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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진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 스트리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2.05.13 07:09
최근연재일 :
2022.07.02 22:41
연재수 :
1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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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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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
글자수 :
956,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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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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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나 혼자 살았다

DUMMY

아라는 내가 늘 두려움을 마주하는 사람이라 여겼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살며 난 수없이 도망쳤었다. 부끄러움이 일 정도로 도망친 적도 있다. 편의점 앞에서 그걸 봤을 때, 너무 무서워서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었다. 두려워 며칠 동안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낮보다 밤을 편하게 느끼던 내가, 해가 떠야 안심하고 잠이 들었었다.


생각해보니 그 시기의 나는 밤에 잠든 적이 거의 없던 것 같다.


그때의 내가 너무 한심해서 그 뒤론 두려움을 맞서려 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일본에서, 한국에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국경에서, 그리고 미얀마에서도 난 무모한 결정을 내리고 앞으로 나갔다. 정말 영리했다면, 다른 방법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일라의 경우는 다르다. 그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난 두 번째로 도망쳤다. 이번엔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이 또한 두려움 때문이겠지.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무너질까 두려워서.


마침 라오스가 불교 국가라서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마음이 허해서 뭐라도 의지하고 싶어졌기에 사원을 찾아갔었다. 해맑게 웃으며 사진 요청을 하는 스님들과 어울려주며 이건 아니다 싶어졌다.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 장례식을 하는 마을을 지나갔다.


죽은 사람은 증손자까지 있던 대가족의 가장이었다. 그가 죽자 직계가족 중 남자들 모두가 삭발했다. 그게 전통이라고 한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라오족이 아닌 소수민족이 살고, 그들은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기에 장례 절차나 관습이 조금 다르다. 같은 불교 신자들이지만, 자연숭배사상이 섞여 있다. 들어보긴 했지만, 라오스에 살며 처음 보는 장례문화였다. 돈이 많아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돈이 많으니 자녀가 많은 것이고, 가족들도 많이 참석한 것이겠지.


그냥 멍하니 장례식장에 끼어들었는데, 어느새 난 삭발하고 있었다. 날 멀리서 온 직계가족이라 여긴 것인지, 알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제대로 말하지 못해 그걸 원한다고 여긴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삭발하니 잠시 시원했다. 머리도, 마음도.


-꺄아!

-오빠!

-와이!


집으로 돌아가자 당연히 난리가 났다. 아라와 헤어진 것에 대한 말을 서로 하지 않은 채 지낸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고, 내가 그에 대한 말을 하지 않고 꿍해 있어 다들 조심하던 때였다.


난 수리와 연화, 아일라의 반응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다시 촬영에 몰두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속이 터질 것 같아서 시작한 일은 성벽 만들기다. 내 집을 둘러싼 담장을 두껍게 하고, 높여 그 위를 걸어 다닐 수 있게, 자전거도 타고 다닐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다. 진짜 성벽을 만들었다.


그 영상을 찍어 수리와 연화에게 넘겼다. 편집을 총괄하던 아라가 떠났으니까.


영상이 올라가고 당연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드디어... 라고 기뻐하는 놈들이 있었다. 난 참지 않고 강하고 거칠게 대꾸해주었다. 그 반응에 실망했다며 약 삼십만 명이 떠났다. 사이버렉카라 불리는 것들이 활짝 웃으며 내가 몰락한다고 떠들지만, 그들이 영상을 올릴 때 내 구독자는 육천만을 넘어섰다. 이미 흐름을 탔기에, 상위권에 노출되어 있기에 줄어드는 숫자보다 신규 유입수가 더 많아 일어나는 일이다.


아무튼, 내가 삭발하자 여기저기서 오해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특히! 이 라오스라는 종교적인가 싶으면서도 정말 종교적인 국가에 소속된 사람들, 그들이 무슨 성지순례를 하듯 날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굶어 죽어 열반에 오르기라도 할 것이라는 헛소문이 퍼진 덕분이다. 아라와의 이별에 충격을 받아 조금 덜 먹기는 했지만, 그래서 살이 빠져서 해골 같다는 소리도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리에다 과일을 쌓아두고, 꽃을 장식하고, 촛불을 켜두고 가다니!


