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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진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 스트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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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2.05.13 07:09
최근연재일 :
2022.07.02 22:41
연재수 :
1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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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0
추천수 :
469
글자수 :
956,738

작성
22.06.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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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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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2쪽

클라라 아일랜드 I

DUMMY

미얀마와 태국은 말레이반도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좁고 길쭉한 북쪽 지역을 양국이 동서로 나누어 가진 형태를 유지한다. 남부까지 뻗어 내려가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한 국가는 태국뿐이다. 현재의 발전도나 국력만 비교해봐도, 왜 태국이 그곳까지 발을 뻗었는지 짐작하게 된다.


태국의 많은 섬은 잘 알려져 있다. 말레이반도 서쪽에 있는 푸켓도 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한 곳이다. 푸켓에서 북으로 300km 떨어진 곳에 있는 미얀마의 내가 가는 섬 주변의 군도도 푸켓 못지않은 자연경관을 지녔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라 덜 알려진 탓에 자연경관은 더 뚜렷하게 살아있다. 사진으로만 봤는데 좋은 휴양지 같아 보였다.


클라라 섬(Clara Island)이라는 예쁜 이름도 가진 곳이 내가 가게 될 장소다.


클라라섬의 서쪽 해안은 군사지역이다. 십여명의 주민이 사는 섬이었는데, 안전을 위해 대피시켰다고 한다. 날 위해 섬을 비운 것이 아닌가 싶다. 군사지역이 있는 곳을 선정한 것은 내 안전을 위해서일 것이다. 영국에 방위를 맡기며 빠르게 자체 병력을 줄이는 미얀마지만, 치안 유지군은 지니고 있다. 파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영국만 믿다간 큰일 날 테니 현명한 선택 같다.


치안 유지군과 영국 해군이 상주하는 곳으로 난 넘어가지 않고, 그들도 내가 머무는 동쪽 해안으로 넘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서 순찰하며 내가 살아는 있는지 수시로 확인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양곤에 도착해서 들었다. 안전요원을 붙여주려 하기에 그것도 거절했다. 안전요원이 있으면 내가 제대로 머물 수 없다.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정확히 알려주세요.”

“지도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산을 넘어가지 않으면 됩니다.”

“산이 있나요?”


지형이 평탄해 보였는데, 530m의 봉우리가 있었다. 거의 섬 중심에 있는 그 봉우리를 경계로 넘어가지 않으면 된다고 미얀마 전 해군의 장교가 설명해주었다.


“들어갈 때는 어떻게 갑니까.”

“맡겨 주십시오.”


자신 있게 답한 사람의 복장이 날 불안하게 했다. 누군가 떠오르는 복장이었는데, 확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가져오신 장비들은 방수가 되는 가방에 넣겠습니다. 가지고 가실 것은 정말 단검 하나뿐입니까?”


방수를 왜 따질까, 더 불안해졌다.


‘아니겠지?’


*


내 사칭범의 시신이 발견된 지 이틀이 지났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출발할 수 있다고 했다. 가져온 것은 가방 하나뿐이라 방으로 돌아가 급히 챙겨 나왔다. 차를 태우더니 공항으로 달려갔다. 헬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헬기 앞까지 차가 들어가 섰다. 군용헬기가 아니라 의문을 가졌는데, 미얀마의 부호가 자신의 자가용을 빌려준 것이라고 한다.


‘음?’


헬기에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안전관리자와 헬기 조종사, 부조종사라고 소개받았다. 그런데 뭔가 부족해 보였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헬기가 날아 양곤을 지나갔다. 곧 바다가 나왔다. 뿌연 양곤 앞바다를 지나자 짙은 청색의 바다만 보였다. 좌우 어디에도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섬이 보였으나 고도를 높이자 그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갔다. 난 설마 바로 갈 것이라고 여기지 못했다. 700km 떨어진 곳이라 어디든 들렀다 갈 줄 알았다. 두 시간 반을 비행할 줄은 몰랐다.


내가 모르는 것은 또 있었다.


-클라라 섬입니다!


헤드폰을 통해 안전관리자의 말이 들렸다. 그는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예?”


헬기가 고도를 낮췄다. 곧 정지비행을 했다.


‘어째서?’


해변이 바로 보이는데, 왜 내려주지 않고 이러나 싶다가 유명한 생존전문가가 떠올랐다.


‘베어형...!’


