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협객사(殘酷俠客史) 1-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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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우발적 상황이란 건 그전까지는 까맣게 모르다 벌어지고 나서야 그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마는 못된 놈이다. 나는 벌써 두 번의 우발적 상황을 통해 왼손의 위험함을 몸소 체험했다.
위험하다. 한진서의 말에서, 그녀의 행동에서 이미 이 상황을 예견했어야 했다.
“나랑 장난 하자는 거야?”
내 멱살을 붙잡고 있는 이자로 말할 것 같으면 정검문의 둘째공자이며 더러운 성격으로 유명한 북궁표다.
“놓고 얘기 하는 게 어떻소?”
“넌 닥치고 있어.”
북궁표는 흰자가 번뜩일 정도로 턱을 치켜세우며 한진서에게 소리쳤다.
“이게 네 대답이냐? 대답이냐고!”
북궁표가 한진서의 뺨을 후려쳤다. 막강해 보이던 그녀가 아무 방비 없이 뺨을 맞는 장면은 어떤 의미에선 충격이었다.
“정인? 웃기고 있네!”
북궁표가 멱살을 풀자마자 내게 발길질했다. 난 가슴을 얻어맞아 방 밖으로 튕겨 나왔다. 멱살을 쥐던 손도 그랬지만, 저놈 발도 돌덩이처럼 단단했다.
“썩 꺼져!”
한진서와 시선이 마주쳤다. 항상 표정으로 생각을 읽을 수 있던 그녀지만 지금은 무슨 생각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런데 내게 이런 걸 원해서 부탁한 거였어?
쾅!
문은 닫혔으나 성난 북궁표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상대가 말을 못한다는 건 알고 저렇게 혼자 소리치는 건가?
“으윽.”
속안의 모든 게 진탕된 느낌이다. 어쨌든 약속을 지켰으니 된거다. 고통을 진정시키다 보니 내가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북궁표는 내 거짓말을 단박에 알아챘다. 환영해 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바닥을 구르는 신세가 될 거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복잡한 집안이다. 순찰당주가 직접 불러 그렇게 충고를 했음에도 이제야 알아채다니. 정검문 안에선 문주의 집안과 절대적으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
난 뒷길을 따라 도망치듯 관사를 나섰다.
군사부 숙소로 돌아와 침상에 앉으니 긴장이 쫙 풀리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시큰거려 윗옷을 벗어 보았다. 피멍이 신발 밑창 형태를 따라 생겨있다. 내일부터 정보부 일을 배울 텐데 이 몸 상태로 가능할지 모르겠다.
화가 난 공혜에게 치료해 달라고 말하기도 껄끄럽고. 그래도 이정도로 끝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북궁표와 더 얽혔다면 왼손이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여겼던 내 생각은 밤이 되자 산산이 깨져버렸다.
툭.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미끈한 감각에 눈을 떴다. 한 밤중에 내 침상에서 피 냄새를 맡을 이유 따위는 전혀 없기에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진서가 날 흔들어 깨웠다. 그녀의 손은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오?”
말은 듣지 못했지만 다급해 보이는 한진서의 표정으로 미뤄볼 때 내가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은 아닌 듯 했다.
‘도와줘.’
한진서는 얼마나 절박했던지 피가 묻은 손으로 탁자에 글을 써내려갔다.
‘오빠를.’
난 다음 글자가 내가 생각했던 말이 아니기를 빌었다. 한진서의 손에 묻은 피가 그녀의 몸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공격했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다 멈춘 느낌이다. 섣부른 짐작일 뿐이겠지만 공격했다와 죽였다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
‘날 덮쳤어. 그래서 난.’
글자를 써내려가던 한진서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어디 있소?”
‘창고에.’
“죽였소?”
이런 건 직접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한진서는 고개를 저었다.
‘정신을 잃어서 붙잡아 놓기만 했어.’
정리해보자면 북궁표가 한진서를 덮치려다가 피가 저 만큼이나 튈 정도로 얻어 터졌다는 거군.
“죽지 않았다면 걱정할 필요 없소. 늦지 않았으니 문주님께 말하시오.”