“불난다고! 불! 강가라고 해도, 바람에 날아가면 어쩌려는 거야!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해줘. 제발. 당신들도! 그렇게 날 경건하게 보지 말란 말이야!”


지역방위군 대장을 불러 한참 떠들었다.


“불안함을 이겨내려고,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왜? 내가 뭔데.”

“당신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주었다. 그 역할이 부담스러워서 그러는 것인가? 지금까지는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

“...알았으니까, 제발 찾아오지 말라고 해줘. 나 바빠. 나 불경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야.”


답이 없어, 최후통첩했다.


“자꾸 이러면 나 떠날 거야. 자꾸 날 밀어내지 말라고. 적어도 내가 제대로 생각하고, 화내지 않고... 당신들도 이런 모습 싫잖아?”


라오스인은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화내면 미친놈인 줄 안다. 사실 난 미쳤다.


“부탁할게.”

“...알겠다. 그러나 발은 막아도 마음은 막지 못한다.”

“크아아!!”


마음을 막지 못한다. 그 말에 화가 폭발했다.


“나도 안다고! 편해지고 싶다잖아! 들어봤어? 그런 말 들어봤냐고!”


-크르르르.


“조용히 해!”


내 편을 들어주는 번개에게 성질을 부렸다. 주눅 든 녀석의 표정에 정신이 들었다. 한심하게 보다 하품하는 호랑이의 모습에 부끄러움이 일었다.


“후우, 미안. 미안합니다. 아, 안 되겠다. 당분간 쉬겠습니다.”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나 조금만 쉴게.”

“응, 알았어.”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졌다. 그런데 갈 곳이 없다. WWH-18 때문에 모든 국가가 문을 걸어 잠갔다. 미얀마도 갈 수 없다. 양곤의 상황이 심각해져 있다. 자신의 경유지를 숨긴 벨기에 부부로 인해 양곤에서 10만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 의료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국가라 영국이 돕고 있기는 하지만, 어려운 상황이다. 영국도 적지 않은 수가 감염되었다.


WWH-18은 기이하게도 20~40대의 가장 건강할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WH-18이 고령자와 저연령층에 치명적인 것과 반대였다. 그렇다고 엄청난 수가 죽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한 사람에게 더 치명적이라니 어쩐지 섬뜩한 느낌이 든다.


중국 누나들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라오스에 온다더니 또 미뤄졌다는 소식이 마지막이다. 중국에서 들려오는 소문이 무척 심각했다. 오가지 못하게 잠긴 대도시가 한두 곳이 아니라고 한다. 먹을 것이 없어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말도 들린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국가들도 그로 인해 긴장 상태다. 중국에서 밀입국해 들어오는 이들이 많아 국경봉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국경지대로의 군사 이동이 도발이라며 길길이 날뛰고 있다.


세상이 내 마음처럼 어지럽다.


“접니다. 국내 여행이 가능합니까.”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캠핑카를 타고 무접촉으로 다닐 생각입니다.”

-말리는 이유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남부에서 대량 확진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


돌고래를 보려고 했다.


“그럼 북부는 어떻습니까.”

-수도에서 통제되고 있지만, 무 자각자도 있을 것이라. 당분간 그곳에 계시면 좋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저희가...

“아닙니다.”


집에 있으면 어떻게든 아라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라는 후원하는 아이들도 있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일을 계속한다는 말에 아일라가 아라를 영국에 보냈다. 내 영상은 관여하지 않고, 자신의 채널과 아일라의 채널, 그리고 소속된 연예인들의 스트리밍 쪽 총괄을 하고 있다. 외교부에 단단한 연줄이 있는 아일라의 아빠가 덕분이고, 영국도 아라를 환영해주었다. 아마 미국에 한 방 먹여줘서 그런 것 같다.


편해지겠다면서, 더 힘들고 고단한 일터로 간 것이다. 오직 나에게만 불편을 느낀 것이겠지.


“크아아!”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인가? 이미 다 밝혀진 일을 정돈한 것뿐이다. 하루에 똥을 몇 번 쌌다던가, 코는 파는지나, 방귀를 자주 뀌는지 등 진짜 은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크아아!”

“오빠!”


연화가 시끄러웠는지 달려 나왔다.


“미안.”

“왜 또 그래?”

“...아냐.”

“뭐가 아냐. 매일 아냐 하지 말고 말을 해.”