그는 항상 뛰어내린다. 배에서, 헬기에서, 때론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를 타고 가다 뛴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셋이 기대하며 보고 있었다. 언제 켰는지 카메라까지 들고 있었다. 마치, 우리의 영웅은 이 정도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보았다.


수영은 자주 한다. 내가 만든 수영장에서. 그 짧은 거리를 거의 잠영으로 이동했다. 폐활량은 자신 있다. 조와 최근에 테스트해봤는데 조는 15분, 난 21분까지 숨을 참고 버텼다. 훈련하면 더 늘 것 같지만, 그러다 죽을 것 같아 20분을 한계로 정했다.


어서 뛰라고 보는 이들을 가만히 보다 바디캠을 켰다. 목걸이형 카메라에 방수 덮개가 잘 씌워졌는지도 확인했다. 가방을 열어 내부 상태를 점검하며 슬쩍 보았지만, 누구 하나 장난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마 뜨위 메에에에!”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뛰었다.


쿠억!


물이 날 격렬하게 반겨주었다. 어설프게 팔을 휘저으면서도 가방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내 모습이 기막혀 웃었다가 물을 들이마셨다.


“쿠에엑! 퉤! 퉤!”


팔다리를 마구 휘저어 겨우 해변에 도착했다. 힘겹게 몸을 뒤집자 그때까지 보고 있던 이들이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하. 하하.”


바디캠에 제대로 녹화되었는지 살피고, 가방을 열어 파손된 것은 없는지 또 보았다.


“할 일 많다.”


많은데, 지쳐서 움직이기 힘들다.


*


가만히 누워있다가는 익어버릴 것 같아 기어서 해변 안쪽 숲으로 갔다. 잡다한 작은 생물들이 날 보고 빠르게 피해 움직였다.


미얀마 군정이 유지되었을 때, 내가 도착한 동쪽 해안이 군사지역이었다고 한다. 해안초소와 보트 몇 개 두고 지키는 장소였다. 모래사장이 형성된 해변이라 큰 배는 들어오지 못하던 곳이다. 그 전 개방되었을 때는 요트를 타고 멀리 배를 멈추고 섬으로 작은 보트를 타고 들어와 탐험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 이 섬을 방문한 사람들이 찍어 올린 영상들이 있어 살펴보았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밀림이 섬 전체에 조성된 곳이다.


영국 해군은 말레이반도 서쪽에 있는 섬 중에서 가장 큰 이 섬을 중요 요충지로 삼았다. 그러며 섬 서쪽에 군사지역을 설정하고, 그곳에 해군기지를 만들고 있다. 섬 동쪽에는 두 개의 큰 모래사장이 있지만, 서쪽에는 그런 곳이 없다. 있어도 무척 작은 숨겨진 해변으로나 쓰일 장소라고 한다. 섬 가까이 큰 배를 붙일 수 있기에 서쪽을 택한 것 같다.


내가 도착한 곳은 두 개의 해변 중 큰 북쪽 해변이다. 약 600미터의 길이를 가진 곳이다. 해변 끝과 중앙을 선으로 연결하면 삼각형이 되는데, 섬 쪽으로 푹 들어간 중앙에는 숲에서 흘러나온 시냇물이 바다와 만나는 장소다. 맹그로브가 자라는 습지가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폭이 5km, 길이가 대략 10km 되는 섬으로 해저화산의 활동으로 형성되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숲 어딘가에는 석유가 나오거나, 유황을 발견할 수도 있단다. 숲 중앙의 산이 분화구는 아니라는데, 최근 해저화산이 분출한 곳과 그리 멀지 않아 설명을 들으며 잘못 고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왜 이 섬을 골랐는지는 도착한 지금도 의문이다. 식생이 풍부하다는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주변에 그런 섬은 즐비하니까. 더 넓고 보기 좋은 해변을 지닌 섬도 바로 옆에 있다. 그런 곳을 내 채널을 통해 소개하면 될 텐데, 왜 하필 이곳일까.


“집을 짓기 전 먼저 탐사하겠습니다. 체력이 남아있을 때 제일 먼저 식수를 확보해야 합니다.”


물이 있지만 상류를 찾아내는 것이 더 좋다. 난 그런 물은 급할 때 마시기로 했다.


해변을 따라 돌다 쓰레기가 모인 곳을 발견했다. 다른 때라면 눈을 찌푸리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기가 보물창고입니다.”


칼 하나만 들고 온 내게 모든 것이 보물이다.


“플라스틱병이 많군요. 뚜껑이 있는 것도 좋고, 없는 것도 쓸모가 있습니다.”