‘안 돼.’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북궁표를 창고에 처박아 놓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날 찾아오다니.
“대체 무슨 기댈 하고 찾아온 거요? 일개 견습 군사가 이런 일에 끼어들어서 뭘 할 수 있겠소?”
피 묻은 손이 내 소매를 붙잡았다. 한진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말이 안 통하니 더 답답했다. 한진서는 분명 정검문에 껄끄러운 존재다. 문주를 제외하고 그녀를 받아들이는데 찬성한 당주가 단 한명도 없었다고 들었으니까. 문주는 집안 꼴이 이지경인데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친 자식이 양녀를 덮쳤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문주의 위신은 땅으로 처박힐 것이다.
“문주님께 말해서 안 될 이유라도 있소?”
‘처음이 아니니까.’
한진서는 내 손바닥에 한자 한자 정확하게 글자를 적었다.
‘아버지는 알고 있어도 모른 척 해.’
한진서의 말이 사실이란 걸 깨달았을 때 멈췄어야 했다. 이 이상 그들과 얽힌다면, 결말은 불 보듯 뻔하니까. 내 의지 때문인지 또 다른 본능이 작용했기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떨고 있는 그녀의 몸을 감쌌다.
나중에 돌이켜봐도, 그날. 내 선택이 옳았는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내 생각은 이렇소.”
창고로 향하면서 입을 열었다.
“북궁표를 포박해 순찰당에 넘기기만 해도 이 일은 큰 사건이 될 것이오. 문주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함구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크게 떠벌려야 하오.”
한진서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정인이라고 말한다면 북궁표가 순순히 물러날 줄 알았소? 어제 겪었듯이 상대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소. 정검문이 당신을 받아들여 줬으니 계속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오. 지옥비마가 살인비무를 한 거지 당신이 한 게 아니지 않소.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소? 그렇게 괴롭힘을 받으며 지내느니 차라리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는 편이 낫소. 나도 한 달 정도 겪어 봤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쉽게 망각하오.”
한진서가 두려워하는 것이 문주인지, 정검문 전체인지 나로서는 알 방도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늘 같은 일을 여러 번 겪어 왔으면서도 웃을 수 있을 만큼 심지는 강하다는 것이다. 청화원을 보며, 양을 보며, 사탕을 먹으며. 그녀가 보여줬던 웃음은 무뚝뚝한 내가 봐도 정말 멋진 웃음이었다.
“내 말을 따르시오.”
창고의 문을 열었다. 입구에서부터 핏자국이 보이자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정신을 잃게 만든 게 아니라 죽여 버렸다면 함께 있는 나도 공범이 되어 버린다.
“어디 있소?”
한진서가 손가락으로 창고 구석을 가리켰다. 빛이 거의 없어 안력을 돋워 안을 살피는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슈욱!
“아…….”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내 등에 단검이 꽂힌 후였다.
“고작 데려온다는 게 저 새끼야?”
차가운 칼날에서 시작된 뜨거운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난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안면이 피로 물든 북궁표가 한진서의 목을 움켜쥐고 벽으로 밀치는 모습이 보였다.
피가 등을 타고 쉴 세 없이 뿜어져 나왔다. 손끝이 찌릿해지기 시작했다. 이 느낌 몸이 기억하고 있다. 지옥비마에게 심장이 관통 당했을 때. 그때도 이런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쉽게 죽음을 눈앞에 두다니.
눈앞이 반짝이며 기억이 떠올랐다.
자석처럼 한철광에게 이끌려 칼을 맞고 쓰러진 나. 기회를 엿보던 사람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그를 사분오열 내던 모습.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라지기 직전까지 내게 꽂혀있던 그의 시선.
‘이대로 놓아두면 죽을 겁니다.’
‘살릴 방법이 없겠소?’
누구지? 누구의 뒷모습이지?
난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발버둥 치지 마. 몸만 취하지 않았을 뿐이지 넌 이미 내꺼야. 알아?”
한진서가 북궁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북궁표는 탐욕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의 옷깃을 풀어 헤쳤다.