“...으윽. 아니야.”


말하면 약해질까 봐. 연화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난 입을 다물었다.


“다르족 여기로 부를게. 오빠가 내 집에 가 있어.”

“허.”


연화는 내 마음을 잘 알고 배려해주었다.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난 엉망인 상태였다.


“녀석, 다 컸구나?”

“머리 만지면 결혼해야 해. 라오족 풍습이야.”

“아닌 거 알거든?”


웃었다. 아주 잠시.


*


새로운 영상을 만들지 않아도, 이미 올라간 영상들로 난 평생 먹고살 수 있다. 이미 벌어둔 돈만으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습관이 되어 그러지 못했다.


정원을 가꾸고, 그걸 농사 채널에 올렸다. 근처에 밭과 논도 만들었다. 더는 숨길 필요 없고, 라오스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기에, 연화의 집도 공개했다. 공개된 집을 수리하며 주 채널에 올리고, 매일 운동하며 돌질하는 채널에도 올렸다.


그러며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러서 내게 온 물품을 정리하고, 가져갈 것은 챙겨갔다.


세상은 엉망이 되었다고 난리인데, 난 여전히 같은 생활을 한다. 엉망이라는 세상도 차츰 안정을 찾아갈 것이다. 내 마음처럼.


-편해지고 싶어.

“크아아!”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


*


내가 꾸미는 정원은 작은 세계다. 내가 가봤던 특별한 장소들을 작게 만들었다. 흙더미를 올려 산을 만들고, 산꼭대기에 전망대를 세우고, 케이블카를 연결했다.


그냥 수로를 만들면 수수해 보여서 댐을 만든 것이 계기였다. 물 조절이 되게 태양열발전기를 연결한 모터에 간단한 자동명령어를 입력한 기판을 연결해서 물 공급을 편하게 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댐을 만들고 난 뒤에 수로에 배를 띄우고 싶어졌다. 장난감 배를 주문해서 띄우고 수로를 따라 돌아다니게 했다. 센서를 부착했기에 알아서 잘 다닌다.


그게 또 대박이 났다. 곤곤이는 끝났다고 떠들던 이들이 쏙 사라졌다.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시청자만이 아니었다. 업계에서도 엄청난 러브콜이 들어왔다. 내 담당자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문의가 쏟아졌다.


두 번째로 만든 것은 워싱턴, 내가 좋아하는 쇼호스트가 있는 방송국이다. 진짜 건물을 짓듯이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를 믹스해 넣고 차분히 한층 한층 올렸다. 만들겠다고 하니 제발 만들어달라며 실물과 재질까지 같지만 크기를 축소한 방송사 로고까지 만들어 보내주었다.


방송국을 만들며 다른 여러 건물이나 문화유산의 축소판을 만들었다. 연화의 집에는 방이 많고, 그래서 방마다 각기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카메라를 세팅할 수 있었다. 완성되어 정원에 설치한 뒤에 영상을 올리기에 사람들은 동시에 진행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다시 내 채널에 들어오는 이들이 늘어날 때, 연화와 수리가 한국으로 들어갔다. WWH-18에 대한 대응법이 생겨, 전 세계적인 봉인이 풀린 시점이었다.


미니어처 정원 꾸미기가 크게 성공하며, 난 드디어 일억 스트리머가 되었다. 개인 채널로는 일위였고, 전체에서는 5위권이다. 나와 순위를 바꾸곤 하는 채널은 미국의 대형 기획사다. 유명한 모델과 연예인을 보유한 아라라 엔터의 채널도 순식간에 100위권에 들어왔다.


세상이 다시 날 주목했다.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원거리 인터뷰라도 좋으니 제발 해달라며 거액을 제시하는 곳이 많았다. 난 거절하지 않고 그에 응했다. 먹여 살릴 식구가 많아졌기에. 내 담당 팀원만 서른 명이니까.


그러나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


아일라가 제일 먼저 떠났다. 내가 아라와 헤어진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아일라가 접근해왔다. 난 이젠 잊을 때가 되었다 싶었고, 계속 내 곁에 있어 준 고마움도 있고, 아무튼 그냥 아일라와 다시 사귀어볼 결심을 했었다.


