 칼도 만들어준다는 아부지가 정말 좋았다.

속에 깃든 감정 그대로 말했다.


“하하하. 그랴! 나도, 우리 율이가 참 좋다! 영아도, 네 어미도 참 좋다!”

“야! 하하하!”


그렇게 부자는 서로 좋다며, 하하하 웃었다.

맑은 하늘에 핀 구름이 부자의 웃음을 반겨주었다.

부자의 웃음은 집에 도착하자 더욱 짙어졌다.


“오섰소?”


율의 집 앞에 나와 기다리는 고운 이가 있었다.

율의 어머니다.

율의 아버지는 그녀를 보며, 율에게 보여줬던 웃음 보다 더 큰 함박 웃음 지으며 손 크게 흔들었다.


“임자! 거, 나와서 많이 기다렸제! 오늘은 잔치다, 이기야!”

“아부지!”


어머니의 뒤에서 작은 고양이 같은 것이 종종종 뛰어나와, 율의 아버지 다리에 매달렸다.

율의 여동생 영아였다.

율의 아버지는 영아의 머리를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어루만져주었다.

함박웃음이, 녹아내리는 웃음으로 바뀌었다.


“어이쿠, 내시키! 이 아부지가 멧돼지 가죽 벗겨 영이 겨울옷 만들어주꾸마!”

“와아아악!”


영아가 신이 난 고양이가 되었고, 율의 어머니는 툴툴 불만 토하는 여우가 되었다.


“거, 내가 할 일을 생색내기는.”

“임자 고생을 모를 일 없제! 영아야! 엄마가 다 만들어준단다!”

“엄마 감따합니다!”


영아는 서툰 말로 엄마에게 감사하며, 그 작은 몸 반 접어 곱게 인사했다.

툴툴 거리던 율의 어머니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피어났다.


“엎드려 절받기네. 절받기야”

“흐하하하!”


모녀를 보며 기분 좋아진 율의 아버지는 껄껄 웃었고, 율도 따라 웃었다.

뭐 좋다고 그리 웃어 쌌는지 라고 혼잣말 하며, 고개 절레절레 흔들던 율의 어머닌 어디보자며 멧돼지를 살펴보았다.

그녀의 미간이 살짝 좁혀진다.


“근디, 이게 뭐여. 미간은 제대로 뚫었뿠네. 이러면 영이 모자도, 율이 모자도 못 만들지 않소? 모가지면 괜찮을 텐디.”

“······흠흠.”


산짐승들에게 흑웅(大熊)같은 맹수 같은 이가, 제 부인, 율의 어머니의 투덜거림에 작은 소웅(小熊)이 되었다.

모르쇠 하며 옆으로 고개 돌린다.

율의 어머니가 읏차 하며 일어나, 웃는 얼굴로 아부지께 좀 더 툴툴 되었다.

대웅은 더욱 쩔쩔맨다.

율의 어머니는 곧 낄낄거리더니만 멧돼지를 부엌에 두라 하셨다.

그라제라 답한 율의 아버지는 목마 탄 율을 내려놓더니, 부엌에 들어가셨다.

율이 뒤따라 들어가니, 왔냐 며 율의 아버지가 이 드러내고 반겼다.

율은 옹이 나무 의자 하나 부엌 입구 쪽에서 가져와 아버지께 드렸다.

그리고 작은 옹나무 의자 하나 질질 끌고와 제 아버지 의자 옆에 두었다.

율의 아버지가 먼저 앉고, 율이 앉았다.


멧돼지 손질 하기전.


“이제 내년은 우리 아들이 하는기라. 알갓제.”


솥뚜껑 같은 손이 율의 머리를 훑으며 그리 말했다.

율의 머리통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율의 입이 흔들리는 머리통 따라 둥그렇게 그려졌다.

그게 아니면, 역시 제 아버지 좋아 웃는거겠지.


“예. 아부지.”

“사냥 잘하고, 다듬질 잘하면 네 어미처럼 예쁜 마누라 덜컥 얻는 기라.”

“아부지는 어머니를 언제 얻으셨소?”

“나라 망하고, 이기로 넘어왔을 때. 제일 처음 보살펴준 이가 네 어미다. 그때 반해서 고대로 네 엄마랑 같이 살았제.”

“아버지. 남자요.”

“끌끌끌! 당연하제!”

“허면, 어머니가 첫사랑이었소?”