“몸도. 마음도. 전부다 취해 주겠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일까?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린 느낌이다. 어떻게 일어섰는지, 언제 북궁표를 향해 달려들었는지 감각조차 없었다. 정신이 들고 보니 북궁표를 저만치 밀치고 나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한진서는 압박이 풀리자 바닥에 쓰러져 겨우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목 부근엔 혈관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시퍼런 멍자국이 보였다. 북궁표가 그녀의 목을 사정없이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북궁표가 몸을 일으켰다. 난 억지로 서보려 했으나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일어서지 못했다.
“미친 새끼!”
북궁표의 발이 옆구리로 날아들었다.
“큭.”
“죽어! 죽어!”
가혹한 발길질에 쓴물을 토해내다 못해 피가 역류했다. 비릿한 피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팔과 다리로 감싸보려 해도 역부족이었다.
갑자기 발길질이 멎었다. 팔 사이로 살펴보니 한진서가 바닥의 돌을 손에 쥐는 모습이 보였다.
슈아악!
돌이 북궁표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돌멩이로 바위도 뚫었던 위력이다. 맞았다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궁표도 그것을 알았는지 표정이 돌변해 한진서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힘을 다해 물러섰지만 벽에 가로막혔다. 북궁표는 그녀가 정신을 잃었음에도 잔인하게 손을 짓밟았다.
“네 년이 감히.”
“멈춰!”
난 숨을 쥐어짜 소리쳤다.
“순찰당을 불렀어. 곧 네가 난동을 피운 게 모두에게 알려질 거다.”
다행히 북궁표가 동작을 멈췄다.
“넌 문주의 양녀를 겁탈하고, 날 죽이려 들었어.”
“그래서?”
그래서라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된단 말인가?
“일을 저지른 게 두렵지 않단 말이냐?”
“미친놈. 네 꼴을 봐. 내가 뭘 두려워하겠어?”
비교우위.
저 눈빛 익숙하다. 그래. 내가 광곤을 보며 느꼈던 기분을 북궁표가 날 보며 느끼고 있다. 난 바닥에서 피를 토하고 있고 넌 당장이라도 한진서를 겁탈할 수 있겠지.
두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동시에 찾아온 그 순간. 심장이 사정없이 뛰기 시작했다.
마의와 지옥비마. 그리고 지금. 이걸 이미 세 번째 겪고 있음에도 공포가 아닌 근사한 떨림을 느끼고 있는 난 대체 어떤 인간이지?
왼손이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왼손이 내 등에 박혀있는 단검을 뽑아 북궁표를 향해 던진 그 찰나의 시간.
난 단검이 그리는 궤적이 한철광이 내게 칼을 던졌을 때와 흡사하다는 사실도, 온몸의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사실도 잊은 채 한 가지 기억에 사로잡혔다.
‘이 애를 죽이려 했던 놈의 심장으로 이 애를 살려야 한다니요!’
두근거림이 멎었다. 북궁표의 가슴에 단검이 꼽혔다. 그가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커억.”
상황이 바뀌었다. 난 북궁표에게 다가가 그의 뺨을 휘갈겼다.
“미친 건 너다. 이 상황은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벗어 날 수 없어. 넌 오늘 이 짓으로 지위와 명성, 네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걸 날려버린 거야. 무엇 때문에? 날 죽이고 그녀를 취하는 게 그렇게 중요하단 말이야?”
“너……. 흐읍. 흐읍.”
북궁표는 허파에 칼날이 박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 상태 그대로 북궁표를 순찰당에 넘겨 오늘 일을 만천하에 드러낸다면 문주를 비롯해 저쪽 집안사람 모두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난 가슴에 박힌 단검을 빼기 위해 손에 쥐었다.
“오늘 일을 잘 기억해둬. 이 미친 자식아.”
단검을 빼려고 힘을 주었다. 그러나 단검이 움직이지 않았다. 의식하지도 못했는데 오른손을 왼손이 가로막고 있었다.
왜 이래?
오른손에 힘을 주었으나 요지부동이다. 무슨 짓이야? 이러다 죽어!
“크어어억.”
