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_불청객(2)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36
다음날.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고 했는데, 아직은 새벽이 오기엔 이른 듯하다. 지금 도찬이 머물고 있는 곳은 퇴계 교차로 상공이었다.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했겠다.’
도찬은 그 건물을 찾아 날아갔다. 유독 도드라지게 높은 건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꼭대기 층의 한 유리창이 옆에 있는 유리창들과 언뜻 달라 보였다.
도찬은 그 유리창이 도여가 탈출했던 그 창이라 생각했다. 그가 비검을 치켜들고 유리창을 내리쳤다. 그러자 유리창에 칼로 두부를 자른 것처럼 실선이 남았다. 이젠 가로로 비검을 그었다. 또다시 비검을 내리치며 사각형이 되도록 반복한다.
도찬이 발로 유리창을 툭 건드리자 잘린 유리조각이 힘없이 복도 안으로 떨어졌다. 도찬은 비검의 손잡이를 힘껏 움켜잡고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복도를 따라 배열된 방문 손잡이를 잡고 돌려 본다. 잠긴 방문은 그냥 지나쳤다. 또 다른 방문 손잡이를 잡고 돌려 본다. 스르륵 열렸다. 방 안에는 서너 명의 남자들이 헤드폰을 낀 채 모니터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고개를 돌린다.
“당신 누, 누구요?”
그가 헤드폰을 급히 벗으며 도찬이 들고 있는 비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 저승사자.”
도찬은 그를 단칼에 베어버렸다. 피가 주변으로 흩뿌려지자 곁에 있던 동료들이 놀라며 자리를 피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헤드폰을 채 벗기도 전에 날카로운 칼날에 그들의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도찬이 다시 복도 밖으로 걸어 나왔다. 복도 끝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다 도찬을 보고는 급히 몸을 돌렸다. 도찬이 그를 향해 비검을 쭉 내밀었다. 비검의 칼날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더니 그의 등을 꿰뚫고 다시 줄어들었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며 또 다른 방문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문 뒤에 숨어 있던 한 남자가 도찬을 뒤에서 왈칵 껴안는다. 그러더니 그의 굵직한 팔이 도찬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도찬은 당황하지 않고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자 그가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가 등으로 바닥을 밀며 달아나려 했지만 도찬의 비검은 그에게 아량을 베풀지 않았다.
도찬이 비검을 들어 그의 가슴에 힘껏 꽂아 버린 것이다.
“너희 같은 놈들은 살려두면 보복을 생각하지. 고마움 같은 건 개나 줘 버리고 없더라고. 크크크.”
책상 밑에 숨어 있던 다른 한 남자가 도찬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끌려 나왔다. 도찬이 그를 복도 바닥에 내동이 치며 물었다.
“너희들 우두머리는 어딨어?”
도찬이 칼끝을 그의 목에 바짝 들이대었다가 천천히 떼며 말을 이었다.
“살고 싶으면 앞장서!”
그가 앞장서서 걸으며 어깨 너머로 도찬을 흘끗 바라보더니 냅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검이 가차 없이 그를 뒤쫓아 쭉 늘어나더니 심장을 찌르고 다시 줄어들었다.
“어리석은 놈. 살 수도 있었는데...”
도찬은 그의 시체를 넘어서며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꼼짝 마!”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도찬에게 총구를 겨누며 소리쳤다.
“너희들 대장은 어디 숨어 있지? 괜히 나섰다가 다치지 말고, 좋은 말할 때 비켜라.”
도찬이 가소로운 듯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한 발짝 더 움직이면 쏜다!”
도찬이 계단을 한 발짝 내려서자 그들은 몸을 움츠리며 소리쳤다.
“쏴. 쏘라고! 너희들이 언제 허락받고 쐈냐?”
도찬이 계단 위에서 그들을 향해 뛰어내렸다. 당황한 그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도찬은 어느새 펼친 날개를 앞으로 오므리며 자신의 몸을 가렸다. 날아온 총탄은 그의 날개에 스며들 듯 사라졌고, 총을 든 그들의 손도 뎅강 잘려 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계단은 그들의 비명과 신음으로 진동했고, 잘린 그들의 손이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도찬은 고통스러워하는 그들의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뭐랬어? 다친다고 했잖아? 너희들이 자초한 일이니 원망 마라.”
도찬이 억지웃음을 짓고는 이내 굳은 얼굴로 복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너무도 고요하다. 도찬은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떼었다. 복도 코너를 도는 순간, 복도를 따라 뭔가가 데굴데굴 굴러 왔다. 깡통 같은 것이 하얀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연막탄이라는 건가? 도찬은 앞이 보이지 않자 급히 몸을 움츠리며 물러섰다.
갑자기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도찬은 반사적으로 비검을 휘두르며 자신의 몸을 방어하려 했다. 비검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도찬이 재빠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몸을 숨긴다. 복도에서 연기가 사라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계단 쪽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오는 듯한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복도 쪽에서도 바삐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진퇴양난이다. 여기 이대로 있다가는 개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찬이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러고는 비검을 들어 칼날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래, 까짓것. 한번 붙어 보지 머. 이 비검이 지켜 주겠지?”
