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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하사담 님의 서재입니다.

비검주 도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체프라
작품등록일 :
2016.03.1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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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9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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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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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_난세의 영웅

DUMMY

116


일본의 사태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커지고 있었다. 흡사 100여 년 전의 관동(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 사건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드는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극우 인사가 무참하게 살해되자 일본 우익들이 총궐기하여 야스쿠니 신사로 집결하였으며, 자경단을 조직하여 백배의 보복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자경단은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무참하게 대량 학살했던 자생적 민간조직이다.


일본 당국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듯 묵인하는 분위기였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교민의 안전 조치를 강화해 줄 것을 요청하고, 현지 교민에게 외출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였다. 큰 충돌은 서로가 원하지 않는 입장인지라 양국은 조심스럽게 관여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양국의 충돌로 비화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에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자경단의 사무실에서 십여 명의 조직원이 칼로 처참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이를 직접 목격한 여자의 증언에 따르면 30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였는데, 그들은 5층의 유리창을 통해 들어왔고 조선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중 남자가 칠판에 글을 적어 놓고 떠났다고 하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 반도인은 없다. 한민족만이 있을 뿐...

- 북에서 온 천사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을 ‘반도’라 지칭했고, 조선은 이미 사라졌기에, 일본인은 조센징이란 표현 대신 ‘반도인’이라는 표현으로 조선 사람들을 멸시하며 차별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발끈하고 나섰다. 자국 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테러라고 규정하고, 그런 불법 테러 조직을 일망타진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을 내세우며 한국 정부와 북한을 압박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일본에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했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았다.


- 일본이 또다시 제국주의 부활을 꿈꾼다면 더 이상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망언을 일삼는 일본인이 있다면 우리가 직접 처단할 것이다.


조선 중앙 TV를 통해 여성 아나운서가 강한 어조로 발표했던 것이다. 북한의 강경한 태도는 주변 국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유감 표명으로 간단히 끝낼 수 있는 문제를 키운 꼴이 되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이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일본 정부의 압박이 있기는 했지만, 남북 정상 회담을 제안한 북한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동북아 지역이 신 냉전체제로 들어서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속에 일본은 초강경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아키모토 카오루 일본 방위상이 해상 자위대를 북으로 파견할 것을 주장하며 나선 것이다. 국민의 여론을 의식한 측면도 있었겠지만, 미국의 지지 성명이 큰 힘이 되었을 거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북한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하기까지 했다. 이번 기회에 일본 열도를 바다에 수장시켜 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그렇게 할 수 있는 핵무기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관측이기는 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섣불리 전쟁을 시작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쩌면 한 국가의 존재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전쟁이라는 것이 어디 논리적으로만 일어났었던가. 한국 정부는 때아닌 비상 체제로 돌입해야만 했다. 특이한 것은 국민의 정서도 두 갈래로 나눠졌다.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일본을 도와야 한다는 쪽도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북한 편이니, 일본 편이니?’라는 유치한 편 가르기 싸움까지 발생했다.


국내 여론에 힘을 받았는지 일본 정부가 도발을 해왔다. 자국의 해상 자위대를 독도에 주둔하게 해 줄 것을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해 온 것이다. 이것이 알려지자 국내 여론은 찬반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장기를 불태우며 강력히 반발하는 시민단체가 있는가 하면, 북한의 인공기를 불태우며 일본과 함께 북한을 때려 부수자는 보수단체도 있었다.


“이거, 완전히 미친 거 아니오?”

한제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뭘 그리 흥분하고 그러십니까?”

우 의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우 의원. 일본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요청을 한답니까?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거지요.”

“아니, 머 그럴 수도 있지요. 잠시 겁만 주겠다는 의도인 것 같은데... 까짓것, 일단 한번 주둔하라 그러고, 대신........ 우리는 일본 쪽에 다른 것을 요구하면 이익이지 않습니까?”

“허허... 모르시는 말씀!”

한제가 눈을 부라리며 탁자를 내리쳤다. 우 의원이 움찔한다.


“뭘... 그렇게까지 흥분하시는지... 원.”

우 의원이 한제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아니 보시오, 한 의원. 일본과 북한이 저리 대치하면 우리한텐 덕이지 않소. 이쪽저쪽... 돕는 척을 하면서 양쪽에서 이득을 취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안 그렇소?”

“이렇게 어리석으니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동족끼리 전쟁을 치렀지.”

“뭐, 뭐요?”


한제는 매서운 눈빛으로 말을 덧붙였다.


“일본이 그리 호락호락할 것 같소? 만약 말이오. 일본 자위대가 독도에 주둔하고 나서....... 못 나가겠다고 버티면, 그땐 어떻게 하시겠소?”