거북이를 죽게 하는 비닐봉지도 많이 보였다. 햇빛에 삭아 쓸 수 없는 것은 제외하고 쓸 수 있는 것, 투명한 것을 골라 챙겼다. 대나무, 야자열매, 목재, 부표, 그물 조각 등 모든 것을 살피고 골라내 한쪽에 모았다. 그런 뒤 비닐봉지와 페트병만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


“나무는 숨을 쉽니다.”


나뭇잎을 비닐로 감쌌다.


“이렇게 두면 숨을 쉬며 발생한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증산작용인가요? 과학적 설명은 댓글로 누군가 알려주실 겁니다.”


주변을 살피다 야자수를 찾아내 올라갔다. 칼을 물고 올라가 야자열매를 따서 하나를 던져보았다. 모랫바닥이라 그런지 깨지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가 소중한 자원이라 조심스레 하나씩 던져두었다. 그런 뒤 잎줄기를 하나 잘라내고 그 끝에 페트병을 연결했다.


“푸, 푸.”


날벌레와 개미가 달라붙어 연신 불며 작업을 마치고 내려왔다. 그리고 다른 나무로 올라가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후우. 야자수 수액을 받는 겁니다. 수액을 굳혀 설탕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야자수는 속살이 붉은 종입니다. 당도가 높고, 약으로도 쓰인다는데 인도네시아 등에서 자생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것은 흰 살 야자지만, 수액은 나올 겁니다. 약하기는 해도 당도도 있을 테고. 한국인들이시라면 고로수가 뭔지 아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아마존 밀림에는 물을 가득 담아두는 나무도 있다죠? 그래서 구멍을 뚫어 수분을 보충할 때 이용한다고 합니다. 모든 나무의 수액이 안전하지는 않을 겁니다. 종에 따라 위협을 받으면 독을 품는 나무도 있습니다. 아카시아 같은 것이죠.”


야자열매를 까서 먹으며 잠시 쉬었다.


“야자열매는 수백 킬로미터를 항해해 다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산호섬에 야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럴 생각으로 이런 열매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지구를 정복했다는 생각은 라오스의 밀림에 들어가 산지, 석 달이 지나기 전 바뀌었다. 지구의 주인은 식물이다. 인간의 번식력을 아득히 초월해 그들은 세상 어디라도 뿌리를 뻗고 있다. 극지방과 사막에도 때를 기다리며 숨죽인 식물들이 숨어 있다.


“이곳의 숲은 관리를 못 받아서 아마 엉망일 겁니다. 대자연의 관리 솜씨는 엉망이라서요. 그게 자연스럽겠지만···. 날이 저물기 전에 쓰러진 나무를 찾아 해변으로 옮기겠습니다. 숲이 집을 만들기는 편하지만, 그곳에는 알지 못하는 생물이 많이 삽니다. 제가 라오스의 밀림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이쪽은 무지합니다. 육지라면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지만, 섬입니다. 고립된 섬에서는 전혀 다른 종이 발견되기도 하지요. 갈라파고스처럼 특이하게 진화한 종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쪽 지역에 대해 일부러 공부 안 했습니다. 여러분과 동등한 입장에서 살아남으려고요. 위험한 일이나 그게 취지에 맞는 행동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물이 있는데도 식수를 어렵게 구하려는 이유입니다.”


야자열매의 속을 싹싹 긁어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발을 가방에 넣길 다행입니다. 안 그랬으면 신발을 만들어 신거나 말릴 때까지 숲에는 들어가지 못했을 테니까요. 아무리 자연스럽게 살려고 해도 이 신발은, 발바닥에 굳은살을 잔뜩 만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맨발로 다니는 라오스 밀림의 떠돌이들도 발바닥에 상처가 생기더군요. 신발을 젖지 않게 유지하는 것도 생존에 도움이 됩니다.”


가방에도 카메라를 한 대 부착해 부족한 앵글을 보충했다. 단검을 쥐고, 한 손에는 막대기를 쥐었다. 막대기를 길게 뻗어 나무를 치고, 바닥을 찌르며 움직였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기에 늘 주의해야 한다.


“다치면, 운이 좋지 않으면 죽습니다. 아무것이나 먹어서도 안 됩니다. 모르면 안 먹는 것이 좋습니다. 맛있게 보이는 저 붉은 열매도 뭔지 모르니 넘어가는 겁니다. 안다고 무작정 먹어서도 안···.”


소리가 들렸다. 발을 멈추고 전방을 주시했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바람 소리 같았다.


