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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하사담 님의 서재입니다.

비검주 도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체프라
작품등록일 :
2016.03.18 23:21
최근연재일 :
2016.09.09 22:47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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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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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3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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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27화_힘을 합쳐보자고

DUMMY

66


한제가 강 의원실로 불쑥 찾아간 것은 그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일종의 경고 차원이었다. 그는 국보부의 차 부장이 독단적으로 자신에게 해코지할 계획을 세웠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앞으로 그들이 치러야 할 뼈아픈 대가를 미리 알려주고 싶었다.


“어, 하... 한 의원!”

강 의원이 엄청 놀라는 기색이다.


“안녕하셨습니까? 강 의원님.”

한제가 다소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서 오시오.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다고. 그래, 다친 곳은 없습니까?”

“예. 덕분에요. 허허허.”

한제가 가소로운 듯 실눈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 참, 어쩌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을꼬.....”

강 의원이 곁눈질을 하며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 조종사가 무슨 생각으로 경로를 이탈했는지... 나 참. 그래도 천만다행이지 않습니까? 제가 만약 그 헬기에 타고 있었더라면.... 어이구,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한제가 과하게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강 의원이 불안한 기색으로 헛기침을 연신 해댄다.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그가 입을 열었다.

“근데, 김 의원 말로는 그 헬기에 분명 탔었다고 하던데.......”


“아, 그러고 보니 김 의원도 저 만큼이나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으하하하. 아니지. 제가 언제 김 의원을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제가 호탕하게 웃으며 강 의원의 눈치를 살핀다.


“네? 그건 또 무슨...?”

강 의원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물었다.


“글쎄 김 의원이 고소공포증인가 뭔가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저도 내릴 수가 있었지요. 갑자기 배가 아프지 뭡니까? 그래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급히 뒤따라 내렸지요.”

한제가 능글맞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아, 그랬습니까? 근데.......”

강 의원이 뭔가 믿지 못하는 눈빛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의원에게 들은 이야기와는 판이하게 다르지 않은가. 그는 분명 한제가 헬기에 탑승하고 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었다. 그리고 헬기와의 교신 내용에서도 한제가 탑승했음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강 의원과 한제는 지금 보이지 않는 두뇌싸움 벌이는 중이다. 어느 누가 먼저 카드를 내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놓고 사실을 이야기할 처지도 서로 못 되는 것이었다.


“왜요? 뭐 들은 이야기라도 있으십니까? 강 의원님. 행여 제가 타지 않은 것이 서운해서 그러시는 건 아니지요? 으허허허.”

“아, 아닙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강 의원이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애꿎이 죽은 사람들만 불쌍하지. 어떻게 한 명도 생존하지 못했는지...”

한제가 시선을 주변으로 돌리며 말했다.


“으흠. 그러게 말입니다.”

강 의원은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차 부장님이 많이 놀랐겠습니다! 이번 일은 차 부장이 주도한 거라면서요?”

“예? 아, 머, 그랬지요. 으흐흠.”

강 의원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런 어쩌나? 괜히 좋은 일을 하려다가 낭패를 보게 되었으니......”

한제가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자 강 의원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저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한제가 자리를 떨치고 일어서자 강 의원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아 참. 정 의원 말입니다.”

한제가 불쑥 내뱉은 말에 강 의원의 낯빛이 노랗게 변해버린다.


“갑자기 그 사람은 왜?”

“문득 생각이 나서요. 사람 목숨이란 게 참.......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지요? 안 그렇습니까, 강 의원님?”

한제가 음흉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한제가 나가자 강 의원이 털썩 소파에 주저앉는다. 식은땀이 나는지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쳐 냈다. 가쁜 호흡을 한참이나 고르더니 그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차 부장? 나요.”

강 의원은 휴대폰을 들고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아무래도 한 의원이 눈치를 챈 것 같소만.......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있어도 될는지...?”

강 의원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 알겠소. 그럼 차 부장이 알아서 하시는 걸로 알고 있겠소. 그리고 이번 일은... 나는 모르는 일이오?”

강 의원이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67


밤이 깊었다. 아파트 32층의 베란다에서 도찬이 나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다. 비한서의 한 내용을 시험해 보고 싶어 나섰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도동. 넌 여기 있어. 잠시 나갔다 올게.”

도찬이 결심을 했는지 베란다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화려한 불빛을 피해 어두운 산기슭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급적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주변이 너무 캄캄하여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었다. 새 울음소리에 덜컥 겁이 났다. 도찬은 얼른 실험해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한 손에 비검을 움켜쥔 채 다른 손으로 날개의 깃털을 하나 뽑으려 한다.