율은 해서는 안될 말을 물었다.


“어, 음.”


율의 아버지는 해서는 안될 뜸을 들였다.

그걸 율의 어머니가 모를까.


“따로잡시다!”

“이, 임자!”


그날 밤과 며칠 밤은 율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따로 잠을 잤다.

그렇게 딱 7일째 되던 날.


“오라비, 저기, 저 꽃인기라!”


영아가 뒷 산 절벽이 있는 곳으로 율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선 절벽 중간쯤 핀 하얀 꽃을 그 작고 하얀 손으로 가리키며 방방 뛰었다.


“저게 뭔디.”

“아부지와 어머니 화해시킬 꽃!”

“그럼 영아가 채집하믄 되지.”


영아가 그게 말이냐는 표정으로 율을 바라보았다.


“오라비. 내 나이가 다섯짤이오. 진심으로 하는 말?”

“······.”


하는 말투나, 표정을 보면 5살이 맞냐고 율은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제 여동생이라, 나이가 매우 어려도 여간 영악하고, 앙칼진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라꼬. 엄마가 토라진 것도 오라비 때문 아니오. 꽨이 아뿌지게 첫사랑 물어서 저리되었으니, 오라삐 짤못도 크오!”


봐라.

아직 채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은 말로, 왜 절벽 에 핀 꽃을 따야하는지 구구절절, 명확히 이야기 하고 있지 않은가.

모양새는 또 어떻고.

양손 찌리몽당한 허리춤에 갖다 되고, 앙칼진 고양이처럼 눈 부릅뜨고 있다.

여간 앙칼진 것이 아니다.

율은 기가찼지만,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흐뭇하고, 귀여운건 또 뭔지.


“그랴, 그랴. 이 오라비가 다 잘못했다. 그러니, 저거면 어머니가 아부지 용서한다 이거제?”


앙칼진 고양이는 간식 받은 고양이가 되었다.

해맑게 웃으며 고개 끄덕끄덕.


“야! 화녕어니가 그리 말해줬소. 저 꽃 말려 머리꼬치 만들어 선물하면 그리 좋다요.”

“화령누나가 그랬다면 맞는 말이지. 어디보자.”


율은 스윽 절벽을 바라보았다.

곳곳에 잡을 곳도 많고, 발 디딜곳도 있고.

거기다 중간중간 앉아 쉴곳도 많다.

하기야, 어릴적부터 올라가고 놀던 곳이 아니던가.

못갈 건 없어 보였다.


“요서, 기다리고 있거라. 오라비 금방 갖다 올테니.”

“야.”


영은 맑게 대답했고, 율은 말한대로 금방 갖다 왔다.

손에는 뿌리 채 뽑혀 생생한 절벽 흰 꽃이 쥐어져 있었다.

그걸 영이에게 주려고 하니, 영이가 먼저 율에게 주는 것이 있었다.

노란 개나리로 만든 꽃 화관이었다.


“오라비, 수고했소. 영이가 어제 만든 화관이오.”


고 녀석.

이 오라비 꽁으로 부려 먹은 것은 아니었구나.

화관을 받고, 영이 머리 쓰다듬으며 율은 꽃처럼 예쁘게 웃었다.


“우리 영이가 최고다.”

“헤헤. 그라지요.”


그리고 그날.

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금슬은 일주일만에 다시 좋아졌다.


***



불타올랐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마을이.

인심좋은 매씨 아저씨 부부네도.

다음 달에 시집간다던 화령누나네도.

너도 죽고, 나는 살자고 매번 싸우면서도, 콩 한 쪽 나눠 먹던 노부부네도.

사냥을 배웠다고 자랑하던 친구네도.


그 모든 것이 불타올랐다.


“어, 어어?”


율은,

그렇게 모든 추억과 아는 모든 이들의 집이 불타는 것을 보며 처음 느낀 감정은 당황이었다.

당황은 곧, 부정이 되었고, 부정은 곧 지독한 걱정이 되었으며, 지독한 걱정은 제정신이 아니게 만들었다.

잃어버린 정신이 다시 번쩍하고 고개를 쳐들었던 곳은, 불타오르고 있는 한 집이었다.

율의 집이다.

불타오르고 있는 집 앞에는 율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가 있었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언제나처럼 웃으며 맞이한 어머니.

언제나처럼 강인한 힘으로 자신에게 사냥을 가르치던 아버지.