“버섯을 자신하고 먹다가 죽을 수 있습니다. 독버섯처럼 생긴 식용버섯이 있고, 식용버섯처럼 생긴 독버섯이 존재합니다.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성향인데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쓰러진 나무를 발견했다. 쓰러지며 주변 나무를 껴안아 여러 그루가 쓰러져 있었다. 하늘을 보았다. 그곳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고 새롭게 자라는 나무들이 인상 깊었다. 사람은 무덤 위에서 자랄 수 없다. 식물만 가능한 방식이다.


나무를 다듬어 끌고 움직였다. 내가 들어온 곳에 벌써 길이 만들어졌다. 자주 오가면 나만의 길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식물은 메꾸고 사람은 파괴하고, 우리는 과연 제대로 공존하고 있는 것일까.


“하.”


오랫동안 누군가가 곁에 있어선지, 혼자가 되니 어색하고 더욱 외롭다. 벌써 돌아가고 싶어진다. 난 도대체 왜 이런 곳을 찾아와 이 고생을 하는 것일까.


*


모래 위에 짓는 집은 기둥에 의지해 올릴 수 없다. 땅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서 있게 만들어야 한다. 약간의 도움은 받을 것이라 그래도 모래를 파서 넣는 것이 좋다.


“모래를 팔 때 적시는 것이 좋습니다. 안 그러면 파다가 성질이 날 겁니다. 여기 해변의 모래는 입자가 곱고 가벼워 바람에 잘 날립니다. 이 모래를 가져가 집을 짓고 싶군요. 염분을 잘 씻어야 하겠지만, 철근을 쓰지 않으면 그냥 써도 되려나...? 잘 모르겠군요.”


기둥을 박고 기둥을 서로 의지하게 연결했다. 그런 뒤 1.5미터 높이에 집의 바닥을 만들고, 바닥에서 2.5미터 높이로 벽을 올린 뒤 지붕을 올렸다.


“숲에 붙이지 않고, 또 해안에서도 떨어진 곳에 집을 짓는 이유는 바다가 밀려오기 때문이고, 바람 때문이고, 태양 때문입니다. 한낮의 땡볕을 피할 그늘막이고, 밤의 추위와 비를 피할 공간입니다. 바닥이 높은 것은 역시 벌레와 기타 생물들, 이곳에 서식할지 모를 위험 요소에서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집 아래에 연기 불을 피우겠습니다. 제가 가져온 재료에 벌레가 달라붙어 있을 테니까요. 개미집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불을 피웠다. 생존에 필수인 불. 물도 필요하지만, 불이 없으면 더 많은 위험을 겪게 된다. 뭐든 다 익혀 먹어야 안전하니까. 짐승도 쫓아주고, 연기로 날벌레도 쫓아내 주고···.


“으아아아아아아.”


막대기를 비비는 방법으로 불을 피웠다. 영상을 그대로 쓰면 빨리 감기를 했다고 여길 것이다. 마찰로 시커멓게 변한 나무토막의 재 속에 불꽃이 나타났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 불똥을 아래에 놓은 야자열매 껍질을 잘게 찢은 것 위에 올리고 뭉쳐 후후 불었다. 연기가 몽실몽실 커지다 순간 불꽃이 확 올라왔다. 준비한 불쏘시개 위에 올리고 잘게 자른 나무를 조금씩 올렸다. 여러 나뭇조각에 불이 붙었을 때, 조금 큰 나무, 그보다 큰 나무 순서로 차분히 불을 키웠다.


“몇 번을 해도 긴장되는군요.”


해변이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으로 더위를 견딜 수 있다. 그늘만 있으면 충분하다. 벽은 통풍이 잘되게 엉성하게 붙였다. 모기장이 없으니, 바닥도 엉성하니, 벌레는 연기에 맡겨야 한다.


집을 완성하고 바다를 보니 배가 지나가고 있었다. 형태를 보니 군선 같았다. 내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지나가는 것인가 싶다.


‘설마, 하루 만에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을까.’


단순히 순찰코스를 도는 배일 것 같다.


*


자다 깨서 급히 카메라를 켰다. 개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래 밤에 일어나려 했다.


“밤에 활동하는 생물들이 많습니다. 빛을 따라오는 생물도 있고요. 제 주식이 될 녀석들이죠.”


충전해둔 태양열 전지판이 부착된 랜턴을 켜고 움직였다. 달이 뜨지 않아 깜깜했지만, 별빛으로 충분히 사방을 볼 수 있었다. 응언의 능력이 나타났기에. 그래도 랜턴을 켰다. 날 비추는 카메라는 없지만,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니까.