“아, 그렇지. 그냥은 잘 안 뽑혔었지.”


도찬은 비검으로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살짝 벴다. 흘러나온 피를 손끝에 살짝 묻힌 후에 깃털을 잡아당기니 쉽게 빠졌다.


“거참. 깃털을 뽑는 데도 꼭 이렇게 피를 봐야 하나? ......뭔가 이유가 있겠지, 머.”

도찬이 혼자서 중얼거리며 뽑힌 깃털을 손질하듯 쓸어내렸다.


한차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도찬이 어깨를 들썩이며 뭔가를 준비하는 듯했다. 비검을 가볍게 몇 번 휘두르더니 도찬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준비가 끝난 듯했다.


손에 쥐고 있던 깃털을 힘껏 공중으로 던졌다. 그러자 그 깃털은 하얀 광채를 내며 수직으로 치솟아 올랐다. 도찬이 그 뒤를 따라 급히 따라 올랐다. 깃털이 사정권 안에 접어들자 도찬이 비검을 치켜세우고는 그 깃털을 사선으로 재빠르게 베어버린다.


두 동강으로 잘린 깃털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이내 하늘은 오로라처럼 초록빛을 내며 물결치듯 출렁거린다. 도찬의 주변이 환해졌다.


도찬이 비검의 칼끝을 하늘로 향하게 세우더니 원을 그리듯 세차게 돌렸다.

“집. 호. 령.”


도찬이 쑥스러운 듯 자신 있게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하지만 물결처럼 출렁이던 초록빛이 비검이 그은 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더니 비검 끝에 뭉쳐있던 초록빛 덩어리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광선으로 나누어져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도찬은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 보다는 아름답지 않았지만 도화지에 선을 긋듯 뻗어가는 초록빛의 광선은 그의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다.


도찬은 초록빛 광선에 흠뻑 빠져있었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불과 일 이십 초정도 밖에 지난 것 같지 않은데,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의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어느새 도찬의 주변에서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물끄러미 그를 지켜보며 공중에 머물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에 모인 사람들은 분명 한민임이 틀림없었다. 신기하게도 도찬이 든 비검에서 뿜어져 나간 초록빛 광선이 그들을 이어주는 실처럼 각자의 머리 위를 비추고 있었다.


초록빛 광선이 한민을 부르는 신호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주인 없는 저 광선은 분명 그 주인을 찾아 뻗어갔으리라. 어쩌면 누군가가 곧 나타나겠지. 도찬은 추측을 해 본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들 중에 섞여 있던 도여가 다가와서 물었다.


“그냥... 테스트해 봤죠. 어쩌면 흩어져 있는 한민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요.”

도찬이 꾸지람을 듣는 아이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되긴 되네요. 허허허. 도여 씨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요? 무슨 신호 같은 게 가긴 가던가요?”

“모르겠어요. 자고 있는데 뭔가가 가슴을 퍽 치는 것 같아서 눈을 떠보니, 이 빛이 저를 비추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빛을 따라와 봤죠.”

“......근데 세나 씨는?”

“모르겠어요. 얼핏 세나 씨 방에도 빛이 보였던 것 같은데... 그냥 자나 보죠, 머.”


“쩝... 이거 머, 부른다고 해서 다 오는 건 아닌가 보네.”

도찬이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저기 사람들이 도찬 씨를 쳐다보고 있잖아요. 뭐라도 해 봐요.”

도여가 주변 눈치를 살피며 도찬을 재촉했다.


“여러분!”

잠시 머뭇거리던 도찬이 비검을 치켜든 채 소리쳤다.


“저는 도찬이라고 합니다. 기. 도. 찬. 이제 여러분을 지켜줄 사람입니다.”

듣고만 있는 그들이 의아하다는 듯 서로를 쳐다본다. 그들의 눈치를 한번 살피고는 도찬이 말을 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여러분들은 남다른 피를 이어받은 한민의 후손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날개를 가지고 있는 거고요. 제가 들고 있는 이 칼이 비검이라는 것으로, 잠들어 있던 한민의 능력을 깨어나게 만든 것입니다. 저는 그런 한민의 후예들을 지킬 의무가 있는 비검의 주인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저의 말을 잘 듣고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이 땅에서 괴물로 취급받으며 쫓겨 다니거나 실험 쥐 같은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듣고 있던 그들이 잠시 웅성거리기는 했지만 사뭇 진진한 표정으로 도찬의 말을 경청했다. 어느 누구 하나 인상을 구기는 사람이 없었다. 도찬은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말했다.