다른 날처럼 피하지 않고 아일라와 함께 그녀의 호텔에 들어갔다. 키스하자 아일라는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했다. 그런데 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마음은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일라는 일시적인 일이라며 날 위로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아일라와 난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난 아일라와 키스 이상을 할 수 없었다.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일라는 화를 냈다.


-아직도 못 잊은 거야?


그건 사실이다. 아라를 난 못 잊었다. 화가 나서 그런 것 같다. 일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편하게 해달라는 말을 잊지 못했다.


아일라는 견딜 수 없었는지 영국으로 돌아갔다. 호텔도 둔 채로. 다시 돌아온다면서 떠나더니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 뒤 연화와 수리가 한국으로 떠났다. 필요한 학력 자격을 갖춘 것은 육 개월 전이지만, 나 때문에 머뭇거린 것 같다.


-고향에 갔다 온다.


조가 미얀마에 다녀온다며 떠났다. 가족을 데리고. 미얀마의 사정이 좋아진 것 때문인지, 내가 준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서 만족할 수준으로 모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혹은 여전히 내 할 일만 하는 날 보기 짜증이 나서 가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가 떠난 뒤, 다르족이 떠났다. 한국에 있다가 돌아온 중국인이 데리고 갔다. 한국의 정보국에 취직했다는데, 형도 접근할 수 없는 기밀을 다루는 부서라고 한다. 한국에 가면 그 예쁜 애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걱정이 든다.


그렇게 다 떠났다.


“호랑이와 번개만 남았군.”


번개의 두 부인은 전에 갑자기 사라진 개들처럼 말도 없이 떠났다. 일곱 마리의 강아지는 라오스 정부, 캄보디아 국왕, 미얀마 대통령이 한 마리씩 분양받았고, 두 마리는 뱀에게 물려 죽었고, 두 마리는 뭘 먹었는지 설사하다 죽었다. 수의사들도 원인을 밝히지 못했었다.


나이 들어 이젠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호랑이는 내가 사다 주는 돼지고기와 가끔 잡아주는 닭, 양어장 물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중이다.


“그나마 네가 건강해서 다행이다. 번개야.”


끌어안자 진한 냄새가 났다.


“크어! 이놈! 목욕하자!”


기겁해 도망가려는 녀석을 잡아 수영장에 던졌다. 급히 빠져나오려는 녀석을 보고 호랑이가 물에 뛰어 들어갔다. 나도 들어갔다. 우린 즐겁게 수영을 즐겼다. 번개만 빼고.


*


혼자 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말을 할 기회가 적어져 가끔 목이 잠겨 전화를 받으면 자다 깼냐는 질문을 받지만, 그 외에 문제는 없다. 가끔은 다 벗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기도 한다. 돼지 밥 줘야 하고, 닭 밥 줘야 하고, 양어장 밥 줘야 하고, 호랑이와 번개 밥만 챙기면 된다. 연화의 집으로 알몸으로 달려가 미니어처의 시멘트가 잘 굳었는지 살피기도 한다.


집 근처에 새로운 집을 늘리는 짓도 계속하고 있다. 특별한 댓글이 없으면 내가 볼일도 없고, 실시간 방송은 더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일은 사라졌다.


외부의 소식은 계속 찾아보는 중이다. WH-18발생 2년 6개월 만에 한국이 세계 최초로 비상방역체계를 해제한 소식도 4일 정도 뒤에 보았었다. 내가 우려한 좀비 사태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타격은 적지 않다.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멍청이가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되었다.


바이러스 사태가 종식되면 내 영상의 조회 수도 감소하리라 예측되었지만, 여유가 생겨선지 내 채널을 방문하는 이들은 더 늘었다.


-영국에 와야 해.

“왜?”

-국왕이 작위를 준데.

“...왜?”

-아라라가 영국 국적의 컴퍼니니까.

“난 대표가 아니잖아. 난 시상식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어.”


상장과 트로피가 수두룩하지만 직접 받은 적은 없다. 미국 방송사에서는 내 인형을 만들어 수상하기도 했다. 그 인형은 토크쇼 사회자가 집에 보관하고 있다.


-그런 것과 다르잖아.

“난 영국인도 아니야.”

-회사를 위해서 받아줘.

“아일라. 내 계약서 다시 살펴봐.”

-...모른 척 오면 안 돼?! 그게 어려운 일이야?


아일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도 참았던 화가 터졌다.