낚싯대도 없고, 다른 어구도 없기에 맨손으로 주워야 한다. 모래사장에는 딱히 숨을 곳이 없기에 모래에 숨은 녀석들 말고 해변까지 오는 생물은 크기가 작다. 가까이 오는 종 중에 가오리가 있는데, 이 녀석들은 사람을 친구로 여긴다. 스쿠버에게 익숙해졌고, 먹이를 주는 사람도 있어 다가온다고 한다. 꼬리에 독침도 있고, 사람을 따른다니 잡아먹고 싶지도 않다.


노력에 비해 많은 에너지를 주는 녀석들을 잡는 것이 좋다. 그래서 밤을 택한 것이다. 본격적인 채집은 내일 하기로 하고,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 모래사장 끝 바위 해변으로 갔다. 물이 적당히 빠져 여기저기 웅덩이가 보였다.


“물 시간을 체크 해야 합니다. 바다는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지고 두 번 물이 들어옵니다. 반복해서 천천히 이뤄집니다. 달의 위치에 따라 변하니 늘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내일의 시간은 대충 예상할 수 있으니 꼭 외우셔야 합니다.”


게들이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게를 잡고, 바위에 달라붙은 소라 같은 것도 잡았다. 웅덩이에 해삼도 봤지만 아는 것도 조심해야 할 때라 잡지 않았다. 색도 너무 화려해서 탈이 날 것 같았다.


잡아 온 게를 밀려온 산호 조각으로 문질러 바닷물에 씻고, 새우와 함께 코코넛 물에 넣었다. 그릇은 대나무다.


“타긴 하겠지만, 그래도 구멍이 뚫릴 정도로 타려면 내부의 수분이 다 빠져야 할 겁니다.”


대나무 숲이 있었지만, 난 그걸로 집을 만들지 않았다. 대나무로 만들면 너무 쉬워진다.


“대나무는 참 좋은 재료입니다. 가볍고, 단단하죠. 변형이 쉽고요. 무엇보다 빨리 자랍니다. 하지만 인류는 대나무로 집을 만들어 살지 않았습니다. 오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명을 늘릴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소금물에 담그는 겁니다. 담그고 말리길 몇 번 반복하면 더 오래간다더군요. 태국이던가? 인도네시아였나? 그쪽에서 대나무를 주재료로 집을 짓는 건축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무려 6층짜리 호텔을 만들었다. 20미터가 넘는 다리도 만들었다. 모형을 만들며 미리 대나무를 어디에 놓을지 등을 결정한 뒤에 만드는 방식을 쓴다. 유명한 강연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시도하고 성공하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에 말하는 것도 보았다.


“제가 ‘대나무에는 한계가 있다. 좋은 재료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 아마 호주 형님을 따라 하는 아류분들의 건축방식이 보여주기식이며 유지하기 힘든 구조라고 말하는 것을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쪽 관계자가 댓글을 써놨는데, 그걸 최근에서야 봤습니다.”


“대나무로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라 내 말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오해는 그쪽이 한 것이라 사과는 안 했습니다. 내가 오래전 그들의 리더인 여성 건축가의 집들도 영상으로 본 것을 말해주자, 알아서 오해를 풀더군요.”


“그러며 왜 소금물에 담가서 대나무집을 만들지 않는지 묻기에 저는 스트리머라고 말했습니다. 당신들도 해결하지 못한 벌레나 빛에 의한 약화 등을 걱정하는 점도 있고, 소금물을 만들어 담갔다가 말리는 과정을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들은 수십, 수백 명이고 저는 혼자라는 것도 알려줬습니다. 아직도 제가 혼자 하지 않고 사람을 고용한다고 여기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과 대화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내가 이곳에 온 이유인가 싶다. 그런 댓글에 지치기도 하고. 아라와 아일라는 아무렇지 않은데, 나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사는 것 같고.


“하, 지친 것 같네요.”


집이 아닌 곳을 돌아다니는 내가, 라오스의 밀림 속 그곳을 진짜 내 집으로 여기고 있구나 싶다. 여행을 온 기분으로 이곳에 왔구나 싶다.


‘와야 할 곳이었구나.’


휴식이 필요했다. 이게 휴식인가 싶지만.


*


눈을 뜨자마자 집부터 부쉈다. 목재를 잘라보니 개미집이 있었다. 개미집을 통 채로 태웠다. 좋은 영양분이지만 먹고 싶진 않았다.