“허참, 그럼 우리가 가만히 있나요?”

“가만히 안 있으면......... 전쟁이라도 하시겠소? 지금도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판에. 자기 땅이니 못 나가겠다고 하면........ 응?”

우 의원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미국? 미국이라고 무작정 우리 편을 들어 주겠소?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잊었소?”


그랬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은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서로의 지배를 인정한 협약으로 일본이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국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사람들이란 말이오. 우리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한제가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렇다면, 북한 편을 들자는 겁니까?”

우 의원이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잖소? 애도 아니고,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소? 적어도, 일본에겐 땅을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아닌 말로, 그러다 또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 어쩌려고........ 차라리 우리 민족에게 빼앗기는 게 낫지.”

“예에?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우 의원이 흥분하여 말을 계속했다.


“공산당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어찌 더 낫다는 말씀이오? 남이 들을까 무섭소.”

“허허 참... 우 의원. 그럼,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게 더 낫소?”

“차라리 그게 낫지요. 악독한 공산당 아래에서 어떻게 살라고.....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오.”

“........하긴. 그럴지도....... 하지만, 우리 말. 우리 민족은 살아남지 않겠소? 식민지가 되면 우리 말, 우리 민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거고.......”

한제가 말끝을 흐렸다.


“그게 머 그리 중요하답니까?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까놓고 말해서, 한 의원 조부도 일본 덕에 잘 살게 되었지 않습니까.”

“........”

한제의 미간이 한순간 일그러졌다.


“으허허허.... 머, 그렇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이러는 거요......... 혼을 팔고, 호의호식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후손에게 알려 주고 싶은 거요.”

한제는 초점을 잃은 시선을 바닥에 떨군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117


얼마 후, 한제가 그토록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일본 해상 자위대가 독도에 임시 주둔하도록 하자는 안건이 국회에 상정된 것이다. 국민의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안건은 국회 본회의에서 비공개로 처리되었다.


“이제... 그만 둘까 합니다.”

한제가 술잔을 기울이며 말문을 열었다. 마주 앉은 차 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썩었어요. 매국노가 따로 없다니깐요. 국회의원이란 작자들이 하나같이 한통속이 되어 가지고... 거수기도 아니고, 어찌 한결같이 찬성을 한단 말입니까? 아니, 그리고 당대표도 그렇지. 그래도 됩니까? 개 같은.....”

한제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거침없이 뱉는다.


“그래서, 의원직을 그만 두시려고요?”

“네. 그 딴 거 하면 뭐 합니까?”

“음... 그럼 그 자리는 보궐 선거를 해야 할 텐데. 내가 한번 나가볼까?”

“.......”

한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 농담입니다. 농담.”

차 부장이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한제의 빈 잔을 채운 차 부장이 말을 이어갔다.


“관두면, 그 자리는 틀림없이 장 비서의 측근이 들어갈 텐데. 장 비서가 좋아하겠습니다!”

“이미 그놈이 좌지우지하는 판에.... 무슨 상관입니까.”

“아니지요. 그럴수록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지요. 한 의원님. 정말 이 나라가 망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실 겁니까? 우리 후손들은 어쩌라고요?”

“...그러고는 싶은데........ 저 혼자로는 어림없어요.”

한제가 급하게 잔을 들이켰다.


“혼자라니요? 저도 있고, 한 의원 편이 얼마나 많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게다가, 한 의원님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아들을 생각하셔야지요.”

“아.... 그렇군요. 아들. 우리 곤계. 흐흐흐....”


차 부장과 한제는 잔을 부딪치며 미소를 짓는다. 차 부장이 또다시 한제의 잔을 채워주며 말을 이었다.


“어찌 대장부가 피하려고만 하십니까? 그런 허수아비 백 명보다는 한 의원님 같은 분이 한 분이라도 더 남아 계셔야지요. 제가 힘이 되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 의원님이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아니면, 제가 합니다?”

“...그래도 제가 좀 낫지요. 허허허.”


“예? 아, 그렇... 지요? 으하하하......”

그들의 웃음소리가 일식당 문을 타고 넘어갔다.


집으로 돌아온 한제는 샤워를 하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하얀 종이를 꺼낸 그가 뭔가를 적기 시작한다. 기억을 더듬는 듯 한참을 생각하던 그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 우영식. 최민규. 김수영.........