“그렇게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으면서, 넌! 넌 또 아무렇지 않게 그러는 거야?”

-그게 아니야. 내 땅.

“날 그렇게 부르지 마! 난... 쯧!”

-...와야 해. 오면 알게 돼.

“생각해볼게.”


난 감염체가 되기 싫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감염시키는 숙주가 되기 싫었다. 그래서 라오스의 오지로 숨어들어왔다. 그런데 그런 걱정 없이 끝이 났다. 하지만 걱정이 인다. 내가 접촉한 이들이 면역이 있어서, 그래서 나로 인한 발병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혹은 이미 나로 인해 면역력이 생겨서 무사한 것이 아닐까?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다시 세상에 나가면 큰일이 나지 않을까? 그런 두려움이 컸다. 아라를 대면하는 것도, 아일라를 대면하는 것보다 더 컸다. 그래서 난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난 후회했다.


*


어느새 난 머리도 깎지 않은 채 수도사처럼 살고 있었다. 당시의 사건, 우발적인 삭발은 이를 위한 전초였나 싶어졌다. 나와 연락하는 것은 내 담당팀의 팀장과 고위 간부가 된 내 라오스 담당자, 그리고 가족뿐이다. 그러나 내가 먼저 전화하는 사람은 없다.


한 달 만에 유정 누나의 연락이 왔다. 더는 연락하지 않게 된 이들이 많아진 상태지만, 가족인 누나와의 연결고리는 끊지 않았다.


“미안.”

-사과부터 하니? 밥은 먹었고?

“응. 잘 지내?”

-나야 뭐, 다시 시즌 시작되어서 그렇지. 그거 때문에 연락한 것은 아니고, 그거 봤어?

“아니. 담쌓고 살아.”

-뭔지 알고 답하는 거야?

“모든 것에 담쌓고 있어.”

-말은... 아라 연락해?

“아니.”


왜 갑자기 아라의 이야기를 할까 싶었다.


-아라 애가 있더라. 세네살 되어 보이던데.

“...남자 생겼나 보지.”

-넌 아니야?

“헤어진 지 오래되었잖아. 벌써 삼 년은 된 것 같은데.”

-그럼 아닌가.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아일라와 아라가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사진이거든.

“아일라 애일 수도 있겠네.”


통화를 마치고 기분이 이상해 그 사진을 찾아보았다. 참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겠지.”


화면을 닫으려는데 밝게 웃으며 아라를 보는 그 남자아이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아라를 많이 담기는 했네.”


좋은 남자를 만났나 싶었다.


“아주 편하게 해주는 남자. 그렇지? 번개야.”


번개가 고개를 들었다가 곧 축 늘어졌다.


“저 녀석 게을러서. 쯧. 일이나 하자.”


연화의 집으로 가려고 나서자, 번개가 급히 쫓아왔다. 요즘은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해서 그런지 호랑이도 쫓아온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툭툭 쳐대면서 걸어서 연화의 집에 도착했다. 옥상에 말리려고 둔 미니어처 관람차의 상태를 보려고 바로 올라갔다.


퍼퍼펑!


“아, 삐마이구나.”


라오스의 새해는 사월에 시작된다.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의 이름이 삐마이다. 건기가 지속되는 4월은 더워 활동이 어려운 시기다. 그래서인지 삐마이는 물과 함께하는 축제다. 불상에 꽃물을 뿌리고, 서로에게도 물을 뿌린다. 전염병 때문에 그 행사가 금지되었지만, 이번 해부터는 할 수 있다고 들었다. 다들 기쁘게 물을 뿌리다, 저녁이 되니 불꽃놀이를 하나 싶다.


“연등도 날리려나? 산불 나지 않게 잘 봐야 할 텐데.”


관람차가 다 말랐기에 아래로 옮겨두고, 위치를 보기 위해 다시 옥상에 올라왔다. 정원을 내려다보며 관람차가 놓일 위치를 정하려 쳐다보는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도 모르게 한 방향을 바라보았는데, 그곳은 북동쪽이었다. 그 방향에는 숲이 넓게 펼쳐져 있고, 베트남 국경이 있으며, 또 숲이 펼쳐져 있다. 불꽃놀이도 연등도 보이지 않는 방향이다.


그리고 멀리 우한이 있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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