“크하하하! 꼴 좋다!”


밤새 뜯겨 쓰린 피부를 달래러 물로 뛰어갔다. 몸을 담그고 있자 기분이 나아졌다.


“응? 조개다!”


바닥에서 돌을 잡았다고 여기며 들었는데 조개였다. 더듬어보니 여기저기 큰 조개들이 많았다. 잔뜩 잡아 굽고 삶아 먹었다. 바닷물에 삶았더니 짜서 먹기 힘들었다.


“물!”


설치해 둔 물주머니들을 돌며, 모인 물을 페트병에 담았다. 삼십 개를 설치했는데 반병밖에 나오지 않았다. 봉투가 더러웠는지, 잎에 먼지가 앉았었는지 물이 누렇기에 바로 먹기 싫어졌다.


물은 따로 두고 야자열매를 까서 마셨다.


“캬! 이거지!”


속을 긁어먹으며 오늘 할 일을 궁리했다.


“우선 집부터.”


어제 만든 집은 몽땅 장작으로 쓸 생각으로 돌도끼부터 만들었다. 단검 하나로 모든 일을 하기에는 어려웠다. 돌도끼를 기껏 날까지 세워 만들었지만, 때릴 때는 뭉툭한 뒷면을 이용했다.


퍽!


주변을 살피다 주먹과 발로도 쪼갰다. 영상에서는 도끼 쓰는 시늉만 했다. 예민한 사람들은 알아볼 테지만, 증명할 길은 없을 것이다. 난 진짜 혼자 무인도, 반무인도에 온 것이니까.


숲으로 들어가 대나무를 잔뜩 잘라서 나왔다. 어제 대나무를 안 쓰겠다고 떠들었지만, 역시 대나무가 최고다. 하지만 기둥은 대나무를 쓸 수 없다. 이곳 대나무는 그리 굵지 않다. 여러 개를 뭉쳐 쓰면 되겠지만, 귀찮다. 손이 더 많이 간다.


다시 숲으로 들어가 최근에 쓰러진 나무를 찾았다. 야생 망고와 패션프루츠, 오렌지 종류로 보이는 것, 바나나도 찾았다. 양은 많지 않고 야생이라 고생에 비해 내용물은 부실할 것이다. 그래도 먹을 것이라 다 챙겼다. 숲에 사는 생물들이 많이 먹었는지 주변에 흔적이 가득했다.


“올무는 놓지 말자.”


나무를 끌고 나와 토막 내다가 날이 저물어버렸다. 나무에 대충 가지를 걸치고 삼각 지붕을 세웠다. 모랫바닥에 누워서 하늘을 보다 잠이 들었다.


*


일찍 자니 일찍 일어나게 된다. 먹는 것도 부실해서 배고픔이 눈을 더 빨리 뜨게 하는 것 같다. 야자열매를 미리 따 놓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눈도 뜨기 전 더듬어 야자수를 쪼개고 입에 들이부었다. 눈을 뜨며 안을 긁어먹다 밖으로 나왔다. 해가 멀리서 떠오르고 있었다.


“와아!!!”


속에 있던 덩어리 하나가 그 순간 쑥 나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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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좀비 시티 II 22.06.24 45 3 22쪽
96 좀비 시티 I 22.06.24 36 3 20쪽
95 종말을 맞이하는 스트리머의 올바른 자세 22.06.23 44 2 26쪽
94 황조 II 22.06.22 40 3 20쪽
93 황조 I +1 22.06.22 36 3 18쪽
92 교차점 V 22.06.21 38 3 19쪽
91 교차점 IV +1 22.06.21 34 3 16쪽
90 교차점 III 22.06.21 34 3 20쪽
89 교차점 II 22.06.21 34 3 13쪽
88 교차점 I 22.06.21 41 2 19쪽
87 나 혼자 살았다 22.06.19 46 3 20쪽
86 변화 V +1 22.06.18 46 2 24쪽
85 변화 IV 22.06.18 35 2 17쪽
84 변화 III 22.06.18 38 2 19쪽
83 변화 II 22.06.18 37 2 21쪽
82 변화 I 22.06.18 39 2 15쪽
81 술래잡기 22.06.17 38 3 22쪽
80 클라라 아일랜드 II +1 22.06.17 44 4 23쪽
» 클라라 아일랜드 I 22.06.17 45 3 22쪽
78 도용 22.06.16 65 3 25쪽
77 불청객 III 22.06.14 52 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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