일본 해상 자위대의 주둔 건과 관련하여 본회의에서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이었다. 한제는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발휘하기로 했다. 옳은 일에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새벽녘에 눈을 뜬 한제가 조용히 침실을 나와 이층으로 올라갔다. 곤계의 방에 들어선 한제가 뭔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린다. 방 한구석에 방치되었던 골프 가방을 뒤적거리던 그가 머리가 가장 큰 우드를 끄집어냈다.


“이거면... 좋았어.”

한제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머금고는 아들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테라스로 나선 한제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전히 달빛이 환하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한제가 날개를 한껏 펼쳤다. 그의 오른손에 든 골프채는 어느새 한 끝에 초승달 모양의 칼날이 예리하게 서 있는 창으로 변해 있었다.


한제가 날아간 곳은 당 대표가 묵고 있을 번화가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그 건물의 지하에는 고급 술집이 있으며, 꼭대기 층에는 술집 여종업원들이 기거할 수 있도록 여러 개의 룸을 구비하고 있었다. 물론, 그 룸은 간혹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기도 한다고 했다.


이번 안건이 통과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최두열이 측근들과 그곳에서 술자리를 갖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만의 자축이랄까. 예상대로라면 술에 취한 그들은 분명 이곳에서 밤을 지새울 것이다. 적어도 최두열은 그럴 놈이다.


건물 옥상에 내려앉은 한제는 아래층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제일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방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한다.

“똑똑똑.”


“...누구세요?”

술에 지친 여자의 목소리였다.


“어, 의원님께 급하게 전해드릴게 있는데...”

한제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지체하던 여자가 문을 열어 주고는 차갑게 돌아선다. 한제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서자 침대 끝에 걸터앉은 남자가 놀라는 표정이다.


“아니, 한 의원님께서 여길 어떻게...?”

“김. 수. 영. 당신이구려. 어허허허....”


이상한 분위기를 직감한 여자가 주섬주섬 옷을 걸친다.


“아가씨!”

“예..예?”

한제가 들고 있는 창의 시퍼런 칼날에 그녀의 시선이 멈춰있다.


“나 좀 볼까!”


겁에 질려 있던 그녀가 움찔하며 한제의 눈가 마주쳤다. 한제가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러더니 그가 들고 있던 창을 그녀에게 건넸다.


“김 의원. 대표는 어디 계신가?”

“바, 바로 옆방에요. 대체 왜 이러는 거요?”

“후훗... 혹시 그런 말, 들어 보셨소?”

한제의 물음에 김 의원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썩은 가지는 잘라내야 한다........ 그래야, 나무가 산다.”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제의 의중을 직감한 김 의원은 모른 체하며 소리쳤다. 어차피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야, 뭐 해? 경찰에 신고 안 하고!”

김 의원이 등을 보이고는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씩씩 거렸다. 그 순간, 김 의원의 목이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여자는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멍한 눈빛으로 창을 내뻗은 채 멈춰 있었다. 김 의원의 몸뚱이가 털썩 쓰러지자 그녀가 놀라며 물러선다.


“어머나!”

피가 흥건한 칼날을 보고 여자는 부리나케 창을 내던졌다. 목이 달아난 시신을 확인하고는 털썩 주저앉고 만다.


“어허... 이거 참. 어쩌려고... 아가씨가 겁도 없이.”

한제가 안타까운 듯 혀를 세차게 찼다.


“제, 제가 안 그랬어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정말이에요!”

여자가 흐느끼며 말했지만 자신이 한 짓임을 아는 눈치였다. 단지 부정하고 싶을 따름이지.


“...좋소! 그럼 내가 그런 걸로 할 테니... 내 얼굴은 못 본 걸로 합시다. 그럴 수 있겠소?”

한제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더, 나를 좀 도와줘야겠소.”


방을 나온 한제는 여자를 앞세우고 바로 옆방으로 갔다.


“미숙아, 미숙아!”


여자가 최대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제는 여자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당 대표는 옷을 벗은 채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언니, 이 분은 누구... 셔? 이 시간에 무슨 일이래....”

“조용히 좀 해!”


두 여자는 수군거리다 말고 한제가 돌아보자 입을 다문다. 한제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선다.


“미.. 숙 씨?”

“예....에?”


그녀의 눈을 응시하던 한제가 창을 건넨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넋을 잃은 듯한 미숙이 초승달 모양의 칼날을 당 대표의 목에 가져갔다.


“미.. 미숙아.”

언니라는 여자는 미숙의 이상한 행동에 놀란 표정이다. 한제는 그녀의 모습을 화면에 담고 있었다.


미숙이 창을 쥔 손에 강한 힘을 주고 누르자 뚝 하는 소리와 함께 당 대표의 머리는 몸체와 분리되었다. 한제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미숙...아.”