비검이 그의 말에 답이라도 하듯 우웅거리기 시작했다.
도찬이 바닥을 박차고 일어서려는 순간, 계단 쪽에서 불길이 확 솟구쳤다. 그러자 뜨거운 열기와 함께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복도 안으로 밀려왔다.
도찬이 멍하니 그쪽을 지켜보는 순간, 네발 달린 짐승 같은 것이 다가왔다. 도동이었다.
“어, 도동? 네가 어떻게!”
도찬이 놀라며 반가워할 겨를도 없이 도동은 복도 안쪽으로 뜨거운 불길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도찬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뜨거운 열기를 피하려 한다.
처참한 비명 소리가 잠잠해 지자 도동이 계단으로 나갔다.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도찬을 향해 한 차례 짖어댄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도동은 도찬이 처음 들어왔던 유리창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다시 짖어대더니 펄쩍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도동의 몸에도 날개가 펼쳐지는 것이다.
도찬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도 안 돼. 그럼 도동도 한민이란 말이야?”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복도를 따라 들려왔다. 도찬이 힘차게 바닥을 차고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도동은 도찬이 나오자마자 건물 안으로 또다시 입에서 불길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 건물은 불꽃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동을 따라 날아가는 도찬의 뒤로 사이렌 소리가 급박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37
한제는 국보부 차 부장이 강 의원과 그를 위해 마련한 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며칠 전 차 부장의 친척 중에 한 어르신이 병원에 입원하는 과정에서 한제가 많은 편의를 제공해 준 것에 대한 답례였다.
“한 의원님. 정말 감사합니다. 의원님 덕분에 제 위신이 많이 섰습니다.”
“아이고, 별 말씀을. 당연히 제가 도와드려야죠. 다른 분도 아니고 차 부장님 일이신데. 허허허.”
“그래도 특실에, 입원비까지 모두 그냥 해 주셨다니...”
“그나저나 불편한 게 없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신경을 쓴다고는 했는데...”
그들의 대화에 물끄러미 지켜보던 강 의원이 끼어들었다.
“허허, 우리가 어디 남입니까? 서로 도와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
그렇게 그들은 각별한 사이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차 부장이 각 부처의 민감한 소식을 털어놓는다.
“며칠 전 저희 본부가 쑥대밭이 되었지 뭡니까?”
“아니, 왜요?”
강 의원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웬 불청객이 쳐들어와서는 온통 뒤집어 놓고 갔지요. 내놓고 수사하지도 못하고... 참 난감합니다.”
“대체 어떤 자길래...?
이번엔 한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배 중이던 놈이라는데... 괴 생명체 중에 하나인 듯합니다. 저희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대단한 놈이라........”
“그래요? 그럼 어쩝니까? 아직 밝혀진 것도 없답니까?”
강 의원이 놀란 눈으로 연거푸 물었다.
“네. 아직...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강 의원과 한제가 심각한 표정으로 차 부장의 입을 바라보고 있다.
“저희들이 실험 중이던 노부부가 있었는데, 물론 그들도 괴 생명체로 추정되고 있고요.”
“그런데요?”
강 의원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얼마 전에 러시아에서 냄새를 맡고 그들 중 하나를 인도해 줄 것을 요청해 왔지 뭡니까?”
“러시아에서요?”
한제가 물었다.
“네. 러시아요. 물론 그쪽도 조건을 내걸긴 했지만.”
차 부장이 주변 눈치를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가스 시추권을 주는 조건으로 그들 중 한 명을 달라는 거였죠. 그래서 저희 쪽도 이미 실험을 마친 단계고 해서 한 명을 보내기로 했지요. 남자를요.”
“오호... 그런 일이 있었군요.”
강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문제가 생겼지 뭡니까?”
“무슨 문제요?”
한제가 호응을 해 주었다.
“그를 데려가던 수송기가... 그만 추락해 버렸지 뭡니까.”
“네에?”
한제와 강 의원이 동시에 놀라며 말했다.
“저런, 어쩌다가?”
한제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정확한 원인은 파악 중에 있는데... 수송기 내부를 실시간으로 촬영하던 카메라에 그의 모습이 찍혔다네요.”
“그... 라니요?”
한제가 다시 물었다.
“노부부 중에 한 사람 말입니다. 그가 깨어나서는 감시하고 있던 부대원들과 싸우는 장면이 포착됐고... 급기야 조종실까지 들어갔는데.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 후로는 조종사의 목소리만 들리고... 그리고는 추락해 버렸다네요.”
“저런! 그럼 시신은 발견했답니까?”
한제가 물었다.
“아니, 그게... 그 노부부의 시신은 발견이 되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러시아에서 그의 부인을 넘겨달라고 떼를 쓰지 뭡니까. 안 그러면 가스 시추권은 못 준다면서요... 나 참.”
“아니,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서는 왜?”
강 의원이 발끈하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요? 주기로 했습니까?”
한제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요. 미국 쪽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젠 중국까지 공동 연구를 하자고 제안하니...”
차 부장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을 한숨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한제가 천천히 술잔을 들이키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