“지금부터는 한민의 능력을 가지고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는 짓은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죄를 저지르지는 마십시오. 한민으로서 도리에 어긋난 짓을 계속한다면 이 비검이 그대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찬이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대체 선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들 틈에서 누군가가 물어왔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남에게, 그리고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선량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이제 곧 여러분들이 하실 일들이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 여러분들은 가진 능력으로 좋은 일에 힘써 주셨으면 합니다. 한민이 결코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한민으로서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모습을 우리 후세에게는 보여주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여가 물끄러미 도찬을 바라본다. 평소와는 다른 위용이 풍겨나는 것이 달리 비검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찬이 비검을 거두자 그들을 이어주던 초록빛 광선이 사라졌다.


“자, 이제 가셔도 좋습니다.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 서로의 얼굴은 익혀두시고요.”


어두운 밤하늘에 일순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도찬의 곁에서 도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들이 언제 다 사라졌는지 놀랍기만 했다.


“우리도 그만 가요.”

도찬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68


강 의원이 무척 상기된 얼굴로 번화가에 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의 주변에는 두어 명의 건장한 남자가 밀착 경호를 하고 있었다.


직원이 안내한 방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강 의원은 경계를 늦추지 않는 눈빛이다.


직원이 방문을 열어주자 차 부장의 모습이 보였다.

“아, 차 부장. 내가 늦었지요?”

“아닙니다. 제가 좀 일찍 온 것뿐입니다. 앉으시지요.”


자리에 앉는 강 의원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진다. 그가 방 문 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차 부장.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소? 갑자기 왜 그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나 말이오?”

강 의원의 표정이 무척 격앙되어 있었다.


“흠... 저희 쪽에서도 은밀하게 조사는 하고 있는데. 뚜렷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니 저도 참 답답합니다.”

“나 참. 그게 말이 됩니까? 이 나라의 최고 정보통들이 그것 하나 못 알아낸다는 것이.”

차 부장의 미간이 꿈틀거리자 강 의원이 움찔하며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김 의원은 바다낚시 갔다가 물에 빠져 죽고, 최 의원은 시골 별장에 갔다가... 또 누구야, 이 의원은 등산 갔다가. 최근에 갑자기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자꾸 생기는 건지, 원! 차 부장. 뭐 짚이는 거라도 없소? 이거 원 불안해서 사람이 살 수가 있나.”

강 의원이 초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목이 타는지 물로 입안을 헹군다.


“...있기는 있는데 말입니다.”

“그게 뭐요?”

강 의원이 목을 빼며 차 부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의원님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죽은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강 의원이 왈칵 짜증을 내며 재촉했다.


“그날 말입니다?”

차 부장이 아주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날... 이라니요?”

강 의원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 눈빛으로 되물었다.


“정 의원이 죽던 그날.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 있었던 의원들이지 않습니까?”

“......뭐.. 요?”

강 의원이 너무 놀라 입을 떡 벌린 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같은 인물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 의원. 그 자식이...”

차 부장이 먼저 말을 하자 강 의원이 받아쳤다.


“하지만,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 의원이 아닐 수도 있고.”

“아니요. 뻔해. 그놈이 저지른 짓이 확실할 거요. 그날 나한테 와서도 정 의원 이야기를 꺼냈었단 말이요.”

강 의원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차 부장이 어떻게 해 봐요.”

“저라고 방법이 있습니까? 현역 국회의원을 무슨 수로....”


“그럼 가만히 당하고 있자는 겁니까?”

“강 의원님도 참, 당하긴 누가 당한다고 자꾸 그러십니까! 이렇게 흥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 의원이 했는지도 아직 모르는 상태고요. 일단 좀 더 지켜보시지요. 저희 쪽에서도 눈여겨보고 있으니 조만간 뭔가 잡히는 게 있을 겁니다.”


“근데...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일인데... 한 의원 혼자서 그런 짓을 했다는 것도 좀....”

강 의원이 한층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깐요. 그래도 일단은 조심을 하시고요.”

“허허... 그래서 이 나이에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지 않소. 나 참.”



검은 승용차가 식당 앞으로 미끄러지듯이 굴러 와서 멈췄고, 검은 코트를 차려입은 수행원들이 승용차 주변을 경계하고 섰다. 강 의원과 차 부장이 곧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당 앞 길거리는 밝았지만 3층 옥상에 설치된 간판 뒤로는 어둡기만 했다. 한제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누구도 알기는 어려웠다.