왼손이 오른손을 짓눌렀다. 서서히 북궁표의 심장을 향해 오른손을 밀기 시작했다. 북궁표의 떨림이 느껴졌다. 나 역시 떨고 있다. 그러나 왼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확신에 찬 것처럼.
왼손은 상대가 죽길 원하고 있다.
북궁표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꿈을 꿨다. 이유를 알 수 없던 웃음도, 흐릿하던 주변의 풍경도, 이젠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 손에 쥐어진 칼. 붉은 자국.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한 사람. 이름은 한겸. 열일곱이다. 그래. 죽을 병을 앓고 있던 아이였어.
‘함부로 죽여선 안된다.’
왼손은 경고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을 뿐.
‘어린 아이에게 칼을 쥐어준 것 같지.’
칼을 쥔 어린 애는 누구지?
마의가 웃었다. 지옥비마도 웃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웃었다.
그래. 난 사람을 죽였다.
<함부로 죽이지 마라 終>
<외전>-자부선생(紫府先生)
추정은 넓은 어깨를 반듯하게 핀 채로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반백의 머리였지만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넘긴 모습은 그의 나이가 오십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 마저 잊게 만들 정도였다. 그는 백무당의 당주이며 한 자루의 도로 수많은 악인을 처단해 직일도(直日刀)란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
“해결됐나?”
탁자에 앉아 문서를 보고 있던 가면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사내는 얼굴의 반을 가리는 호접(胡蝶:나비)가면 때문에 인상을 쉽게 짐작하기 힘들었다. 이 사내는 정검문의 총 관리자이며 실질적인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제일 군사 자부선생이다. 처음 정검문에 입문했을 때부터 항상 자줏빛 가면을 써왔기에 아무도 원래 얼굴을 본적이 없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상황은 대부분 정리 됐습니다.”
자부선생은 눈을 빛냈다.
“대부분?”
“둘째 공자를 죽인 것이 한진서가 아니라는 주장이…….”
추정이 말끝을 흐리자 자부선생은 눈을 치켜떴다.
“북궁표가 한진서를 겁탈하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인을 조사할수록 우발적이 아닌 고의적 살인이라는 느낌이 강하다고 합니다.”
“누가 그런 소릴 하지?”
“순찰당주입니다.”
“그곳에 같이 있었던 견습 군사도 조사했겠지?”
“윤적심이 고문했습니다만 처음에 자백한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부선생은 추정과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자네도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라 확신하는가?”
“문주님의 상심이 큽니다. 이 이상 조사를 한다고 해서 둘째 공자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닐 테니.”
“그렇군. 지금 와서 누가 죽였는지를 따지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지.”
자부선생은 다시 문서로 시선을 돌리며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 대부분에서 남은 부분도 자네가 잘 처리하리라 믿겠네.”
추정은 허리를 숙였다. 추정이 나가자 자부선생은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눈을 감았다.
“백무당주. 끝까지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는군.”
자부선생이 말이 끝나자 기둥과 벽이 만들어낸 음영 속에 숨어있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럴 수밖에요.”
사내는 서가를 서성이며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을 만지작거렸다.
“도통 문주의 속내를 알 수 없으니 서로 눈치를 볼 수밖에요. 그렇게 지옥비마의 딸을 정검문에 들이는 걸 반대하던 당주들이 정작 일이 터지자 쥐죽은 듯 조용하지 않습니까?”
“지옥비마는 죽어서도 정검문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군.”
“무림 최대의 걸작품인데 쉽게 사라지겠습니까?”
암영당의 당주. 류사혁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맴돌았다.
“한 가지 일을 더 해주었으면 하네.”
자부선생은 어느새 눈을 뜨고 류사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씀만 하십시오.”
“이번에 엮인 견습 군사를 감옥에서 빼주게.”
류사혁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자부선생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혐의가 없다 해도 공범입니다. 아직 장사도 지내지 않았는데 그가 돌아다니다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문주가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복귀시키라는 말이 아니네. 다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쫓아버리란 뜻이지.”
자부선생은 눈을 빛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자네만 알고 있게.”
자부선생은 행여 새어나가지 않을까 전음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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