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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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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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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7,029

작성
19.07.2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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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도피 1

DUMMY

눈을 뜬 론리는 처음에 평온한 상태였다.

검사과정에서 잠들어 꿈을 꾼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았다.

주위엔 안도하는 검사 진행자가 보였다.

그러던 론리가 화들짝 놀라 검사용 베드에서 일어서선 뒷걸음쳤다.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는 론리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그 모습은 잔인하고 기괴함을 넘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 성스러움이 느껴졌다.


황급히 방을 빠져나가려던 론리는 극심한 두통과 구토증상을 느끼며,

무릎을 꿇고 위액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빛의 속도로 이동하다가 블랙홀에 빨려들어가 정지된 시간,

아니 무한한 시간을 겪으며 성장한 사유의 결과물들이,

현실로 돌아온 론리의 뇌에 주입되는 과정이었다.


스크린에서 피흘리던 론리 져스틴이 독백을 하기 시작했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고 어둠은 메시지를 잉태했다.

메시지는 후에 빛을 만들었다.

물질계는 빛을 뿌리삼아 태어나 열을 품고 있다.

그리하여 모든 생명 있는 것들과 생명 없는 것들이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갔다.


어둠은 사라지게 하는 것이요,

메시지는 스스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라,

그 사이에 태어난 모든 것들이 살고 죽었으며 살리고 죽였다.


그것을 본받아 나타난 우주도 살면서 동시에 죽고 있다.

열(熱)은 우주 바깥의 저 어떤 공간으로 빠져나가,

태초의 어둠에 흡수되어 돌아오지 않으니,

우주는 그렇게 서서히 식는 중이며,

우주를 존재하게 한 메시지는 어둠에게 천천히 죽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 메시지를 닮아 자유의지를 가졌다고도,

구속됐다고도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여.

그 뜻에 따라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며,

진실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즐거워 할 지어다.

그 순간 저 너머 열둘의 세상에서,

모든 기운을 받아내고 빛을 불러낼 것이며 세상을 창조할 것이다.


모든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과 살아있는 것을 가지기 위해,

제 배를 불리던 존재들은 끝없이 투쟁할 것이고,

그 투쟁은 생존과 정의와 사랑을 낳을 것이니, 그중 제일은 사랑이라.

메시지는 생존을 따르는 자에게 사망을 줄 것이며,

정의를 따르는 자는 심판하실 것이며,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실 것이다.


그래도 투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니 그 모든 것이 메시지의 바람이라.

모든 물질은 빛과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만져지는 허상,

공(公)이기 때문이다.


빛을 받지 못해 붕괴하는 허망함 속에 남는 것은 관계들 뿐.


죽은 후에 흙이 되어 저 세상 갈 때,

즐거운 소풍을 다녀온 이들은 영원한 조화와 평안을 맞이할 것이요,

인위, 이기, 탐욕, 어리석음을 안고 돌아간 자들은 지옥불에 씻기는 형벌과 같을 것이다.


그리하여 메시지는 우리의 죄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형벌을,

현명한 자에게는 도(道)에 스스로 귀속되는 자유를 축복처럼 내리셨다.


투쟁 속에 태어난 그대는 어둠에서 시작해 빛으로 끝나는 싸움을 시작하라.

어리석은 자들을 세상에 드러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손내밀어 구원할 것이라.

거짓이 넘치는 세상에 홀로 외로운 우주를 들여다보아,

진정한 욕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그날,

우주는 열과 환희로 가득 찰 지어다.


메시지는 그의 자식이 만들 세상을 기쁘게 지켜보리라.』


스크린 속 론리의 독백이 멈추자 구토도 멈췄다.

괜찮냐며 다가오는 검사 진행자의 말과 행동이 느리게 느껴졌다.

또 그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예측 가능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시간을 모조리 압축해서 과거와 미래를 뒤엉켜 놓은 것처럼.


뿐만 아니라 론리의 주변에 있는 모든 공간에 굳이 가지 않아도,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연결되어있는 프린트에서,

론리에게 명찰을 이식하라는 교육진로설계부 장관의 명령서가 인쇄되고 있었다.

명령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현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고 비판 능력이 현저하게 뛰어난 론리 져스틴.

원로의원을 염두에 둔 레드 네임을 부여함.」


원로의원이란 챔핀코 연합정부에서 연합지역 전부를 아우르는 정책 및 법안 입안자다.

중국, 한국, 일본의 각 지역 정책과 법안은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이 하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을 상원의원이라고 한다면 원로의원의 역할은 하원의원과도 같다.


언뜻 보면 지역 내에서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국가 중심의 국회의원들이 힘이 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국가체계가 붕괴되어 큰 영향력이 없는 상태에서,

지역 연합체가 만든 중앙 정부의 힘이 훨씬 강력한 시대였고,

따라서 원로의원의 권력은 어마어마했다.


또 원로의원은 시민들이 아니라 3국 정부 국회의원들의 투표를 통해서 당선되기 때문에,

웬만한 정치 고단수가 아니고서는 오르기도 힘들었다.


“원로의원 후보생이라니.

이런 추천은 본적도 없고 저런 장면은 본 적도 없었어요.

대단한 분의 직업탐색은 이렇게 진행자의 진땀을 빼나 보네요.”


진행자는 인쇄된 명령서를 뽑아 론리에게 전달했다.

론리는 명령서를 챙겨 황급히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비록 몸과 마음에 남아있던 통증은 사라졌지만 두려움은 그대로였다.


자신 안에 어떤 힘이 생겨났고 그것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론리는 아키텍쳐 스쿨(레드 네임카드를 이식받은 사람들이 입학하는 엘리트 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아니 진학하고 나서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리고 격렬하게 작용하는 자신의 감정과 힘을 제어하기 힘들어 괴로워했다.


어떤 것에는 즐겁고,

어떤 것에는 분노를 느꼈고,

어떤 것에는 추악함을 느꼈으며,

대부분은 미칠 듯이 외롭고 슬펐다.


그 통통 튀는 감정과 세상의 현상을 조화롭게 접목시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어쩌면 그 조화를 이루는 과정 자체가 론리에게 주어진 숙제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 만큼 말이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느끼기에도 어색한 두려움을 뒤로하고,

이 이상한 검사실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서둘러 문고리를 잡았지만 론리는 손을 떼고 다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문이 벌컥 열리며,

검정색 전투수트(파동과 물리충격을 흡수하는 특수소재의 수트)를 입은 건장한 남자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피인지 아니면 문밖에 쓰러져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인지 모를 그것을 닦았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쉰 뒤 론리에게 말했다.


“반갑다 론리 져스틴. 나는 방위정보국장 낙화유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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