식당 문이 열리고 직원이 따라나서며 그들을 배웅한다. 강 의원이 앞장섰고 그 뒤를 차 부장이 따른다. 여전히 할 말이 남았는지 강 의원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며 차 부장에게 뭔가를 이야기한다. 한제가 옥상 끝자락에 올라섰다. 그의 오른손에는 창이 들려있다.


시멘트 바닥을 힘껏 도약한 한제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강 의원이 서 있는 곳으로 빠른 속도로 하강한다. 한제는 하강하는 속도에 자신의 모든 힘을 실어 창을 냅다 집어던졌다. 그는 포물선을 그리며 공중으로 다시 날아올랐다. 그의 손을 떠난 창은 빠른 속도로 강 의원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강 의원이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쓰러졌지만 이미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수행원들이 주변을 둘러싸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차 부장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강 의원의 심장을 뚫고 나간 것이 창인 줄 알았는데, 아니 분명 창이었는데 대걸레의 자루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의원님을 병원으로 빨리 모셔!”

차 부장이 소리치자 수행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강 의원을 태운 차량이 먼저 출발하고 이내 차 부장이 탄 차량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떠나자 남아있던 수행원들이 주변 건물을 살펴본다.


앞서가는 차의 뒤꽁무니를 멍하니 바라보는 차 부장이 입술을 깨문다. 자신이 있는 바로 눈앞에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어떤 자식이 감히 겁도 없이.’


어쩌면 창이, 아니 대걸레 자루가 강 의원을 뚫고 자신에게까지 상처를 줄 수도 있었기에 더욱 화가 나는지도 모른다. 차 부장은 긴장한 호흡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그때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당신이요?”

차 부장이 묵직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물었다.


[허허허. 글쎄요. 그나저나 이제 남은 건 차 부장 당신 혼자인가요? 정 의원 사건을 아는 사람이.]

“단지 그것 때문이오, 이러는 것이?”


[아,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그 일로 당신들이 나를 너무 호구로 보는 것 같아서 말이오.]

“이러고도 당신이 무사할 것 같소?”


[내가 왜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소? 푸하하하.]

한제가 비아냥대듯 웃었다.


“나한테 전화한 이유가 뭐요?”

[아 참. 깜박했네. 어차피 강 의원 일도 언론에 노출시키진 못할 테고... 우리, 서로 협조하는 것이 어떻소? 서로 적이 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안 그렇소?]


“협조?”

[그렇소, 협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면 얼마나 좋겠소? 차 부장 곁에도 나 같은 사람 하나쯤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안 그렇소?]


차 부장은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한제가 대권까지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언젠가는 쓸 모가 있지 않겠나 싶었다.


“언제 한번 따로 자리를 마련하지요.”

[좋소, 차 부장. 지금부터는 우린 가족이오. 허허허.]


전화를 끊은 차 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앞 차에 연락해서 수도통합병원으로 가라 그러고, 입단속 잘하도록.”


차 부장이 지친 듯 몸을 의자에 깊숙이 기대었다. 그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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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_변심 16.06.10 502 5 13쪽
32 32화_응징 16.06.07 440 5 13쪽
31 31화_낯선 호의 16.05.30 481 5 12쪽
30 30화_빈약한 명분 16.05.24 472 6 12쪽
29 29화_행동으로 말하지 16.05.18 455 4 13쪽
28 28화_누구 편이지 16.05.12 513 4 13쪽
» 27화_힘을 합쳐보자고 16.04.30 550 6 18쪽
26 26화_어디 해보자고 +1 16.04.25 448 9 15쪽
25 25화_큰코다치지 +1 16.04.20 483 9 14쪽
24 24화_사각관계 +1 16.04.17 516 9 13쪽
23 23화_상승효과 +1 16.04.14 542 8 14쪽
22 22화_조력자 +1 16.04.11 514 9 13쪽
21 21화_새로운 각오 +1 16.04.09 702 10 13쪽
20 20화_그물 +1 16.04.07 539 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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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_검은 그림자 +1 16.03.18 1,146 15 9쪽
4 4화_오리무중 +1 16.03.18 1,305 20 9쪽
3 3화_되살아난 검 +1 16.03.18 1,632 20 9쪽
2 2화_탈주범 +1 16.03.18 1,875 23 15쪽
1 1화_선생님과 샘 +1 16.03.18 2,637 2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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