지금은,


제 어머니의 등에는 화살과 꽂혀 있었다.

그런 제 어머니를 눈을 잃고, 심장에 검이 꽂힌 아버지가 잘린 두 팔로 안고 있었다.


“아.”


목소리가 나왔으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정신을 잃고 있었으면 좋았지 않을까 싶었다.

힘이 빠졌다.

넘어졌다.

혹시나 꿈일까 눈을 꿈뻑였지만, 보이는 것은 변함 없었다.

불타오르는 집.

그리고, 끔찍하게 죽어버린 부모님.


“아.”


말로서 완성 되지 못한, 물기 젖은 음성이 다시 비집고 나왔다.

혹여나 만지면 산산이 사라지는 꿈일까.

율은 부모님 곁으로 다가갔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일어설수 없었다.

손을 저어 기어 갔다.


“아아.”


제발 꿈이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떨리는 입사이로 비집고 나왔다.


“유, 율?”

“!!”


살아계신다.

자신의 부모님이.

율은 분명히, 똑똑히 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힘이 조금 생겼다.

미친 듯이, 제 부모님 곁으로 율은 기어갔다.

기어코 끔찍한 참상을 당한 부모님 곁에 도착했다.

어머니를 만져보았다.

따뜻함이 가득했던 온기는 없고, 죽음만이 가득한 차가움이 느껴졌다.

가슴부터 피어오르는 지독한 통증이 생겼다.

꿈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유, 율, 율······”


조금 전 들려온 아버지의 목소리가 꿈이 아님을 깨닫게 했다.

엉금, 엉금 기어 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는 팔 하나는 어머니를 안고, 다른 팔 하나 휘저으며 율을 찾고 있었다.

율은 허공을 휘젖는 아버지의 잘린 팔을 꼭 붙잡는다.


“아.”


말로 만들 수 없는 목소리로 자신이 여기 있음을 알렸다.

아버지의 얼굴이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았다.


“영아, 영아. 영아가 살았다.”


아버지는 힘겹게 그 말을 남겼다.


“영아가 살았다.”

“영아가 살았어.”


추억이 물든 집은 미치도록 타올랐고.

추억을 함께 했던 이는 미치도록 차갑게 식어갔다.

자식이 살아 있음을 듣고, 자식이 살아 있음을 무수히 알려주고선, 자식이 잡혀갔음을 말하고선, 마지막 생명을 그리 태웠다.


여동생이 살아 있다.


그 사실만이,

가족을, 친구를, 이웃 어른을, 그리고 자신의 삶이 완전히 불태워져 버린 율에게 남은 삶은 원동력이었다.


***


타탁.


모닥불이 나무둥이에 앉아 있는 눈 감은 사내의 얼굴을 비추었다.

단호하고, 강직한 잘난 외모다.

율이다.


“······.”


모닥불의 열기가 조금 더 강해지기 시작하자, 그제야 율은 천천히 눈을 떴다.

잊고 싶고 꿈이었으면 하는 추억 속 화마 보다 작고, 작은 모닥불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로부터 벌써 9년.”


아직, 여동생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여동생과 관련이 있는 곳은 태웠다.


“아니, 겨우 고작 구사문(九蛇門)의 작은 지부 하나다.”


송곳만을 전문적으로 키워내는 지부.

그곳만 태웠을 뿐.

거기다 아직 불태우고, 잡아 죽일 것들은 많았다.

복수 했다고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아직 여동생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자신의 추억을 불태워버린 모든 곳에 오늘처럼 불을 내 질러 버리는 일이.

동생을 찾아, 제 품에 다시 고이 묻는 일이.

그리 굳게 다짐하며 율은 하나의 서책 안에 말라버린 화관을 고이 넣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늑대의 이빨은 하늘을 꿰뚫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리메이크 공지입니다^^ 24.07.24 49 0 -
10 제9화. 24.07.24 52 0 13쪽
9 제9화. 24.07.23 54 0 12쪽
8 제8화. 24.07.22 68 0 15쪽
7 제7화. 24.07.21 65 0 13쪽
6 제6화 24.07.20 72 1 12쪽
» 제5편 24.07.19 70 1 12쪽
4 제4화 24.07.18 70 1 17쪽
3 제3화 24.07.17 77 1 13쪽
2 제2화 24.07.16 106 1 16쪽
1 제1화 24.07.16 170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