“어, 언니.... 내가 왜?”

두 여자는 서로 마주 보며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 당신이... 우릴 조종한 거지?”

언니라는 여자가 소리쳤다.


“그걸, 누가 믿겠어?”

한제는 휴대폰이 든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 당신들의 살인 장면이 낱낱이 기록된 동영상이 있으니까 알아서들 하라고.”

한제가 두 여자를 번갈아보며 으름장을 놓고는 말을 이어갔다.


“자자...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건 없어. 협조만 잘 해주면, 내가 다 한 걸로 할 테니까, 알았지들?”

한제는 두 여자에게 다독이는 소리로 달래며 창을 집어 들었다.


“여기 몇 명이나 와 있지? 대표 일행들 말이야.”

“다섯? 아니 여섯 명인가?”

미숙은 언니라는 여자를 쳐다보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섯 명... 맞아요, 여섯 명.”

언니라는 여자가 확인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네 명 남은 건가?”

한제가 되묻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기 있는 시체를 옆방으로 옮기자고.”

한제가 침대 위의 시체를 수습하는 동안 두 여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로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한제는 피에 젖은 침대 시트를 걷어내어 시신을 돌돌 말았다.


“덮을 거 좀 없어?”

한제가 소리치자 미숙이 옷장에서 담요를 꺼내왔다. 한제는 그것으로 침대 위의 핏자국을 가렸다.


“자, 같이 들지?”


한제가 머리 쪽을 잡고 질질 끌자 두 여자가 다리 부분을 들고 그를 뒤따랐다. 옆방으로 들어서자 미숙은 또 한 번 놀란다. 한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김 의원의 시신 옆에 대표의 시신을 팽개치듯 던져둔다.


“이제 아가씨 두 사람이 잘 해 줘야 해. 지금 다른 방에 가서 여자만 불러내. 방문은 살짝 열어두고. 알았지? 여자들을 쥐 죽은 듯이 옆방에 잡아 두라고. 금방 끝내고 사라질 테니까.”


두 여자가 방문을 나서려는 순간 한제가 말을 덧붙였다.


“잘못되면... 당신들은 살인자가 되는 거야. 그리고 나는 못 본 걸로, 알았지?”


잠시 후, 여자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왔다. 한제는 들려오는 목소리로 천천히 사람 수를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네 명. 그리고 옆방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제는 복도로 나가 열린 방문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네 명을 해치우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미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그들에게 죽는 이유를 굳이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의 가족들은 알 것이고, 부끄러워할 테니.


한순간, 복도에 정적이 흐른다. 미숙이 먼저 문을 열고 고개를 삐죽 내민다. 그러자 다른 여자들이 미숙을 밀치며 복도로 나갔다. 구시렁거리던 여자들이 제각기 방으로 들어간다.


“아악!”

여기저기서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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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8화_짧은 재회 16.08.31 299 3 14쪽
47 47화_인과응보 16.08.27 327 4 14쪽
» 46화_난세의 영웅 16.08.24 334 4 18쪽
45 45화_폭풍전야 16.08.19 445 4 13쪽
44 44화_도원결의 16.08.15 391 4 13쪽
43 43화_삶의 대가 +1 16.07.23 391 5 12쪽
42 42화_구사일생 16.07.15 346 4 12쪽
41 41화_함정 16.07.12 324 4 13쪽
40 40화_은밀한 반격 16.07.08 320 4 13쪽
39 39화_돌파구 16.07.05 350 4 12쪽
38 38화_땅따먹기 16.06.30 413 5 13쪽
37 37화_불편한 동거 16.06.27 369 5 12쪽
36 36화_사소한 배려 16.06.23 341 5 13쪽
35 35화_명분 16.06.17 388 5 12쪽
34 34화_저주 16.06.13 416 5 12쪽
33 33화_변심 16.06.10 505 5 13쪽
32 32화_응징 16.06.07 443 5 13쪽
31 31화_낯선 호의 16.05.30 484 5 12쪽
30 30화_빈약한 명분 16.05.24 478 6 12쪽
29 29화_행동으로 말하지 16.05.18 456 4 13쪽
28 28화_누구 편이지 16.05.12 516 4 13쪽
27 27화_힘을 합쳐보자고 16.04.30 554 6 18쪽
26 26화_어디 해보자고 +1 16.04.25 452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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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_상승효과 +1 16.04.14 548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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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화_되살아난 검 +1 16.03.18 1,637 20 9쪽
2 2화_탈주범 +1 16.03.18 1,879 23 15쪽
1 1화_선생님과 샘 +1 16.03.18 2,644 2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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